레드 툼

레드 툼 ⓒ 레드무비



"레드 툼 무료상영회 합니다. 많은 관람 바랍니다."

자주 쓰는 휴대폰 앱을 이용하던 중 9월 22일(화)에 지역 무료 영화 상영회를 한다는 내용이 눈에 띄었습니다. '레드 툼? 외국영화인가?'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회단체에서 주최하는 상영회라 외국영화라 하더라도 의미 있을 것이라고 여기고 가보기로 했습니다.

상영하는 곳은 울산 시내 한 소극장. 연극 무대로 꾸며진 작은 극장이었습니다. 여러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안면 있는 사람도 있었고, 모르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상영을 주최한 사회단체에서 간단한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골로 갔다거나 물 먹었다는 말을 들어 본적이 있습니까? 오늘 볼 영화가 그 말에 관한 영화입니다. 1950년 한국전쟁을 전후로 한 시기에 100만 명 이상의 민간인이 희생되었다고 합니다. 그 속에서 지방 좌익과 우익의 보복 학살도 자행되었지만, 남한의 군·경, 우익단체, 미군의 폭격에 의해 수많은 일반인들이 학살당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이승만 정권은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국가가 만든 사상 계몽단체인 국민보도연맹에 가입된 이들이 인민국에 동조할 수 있다는 의심 아래 예비검속을 하고 인민군이 점령하지 않은 지역에서 광범위하게 집단학살을 자행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골로 갔다, 물 먹었다는 말이 지금도 쓰이고 있습니다. 이 말은 보도연맹 민간인들이 산골로 끌려가 죽임을 당한 것과 바다에 무더기 수장당한 것을 표현한 것입니다. 보도연맹에 가입되어 있는 대다수는 이념과는 무관한 농민이었습니다.

가입된 사실조차 모르는 이들도 많았습니다. 전국의 산과 바다에서 학살된 보도연맹원 수는 23만~45만 명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이에 대해서 제대로 된 진상 규명이나 사실 규명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국민을 '생매장' 시킨 국가

저는 '레드 툼'이 뭔 말인지 몰라 검색해 보니, '빨갱이 무덤'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영화가 시작되니 모두 숨죽이고 영상속 화면을 주시했습니다. 영상은 시골 마을의 나이 많은 어르신 인터뷰로 시작했습니다. 할머니도 계셨고, 할아버지도 계셨습니다.

"모두 x승만이가 한 짓이여. x승만이가..."

수많은 영화 속 인터뷰 내용 중 강한 인상을 남긴 말이었습니다.

한 할머니는 경찰이 남편을 죽였다는 소식을 듣고 친척들과 시체를 찾으러 갔는데, 목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끔찍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상은 마을 분들의 안내로 어느 산속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학살되고 한꺼번에 파묻힌 곳이 나왔습니다. 시골 마을 곳곳에서 집단학살이 일어나고, 시체들을 마을 사람을 시켜 파묻었다고 했습니다. 어느 곳에선 나무 기둥에 묶어 소총으로 사격, 살해 후 야산에 파묻었습니다. 어느 곳에선 구덩이를 크게 파놓고는 잡혀 온 양민들을 구덩이로 몰아넣고는 집단 사격으로 사살 후 바로 묻어버렸다고 합니다.

죽지 않고 살아 있는 사람은 확인 사살을 하거나, 목숨이 붙어 있어서 "살려달라"고 외치는데 다른 시신과 함께 파묻어 버렸다는 이야기까지 있습니다.

아직 생사를 모른다며 울먹이는 어르신도 많았습니다. 그분들은 "죽기 전에 뼈라도 찾았으면 좋겠다"며 통곡을 하기도 했습니다. 영상은 산에서 바다로 내려갑니다. 배를 탄 상태에서 인터뷰가 이어졌습니다.

"여기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어요. 배에 태우고 와서 10여 명씩 줄로 묶어 그대로 바다로 던져 버렸어요. 대부분 발버둥 치다가 죽었는데 용케도 밧줄을 풀고 헤엄쳐 가는 사람이 있었어요. 살려고 바둥거리는데 칼빈 소총으로 쏴 죽였어요."

시체들이 바닷가로 밀려와 산더미를 이루었다고 증언합니다. 영상은 또, 집단 학살터를 찾아 발굴 조사 하는 장면도 보여주었습니다. 시신들이 뒤엉켜 누가 누군지 알 수 있기는 어려울 것 같았습니다. 60년 지난후 발굴을 시작한지라 앙상한 뼈만 남아 당시의 처참한 상황을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제주 4.3 사건, 일본군 성노예 문제,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미군 범죄에 대해서도 규명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왜 그런지 보도연맹 학살사건에 대해선 6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피해자만 속앓이 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전국 곳곳에서 수십만여 명이 이유도 모른 채 학살되었습니다. 지금이라도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그 원혼들을 위로할 수 있는, 보다 구체적인 진상 규명작업을 진행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한 할머니의 말씀이 떠오르면서 다시금 가슴 한 켠이 먹먹해집니다.

"지금도 또 그런 일이 생길까봐 무서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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