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월드리그 남자배구 한국-프랑스전(수원 실내체육관)

2015 월드리그 남자배구 한국-프랑스전(수원 실내체육관) ⓒ 박진철


한국 남자배구가 월드리그에서 가까스로 2그룹 잔류에 성공했다. 내용은 실망스럽지만 2그룹 잔류는 의미가 크다. 올림픽 때문이다. 국제배구연맹(FIVB)는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본선 진출권이 걸린 세계 예선전 참가 자격을 세계 랭킹을 기준으로 부여하기로 했다. 랭킹 점수가 걸린 국제대회에서는 한 점이라도 더 쌓아 두어야 한다. 월드리그 2그룹 팀은 최하위를 하더라도 3그룹 1위 팀보다 랭킹 점수에서 6점을 더 받는다. 한번 3그룹으로 떨어지면 다시 승격하기도 매우 어렵다.

한국 배구가 올림픽 본선에 진출하는 길은 2가지다. 첫 번째는 월드컵 대회다. 월드컵에서 1위나 2위를 할 경우 올림픽 본선에 직행한다. 여자배구 월드컵은 8월 22일부터 일본에서 열린다. 남자배구 월드컵은 9월 8일부터 역시 일본에서 열린다. 우리나라 남자배구는 세계 랭킹에서 밀려 월드컵에 출전하지 못한다. 반면 여자배구는 출전한다.

월드컵에서 올림픽 본선 출전권을 획득하지 못할 경우 내년 5월 일본에서 열리는 올림픽 세계 예선전이 마지막 기회이다. 그러나 세계 예선전도 아무나 나가는 게 아니다. FIVB 세계 랭킹에서 아시아 국가 중 3위(일본 제외) 안에 들어야 한다.

세계 예선전은 개최국인 일본과 아시아 랭킹 3위까지 아시아 4팀, 유럽 예선전 2위와 3위, 남미 예선전 2위, 북미 예선전 2위. 이렇게 총 8개 국가가 참여한다. 유럽, 남미, 북미 예선전 1위 국가는 올림픽 본선에 직행하기 때문에 세계 예선전에 참가하지 않는다.

세계 예선전은 8개 국가가 풀리그로 경기를 치러 아시아 4팀 중 가장 순위가 높은 1팀에게 먼저 올림픽 본선 진출권을 부여하고, 이어 아시아 1위 팀을 제외하고 나머지 7개 팀 중에서 1~3위까지 3팀에게 본선 진출권을 부여한다.

이정철 감독 "월드컵 정예 맴버, KOVO컵 보고 결정"

여자배구는 현재 세계 랭킹과 점수로 볼 때 세계 예선전 진출권은 사실상 획득한 상태다. 국가대표 구성 면에서도 남자배구보다 한결 낫다. 우선 김연경이라는 세계 최고의 공격수가 있다. 이정철 여자배구 국가대표 감독은 월드컵 대표팀 구성과 관련해 대략 가닥을 잡았다.

김연경과 함께 레프트 한 자리를 책임질 선수로 기존의 이재영과 이소영을 새롭게 합류시킬 예정이다. 라이트는 박정아와 최근 컨디션이 좋은 황연주를 포함시킬 계획이다. 김희진, 양효진 등 센터진도 최근 체력과 경기력이 많이 올라왔다.

세터와 리베로는 고민 중이다. 이정철 감독은 "세터는 이효희와 나머지 한 명은 더 생각해 보겠다. 리베로는 임명옥과 나현정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감독은 "월드컵에 데려갈 최종 인원은 KOVO컵 때 선수들의 경기력과 컨디션을 지켜보고 어떤 조합이 좋은 지를 판단해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남자배구는 한국과 중국이 아시아 랭킹 3위 자리를 놓고 경합 중이다. 그러나 이번 월드리그 점수가 포함되면 한국은 16점을, 중국은 3그룹 4위로 6점을 받는다. 한국과 중국은 현재 4점 차이에서 14점 차이로 더 벌어지게 됐다. 7월 31일 시작되는 아시아선수권대회(이란)에서 한국은 4위만 해도 올림픽 세계 예선전에 나갈 수 있다. 중국이 우승해도 랭킹 점수가 역전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안은 가시지 않는다. 월드리그에서 초라한 성적보다 경기 내용이 배구 팬들을 더 실망시켰기 때문이다. 물론 이유는 있다. 문성민, 전광인, 한선수 등 국가대표 주축 선수들이 부상으로 대거 빠졌다. 그러나 한국 남자배구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갈수록 세계적인 강팀은 물론 아시아권 팀과의 경쟁에서도 뒤처지는 인상을 주고 있다.

무엇이 문제일까. 오늘은 한국 배구 국가대표팀의 국제경쟁력과 미래에 대해 진단해 본다.

남자 6개 구단, 외국인 선수 확정... OK저축은행 다시 찾는다

지난 7일 우리카드가 올 시즌 V리그 외국인 선수로 군다스 셀리탄스(31·200cm·라트비아)를 영입했다고 발표했다. 군다스는 세계 정상급 라이트 공격수다. 빠른 스윙과 강력한 파워가 특징이다. 김상우 우리카드 감독은 "어깨 수술한 데는 완치가 됐다, V리그 개막 전까지 2달 정도 훈련하면 충분히 예전 기량과 파워가 살아날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군다스는 8월 초에 들어와 팀 훈련에 본격적으로 참가한다.

이로써 남자 프로배구는 OK저축은행만 제외하고 6개 구단이 외국인 선수를 조기에 확정했다. 그만큼 V리그 준비에 총력을 쏟고 있다. OK저축은행은 시몬이 부상에서 돌아오는 내년 1월까지 시즌 초반 3개월을 책임져줄 대체 외국인 선수를 찾고 있다. 지난 6월 브라질 출신의 레안드로(Leandro Martins da Silva·24세)를 불러들여 테스트를 했다. 영입하지 않기로 했다. 지금은 다른 외국인 선수를 2~3명 정도 압축해서 면밀히 검토 중이라고 한다. 다른 팀들이 세계적인 기량의 외국인 선수를 영입한 상태에서 경험이 부족한 어린 선수로는 위험 부담이 크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처럼 한국 V리그는 세계 정상급 외국인 선수들이 뛰는 곳이다. 빛과 그림자가 공존한다. 배구 팬들은 세계적인 선수의 화려한 플레이를 국내에서 직접 볼 수 있다. 배구 흥행에 기여한 측면이 적지 않다. 반면 외국인 선수에게 의존하는 '몰빵 배구'가 대세로 자리 잡으면서 한국 남자배구가 세계 흐름과 정반대로 가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스피드 배구와는 거리가 멀어지면서 감독들의 '리시브 타령'만 늘어났다.

한국 배구가 국제무대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스피드 배구'가 답이라는 건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 이면에는 한국 배구가 여전히 구식 배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뼈아픈 지적이 담겨 있다. 구식 배구는 리시브를 잘해야만 세터가 토스를 잘할 수 있고 공격성공률도 높아진다는 인식을 말한다. 그러나 2000년대부터 세계 최강으로 군림하고 있는 브라질 남자배구(현 세계랭킹 1위)가 주도한 스피드 배구가, 배구 전략의 주요한 흐름이 되자 그런 마인드는 설 자리를 잃은 지 오래다.

남자배구 살길은 '시스템과 토털 배구'

우선 스피드 배구의 개념부터 정리할 필요가 있다. 스피드 배구는 세터와 공격수 전원이 어떤 상황에서도 빠르게 플레이를 할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되고, 그것이 톱니바퀴처럼 이뤄져야 비로소 스피드 배구를 제대로 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스피드 배구는 철저히 시스템 배구이자 토털 배구이다.

스피드 배구에서 가장 중요한 건 세터의 역할이다. 세터의 진짜 능력은 리시브가 나쁜 볼을 빨리 찾아들어가 사전에 약속된 시스템대로 공격수에게 정확하게 쏴주느냐에 달려 있다. 리시브의 수준을 공격 라인까지만 띄워주는 것으로 만족하고, 나머지는 세터와 공격수들이 빠르게 처리할 수 있어야 한다.

또 하나 중요한 것는 라이트든, 레프트든, 센터든 모든 포지션의 공격수가 사전에 약속된 시스템대로 자기에게 오는 공을 처리할 능력을 갖춰야 한다. 스피드 배구에서 공격형 레프트와 수비형 레프트 역할을 명확하게 구분하는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레프트 공격수 2명은 똑같이 서브 리시브, 디그(상대방 공격을 받아내는 것), 2단 연결 등 수비 능력은 물론, 강력한 중앙 후위 공격(파이프 공격) 능력을 갖고 있어야 한다.

라이트 공격수는 수비를 하지 않는 대신 리시브가 나쁜 볼이나 찬스 볼에 대한 처리를 확실하게 성공시키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센터 공격수 2명도 언제든지 빠른 속공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리시브가 잘 된 공은 어지간하면 센터의 속공으로 끝내는 게 좋다. 그래야 상대 블로커들을 흔들 수 있고, 다른 공격수의 능력도 극대화된다.

이처럼 스피드 배구를 하기 위해서는 모든 공격수가 서브 리시브가 좋든 나쁘든 빨리 움직여서 공격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세터가 리시브가 나쁜 볼이 올라와도 가장 처리하기 좋은 위치에 있는 선수에게 자신있고 빠르게 토스를 쏴줄 수 있다.

'고사 위기' 토종 거포... 펄펄 나는 외국인 선수

김찬호 대한배구협회 경기력향상위원회 위원장은 국가대표 감독과 선수를 선발하고 관리하는 총괄 책임자이다. 그에게 스피드 배구에 대해서 물어봤다.

김 위원장은 "우리 감독들이 서브 리시브가 60% 정도로 잘 될 때 시합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현실적으로 그렇게 되기 힘들다"고 말했다. 그는 "서브가 세계적으로 더 까다로워지고 있기 때문이다"라며 "이제는 서브 리시브가 안 된 60%를 가지고 스피드 배구를 해줘야 시합을 이길 수 있다, 생각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스피드 배구는 시스템이 중요하기 때문에 완성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 최소한 6개월 이상은 꾸준히 연습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스피드 배구가 정착이 되면 진짜 무서운 팀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국내 프로배구는 상황이 정반대다. 프로배구 팀들은 시스템 배구를 할 수 없을 정도로 구성원들의 경기력 차이가 크다. 대부분 팀에서 수비에만 치중하는 수비형 레프트가 따로 있고, 그 선수는 파이프 공격은 거의 하지 않는다. 센터가 가뭄에 콩 나듯 공격하는 경우도 많다.

또 하나는 V리그에서 라이트 공격수는 대부분 외국인 선수가 맡고 있다. 각 구단은 세계 정상급 공격력을 갖춘 외국인 선수를 거액을 들여서 영입한다. 그리고 외국인 선수에게 몰아줘서 승리를 따내는 구조로 흘러왔다. 그 바람에 국내 라이트 공격수는 평상시에 어려운 볼을 처리할 능력을 키울 기회조차 갖지 못한다. 토종 라이트가 씨가 말라버린 상태다.

따라서 세터가 공을 줄 수 있는 선수가 거의 정해져 있다. 외국인 선수에게 '몰빵'을 하거나 공격력이 괜찮은 국내 선수 한 명에게만 준다. 그런 상황에서 세터는 나쁜 볼이 올라오면 믿을 만한 공격수를 찾느라 불안하고 토스도 느려진다. 상대 블로커들은 공격 방향이 쉽게 읽히기 때문에 막기도 쉽다. 이는 고스란히 국제대회에서 한국 대표팀의 아킬레스건으로 나타나고 있다.

반면 외국인 선수는 V리그 5개월 동안 나쁜 볼을 수없이 때리면서 거의 지옥훈련을 하는 셈이다. 따라서 세계무대에 가면 펄펄 난다. V리그처럼 공격을 많이 안 해도 되고, 신체 조건도 좋기 때문에 훨씬 가볍게 때린다. 실제로 V리그에서 뛰고 간 선수는 대부분 세계무대에 가서도 아주 잘한다. V리그에 올 때는 무명의 선수였지만, 유럽의 빅 리그로 가서 세계 정상급 선수로 거듭난 경우도 많다. V리그에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은 외국인 선수도 유럽 정상급 리그에서는 날아 다닌다.

김찬호 "반쪽 선수 막기 위해, 고교 때까지 리베로 없애자"

그렇다고 한국 배구가 수비 능력이 뛰어난 것도 아니다. 공격은 잘하지만 수비 능력이 떨어지는 소위 '반쪽 선수'가 양산되고 있다.

왜 그럴까. 김찬호 위원장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은 견해를 피력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공격 잘하는 선수들은 레프트든 라이트든 상관없이 아예 수비에서 빼버린다. 공격력을 극대화시키기 위해서 그렇다 대학도 마찬가지다. 공격 잘하면 수비 안 시킨다. 리베로하고 다른 레프트가 다 커버하라는 것이다. 그러니 공격은 잘하는데 수비가 떨어지거나 수비는 잘하는데 공격이 약한 반쪽 선수가 많아진 것이다."

해결할 방법이 없냐고 물었다. 김 위원장은 "공청회를 해서 고등학교 때까지는 리베로 제도를 없애는 방안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답했다. 리베로 제도를 없애면 공격수 대부분이 어쩔 수 없이 수비에 참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논란은 있겠지만, 아무 것도 안 하는 것보다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스피드 배구로 승부를 보겠다는 투철한 의지와 실천력을 가진 지도자가 많이 나와야 한다. 국가대표 감독은 특히 그렇다. 더 나아가 프로배구 팀에서도 용기를 가진 혁신형 감독이 나와야 한다. 외국인 선수 트라이아웃 제도를 도입해서 V리그 수준을 하향 평준화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최태웅의 '스피드 배구 무한도전'... 과연 성공할까 

그런 점에서 현대캐피탈 최태웅 감독의 시도는 성공 여부를 떠나 평가할 만하다. 최 감독은 현대캐피탈을 스피드 배구로 탈바꿈시키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였다. 선수 구성 면에서도 토털 배구를 할 수 있는 여건이 어느 정도 조성됐다. 그렇기 때문에 최 감독은 일부 팬들의 비아냥에도 불구하고 외국인 선수를 리시브 되는 레프트로 영입했다. 그리고 국내 선수 중 공격력이 좋은 문성민을 라이트로 돌렸다.

최 감독이 문성민을 라이트로 특화시키는 것도 한국 배구에는 자산이다. 최 감독은 "문성민이 라이트의 대들보가 될 것이다. 문성민이 라이트를 하면 앞으로 4~5년은 더 국가대표에서 충분히 활약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세터다. 세터 출신인 최 감독이 어린 세터들을 얼마나 스피드 배구에 적확하게 조련하느냐가 성패의 관건이 될 것이다.

스피드 배구는 몰빵 배구를 미래지향적으로 넘어설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다. 그리고 많은 배구 관계자와 팬들도 그런 배구를 보고 싶어 한다. 어렵기 때문에 더 보고 싶은 로망이다. 하지만 스피드 배구는 어느 한 포지션만 삐끗해도 무너질 수 있다. 지속적인 체력도 뒷받침되어야 한다. 시즌 초반에는 성공적이었다가 리그 후반으로 가면서 체력과 시스템이 무너져 추락할 수도 있다.

현대캐피탈이 스피드 배구에 멋지게 성공한다면, 다른 팀에게도 자극이 되면서 V리그 판도 바뀌게 될 것이다. '최태웅의 무한도전'을 우려 반 기대 반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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