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N <나쁜 녀석들> 한정훈 작가
OCN <나쁜 녀석들> 한정훈 작가CJ E&M

|오마이스타 ■취재/이미나 기자| 문을 열며 들어온 한정훈 작가가 서글서글한 눈빛으로 첫 인사를 건넬 때부터, 스스로의 빈약한 상상력을 탓했다. OCN <나쁜 녀석들>을 보며 나름대로 '이런 대본을 쓴 사람은 어떤 모습일까'를 상상했던 터였다. 드라마가 방영되는 중 인터넷에 공개된 한 작가의 모습을 보면서도 그 모습 뒤에 숨겨진 '무언가'가 있을 것이라 막연히 생각했다.

하지만 한정훈 작가는 "원래 (드라마가 방영된 다음날인) 일요일 오전 8시 40분쯤에 담당 프로듀서님이 시청률을 보내 주시는데, 마지막 회 땐 유독 연락이 안 오더라"며 "그런데 자체 최고 시청률(평균 4.3%, 최고 5.9%-닐슨코리아, 유료플랫폼 기준)을 기록했다는 연락을 받고 얼마나 행복한 일요일을 보냈는지 모른다"고는 밝게 웃었다. 알고 보면 '나쁜 놈들이 더 나쁜 놈들을 잡는다'는 내용의 <나쁜 녀석들>은 수사물이라기보단 그의 '행복론'에 더 가깝다.

"모두가 행복했으면 좋겠고, 모르는 사람들끼리라도 서로 웃으면서 만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해요. 수사물에 이 '행복'이라는 주제를 어떻게 녹일 수 있을지를 고민하다 지금의 <나쁜 녀석들>을 쓰게 됐어요. '어둠 속에 희망이 있다'는 말처럼, 진짜 땅 끝까지 떨어져 본 사람들에게도 희망은 있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었죠."

"클리셰 변주하는 과정에서 비슷한 것 있기도...이 부분은 아쉬워"

그의 전작은 OCN <뱀파이어 검사> 시리즈다. 사고로 뱀파이어가 된 검사가 현장의 피를 맛보고 사건의 전모를 추리해 가는 내용이다. "그땐 '어떻게 하면 기발하게 사람을 죽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는 한 작가는 "하지만 <나쁜 녀석들>은 '무조건 쉽게 쓰자'는 생각이었다"며 "소재도 실제 범죄 중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할 만한 것에서 골랐고, 조직폭력배나 킬러·사이코패스 등 부가설명을 하지 않아도 되는 쉬운 설정만을 골랐다"고 했다. 문턱을 낮춰 시청자가 쉽게 내용을 이해하고 따라올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여기에 김상중·마동석·조동혁 등 화려한 캐스팅까지 갖춘 <나쁜 녀석들>은 결국 OCN에서 제작된 드라마 중 최고 시청률을 거뒀다. 하지만 '기존에 제작된 영화와 유사하다'는 의혹에도 시달려야 했다. 한 작가는 "작품 자체가 클리셰로 범벅이었다"며 "클리셰를 차용해 이해하기 쉽게 하는 대신 변주를 주는데, 그 과정에서 비슷한 게 있었던 것 같다"며 아쉬워했다.

 "종방연 때 보니 배우들이 다 다쳐서 왔더라. 김상중씨는 목에 깁스를 하고 왔고…. 그걸 보고 무슨 말을 못 하겠더라. 딱 봐도 고생한 게 눈에 보이니까 '고생하셨다'는 말도 쉽게 안 나오고…. 결국 조용히 고기만 먹고 왔다."
"종방연 때 보니 배우들이 다 다쳐서 왔더라. 김상중씨는 목에 깁스를 하고 왔고…. 그걸 보고 무슨 말을 못 하겠더라. 딱 봐도 고생한 게 눈에 보이니까 '고생하셨다'는 말도 쉽게 안 나오고…. 결국 조용히 고기만 먹고 왔다." CJ E&M

한 작가 옆에 앉아 있던 조문주 CJ E&M PD도 비슷한 생각이었다. 조 PD는 "특정 작품을 생각한 건 아니었지만, 촬영하고 난 뒤 '비슷하다'는 의견이 있기도 했다"라며 "하지만 내용이 같은 것은 아니지 않나. 같은 공간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표절'이라 말하기엔 무리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보탰다.

"후미등을 부숴 납치를 알리는 장면(6회)의 경우엔 실제 트렁크에 갇혔을 때 대처하는 방법을 담은 동영상을 많이 찾아봤어요. KBS 2TV <위기탈출 넘버원> 같은 프로그램도 봤고요. 다른 것도 마찬가지예요. 비슷한 설정이 있는 작품을 찾자면 아마 서른 개쯤 나올 거예요. 수사물에 그런(비슷한 설정이 있는) 장면이 등장할 수는 있지만, 전체적인 이야기는 다 다르거든요.

참 그게 어려운 것 같아요. (사람들이) '비슷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도 맞고, 거기서 또 제 입장도 있는 게 맞고…. 각자 의견을 표현할 수는 있는 거니까요. 그래도 제 입장만 말씀드리자면, 6회에는 전혀 다른 이야기에 전혀 다른 인물들이 나왔어요. 그런데 그 행위 하나만으로 '같다'고 이야기하는 부분에선 서운함이 있었죠. 그래도…다 드라마를 재밌게 보시는 분들이 이야기하시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과거든 현재든 결점 갖고 있는 캐릭터, 그래서 공감산 듯"

다시 <나쁜 녀석들> 이야기로 돌아오자. 왜 '나쁜 놈'들이 '더 나쁜 놈'들을 잡는다는 설정이었을까. 많은 수사물이 그러했듯, 선과 악의 대결로 단순화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한정훈 작가는 "절대 선이 절대 악을 상대하는 관계는 (시청자가) 공감하지 못할 것 같았다"며 "이젠 슈퍼히어로계의 절대 선인 배트맨도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하는 시기인데, 절대 선만을 추구하는 캐릭터가 공감을 얻을까 싶었다"고 했다.

이어 출연진을 두고 한정훈 작가는 "감히 내가 그분들을 평가할 수 없을 정도"라며 "(대본을) 쓸 때 따로 말씀드린 적도 없는데 그 느낌을 제대로 살려주신 것 같다"는 말로 감사를 전했다. 특히 그가 대본을 쓸 때의 생각과 영상이 일치한 장면으로 꼽은 것은 2회 박선정(민지아 분)에게 철물점 주인(김병춘 분)이 연쇄살인마라는 정체를 드러내는 장면, 그리고 마지막 회 정태수(조동혁 분)가 박선정에게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장면이었다.

 "<나쁜 녀석들>은 2012년 말부터 준비해 1년 간 대본을 썼다. 처음부터 '반 사전제작'을 생각했던 건 아니다. 다만 '지금 드라마를 찍고 있다'는 마음으로 계속 썼다. 초고는 3~4일에 한 부씩 다 쓰려 노력했다. 내가 늘어진다고 또 대본이 좋은 건 아니더라."
"<나쁜 녀석들>은 2012년 말부터 준비해 1년 간 대본을 썼다. 처음부터 '반 사전제작'을 생각했던 건 아니다. 다만 '지금 드라마를 찍고 있다'는 마음으로 계속 썼다. 초고는 3~4일에 한 부씩 다 쓰려 노력했다. 내가 늘어진다고 또 대본이 좋은 건 아니더라."CJ E&M

"정태수가 박선정에게 과거를 고백하는 장면은 두 사람에게 있어 '관계의 시작'이라 생각했어요. 앞으로 다시 보지 않든지, 용서하고 새로운 시작을 맞든지 (두 사람 사이에) 숨기는 게 있어선 안 된다고 생각했거든요. 정태수가 '당신을 못 잊고 감정을 느껴서 당신 남편을 죽였다'고 말한 것 때문에 '정태수가 욕심 때문에 박선정의 남편을 죽인 것이 아니냐'고 생각하는 분들도 계시는데, 사실 대본에는 있었지만 편집된 장면이 있었어요.

원래 내용은 과거 우연히 자신을 구해 준 박선정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있는 정태수를 보고 정태수의 킬러 패밀리들이 '정태수가 저 여자에게 감정을 느끼는 것 같으니, 저 여자의 남편인 걸 말하지 않은 채 정태수에게 남편을 죽이게 하자'고 시켰던 거였어요. 정확히는 박종석(장선호 분)의 생각이었죠. 모든 사실을 안 정태수가 박종석에게 '다시는 보지 말자'고 말하곤 자수했던 거였고요."

그 외에도 오구탁(김상중 분)의 독백, 박선정의 남편을 죽인 후 '더 이상 살인은 않겠다'고 마음먹은 정태수가 이정문(박해진 분) 살인 의뢰를 피하기 위해 일부러 간수를 때려 다른 교도소로 이감되는 장면 등이 분량이나 촬영 여건의 문제로 삭제됐다. 하지만 등장인물의 중심을 보여줄 수 있는 이야기만은 빼놓지 않으려 했다. 한정훈 작가는 "<나쁜 녀석들>에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가 과거든 현재든 결점이 있다"며 "그런 점에서 공감을 얻은 게 아닐까 싶다"고 자평했다.

"지금 우리를 불행하게 하는 걸 제거하면 행복해지지 않을까"

모든 캐릭터에 나름의 결점을 부여한, 그리하여 누구 하나 쉽게 선하다거나 악하다고만은 말할 수 없게 만든 이유는 또 있다. 한정훈 작가는 "절대 착하지도 나쁘지도 않은 사람들이 있는, 무조건적인 내 편이지도 적이지도 않은 사람들이 있는 게 지금 시대인 것 같다"며 "그런데도 사람들은 자꾸 편 가르기를 하고 '내 편이 아니면 내 적이다'라고 생각하고, 동시에 너무 많은 선입견과 편견에 사로잡혀 있는 것 같다"고 운을 뗐다.

"이정문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보여주고 싶었던 것도 이거예요. 사이코패스긴 하지만 결국 이용당한 거였잖아요. 사이코패스 성향이 있다고 무조건 살인을 하는 건 아닌데, 사람들은 그를 쉽게 살인자라 생각하고 '정상인'으로부터 격리시키려고 하죠.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려 하는 지금 세태에 물음표를 던지고 싶었어요. 더 나은 사회가 되려면 편견은 없어져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만 더 행복해지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었죠."

 "글을 쓸 때 나는 나 혼자의 심연으로 들어가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다 보면 자기 고집이 생기고 격리될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다. 항상 밝은 기운을 갖고, 밝은 사람들과 밝은 이야기를 하려고 노력한다."
"글을 쓸 때 나는 나 혼자의 심연으로 들어가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다 보면 자기 고집이 생기고 격리될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다. 항상 밝은 기운을 갖고, 밝은 사람들과 밝은 이야기를 하려고 노력한다." CJ E&M

어쩌면 이는 '행복이라는 단어에 관심이 많다'는, 그래서 대학에서도 사회복지학을 전공했다는 한정훈 작가가 글을 쓰는 이유와도 맞닿아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뱀파이어 검사>에서 뱀파이어라는 가상의 '소수자'가 평범한 사람들과 함께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을 그렸던 한 작가는 이번 작품에서도 결국 '범죄자'라는 소수자 집단을 이야기한다. 물론 그들이 소수자라 해서 범죄 사실이 사라지거나, 범죄에 면죄부를 주어야 한다는 건 아니다. 

"행복해지는 길이 행복해지기 위한 방법을 찾는 것도 있겠지만, 지금 우리를 불행하게 하는 걸 제거하는 방법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이것도 편집된 부분인데…이런 대사가 있었어요. '우리가 어떤 범죄자들에게 범죄자라는 낙인을 찍는다. 그런 사람들은 사회에서 소외되고, 그들은 또 다른 범죄를 일으킨다. 그리고 그 범죄는 우리 주변의 사람들, 가족이나 친구를 해친다. 그럼 누가 행복할까'…."

쉽게 답할 수는 없는 질문이다. 그래서 앞으로 그가 골몰할 질문이기도 하다. 한정훈 작가는 "앞으로 어떤 장르의 이야기를 쓰든 주제적인 부분은 변하지 않을 것 같다"며 "그래도 어떤 걸 쓰든 긍정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했다. 이어 작가로서의 목표를 묻는 질문에 "처음엔 '내가 쓴 게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는 한 작가는 "이제 (작품이) 만들어졌으니 '많은 분들이 내가 쓴 걸 봐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 뿐"이라며 다시 한 번 웃어 보였다. 예의 그 서글서글한 눈빛이, 안경 너머 빛나고 있었다.

"처음 글을 쓸 때, 주변의 여러 가지가 좋지 않은 상황이었어요. 너무 막막한 나머지 스펙 쌓기나 취직 같은 건 일찌감치 포기했었죠. 그때 '이왕 이렇게 된 거 내가 하고 싶은 거나 한 번 해보자'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철이 덜 들었던 걸 수도 있겠지만요.

처음 글을 쓰겠다고 했을 때, 친한 친구 다섯 명 중 한 명은 비웃었고 네 명은 아예 듣지도 않았어요. 그런데 이제는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네가 가장 부럽다'고 해요. (웃음) 계속 글 쓰는 걸로 먹고 살고 싶어요. 그 마음 하나가 대본을 쓰며 나태해지는 걸 잡아주는 것 같아요. 제가 잘 써야, 글 쓰는 걸로 먹고 살 수 있을 테니까요."

나쁜 녀석들 한정훈 김상중 조동혁 박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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