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오피스>의 한 장면.

영화 <오피스>의 한 장면.ⓒ 영화사꽃


* 이 기사엔 영화 내용의 일부가 포함돼 있습니다.

"회사가 전쟁터라고? 밖은 지옥이야"

윤태호 작가의 웹툰 <미생>에 나오는 대사다. 지난해 tvN 드라마로도 방영된 이 작품은 케이블 채널 드라마 역대 2위의 시청률(8.24%, 닐슨코리아 유료플랫폼 기준)을 기록할 만큼 반향이 컸다. 

오는 27일 개봉 예정인 영화 <오피스>를 보면 언뜻 <미생>의 여러 장면과 겹쳐진다. 정규직이 되기 위해 상사들의 눈치를 보며 회사 생활을 하는 이미례(고아성 분)는 표면적으로 딱 <미생>의 주인공인 장그래의 모습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야기의 현실성 내지는 사실성의 정도다. 원인터내셔널이라는 무역회사를 배경으로 여러 역경을 이겨나가는 <미생> 속 장그래는 우리가 처한 현실이 녹록치는 않지만 연대와 공감의 힘을 믿고 나아가면 그런대로 해볼 만한 상황이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반면 <오피스>가 묘사한 세상은 보다 잔혹하다. 한 식품회사 영업팀의 김병국 과장(배성우 분)이 어느 날 일가족을 살해하고 행방불명된다. 팀원들을 상대로 수사를 벌이는 형사(박성웅 분)는 김병국의 행방을 쫓아가면서도 무언가 수상한 직원들의 행동을 하나씩 의심한다.

사내 왕따였던 김병국 과장과 그를 은밀하게 질타하고 무시했던 팀원들, 그리고 그 주변을 정규직을 갈망하며 분주히 일하던 인턴 이미례가 맴돌곤 한다.

모두들 열심히 일했을 뿐이다

 영화 <오피스>의 한 장면.

영화 <오피스>의 한 장면.ⓒ 영화사꽃


사라진 김 과장이 자신들을 살해할 것이라 믿으며 공포에 떠는 팀원들, 그리고 그런 와중에 또 다른 왕따가 되어가는 이미례 사이엔 묘한 기운이 감돈다. 영화는 이것을 놓치지 않고 긴장감으로 승화시켰다. 자신들이 왜 공포에 떨어야 하는지 미처 반성하지 못한 직장 간부들과 직원들은 부지 간에 미례에게 감정을 쏟아붓고, 정규직이 꼭 되고 싶었던 미례는 움츠러들면서도 자신 만의 세계를 만들어가며 위기를 극복하고자 한다.

장그래 주변엔 그의 진가를 바라봐주고 인내해 준 동료들이 있었지만 미례에겐 없다. 전라도 광주 출신에 서울에서 번듯한 직장을 구하고자 사춘기 때부터 사투리마저 교정해 온 그다. 막상 서울 상경엔 성공했지만 살인적인 집세로 결국 수도권에서 직장까지 먼 거리를 다녀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이 삶을 바꾸기 위해서는 오로지 정규직이 되는 것뿐. 그만큼 인턴 자리에서 버텨야 할 명분이 강하다. 선배들의 과한 업무지시를 소화하기 위해 자체 야근도 불사하는 노력을 보이지만 돌아오는 건 질타와 무시 뿐이다. 그럴수록 유일하게 자신을 감쌌던 김병국 과장만 생각날 뿐이다.

따지고 보면 팀원들 모두 자기 위치에서 성실히 '일한' 사람들이다. 김상규 부장(김의성 분)은 회사의 실적을 위해 팀원들을 닦달했고, 홍지선(류현경 분)과 정재일(오대환 분) 대리는 과장 승진을 위해 치열하게 움직여왔다. 사원 염하영(이채은 분)이나 이원석(박정민 분)은 상사의 지시대로 업무를 진행했다. 또한 미례의 경쟁자로 들어온 또 다른 인턴 신다미(손수현 분) 역시 취업 자리 하나 얻기 위해 해외 유수의 대학을 졸업하고 스펙을 쌓아온 이 땅의 청춘 중 하나다.

막연한 죽음의 공포 앞에 비이성적으로 변하는 인물들은 물론 비현실적이지만 적어도 이들이 속한 배경과 행동 동기는 지극히 사실적이다. 비인간적이기를 강요하는 조직 안에서 인간으로 남는 것 자체가 기적인 상황. 다들 거기에 적응해 살길을 찾아갔을 뿐이다. 어느 누구를 쉽게 단죄할 수 없는 구조 안에서 영화는 묻는다. 죽이려는 자가 잘못인지, 아니면 죽이게끔 원인을 제공한 자가 나쁜 사람들인지 말이다.

왕따 피해자의 복수, 그런다고 한이 풀릴까

 영화 <오피스>의 한 장면.

영화 <오피스>의 한 장면.ⓒ 영화사꽃


<오피스>의 홍원찬 감독은 일각에서 나온 <미생>과의 비교를 의식한듯 보인다. 17일 언론 시사 직후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그는 "<미생>보다는 오히려 <여고괴담>의 회사 버전이라고 생각한다"며 "<여고괴담>이 고교생의 스트레스를 공포로 풀었다면 <오피스>를 통해 한국 직장인의 스트레스를 같은 방식으로 풀어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영화는 스릴러 장르를 표방하고 있지만 상당 부분 호러 장르의 문법을 차용하고 있다. 등장인물의 시점을 기준으로 사각지대에서 튀어 나오는 미지의 인물이라든지, 강렬한 음향을 기반으로 공포감을 극대화하는 식 등이다. 여러 번 등장하는 살인 장면 역시 일부는 자세하게 묘사돼 잔혹성을 극대화하기도 했다. 

이런 극적 설정이 관객 입장에선 일종의 카타르시스로 받아들여 질 수도 있지만, 반대로 왕따 피해자가 직접 복수에 나선다는 설정 때문에 사적 복수로 이해될 여지도 있다.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못하고 조직의 부속품 내지 소모품으로 보는 행위는 분명 비극이다. 다만 단순히 조직 일부의 사람들을 처단하는 것만으로 충분한 감정 해소가 될까. 영화의 고민이 좀 더 나아가지 못한 점은 아쉽다.

한편 영화 <오피스>는 2015년 칸국제영화제 비경쟁 부문인 미드나잇 스크리닝에서 상영되기도 했다. 영화 <추격자>(2008) <황해>(2010) 등의 각색가로 알려진 홍원찬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개봉은 오는 27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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