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에는 영화의 스포일러에 해당하는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영화 <나를 찾아줘> 포스터

영화 <나를 찾아줘> 포스터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사랑이 변한다'는 이야기는 흔한 이야기다. 데이빗 핀처 감독의 새 영화 <나를 찾아줘> 역시 그런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사랑이 변하는 정도나 양상이 스릴러물답게 지나치게 격렬하단 점이 다르다면 다른 점이랄까.

'핀처 스타일' 스릴러물의 완성도나 배우들의 호연에 대한 찬사는 (이미 많이 나왔으므로) 여기서는 생략하기로 한다. 대신 배우들의 연기보다 더 중요한 작품 속 주인공들의 '연기하는 삶'에 초점을 맞춰 몇 자 글을 더할 생각이다.

닉(벤 애플렉 분)과 에이미(로자먼드 파이크 분)는 첫눈에 반해 결혼한다. <어메이징 에이미>라는 동화 속 주인공의 실제 모델인 에이미의 결혼 사실에 세상은 환호한다. 명문대를 나온 유명인사 에이미와 훤칠한 미남 작가 닉의 결혼. 모두가 부러워하는 완벽한 커플. 하지만 이들의 행복은 (다른 커플들과 마찬가지로) 그리 오래 가지 않는다.

불화의 불길을 댕긴 건 두 사람의 실직. 에이미는 행복한 결혼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백수가 된 남편 닉의 게으름은 더해만 간다. 그리고 둘의 5주년 결혼기념일 아침 에이미가 실종되고, 유명인사의 실종 소식에 세상은 다시 떠들썩해진다.

이 난리 중에 남편 닉의 불륜사실이 전파를 타며 사건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여론과 경찰은 에이미 실종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남편 닉을 지목한다. 물론 이는 전부 에이미의 치밀한 흉계에 의한 것. 이후 남편을 살해범으로 만들려는 에이미와 누명을 벗으려는 닉의 두뇌싸움 그리고 그 뒤의 또 다른 반전 등으로 149분의 러닝타임이 빼곡히 채워지는데….

남편을 살해범으로 만들려는 에이미

도대체 에이미는 왜 남편을 살해범으로 만들려고 했던 걸까. 이 물음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에이미가 어린 시절 동화 속 주인공 '어메이징 에이미'를 지긋지긋할 정도로 의식하며 살았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에이미는 자신의 어머니(의 글)에 의해 태어난 동화 속 주인공인 또 다른 에이미와 같은 '어메이징' 에이미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에 자신을 욱여넣었던 사람이다. 게다가 어머니의 동화가 베스트셀러가 되며 덩달아 다른 사람의 시선을 항상 의식하고 살아야 하는 유명인사까지 되었다.

에이미에겐 유년 시절 삶의 모든 것이 동화 속 에이미가 되기 위해 분투하는, 그러나 결국은 항상 패배하고야 마는 '연기'에 불과했다. 연기하는 삶이 완전히 체화된 에이미에게 행복한 결혼생활을 제대로 연기해내지 못하는 남편은 처벌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을지 모른다.

한편 남편을 완벽하게 살해범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시체라는 강력한 증거가 나와야만 한다. 이를 위해 에이미는 자살까지 계획한다. 달력 위의 자살할 날짜에 "Kill self"라고 쓴 포스트잇을 붙이는 에이미. 그런데 왜 "Kill"의 대상이 'myself'가 아니라 단지 "self"인가.

앞서 닉에 대한 계략이 행복한 결혼생활을 제대로 연기하지 못한 남편에 대한 '보복적 정의'의 실현으로써 그를 사형에 이르게 하려 한 것이라면, 자신에 대한 자살 계획은 평생을 연기하며 살아온 자기 자신에 대한 단죄와 진짜 자신을 되찾기 위한 '복원적 정의'에의 욕망의 발로가 아닐지.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에이미는 자살을 결국 감행하지 않는다.

한편 강도에게 금품을 뺏기며(여기서 강도의 대사가 절묘하다 "너 한 번도 '진짜로' 맞아본 적 없지?") 계획이 어그러지자, 어릴 적 자신에게 집착했던 첫 번째 남자 콜린스(닐 패트릭 해리스 분)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에이미. 콜린스가 자신에게 다시 이것저것 (연기를) 요구하자 에이미는 또 한 번 기상천외한 플랜B를 실행에 옮기는데….

소녀시절을 박탈 당했던 에이미

 실종된 에이미(로자먼드 파이크)를 찾는다는 게시물 앞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닉(벤 애플랙)

실종된 에이미(로자먼드 파이크)를 찾는다는 게시물 앞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닉(벤 애플랙)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영화의 말미에 에이미는 닉에게 되돌아가 "결혼이란 원래 이런 것"이라며 둘의 재결합을 인정할 것을 강요한다. 사라진 에이미가 돌아와서 불륜을 저지른 남편과 재결합하는 이야기는 미디어-자본주의 사회에서 최고의 히트상품이 된다. 여러 TV쇼에 출연하고 막대한 부가 뒤따르며 백수 부부는 재도약의 전환점을 마련한다.

물론 살인범으로 몰리다 급작스런 변화를 맞은 닉이 이 같은 '연기'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하지만 우리가 다시 기억해야 할 건 닉 역시 에이미만큼 연기에 익숙한 사람이라는 것. 닉은 에이미가 실종되었을 때 이미 예전부터 사랑이 식었음에도 기자회견장이나 TV쇼의 무대에서 에이미에 대한 변하지 않은 사랑을 숱하게 연기했다. 예의란 이름으로 몸에 밴 친절은 불륜 사실을 제외하고라도 바람둥이로 오해를 살 만 했다.

그것이 익숙한 그이기에 에이미의 제안을 거절하기 어려웠는지 모른다. 한편 닉을 살인범으로 체포했던 형사 론다 보니(킴 딕켄스 분)나 닉을 변호했던 이혼전문 변호사 태너 볼트(타일러 페리 분) 역시 진실에는 관심이 없다. "어차피 돈이 떼로 굴러왔으니 잘 된 거 아닌가"라는 게 속물 변호사 태너의 최후 조언이다.

영화는 상영시간 내내 소유에 기반한 사랑에 한해서 '연기'는 필수적으로 요구됨을 극단적으로 웅변하는 듯하다. 에이미뿐 아니라 닉 또한 에이미에게 연기를 요구했다. 닉은 에이미가 "쿨한 여자"이길 바랐지만 사실 에이미는 '쿨한 여자'가 아니었다.

에이미의 어머니와 대중은 에이미에게 '어메이징 에이미'를 보길 원했지만 사실 에이미는 엄청나게 뛰어난 여자는 아니었다. 여기에 스쳐지나간 연인 콜린스마저 머리스타일이며 이것저것을 시시콜콜하게 요구하며 에이미를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뜯어고치려 했다.

그래서 <나를 찾아줘>란 한국어판 영화제목이나 'Gone girl'이란 원제 모두 중의적 의미를 담고 있다. 사라진 소녀, 유년기를 완전히 박탈당하고 거짓된 생존전략을 몸에 익힌 에이미는 연기하지 않아도 되는 진짜 나를 찾아달라고 절규했던 건지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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