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텍스트(Text)에는 맥락(Context)이 있습니다. 문화 콘텐츠도 마찬가지입니다. 100% 정치적인 예술이 존재할 수 없듯이, 100% 순수한 예술도 없습니다. 문화 공연을 때로는 인문학적으로, 때로는 사회과학적으로 읽어봅니다. 마음에 안 들면 신랄하게 태클도 걸어보고, 재미있으면 '우쭈쭈' 칭찬도 합니다. 공연을 정치·사회적으로 해석하려는 시도가 항상 성공하지는 않을 겁니다. 시도가 비록 재미(Fun)는 없더라도, 최소한 '뻔'한 리뷰는 쓰지 않으려 합니다. [편집자말]
사진을 찍는 명성황후 서울예술단의 창작가무극 <잃어버린 얼굴 1895>의 프레스콜이 지난 1일, 서울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진행됐다. 배우 차지연이 명성황후 역할을 맡아 연기하고 있다. 그녀의 혼백이 남긴 유일한 사진을 민영익은 애타게 찾지만, 휘는 끝내 이 사진을 넘기지 않는다. 그리고 결국 이 사진을 불태운다. 그녀가 역사에 남긴 것은 무엇인가. 을미사변 후 120년. 온전히 그녀를 바라봐야 할 시점이다.

▲ 사진을 찍는 명성황후 서울예술단의 창작가무극 <잃어버린 얼굴 1895>의 프레스콜이 지난 1일, 서울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진행됐다. 배우 차지연이 명성황후 역할을 맡아 연기하고 있다. 그녀의 혼백이 남긴 유일한 사진을 민영익은 애타게 찾지만, 휘는 끝내 이 사진을 넘기지 않는다. 그리고 결국 이 사진을 불태운다. 그녀가 역사에 남긴 것은 무엇인가. 을미사변 후 120년. 온전히 그녀를 바라봐야 할 시점이다. ⓒ 곽우신


 뮤지컬 <잃어버린 얼굴 1895>의 프레스콜 현장

▲ 갑신혁명의 실패 지난 1일, 서울예술단의 창작가무극 <잃어버린 얼굴 1895> 프레스콜 현장. 갑신정변이 실패한 후, 좌절하는 김옥균의 뒤로 명성황후와 고종이 걸어 들어오며 그를 비난하고 있다. 애초에 김옥균에게 휘둘리며 유약한 면모를 보였던 고종은, 이 장면에서 냉정하고 광기 어린 모습을 보여준다. 그 캐릭터의 변화를 배우 박영수는 흡인력 있게 소화한다. ⓒ 곽우신


서울예술단의 창작가무극 <잃어버린 얼굴 1895>가 지난 8월 29일부터 9월 10일까지의 호연을 마치고 막을 내렸다. 서울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관객을 마주한 이번 공연은, 마침 바로 옆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 올라왔던 뮤지컬 <명성황후>와 여러모로 비교될 수밖에 없었다(관련 기사 : 한국 뮤지컬의 자존심, 고작 이정도 '국뽕'으로?).

두 작품 모두 같은 시기, 같은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외세에 의해 국권이 침탈되던 시기, 고종의 왕비가 된 민자영이 일본에 의해 암살될 때까지의 일대기를 그렸다. 뮤지컬 <명성황후>가 20주년을 맞았지만, <잃어버린 얼굴 1895>는 2013년 초연 이후 이제 갓 2년 된 젊은 극이다.

방점을 찍은 부분도 다르다. 뮤지컬 <명성황후>는 전통적이고 화려한 의상, 웅장하고 고전적인 음악으로 치장했다. 하지만 <잃어버린 얼굴 1895>의 복색은 어제와 오늘이 뒤섞였다. <명성황후>에 비해 노래의 웅장함은 덜하지만, 훨씬 현대적이다. 군무의 무게감은 충실하고, 절제된 듯 섬세한 영상미도 돋보인다.

민자영, 그녀의 양면을 모두 보여주다


<잃어버린 얼굴 1895>의 매력은 이 '모던함'이 다일까. 아니다. 우선 주·조연의 조화가 적절하다. 주인공인 명성황후 민자영의 이야기가 중심이지만, 고종과 대원군의 무게감 역시 민자영보다 뒤처지지 않는다. 유약한 듯 두려움에 떨다가도 광기 어린 카리스마를 보여주는 고종 캐릭터의 입체성에 감탄하게 된다. 권력에 대한 야욕으로 뭉친 대원군은 평면적인 인물임에도 무대를 장악한다.

그러면서 이 작품은 극의 흐름을 궁중 암투에 가두지 않는다. <잃어버린 얼굴 1895>의 장점 중 하나는 개인의 기억과 집단의 역사가 어우러진다는 점이다. 김옥균이라는 인물을 내세워, 정치적 혁명을 꿈꿨던 당시 젊은 지식인 엘리트의 이야기도 충실히 담아냈다. 고종의 마음을 담보로 갑신정변을 일으킨 김옥균, 그의 혁명 추진과 실패까지 이어지는 신은 그 자체만으로도 기승전결이 있는 작품이다.

'새야 새야'와 함께 등장하는 전봉준은, 대사 한마디 없음에도 춤으로 무대를 꽉 채워 강한 인상을 남긴다. 엘리트의 혁명과 민중의 혁명을 모두 다루면서, 당시 시대에서 고민하고 분투했던 여러 주체의 목소리를 포괄하고자 노력한 흔적이 엿보인다.

 뮤지컬 <잃어버린 얼굴 1895>의 프레스콜 현장

▲ 갑신정변 지난 1일, 뮤지컬 <잃어버린 얼굴 1895>의 프레스콜 현장에서 배우 김도빈과 박영수가 연기하고 있다. 극 속에서 김옥균의 혁명은 꽤나 인상적으로 연출된다. 고종의 마음을 담보로 시작한 혁명, 그 신의 시작과 끝에서 김옥균과 고종의 관계는 역전된다. 이 혁명의 실패와 좌절은 민자영의 업보로 남는다. ⓒ 곽우신


주·조연의 합은 단순히 극의 균형을 맞추는 데 그치지 않는다. 민자영을 바라보는 엇갈린 시선, 정반대의 역사관을 하나의 작품에 아우른다. 이 극의 화자는 둘이다. 민자영의 친척 동생(실제로는 조카)인 민영익, 사진관의 가상 인물 휘이다. 민영익은 민자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그의 안위를 걱정하는 인물이다. 반면 휘는 민자영에 의해 가족을 잃은 후 그녀를 원망하며, 김옥균의 혁명을 응원하는 캐릭터이다.

휘·전봉준·김옥균 모두 위치는 다르지만, 민자영과 대립하며 갈등을 유발하는 인물이다. 민자영이 행한 악행의 피해자, 그녀에게 저항하는 혁명의 지도자이기에 그들이 묘사하고 이해하는 민자영은 '민비'의 모습에 가깝다. 반면 민영익·선화·진령군은 민자영의 곁을 지키며 민자영의 외로움과 슬픔을 이해하고 달랜다. 이들이 바라보고 설명하는 민자영은 '명성황후'의 모습에 가깝다.

이 양면적인 서사는 민자영이라는 하나의 캐릭터를 향해 수렴하고 응축한다. 결과적으로 민자영은 어딘가 뒤틀려 있고, 비정하며 잔학한 인물임과 동시에 민영익을 포함한 주변 인물을 살피는 애잔한 인물이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중전의 자리, 그저 가난을 탈출해 부귀와 사랑을 얻고 싶었던 소녀는, 중차대한 위기의 조선 앞에서 휘청거린다. 고종의 조롱, 대원군과의 불화, 전봉준의 난과 김옥균의 도전까지. 그녀의 주변에는 그녀가 '적'으로 여기는 이들밖에 없다.

그래서 민자영은 더 민영익에게 매달린다. 무당에게 의존하고, 자신을 험담하는 백성을 모조리 죽여 버린다. 그렇게 쌓아간 업보는 결국 그녀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 그녀의 불운과 액을 막기 위해 함께 했던 선화가 그녀 대신 목숨을 잃지만, 그런데도 결국 민자영은 죽음을 피하지 못했다. 목숨 하나의 대리로 죽음을 면하기에는, 그녀가 죗값이 너무 컸다.

 뮤지컬 <잃어버린 얼굴 1895>의 프레스콜 현장

▲ 을미사변 그리고 죽음 지난 1일에 열린 뮤지컬 <잃어버린 얼굴 1895>의 프레스콜 현장. 극 중 민자영은 액받이로 데려 온 선화 덕분에 사변 당시 목숨을 구하나 결국 숨을 거두고 만다. 명성황후의 죽음을 둘러싼 여러 '설' 가운데 특별히 하나를 선택하지 않고 열어놨으며, 대원군이 관련되어 있을지 모른다는 가능성도 제시했다. 그녀가 쌓은 업은, 한 명을 대리로 죽인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 곽우신


<잃어버린 얼굴 1895>는 민자영을 단순 미화하지도, 마냥 비판하지도 않는다. 개인사와 시대상이 겹치면서 한마디로 정의하기 힘든, 양면적 감정을 모두 자극하는 인물이 된다. 복잡하게 재탄생한 극 중 민자영은 마치 <엘리자벳> 속 그녀처럼, 연민과 증오를 동시에 끌어안는다.

이처럼 <잃어버린 얼굴 1895>의 강한 흡입력은 이야기가 아니라 인물에서 나온다. 아쉬움은 있다. 민자영의 양면을 최대한 충실하게 살린 데 반해, 민영익은 화자 역할에 갇히는 바람에 비중이 지나치게 적다. 심지어 그의 악행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다. 역사를 모르고 작품만 보면, 민영익은 그냥 가만히 있다가 봉변을 당한 '억울한' 사람이 된다. 선화는 휘와 민자영을 잇는 주요한 기능을 함에도 극 안에 완전히 녹아들지 못한다는 느낌이다.

<잃어버린 얼굴 1895>는 장면별로 감각적이고 세련된 연출을 보여준다. 군무와 어우러지는 신들은 서울예술단이 무엇을 잘하는지 과감하게 뽐낸다. 그러나 그 장면들을 잇는 줄거리가 다소 헐겁다. 명성황후의 어진이라고 명확하게 증명된 사진이 없다는 역사적 사실에 상상력을 가미해 미스터리하게 꾸렸지만, 당시 질곡의 역사를 잘 모르는 사람이 보면 각 사건의 인과를 연결하기 어렵다. 하나의 완성된 교각이라기보다는 관객이 예쁜 보옥을 하나씩 밟으며 뛰어넘어야 할 징검다리 같은 모양새다.

그래서 더 스토리의 완성도에 미련이 생긴다. 매혹적인 요소들이 완벽하게 융화되지 못하고 미묘하게 틀어져 있다. '구슬이 서 말이어도 꿰어야 보배다'는 진리이다.

우리는 그녀의 얼굴을 어떻게 마주해야 하는가


민자영의 '잃어버린 얼굴'이 단순히 그녀의 사진만을 의미할까. '민비'와 '명성황후' 그 사이 어딘가에서 그녀는 정말로 그녀의 얼굴을 잃어버렸다. 을미사변으로 그녀가 죽은 지 120년, 우리는 여전히 민비를 저주하거나 명성황후를 찬양하거나 둘 중 하나에 얽매인 채 정체되어 있다.

로마 신화에는 '야누스'라는 신이 나온다. 문을 지키는 수호신이자, 두 개의 얼굴을 가진 신. 로마 시내에 버젓한 신전도 있었고, 위계도 높은 신이지만 정작 인상적인 신화는 없다. 야누스의 얼굴 중 어느 쪽 얼굴이 진짜일까. 둘 다 진짜일까. 그렇다면 그 둘 이외의 얼굴은 없는가. 아무도 알 수 없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물리적 얼굴은 하나이다. 하지만 육신의 얼굴이 하나라는 말이, 실제로 우리의 얼굴이 하나라는 의미는 아니다. 소설가 이영도가 그의 작품에서 언급한 것처럼 "나는 단수가 아니다". 나는 단수가 아니므로, 나의 얼굴도 단수는 아니다. 누군가가 그리워하는 얼굴, 바라보는 얼굴, 대화하는 얼굴, 마주하는 얼굴. 무수한 관계의 망 속에서, 관계마다 우리는 각각의 다른 얼굴을 가지고 있다.

그 각각의 얼굴이 모두 '나'이다. 각 얼굴을 인식하고 인정하는 것이 나를 탐색하는 과정이며, 나를 찾는 길이다. 자아는 특정한 부분만 배제하고 무시할 수 있는 덩어리가 아니다. 그러나 문이 열려 있는 상태와 닫혀 있는 상태밖에 없듯이, 문을 지키는 야누스는 두 개의 얼굴 이외에는 아무 얼굴도 존재하지 않는 존재가 됐다. 이야기도 없고, 존재감도 없는 신.

 뮤지컬 <잃어버린 얼굴 1895>의 프레스콜 현장

▲ 잃어버린 얼굴 서울예술단의 창작가무극 <잃어버린 얼굴 1895>에서 주인공 명성황후 역을 맡은 배우 차지연이 노래하고 있다. 지난 1일, 서울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열린 프레스콜에서 배우 차지연은 본인의 역량이 얼마나 탁월한지 여실히 보여줬다. "이 저주가 날 다시 살게 하리"라고 절규하는 그녀의 노래에서 증오와 비애가 느껴진다. ⓒ 곽우신


명성황후도 마찬가지이다. 그녀를 향한 엇갈린 평가 속에, 그녀는 자기의 얼굴을 잃었다. 사진만 잃은 것이 아니라, 얼굴 자체를 잃었다. 민비도 민자영이고, 명성황후도 민자영이건만 그렇다고 민비와 명성황후만이 민자영은 아니다. 그 모두를 포함하면서도 넉넉한, 더 큰 틀 거리가 있을 터이다. 그러나 액자 속 사진처럼, 정해진 '프레임' 안에 갇힌 민자영은 민자영을 잃은 채 떠돌고 있다.

<잃어버린 얼굴 1895>는 이런저런 악행에도 불구하고 명성황후를 이해해달라고 설득하는 작품이 아니다. 그저 그녀에게는 이런 면도 있고, 저런 면도 있을 수 있음을 사실과 가상을 뒤섞어 얘기하고 있다. 그녀에 대한 평가는 역사가와 대중의 몫이며, 개인이 어떤 사관을 선택하는지는 전적으로 그의 자유이다. 그러나 다만, 흑백논리나 다름없는 선 긋기에 그녀를 가두면, 긍정적인 평가든 부정적인 평가든 '온전한' 평가일 수 없다.

이 작품의 작사와 대본을 맡은 장성희는, 지난 1일 <잃어버린 얼굴 1895>의 프레스콜 현장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는 (명성황후의) 악을 이해하고자 했습니다. 저에게는 매우 불편했습니다. 제 개인적인 관점으로는, (그녀를) 명성황후라고 부르는 것도 불편합니다. 악행도 많고 극단적인 에피소드도 많습니다. 그러나 그 악을 그냥 내버려두면, 역사적으로 정리가 되지 않습니다."

프로그램 북에서도, 장성희 극작가는 이 작품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명성황후…. 어떤 이는 '민비'라고 칭하고, 어떤 이는 '명성왕후'와 '명성황후'라는 호명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기도 한다. 명성황후는 잊고 싶은 우리 역사의 부끄러운 일면이면서 한편으로는 기억해야 할 야만성의 희생양이기도 하다. 민중 사관의 입장에서 보면 '가해자'일 것이고, 다른 관점에서 보면 외세 제국주의자들의 야욕에 스러진 '피해자'이기도 하다.

만일 우리 역사에 극복되지 못한 콤플렉스가 있다고 한다면 그 중 하나가 명성황후일 것이라 생각한다. 조선 말기에서 대한제국 멸망까지 왕조의 실정이 불러들인 망국의 한과 원망…. 권력자와 민중 사이에는 아직 화해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 가운데 일어난 무수한 비극적인 죽음들 또한 치유되지도 해원되지도 않았다. 명성황후는 비유하자면, 우리 역사라는 몸속에 일종의 결절로 남아있는 어떤 부분이다. 이 막히고 꼬인 부분을 들여다보고 얽힌 매듭을 풀어보려 한다."

 뮤지컬 <잃어버린 얼굴 1895>의 프레스콜 현장

▲ 휘와 선화 지난 1일, 서울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뮤지컬 <잃어버린 얼굴 1895>의 프레스콜이 있었다. 배우 고훈정과 김건혜가 각각 휘와 선화를 맡아 연기했다. 휘와 선화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이지만, '명성황후'를 바라보는 시선은 엇갈린다. 결국 극의 끝에, 휘는 민자영을 용서했을까. 아니면 외면하고 저주했을까. ⓒ 곽우신


휘는 가족과 고향을 잃고, 심지어 사랑하던 사람마저 명성황후 때문에 목숨을 잃었다. 김옥균에게 왜 혁명에 실패했냐고 다그치던 휘였다. 그런데 명성황후의 혼백이 사진을 찍겠다고 나타났을 때, 휘는 아무 말 없이 그녀의 사진을 박았다. 그리고 더 시간이 흐른 후에, 사진을 찾는 민영익을 돌려보낸 후, 민자영의 사진을 불태운다. 그때 '휘'의 눈망울이 그렁그렁했던 것은, 그저 연기에 몰입한 배우의 눈물샘이 자극받은 탓일까.

우리가 억지로 민자영을 용서할 필요는 없다. 다만, '해원굿'을 해보려고 한다는 작품의 의도는 존중할 가치가 있다. 이분법적 시각에서 벗어나 역사를 온전히 바라볼 때, 우리는 민자영의 공과 과를 묻고, 제대로 심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녀의 얼굴을 찾아주는 것은 그 첫 단추가 될 것이다. 성공적이었는지는 평가가 엇갈리겠지만, '재미'와 '의미'를 모두 잡으려 했던 <잃어버린 얼굴 1895>에 박수가 나오는 이유이다. 다음 공연이 기다려진다.

뮤지컬 <잃어버린 얼굴 1895> 포스터 지난 2013년 공연에 이어 다시 돌아온 뮤지컬 <잃어버린 얼굴 1895>의 포스터. 음악적으로 많은 변화를 겪은 이번 공연은, 지난 8월 29일부터 9월 10일까지 짧은 기간 동안 관객을 맞이했다. 감각적이고 세련된 연출은 호평을 받았으나, 하나의 큰 이야기라고 보기에는 흐름이 다소 끊기는 인상을 받았다. 다음에 돌아올 때는 더 다듬어져 있으리라 기대된다.

▲ 뮤지컬 <잃어버린 얼굴 1895> 포스터 지난 2013년 공연에 이어 다시 돌아온 뮤지컬 <잃어버린 얼굴 1895>의 포스터. 음악적으로 많은 변화를 겪은 이번 공연은, 지난 8월 29일부터 9월 10일까지 짧은 기간 동안 관객을 맞이했다. 감각적이고 세련된 연출은 호평을 받았으나, 하나의 큰 이야기라고 보기에는 흐름이 다소 끊기는 인상을 받았다. 다음에 돌아올 때는 더 다듬어져 있으리라 기대된다. ⓒ 서울예술단



창작가무극 뮤지컬 잃어버린 얼굴 1895 서울예술단 차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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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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