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막을 내린 MBC <기황후>의 한 장면.

29일 막을 내린 MBC <기황후>의 한 장면.ⓒ MBC


MBC 월화드라마 <기황후>가 51회를 끝으로 29일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원나라로 팔려간 고려의 공녀 기승냥(하지원 분)이 원나라의 황후 자리에까지 오르게 되는 과정을 장황하고 파란만장하게 그려나간 작품이었다. 역사 왜곡이라는 오명으로 시작한 <기황후>는 결국 역사적 사실로 끝을 맺었다. 대도를 정복당한 기황후가 북원을 건국하고 그녀의 아들 아유시리다가 북원의 황제가 되었다는 자막을 마지막에 띄웠다.

<기황후>는 불편한 드라마였다. 고려의 원수를 떡 하니 주인공으로 세워 그를 영웅화시키려 했다는 점과 역사에는 존재하지 않는 인물들이 등장하고, 픽션이라는 이름을 들어 기존의 역사를 왜곡했다는 사실이 대중의 심기를 잔뜩 건드렸었다. 시청률이 높게 나와도 기뻐할 수도 자축할 수도 없었다. 비난과 질타가 이어지는 가운데 얻은 시청률 고공행진은 제작진 입장에서는 가시방석에 앉은 잔칫상일 뿐이니까.

제작진은 고민을 해야 했다.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시작했으나 무작정 사실만을 따라갈 수도 없었다. 기황후가 주인공이긴 하지만 그녀를 영웅화시키지는 않겠다는 입장을 표명했고, 그녀를 제외한 수많은 인물들을 허구와 상상의 세계에서 각출해야만 했다. 비난을 잠재우기 위해서 내린 특단의 조치였고 선회였다.

왕유와 타환 잃은 기황후, 사랑과 맞바꾸고 오른 자리

중반부를 넘어서면서부터 이야기는 산으로 가는 듯했다. 현실에서는 존재하지도 않은 사공들이 많아진 탓이었다. 그러다 보니 픽션도, 논픽션도 아닌 어정쩡한 장르의 작품이 되어 초반에 풍긴 제법 예리했던 빛을 잃어갔다. 역사 왜곡이라는 비난은 줄어들었다. 대신 그 때부터 시청률이 주춤하기 시작했다. 마지막까지도 시청률 30%의 벽은 넘지 못했다.

29일 방송된 마지막 회에서는 핏빛 처단으로 깔끔(?)하게 최후의 갈등을 해결한 원나라 황제 타환(지창욱 분)의 용단이 돋보였다. 타환은 자신을 음해하려 하고 황후를 모함하여 폐위시키고 다른 이를 황제로 책봉하려 했던 역적들을 한데 모아 그 자리에서 죽였다. 그들은 모두 대승상 탈탈(진이한 분)이 이끈 군대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거기엔 타환의 수족이었으나 끝내 배신의 덫에 빠져버린 골타(조재윤 분)의 목숨도 있었다.

골타와 힘을 모아 승냥이를 쫓아내려던 황태후(김서형 분) 역시 죽음을 맞이해야만 했다. 고려의 음식이, 고려의 의상이, 고려의 풍습과 문화가 원나라 황실을 비롯 전역에 걸쳐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는 것을 참을 수 없었던 황태후였다. 그녀가 고집스럽게 지키려 했던 국수주의는 기어이 죽음을 불러일으키고야 말았다. 승냥이 앞에서 자결을 한 황태후. 그녀의 죽음은 허무하고도 쓸쓸했다.

결국 승냥이는 황후가 되었다. 타환의 가슴 아픈 희생 덕분이다. 그러나 기황후는 사랑과 맞바꾼 자리다. 권력을 얻었지만 그녀는 왕유(주진모 분)와 타환을 잃었다. 그 모습이 그리 화려하지도 위엄이 있어 보이지도 부럽게 느껴지지도 않았다. 오히려 슬펐고 처량했으며 가여워 보였다. 세상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힘을 손에 쥔 그녀는 세상 그 누구보다도 외롭고 불쌍한 여인일 뿐이었다.

 <기황후> 마지막 회의 한 장면. 승냥이(하지원 분)의 품에서 숨을 거둔 타환(지창욱 분).

<기황후> 마지막 회의 한 장면. 승냥이(하지원 분)의 품에서 숨을 거둔 타환(지창욱 분).ⓒ MBC


<기황후> 제작진은 첫 회에도 등장했던, 승냥이가 기황후가 되는 책봉식 장면을 대거 편집해 버렸다. 고려의 원수인 기황후의 마지막을 화려하게 장식했다가는 무슨 비난을 당할지 모를 일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권력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인지,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렇다면 그것은 무엇인지를 자문하기 위해서 일부러 여운을 남겨 놓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승냥이가 고려를 배신하고 권력에만 매달려 목숨을 부지하려던 염병수(정웅인 분)의 죽음 앞에서 한 말이 그 어떤 대사보다도 인상적이었다. 승냥이는 백성들에게 몰매를 맞아 숨이 멎은 그를 바라보고 눈물을 흘리면서 이렇게 말한다. "나라가 온전했다면 염병수 또한 고려에서 좋은 남편, 좋은 아비가 되었을 겁니다."

맞는 말이다. 나라가 제대로 섰더라면, 정의로웠다면, 튼튼했더라면 어쩌면 염병수도 그렇게까지 교활한 앞잡이 노릇을 하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힘들고 어렵다고 해서 모두가 염병수와 같은 삶을 살지 않을 것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것을 탓하기 이전에 그보다 큰 힘을 가진 이들, 높은 자리에 있는 이들의 올바른 각성과 위정이 먼저 수반되어야 함이 순서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 <기황후>의 승냥이는 그것이 떠올라 눈물을 흘렸을 테다.

<기황후>는 역사 왜곡의 비난에서 벗어날 수는 없는 드라마다. 처음과 이야기를 풀어가는 과정이 그러했으며, 마지막 또한 역사와 합일되지 못했다. 아무리 픽션임을 강조하며 왜곡 논란을 피해간다고 해도 그 부분에서만큼은 쓴 소리를 들어야 함이 마땅하다. 하지만 <기황후>가 전달코자 하는 메시지를 들여다보면 그저 역사를 왜곡한 드라마라고 치부하기엔 좀 아까운 것도 사실이다.

고려와 원나라를 사이에 두고 누군가는 배신의 길에 들어섰고, 누구는 나라를 지키려 했으며, 누구는 융합과 소통으로 화합의 손을 잡았다. 기황후를 영웅시하려 했던 시도는 불순했지만, 제작의 참 의도는 인물들의 다양한 삶을 통해 어떠한 가치관으로 살아야 하는지를 일깨워주려 했던 일 테다. 세상의 모든 이데올로기를 떠나 서로 어우러져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그리고 그것이 행복의 첫 단계가 아닌지를 말하려 했던 것은 아닐는지.

이는 국민의 지지로 나랏일을 맡게 된 이들이 가장 먼저 새겨야 할 점이 아닐까 싶다. 패를 가르고 시시비비를 가리며 무조건 내 주장만 옳아 그 뜻이 관철되어야 한다는 독선으로 가득한 위정자들이 존재하는 한, 대한민국 또한 원나라에 굴복한 옛 고려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지금 우리의 현실은 개탄스럽기 그지없다. <기황후>는 그것을 투영했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이 저지른 역사왜곡에 대한 벌은 좀 가벼워질 필요가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기자의 개인블로그(DUAI의 연예토픽), 미디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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