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녀유혼 2 - 인간도 재개봉 포스터

▲ 천녀유혼 2 - 인간도 재개봉 포스터 ⓒ 조이앤클래식


[십리나 되는 넓은 호숫가에 하늘까지 서리가 가득하네 / 마디마디 푸른 인연은 꽃다운 젊은 시절의 인연을 그리워하네 / 달을 홀로 마주 대하니 나는 친구가 필요하다네 / 신선은 부럽지 않으니 원앙은 부러워라]

지난 2003년 4월 1일 거짓말처럼 세상을 떠난 홍콩배우 장국영의 12주기를 맞이해 그의 대표작 <천녀유혼>과 <천녀유혼2-인간도>가 나란히 국내에 재개봉했다.

또렷한 이목구비와 선한 눈망울을 가진 장국영은 상처 입은 인간을 연기하는데 있어 특별한 재능을 보였던 배우다. 그래서 그가 어느 날 갑자기 호텔에서 뛰어내려 자살을 선택했다는 소식은 좀처럼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었다. 그의 슬픔은 영화 속에만 존재하는 것일 뿐 영화 바깥의 장국영은 언제고 행복할 것만 같았기에 그가 출연한 영화는 계속되어야 마땅했다.

1976년 열 아홉의 나이로 데뷔한 이래 26년 동안 많은 작품을 남긴 장국영이지만 <천녀유혼>시리즈는 그의 필모그래피 가운데서도 각별한 의미를 가진 영화였다. 1년 앞서 촬영한 <영웅본색>에서 주윤발, 적룡 등의 존재감에 가려 청춘스타 정도로만 기억되었던 그를 홍콩 영화계를 대표하는 스타로 자리매김하게 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천녀유혼> 이후 장국영은 <백발마녀전>, <동사서독> 등 굵직한 무협영화에서 가슴 아픈 사연을 지닌 인물로 연이어 출연하는데 이 영화의 영채신 캐릭터에 힘입은 바 크다고 하겠다.

빠뜨릴 수 없는 장국영의 출세작...<천녀유혼>을 알자

다시 말해 <천녀유혼>은 장국영의 출세작이다. 이전까지 출연한 작품에서 이렇다 할 족적을 남기지 못한 그는 바로 이 영화에서 왕조현이 연기한 섭소천과 이룰 수 없는 사랑을 하는 가난한 서생 영채신을 연기해 큰 인기를 모았다.

장국영과 왕조현의 열연과 정소동 감독의 뛰어난 연출력, 그리고 동양의 스필버그라 불리는 서극의 만남은 수십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홍콩 영화계의 전설로 우뚝 선 이 작품을 탄생시켰다. 장국영과 왕조현이라는 홍콩영화 전성시대를 이끌게 될 청춘스타의 기용은 <천녀유혼>을 단순한 판타지를 넘어 애절한 멜로로서의 가치를 갖게 했고 홍콩 최고의 미술감독 해중문은 매력적인 색채의 화면을 통해 러닝타임 내내 관객의 눈을 즐겁게 했다.

내용과 형식 모두에서 주목할 만한 부분이 많은 것도 영화의 특색이다. <반지의 제왕> <호빗> <해리포터> 등 영미권 판타지와 비교해도 손색없는 동양적 세계관 속에서 <트와일라잇>보다 30여 년 앞서 인간과 요괴의 사랑을 다룬 점은 기록할 만하다. 더불어 키아누 리브스 주연의 <콘스탄틴>에서 보인 지옥도 장면을 첨단 시각효과를 통해 구현한 선구적 시도 역시 갈채 받아 마땅하다.

영화의 비극성 역시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보통 영화의 흥행을 위해 적당한 수준에서 행복하게 막을 내리는 결말을 선택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데 <쳔녀유혼>의 경우에는 영채신과 섭소천을 끝내 비극적인 상황에 놓아둠으로써 영화에 변치 않는 생명력을 부여했다는 게 인상적이다.

전편에서 이루지 못한 사랑 이어주는 애틋한 감성
천녀유혼 2 - 인간도 1편에 이어 주인공 영채신을 연기한 장국영

▲ 천녀유혼 2 - 인간도 1편에 이어 주인공 영채신을 연기한 장국영 ⓒ 조이앤클래식


<천녀유혼2>는 <천녀유혼>의 성공으로 제작된 속편이다. 그 오프닝부터 본편의 향수를 한껏 불러일으키는데 장국영과 왕조현, 우마에 더해 장학우와 이가흔, 이자웅 등이 출연해 규모를 키웠다. 무엇보다 본편과 차별화되는 점은 해피엔딩이라는 점일 것이다. 본편에서 사랑을 이루지 못한 영채신으로 하여금 섭소천과 같은 외모를 가진 청풍을 만나 함께 떠나게 함으로써 1편을 본 팬들의 숙원을 이뤄주었다고 하겠다. 전반적으로 1편의 감흥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나 나름의 매력을 갖춘 작품인 만큼 장국영이 떠난 4월의 재개봉이 의미 있게 느껴진다.

<천녀유혼>시리즈는 동양의 세계관에 근거한 판타지의 지평을 넓혔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천 년 묵은 요괴로부터 섭소천을 구해 환생시켰던 1편과 요괴에게 농단 당하는 조정을 구하는 2편의 이야기는 무협과 요괴물의 세계관이 절묘하게 맞물린 경계에서 그려져 색다른 감상을 자아낸다. 이 영화의 성공으로부터 홍콩영화계에 한동안 무협과 요괴물의 바람이 분 것도 우연한 일 만은 아닐 것이다. <백발마녀전>과 <동사서독> 등을 거쳐 주성치의 <서유기>시리즈까지 끊임없이 이어져온 홍콩산 판타지의 세계는 동아시아의 독자적 판타지의 가능성을 실험하고 그 외연을 확장했다. 그런 점에서 무협과 판타지 장르가 절멸된 것이나 마찬가지인 한국영화계가 배울 만한 부분이 적지 않다.

영채신이 떠나간 섭소천을 그리워하지만 그를 만날 수 없듯 우리 역시 장국영을 더 이상 만나지 못한다. 그러나 그가 섭소천의 그림을 보며 그녀를 추억하듯 우리 역시 그가 남긴 영화를 통해 장국영을 추억한다. <아비정전> <백발마녀전> <패왕별희> <금지옥엽> <동사서독> <야반가성> <금옥만당> <성월동화> 등 기라성 같은 작품들 가운데서도 <천녀유혼>시리즈는 당당히 한 자리를 꿰찰 만한 낭만적인 영화다.

영화는 현재 조이앤시네마에서 상영 중이다.

천녀유혼 2 - 인간도 2편에 출연해 영채신, 청풍과 3각관계를 형성한 월지(이가흔 분)

▲ 천녀유혼 2 - 인간도 2편에 출연해 영채신, 청풍과 3각관계를 형성한 월지(이가흔 분) ⓒ 조이앤클래식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성호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goldstarsky.blog.me)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천녀유혼 2 - 인간도 조이앤클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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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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