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리 팬페이지 페이스북 대문 화면.

이효리 팬페이지 페이스북 대문 화면. ⓒ 페이스북캡처


최근 이효리는 연이어 SNS와 결별 수순을 밟았다. "1년간 운영하겠다"고 공언했던 블로그도 예정대로 글을 모두 지웠고, 46만의 팔로워 수를 자랑하던 트위터도 폐쇄했다. 수 년간  '소셜테이너'로 호명됐던 이효리가 잠시 팬들과의 소통을 뒤로 한 채 조용한 제주도 '소길댁'의 삶을 만끽하려던 것으로 보였다.

헌데, 16일 난데없이 이효리의 페이스북 게시글이 포털을 달궜다. 이른바 이효리가 올렸다는 페이스북 글이 수많은 연예매체를 통해 기사화됐고, SNS를 통해 그 내용이 전파됐다. 그때 잠시 스쳐지나가던 의문 하나. '이효리 씨가 페이스북을 개설했던가?' 게시글 내용은 이랬다.

"친애하는 제주도 관광객 여러분들. 죄송하지만 저희 집은 관광 코스가 아닙니다. 아침부터 밤까지 하루에도 수십 차례 울리는 초인종과 경보음으로 저희 모두 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습니다.

궁금한 점 많으시더라도 양해 부탁드립니다. 참고로 저희 집은 대문 밖에선 나무에 가려 집도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힘들게 오셔도 헛걸음만 하실 수 있어요. 제가 사진도 많이 올릴 테니 서운해 마세요."

 '우주의 중심 이효리 fanpage' 확인이 그리 어려운가

 몇 시간 동안 관련 기사를 쏟아낸 <동아일보> 온라인.

몇 시간 동안 관련 기사를 쏟아낸 <동아일보> 온라인. ⓒ 인터넷 캡처


그리고 어렴풋이 떠오르는 기시감. 맞다. 이효리의 SNS 활동을 눈여겨 본 이라면 이 호소가 새삼스러울 것이 없다는 것을 눈치 챘으리라. 1년여 전 이효리가 블로그를 통해 올렸던 내용이었던 것.

페이스북의 정보를 확인해 보니, 혹시나는 역시나로 바뀌었다. '우주의 중심 이효리 fanpage'. 제주시 애월읍에 사는 어느 팬(으로 보이는)이 운영하는 이 페이스북에는 당당히 "우리는 이효리를 사랑합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SNS를 끊은)이효리를 사랑하는 어느 팬의 충정이 이 1년 전 게시물을 소환했으리라.

그러나, 수많은 매체들은 이 간단한 확인 작업도 거치지 않았다. 그러고는 하루 사이 기사를 쏟아 냈다. 먼저 쓴 매체들은 비슷한 기사를 양산했고, 나중에 쓴 매체들은 앞 기사들을 베껴냈다. 심지어 "관광코스"니 "스트레스"니 하는 단어들로 다소 공격적인 제목을 단 기사들도 부지기수였다. 제목 몇 개만 보면 대략 이 정도다.

"일부 관광객에 뿔난 이효리, 어떤 짓을 당했기에?"
"이효리 블로그에 '효리네 집으로 놀러와~' 하더니…스트레스 호소?"
"이효리, 답답한 심정 토로 '저희 집은 관광 코스가 아니에요'"
"이효리 돌연 SNS 중단하더니.. '저희 집은 관광코스가 아닙니다'"

'이효리 페이스북' 오보, 해도해도 너무 한다

 이효리가 블로그에 직접 올린 결혼식 사진

이효리가 블로그에 직접 올린 결혼식 사진 ⓒ 이효리 블로그


<중앙일보> 온라인 판의 첫 기사로 시작된 이 '이효리 페이스북' 소동은 명백한 오보의 릴레이였다. 한 두 개 매체를 제외하곤 이효리가 최근 직접 페이스북에 게재한 것으로 소개됐다. 주요 논조는 'SNS를 그렇게 하더니 왜 이제 와서 스트레스를 호소하느냐'는 힐난조가 다수를 차지했다.

그러나 1년 여 전에도 이효리가 쓴 이 블로그 글은 비슷한 내용으로 기사화된 바 있다. 이효리의 블로그가 한참 주목을 받던 시기였다. 1년 전 글을 가지고, 그것도 간단한 사실 관계조차 확인치 않고 힐난조의 글을 쓴 기자들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이 같은 사실을 뒤늦게 확인한 몇몇 매체들은 17일 오전에야 '팬페이지' 글이라는 정정 기사를 내보내는 중이다.

연예 매체들의 과도한 어뷰징과 연성화 기사의 속보 경쟁이 확고하게 뿌리내린 지는 이미 오래 전 일이다. 그럼에도 이번 '이효리 페이스북' 소동이 어느 기사 말마따나 '해프닝'으로 치부되어서는 안 될 일이다. 그 기사들은 간단한 사실도 확인하지 않은 명백한 오보고, 그 오보에 이미지를 훼손당한 당사자가 엄연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기레기'의 시대다. 오보가 오보를 낳고, 속도전이 또 오보를 더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최근 '천재소녀' 오보 사태가 이를 다시금 확인해 주고 있다. '천재소녀' 오보 사태에 비교하면, '이효리 페이스북' 오보들은 기레기를 자처했던 수준이라 할 수 있다. '소셜테이너' 활동을 고깝게 봤음이 분명한 일부 악의성 기사까지 더한다면 거의 답이 없는.  

자성을 촉구하기엔 이미 너무 멀리 와 버린 느낌이다. 그러나 최소한의 직업 정신이나 상도덕을 요구할 수는 있으리라. 간단한 사실만 확인해도 양산되지 않았을 기사들로 인해 피로감을 느끼는 것은 이효리뿐만이 아니다. 오늘도 수많은 독자들이 '기레기'를 호명하고 질타하는 시대에 이런 어이없는 오보까지 양산되는 일은 비감마저 불러 일으킨다. 아마도 이런 매체 환경 덕분에 이효리가 SNS나 블로그와 담을 쌓은 것은 아닐까.

이효리 소길댁 오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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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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