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싶다> 중에서.

10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싶다> 중에서. ⓒ SBS


SBS <그것이 알고 싶다>가 또 한 번 일을 냈다. '땅콩 회항'의 피해자인 대한항공 박창진 사무장의 아픔과 결과적으로 그가 감싸려던 한 여승무원의 배신을 카메라에 담았다. 대한항공 전·현직 제보자들 9명의 목소리도 취합했다. 국토교통부 내에서 녹취된 USB 파일은 어이없는 결정적 증거였다.

최근 무리한 '갑질'로 논란이 됐던 '백화점 모녀' 사건은 맥거핀 아닌 맥거핀이었다. 10일 방송된 <그것이 알고 싶다> '백화점 모녀와 땅콩회항' 편은 사회를 좀먹는 '갑질'의 횡포를 들여다보자는 기획이었다. 그 중심에 백화점 VIP 모녀와 '땅콩 회항'의 대한항공 조현아 전 부사장, 그리고 이를 잉태한 한국사회의 모순이 자리하고 있었다.

박창진 사무장을 두 번 죽인 대한항공의 가공할만한 회유책

 SBS <그것이 알고싶다>와 인터뷰를 가진 박창진 사무장.

SBS <그것이 알고싶다>와 인터뷰를 가진 박창진 사무장. ⓒ SBS


"어떤 이유를 대더라도 그게 부사장님 지시가 아니라 사무장의 의견을 듣고 판단했다고만 하면 되는 거지. 나를 믿어. 한 달만 있으면 다 잊히는 건데, 대신에 이번 일이 잘 수습되면 내가 잊진 않을게."

신분을 감춘 제보자의 USB 파일에 담긴 목소리다. 최근 구속된 대한항공의 여상무라고 했다. "회사를 대표하는 승무원이라는 마음으로 근무했다"던 박창진 사무장을 회유하는 목소리는 그렇게 자신에 차 있었다. 하지만 그는 조현아 전 부사장과 함께 증거 인멸과 은닉죄 등으로 최근 구속됐다.

영화에서나 볼 법한 대한항공의 회유책은 그게 다가 아니었다. 사건 당시 조현아 전 부사장이 무릎을 꿇렸다던 여승무원에게는 (인하공전이라 추정되는) 대학의 교수 자리를 제안하며 검찰 조사에서 입을 다물 것을 지시했다고 한다. 제작진은 검찰 조사 전후, 미소를 지으며 대한항공 임원들로 보이는 이들과 동석한 차로 빠져나가는 그 승무원의 모습을 포착하기도 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제작진을 직접 만난 9명의 제보자와 전화를 건 전·현직 직원들은 그러한 오너 일가의 '갑질'이 일상이라고 했다. 대한항공 오너 가족이 한 여승무원을 보고 "쟨 왜 이렇게 호박같이 생겼냐"고 동석한 사무장에게 말하자, 그 여승무원은 바로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었다던 충격적인 일례가 그 증거다.

하지만 잘 알려진대로, 사고 직후 대한항공은 갖은 회유와 협박으로 조현아 전 부사장의 '갑질'을 덮으려고 했다. 박창진 사무장은 초기 국토부 조사 당시 사실을 덮으려고 했던 것도 여상무를 비롯한 임원들의 회유 때문이었다고 고백했다. 내부고발 이후 여직원 성희롱과 같은 찌라시 내용이 회자됐던 것도 대한항공 측 소행인지 의심되는 대목이다. 조현아 전 사장을 비롯한 대한항공의 사과에 어떠한 진정성도 발견할 수 없었던 것도 다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재벌가의 갑질을 가능케했던 '삼오법칙'의 실체

 SBS <그것이 알고싶다>의 한 장면.

SBS <그것이 알고싶다>의 한 장면. ⓒ SBS


<그것이 알고 싶다>의 죽비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방송 후반부, 그간의 재벌들이 일으킨 사건사고를 정리하는 한편 그들이 왜 한결같이 '집행유예 5년'으로 풀려나는지에 관한 비밀(?)을 파헤쳤다. 법조계에선 공공연한 삼오법칙(징역 3년에 집행유예 선고 최장기간인 5년을 선고받는 것)이 그것이다.

그러면서 폭력사건으로 구속됐던 한화 김승연 회장 사건이나 '맷값 폭행'으로 유명한 SK 최철원 씨도 다시 도마 위에 올렸다. 그들 역시 한결 같이 삼오법칙의 수혜자였다. 경찰이나 검찰에 만연하게 드리워진 재벌의 재력이 그 배경이었다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리고 검경과 정치권, 언론이 그 갑질 앞에 자발적으로 무릎을 꿇거나 보조를 맞춘 결과다. 

한국 재벌 오너 일가의 사유화와 이 탓에 '갑질'은 그렇게 중세 영주와 농노로 비견될 만한 시대착오적인 전횡이었다. <그것이 알고싶다>는 이에 반하는 몇 안 되는 기업인 유한양행 오너 일가의 사례를 보여주며 이 문제적 기획을 마무리했다.

우리는 '갑의 유혹'에서 조현아와 완벽하게 다를 수 있겠는가  

 10일 방송된 <그것이 알고싶다>의 한 장면.

10일 방송된 <그것이 알고싶다>의 한 장면. ⓒ SBS


조금은 동떨어진 것 같지만, 대한항공 '땅콩 회항' 사건을 파헤치기 위해 백화점 모녀 사건을 첫머리에 올린 것은 분명 유효해 보였다. "기쁜 마음에 돈 쓰러 와서 내가 왜 주차요원한테 이런 망신을 당합니까? 맞잖습니까. 왜 돈 쓰고 욕을 먹어야 하느냐"라며 악다구니를 치던 모녀의 모습은 병폐에 찌들어 가는 한국사회의 또 다른 일면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소유한 자본을 소비할 때, 사람도 잊고 상황도 잊고 그저 '갑'과 '을'의 관계만을 최우선시하는 모습은 이제 일상화되어 가는 수준이다. 감정노동자들과 서비스업 노동자들이 점점 더 많은 고객들에게 당하는 물리적, 심리적 폭력을 보면 자명하다. 이에 앞서 비난을 받았던 '라면상무'나 수많은 '갑을' 논란도 사실 본질은 다르지 않다.

자본과 소비 앞에 인권은 없고 내 권리만 있다. 그 병폐가 극대화된 것이 대한항공과 조현아 전 부사장 사건이다. 재벌 오너는 경영보다 소유가 먼저다. 내 소유의 비행기에서 폭언을 하건 비행기를 되돌리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들 개개인에게 어떤 철학이나 인권의식을 기대하는 일은 이제 어렵다고 봐야 하는 수준일 것이다. 

"<그것이 알고싶다>는 2015년에도 여러분의 그 정의로운 선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진행자 김상중은 프로그램 말미 이렇게 말했다. 갑들의 횡포가 만연한 이 사회에서 박창진 사무장과 제보자들의 용기는 그래서 중요하다고. 과연, 여러분이라면 그런 상황 앞에서 어떤 선택을 하겠느냐고.

<그것이 알고싶다> '백화점 모녀와 땅콩회항'는 이 질문 하나만으로 한국사회의 경종을 울리는 값진 기획일 수 있었다. 너는 갑질의 유혹에서 자유로울 수 있느냐는 질문 말이다. 그렇다. 우리 개개인인 일상에서 마주치는 갑과 을의 관계 속에서 과연 조현아와 얼마나 다를 수 있을까. 행여 '먹고사니즘'에 의거 교수직을 제안받고 미소를 지었던 그 여승무원과 같은 행태에 머무르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그것이알고싶다 조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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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및 작업 의뢰는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취재기자, 현 영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서울 4.3 영화제' 총괄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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