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마담뺑덕>의 임필성 감독이 30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 인터뷰를 하며 작품에 대한 질문에 답하고 있다.

영화<마담뺑덕>의 임필성 감독이 30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 인터뷰를 하며 작품에 대한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이정민


|오마이스타 ■취재/이선필 기자·사진/이정민 기자| 임필성 감독이 한국 영화계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특별하다. 그동안 그는 '상업영화'를 표방하면서도 'B급 감성'을 물씬 풍기며 기존 관념을 풍자하거나 뒤트는 시도를 해왔다. 스스로 "덕후(특정 분야의 마니아를 일컫는 말)스러운 영화나 블랙 코미디에 자신 있다"고 할 정도로 자기 확신 또한 강하다.

그런 그가 영화 <마담 뺑덕>을 선보였다. 정우성과 신인 이솜을 엮어서 '치정 멜로'라는 외투를 입혔다. 임필성 감독은 짐짓 결연한 어투로 "시각적으로도 품격이 있고, 대중성도 더욱 고려했다"고 말했다.

전작 <인류멸망보고서> 이후 다시 만난 그는 살이 빠졌다. 식이요법으로 다이어트를 했다고 한다. 영화와 건강 회복에 집중했던 지난날을 돌아보며, 임필성 감독은 배우의 조합과 항간에서 제기한 아쉬움에 대한 감독의 변을 풀어놨다.

정우성이 <마담 뺑덕>에 꼭 출연해야 했던 이유는

 영화 <마담 뺑덕>의 한 장면

영화 <마담 뺑덕>의 한 장면 ⓒ (주) 영화사 동물의 왕국


<마담 뺑덕>은 투자배급사인 CJ엔터테인먼트에서 초고를 내놓은 일종의 기획작이다. 마침 임필성 감독의 전작 <헨젤과 그레텔>의 투자를 담당했던 이가 그의 장점을 기억하며 이번 영화를 제안했다. 임 감독은 아직 흥행성을 검증받지 못했지만, 작품과 배우를 대하는 태도와 가능성만큼은 충분하다는 판단에서였다.

"사람과 소통하는 기술이 있다고 믿어준 것 같아요. 정우성씨와 이솜씨를 엮는 게 쉽진 않았지만 적어도 그들이 배우로서 날개를 펼칠 지점을 짚어보고 싶었습니다.

우성씨를 택한 건 영화에선 문제적 인간으로 나오지만 적어도 여성 관객에게 연민의 정을 느끼게 할만한 배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시나리오를 받은 그가 '왜 나를 시험에 빠뜨리느냐'며 고민하기도 했죠. 본인의 결단이에요. 시각장애인이나 아버지 역할은 처음이고, 치정 멜로 역시 안 해봤기에 도전한 것 같아요.

이솜씨는 잠재력이 큰 배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까진 안정적인 작은 배역만 하더라고요. 야생적인 느낌도 있는 사람이라 그걸 터뜨리고 싶었죠. 촬영에 들어가기 한 달 전부터 함께 연습하고 감정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가려고 했어요. 수위가 높다고들 하는데 정사 장면을 위한 정사 장면은 안 찍겠다고 공언했습니다. 여배우를 소모하지 않겠다는 의미죠.

일부 남성 관객이 너무 담백하다고 평하기도 하는데 여배우의 특정 부위를 강조하기보단 학규(정우성 분)와의 정사로 앞으로 펼쳐질 상황을 암시하고 싶었던 거예요. 다른 영화와 비교하면서 '안 야하다'고 하면 할 말이 없지만 전형적이지 않은 베드신을 연출하려 했습니다."

<마담 뺑덕>을 두고 주위에선 <헨젤과 그레텔> <인류멸망보고서>에 이어 그가 잔혹 동화 3부작을 완성했다고 평하기도 했다. 임필성 감독은 "의도한 건 아니고 우연히 성인 영화와 잔혹 동화 성격이 있는 작품을 해온 것"이라며 "7년 만에 장편(<인류멸망보고서> 개봉은 2012년이나, 작품을 완성한 해는 2007년이다-기자 주)을 내놓는 입장에서 어떤 의도를 갖고 얘기할 입장은 아니고, 그제 사랑의 순수함과 지독한 사랑의 안타까움을 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마담 뺑덕>에 대한 아쉬움? "품격 있는 막장 드라마로 봐도 좋다"

 영화<마담뺑덕>의 임필성 감독이 30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 인터뷰를 하며 작품에 대한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이정민


영화가 개봉해 관객을 만나는 만큼 여러 평가가 나오고 있다. 그 중 영화에 대한 아쉬움을 중심으로 그에게 물었다. 관객의 입장에서 혹시나 간과하는 부분이 있는지 점검하기 위해서였다. 우선 <심청전>을 모티브로 했다지만 그것의 미덕이 <마담 뺑덕>엔 전혀 담겨 있지 않다는 지적이 있다.

"원래 분량엔 청이(박소영 분)가 일본으로 가는 배에서 뛰어내리고 용왕을 상징하는 묘사도 있었어요. 내부 시사 과정에서 여러 의견을 수렴해 10분 정도를 들어낸 게 지금 버전입니다. 사람들이 학규와 청이의 관계보다 덕이와의 관계를 더 궁금해하더라고요. 덕이가 초반부터 감정을 쌓아온 캐릭터이기도 하고요. 고전엔 뺑덕이 전형적인 악처로 그려지고 묘사도 거의 없어서 학규와 관계를 설정하는 게 신선하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심청전>과 상관없이 독립된 텍스트로 봐도 상관없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토론토 영화제에서 상영할 때 캐나다 관객들은 <심청전>과 별개로 그냥 아시아의 새로운 장르 영화로 받아들이더라고요. 또 어떤 미국 기자는 원전 이야기가 부족하다는 평을 하기도 했고요.

호불호가 갈릴 영화라는 건 분명해 보이지만 적어도 여자 관객 입장에서 찍으려 노력했어요. 쉽게 말해서 고급스러운 배우가 나오는 품격 있는 막장 드라마로 봐주셔도 좋아요. 물론 진짜 막장 드라마와는 또 다른 느낌이긴 하지만요. 악녀 캐릭터가 자주 나오는 요즘이지만 영화에선 새로운 유형의 악녀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사소한 것에서 엄청난 일이 시작된다', 임필성 감독이 말한 <마담 뺑덕>의 진정한 모티브였다. 순수한 소녀 덕이를 만난 학규가 무심한 듯 하면서도 그녀에게 다가간 것부터가 욕망의 시작이었다는 것. 아내가 있던 학규가 또 하나의 사랑을 탐닉하기 시작한 것은 동시에 비극의 시작이기도 했다. 임필성 감독은 "비윤리적인 이야기지만 결말을 보면 윤리성도 있다"고 설명했다. 학규에게 버림받은 덕이의 복수에 사랑의 감정이 남아 있고, 학규는 진정한 자기 모습에 눈을 뜨게 되기 때문이다. 

"아이디어와 배우들 돋보이게 하는 작품 하고 싶다"

 영화<마담뺑덕>의 임필성 감독이 30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 인터뷰를 하며 작품에 대한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이정민


임필성 감독은 <마담 뺑덕> 이전까지 <주말의 왕자> <악의 꽃> 등을 준비 중이었다. <주말의 왕자>는 캐스팅까지 마쳤으나, 최종 투자 과정을 남기고 감독직에서 하차하게 됐다. 흥행성이 입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젊은 감독들이 종종 겪는 일이다. <마담 뺑덕> 개봉 후, 임필성 감독은 프랑스 대문호 보들레르의 시집 이름을 딴 <악의 꽃>의 시나리오 작업에 한창이었다.  

"아무래도 <마담 뺑덕>의 흥행 여부를 지켜봐야겠죠?(웃음) 원래 제목은 <환상의 여인>이었는데 우연히 집 책장에 꽂힌 시집을 보고 <악의 꽃>으로 제목을 바꾸게 됐어요. 훨씬 더 강한 수위의 장면이 나올 것 같네요. 욕망에 대한 탐구는 물론이고 여전히 전 블랙코미디나 덕후 영화에 자신이 있습니다. 센 코미디를 해보고 싶어요. 지금도 여러 아이디어가 있습니다. 그걸 살려내면서 배우들이 돋보이는 영화를 만들고 싶습니다."

정지우, 이송희일, 민용근, 박찬옥 감독 등 소위 청년 정신을 내세우며 젊은 감각으로 작품을 만들던 '청년필름' 멤버들이 있었다. 임필성 감독 역시 그 공동체 출신이었다. 청년필름 자체는 여전히 건재하지만 2000년 초반 당시 멤버들 상당수는 각자의 길을 걷고 있다. 임 감독은 그때 서로가 공유했던 감성을 기억하며 작품 활동을 하고자 한다.

"지금은 전설이 된 곽경택, 봉준호, 박찬욱 감독 등도 두어 번의 큰 실패가 있었잖아요. <아저씨>의 이정범 감독도 이후 작품이 외면받기도 했고요. 영화 아카데미, 충무로에서 조감독을 하던 분들이 영화계의 자산이고 척추인데 갈수록 외면받는 게 안타깝습니다. 개성 있는 신인 감독, 독립 영화감독을 자꾸 등용시켜야 한다고 생각해요.

요즘 한국 영화가 너무 내수 시장 중심인 게 아쉽습니다. 실패에 대한 대가가 분명하기에 점점 보수화되는 것 같아요. 천만 영화도 소중하지만 100만, 150만 관객용 영화도 많아야 생태계가 건강해지지 않을까요."

임필성 마담뺑덕 정우성 이솜 심청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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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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