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오피스>의 배우 고아성이 24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영화 <오피스>의 배우 고아성이 24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넌 그게 문제야. 너무 열심히만 하잖아. 그냥 적당히 해." 영화 <오피스> 속의 한 장면. 한 사원(이채은 분)이 인턴 미례(고아성 분)에게 충고하듯 말한다. 커피 심부름부터 문서 정리까지 사무실에서 일어날 수 있는 온갖 잡다한 일을 도맡는 미례는 시종일관 주눅들어 있다. 군소리 한 번 없이 묵묵히 일하다 작은 실수 하나라도 할라치면 비수가 돌아온다. "이게 미쳤나!"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25일 이른 아침에 만난 고아성은 자신과 미례가 상당 부분 비슷하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껏 가장 힘들었을 때가 열심히는 하는데 어떤 성과가 없을 때였다, 그때 진짜 자괴감이 드는데 미례도 그런 심정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만큼 작품은 고아성에게 밀접하게 다가왔고, 미례는 허투루 표현할 수 없는 인물이었다.

어쩌면 누구나 느끼는 상황 : 열심히는 하는데 어떤 성과가 없을 때

<오피스>를 언급하기 전에 고아성의 최근 드라마 출연작인 <풍문으로 들었소>를 언급할 필요가 있었다. 사실 봉준호 감독, 할리우드 배우 크리스 에반스, 영국 국민 배우 틸다 스윈튼과 함께한 <설국열차>가 흥행하면서 해외 시장으로 나갈 발판을 이미 마련한 직후였다.

하지만 당시 고아성은 "더 단계를 밟아야 한다. 아직 해외 진출은 시기상조"라면서 중·저예산 예술영화 <우아한 거짓말>을 택했고, 재벌의 속물근성을 꼬집은 <풍문으로 들었소>에 연이어 출연했다. 드라마를 통해 스물 넷 나이로는 만나기 힘든 출산과 모성애 연기를 했고, 영화에선 편모 곁에서 든든한 버팀목이 돼가는 고교생을 연기했다. 변화 폭이 커도 매우 크다.

"<풍문으로 들었소>는 아줌마와 모성에 대한 무한 애정의 마음이었다"는 게 고아성이 밝힌 출연 이유다. 그런 그는 이번 <오피스>에 대해서는 "주변 친구와 언니들을 생각하며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자신의 삶과 작품 사이의 거리가 다른 배우들에 비해 꽤 가까운 편으로 보인다.

 영화 <오피스>의 한 장면.

영화 <오피스>의 한 장면. ⓒ 영화사꽃


"<오피스>를 하게 된 가장 큰 이유가 언니들과(고아성은 3녀 중 막내-기자 주) 친구들 때문이었다. 다들 인턴을 하고 있더라. 작품 자체도 좋았지만 뭔가 내 몸을 다 바치고 싶었다. 언니가 종종 일하면서 힘들다는 말을 많이 했다. 소속감이 없고 외부인처럼 느껴진다더라. 그게 바로 인턴만의 감정일 거다.

너무 안타까웠다. 회사원에 대한 생각이 단순한 호기심 이상으로 커졌다. (영화 촬영 전) 한 회사를 찾아갔는데 야근하시는 한 여직원 분을 봤다. 표정이 그 분의 하루를 다 떠올려 볼 수 있을 정도로 고돼 보였다. 오랜 시간 스트레스를 쌓아온 느낌이었다. 안타깝고 슬펐다. 그때부턴 길을 가도 회사원만 눈에 보이더라. 그분들이 각별하게 느껴졌고, 그만큼 미례를 진짜 잘 담아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칼 품고 다니는 과장님

직장 내 생존을 위해 치열하게 사는 모습이 고아성에겐 그저 관찰의 대상이었을까. 4살 때부터 연기를 시작한 탓에 일반인들의 삶에 공감하지 못할 것이라 여겼는데 오산이었다. 고아성은 "4살 때 처음 드라마라는 걸 해 보고 13살 때까지 아무 것도 못한 때도 있었다"며 "미례의 마음을 이해하는 게 많이 어렵진 않았다"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시나리오를 받은 직후였는데 감독님이 만화 <미생> 전권을 선물로 주셨다. <오피스>가 '<미생>의 호러판'이라는 일각의 해석에 일정부분 동의한다. 다른 게 있다면 <미생>은 지옥 같은 회사 생활을 인간적 끈끈함으로 이겨나가는데, <오피스>는 회사일도 힘들고 인간관계도 엉망이잖나. 솔직히 처음 시나리오만 읽었을 땐 판타지 영화로 생각했는데 이게 진짜 현실이었다.

일상의 폭력이 심한 것 같다. 학교든 직장이든 어떤 인간 관계에서든 안타깝지만 이런 폭력이 존재한다. 영화에서 (사내 왕따를 당하던) 김병국 과장님(배성우 분)이 날카로운 칼을 품고 다니며 '내겐 묵주 같은 것'이라 말하잖나. 이 장면을 촬영할 땐 치열하게 사는 지인들이 떠올라서 가슴이 너무 아팠다. <오피스>의 메시지 중 가장 마음에 닿은 게 조직 생활에 깊숙이 스며든 자잘한 폭력을 바라보자는 거였다."

<괴물> 이후 10년... "여성의 느낌 물씬 나니 멜로도 찍어야 한다는 조언 들어온다"

 영화 <오피스>의 배우 고아성이 24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오피스>를 촬영할 땐 치열하게 사는 지인들이 떠올라서 가슴이 너무 아팠다. <오피스>의 메시지 중 가장 마음에 닿은 게 조직 생활에 깊숙이 스며든 자잘한 폭력을 바라보자는 거였다." ⓒ 이정민


배우가 되지 않았다면 고아성 역시 지금쯤 취업을 한창 준비하고 있었을 것이다. 배우가 아닌 삶을 생각해봤는지 물으니 "가끔 생각해보곤 했는데 인생 최초의 기억이 카메라 앞에 서 있던 모습이라 잘 상상이 안 된다"며 멋쩍어 한다. 작품으로 온전히 자신을 증명해 온 삶이었다.

다만 다른 아역배우들과 차별점이 있다면 그가 유난히 조급해하지 않았다는 거다. 영화 데뷔작인 <괴물>(2006) 때만 해도 앳된 모습에 주변에선 행여나 다칠까 많은 배려를 했다. 성장하는 모습을 많은 이들이 지켜보는 만큼 자신 안에 갇히기 쉬운 환경인데 고아성은 꿋꿋했다.

최근 들어 '여성의 느낌이 물씬 나니 키스신도 하고, 멜로도 찍어야 한다'는 조언이 많이 온다고 한다. 고아성은 "이미지 구축보다는 좋은 작품을 만들어 가는 게 더 중요한 것 같다"고 분명한 뜻을 전했다.

"성장은 결국 억지로 되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되는 일 같다. 키 커야 한다고 조바심 갖는다고 자라진 않듯이 말이다. 그래도 주변에서 워낙 성인 연기자가 돼야 한다고들 하니 의식이 되더라. 아역 모습을 벗어나자는 제안을 계속 듣다보니 더욱 파격적인 <풍문으로 들었소> 같은 작품을 하게 된 것 같다. (웃음)

벌써 <괴물>을 찍은 지 10년이 지났다. 그새 많은 게 변했다. 개인적으론 한강에 매점이 없어진 게 가장 안타깝다. 딱 이맘 때 촬영했던 거 같은데. 생각해보면 <괴물>이란 영화가 내겐 너무 빨리 찾아온 행운이지 않나 싶다. 좀 더 다양한 경험을 쌓은 후였다면 더 감사해 했을 거고, 좋았을 거 같다. 개인적으로 배우는 서른부터라고 생각한다. 그전까진 여러 작품을 하면서 시행착오도 겪고 싶다."

2년 전 고아성이 받았을 법한 질문을 다시 했다. 해외 활동을 위한 매니지먼트사도 생긴 만큼 적극 외국으로 나갈 생각이 있는지 말이다. 실제로 고아성의 미국 진출작이 제작 준비 중 중단되기도 했던 터였다.

"(국내에서 경험을 쌓겠다는 생각에) 변함은 없다. 굳이 비율을 따지면 반반이겠지만 꼭 할리우드가 아니어도 좋다. 근데 제가 제일 좋아하는 작품은 이창동 감독님의 <시>다. 수십 번 보면서 장면마다 분석도 해봤다. 언젠가 이창동 감독님 작품을 꼭 해보고 싶다."

[영화 <오피스> 리뷰 보기] '오피스', 잔혹 버전의 '미생'이 되다

 영화 <오피스>의 배우 고아성이 24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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