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개> 영화 포스터

▲ <들개> 영화 포스터 ⓒ KAFA FILMS,무비꼴라쥬


선생님이 학생을 때리면서 "네가 그렇게 잘났어?"라고 고함친다. 구타에 가까운 체벌을 당하면서도 학생은 굴하지 않고 "그래도 제 말이 맞는 거죠?"라고 응수한다. 분노로 가득한 학생은 선생님의 차에다 사제폭탄을 설치한다. 거짓말처럼 폭탄은 폭발한다. 이윽고 영화는 학생에서 성인이 된 정구(변요한 분)가 취업을 위해 면접을 보는 11년 후 시간으로 건너뛴다.

취업을 준비하는 정구는 겁 없이 분노를 표출했던 학생 시절과 다르다. 취업하고자 애쓰고, 간신히 들어간 대학교 조교 자리에서 버티기 위해 양말로 만든 폭탄주를 마시길 거부하지 않는다. 현재의 그는 어떻게든 사회가 구축한 시스템에 속하려고 안간힘을 쏟는 존재다. 마음에 안 들어도 꾹 참는 그에게 분노를 삭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여전히 폭탄이다. 폭탄을 받은 이가 자길 대신해 터뜨려주었으면 하는 마음 뿐이다.

정구 앞에 우연히 나타난 효민(박정민 분)은 어디로 튈 지 모르는 예측불허의 인물이다. 제법 똑똑하고, 베짱도 두둑한 효민은 통제 받는 시스템을 거부한다. 효민이 교수와 논쟁을 벌이는 광경을 목격한 정구는 폭탄을 효민 앞으로 몰래 보낸다. 그런데 지금까지 받은 이들과 달리 효민은 폭탄을 터뜨린다. 이후 정구가 폭탄을 제조한 사실을 눈치 챈 효민은 다른 건도 하자면서 부추기기 시작한다.

폭탄이라는 욕망을 만드는 생산자와 이를 터뜨리는 집행자

<들개> 영화의 한 장면

▲ <들개> 영화의 한 장면 ⓒ KAFA FILMS,무비꼴라쥬


10대 시절의 정구가 분노와 반항을 의미했던 폭탄을 실제로 폭발시켰다면, 20대 시절의 정구는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서 타인에게 드러낸 표층 자아 아래에 심층 자아인 폭탄을 깊숙이 숨긴다. 예전에 폭탄을 터뜨렸을 때에 책임진 바 있는 그였기에 이제는 그런 행동이 두렵다. 대신에 누군가 다른 사람이 나서서 폭발시켜주었으면 하는 마음, 즉 대리만족을 얻고 싶은 이중적인 태도를 보인다.

효민은 정구가 감춰왔던 욕망을 실현해 주는 집행자다. 교수와 논쟁하며 지지 않으려는 효민은 선생에게 지지 않으려 했던 과거의 정구를 닮았다. 효민은 <지킬 박사와 하이드>처럼 정구가 감추었던 과거 또는 내면의 얼굴처럼 느껴진다.

세상에 쉽사리 적응하지 못하는 정구와 효민이 폭탄을 매개체로 얽히면서 두 사람은 서로가 주는 쾌감을 만끽한다. 정구는 숨겨둔 욕망을 해방하는 자유를 탐닉하고, 효민은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짜릿한 전율을 깨닫는다.

생산자와 집행자로 유지되던 둘의 밀월 관계는 세상을 바라보는 차이가 나타나면서 깨진다. 정구는 어떤 식으로든 시스템에 순응하려는 자세인데 반해, 효민은 아랑곳하지 않고 울타리 바깥으로 나가길 원한다. 효민의 욕망이 폭주할수록 정구는 수렁으로 점차 빠져든다. 마치 하이드에게 정체성을 잠식당하던 지킬 박사처럼.

<들개> 영화의 한 장면

▲ <들개> 영화의 한 장면 ⓒ KAFA FILMS,무비꼴라쥬


정구와 효민을 '사제폭탄'이라는 독특한 소재로 연결지으면서 청춘의 단면을 끄집어내는 <들개>는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들개>를 떠올리게 한다. 비단 같은 제목이기에 그런 것만은 아니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들개> 역시 '총'이란 소재를 매개체 삼아 일본 사회를 관찰하는 자세에서 유사성이 읽힌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들개>는 총을 소매치기당한 경찰의 이야기다. 잃어버린 총은 연달아 희생자를 낳는다. 사건을 연결하는 고리로 작동하는 총을 따라가면서 영화는 전후 일본 사회의 황폐한 현실과 가치관의 혼란을 목격한다.

영화에 "불운은 사람을 성장시키든가, 무너뜨리든가 둘 중 하나다"란 대사가 나온다. 총을 잃어버렸던 경찰과 총을 훔쳤던 범인은 모두 전쟁에서 돌아오면서 가방을 잃어버린 경험이 있다. 그런데 두 사람은 그 순간 각기 다른 길을 선택했다.

이것은 "인간이 극히 간단한 이유로 짐승이 되는 것을 보았다"는 대사와 관계 맺는다. 영화는 세상이 나쁜 것만 탓하지 말고 희망을 품고 살아야 한고 강조한다. 구로사와 아키라는 인간의 선한 마음이 '총'이란 악을 억제하고 사회를 바르게 이끌어주리라 믿었다.

김정훈 감독은 <들개>에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춘을 '폭탄'으로 포착한다. 무력한 청춘의 초상화를 폭탄으로 덧칠하는 그의 영화엔 마침표가 찍혀 있지 않다. 손에 피를 묻힌 기억 따윈 잊고 따뜻한 햇볕을 받으며 여느 때와 다름없는 일상을 보여주는 마지막 장면은 정구가 어디로 가는 것인지 묻는 의문 부호만이 있다.

이것은 청춘이 가는 방향에 대한 의문이기도 하다. 그저 사회가 원하는 대로 '폭탄'이란 자아를 죽이는 선택이 최선일까? 영화는 질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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