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0년 이천에서 열렸던 18회 춘사대상영화제
지난 2010년 이천에서 열렸던 18회 춘사대상영화제 한국영화감독협회

"지금까지 부정과 비리가 만연했지만 이번에는 공정하고 깨끗하게 해서 그간의 오명을 씻어 낼 테니 지켜봐 달라."

춘사영화상을 재개하는 한국영화감독협회(이하 감독협회) 정진우 이사장의 다짐이다. 그는 행사를 앞두고 몇 번이나 '깨끗하게 하겠다'는 말을 강조했다. 부정적인 이미지로 가득한 춘사영화상을 어떻게든 쇄신하겠다는 각오가 가득했다.

19회 춘사영화상 시상식이 오는 19일 오후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개최된다. 2010년 18회 행사 이후 4년 만이다. 춘사영화상은 영화감독들이 우수 작품을 선정해 시상하는 행사로 나름 권위를 인정받아 왔으나, 대종상과 함께 권위가 떨어진 대표적인 영화상으로 꼽힌다. 행사를 주관했던 사람들이 부정과 비리를 저지른 게 원인이었다.

춘사영화상은 1937년 8월 36세의 나이로 요절한 춘사 나운규 선생을 기리기 위해 1990년 한국영화감독협회가 춘사기념사업회를 발족하면서 시작됐다. 1999년 춘사 나운규 영화예술제를 개최가 첫 출발이었다. 2006년 춘사대상영화제로 이름을 바꾸고, 이천시의 지원을 받아 개최됐으나 이 과정에서 부정 논란이 계속 제기돼 왔다.

결국 검찰 수사 끝에 행사를 주관해 온 전 영화인총연합회장 정인엽 감독이 횡령 혐의로 기소됐고, 지난해 7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았다. 정인엽 감독은 행사 관련 용역 계약을 하면서 실제 대금보다 부풀려 거래명세표를 작성하는 방식으로 차액을 챙겼고, 이를 개인 빚을 갚는 용도 등으로 사용했음이 드러났다.

또한 감독협회 회장으로 있을 때 춘사기념사업회 발족에 역할을 했던 김호선 감독은 춘사영화제 행사 대행 입찰보증금 명목으로 한 이벤트 대행사 관계자에게 수천만 원을 차용했다가 행사가 무산된 후 돈까지 갚지 않아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이 차용증에는 행사를 맡게 되면 빌린 돈을 갚지 않아도 되는 조건이 명시돼 있어 행사 대행을 미끼로 뒷돈을 챙기려했다는 의혹을 받기도 했다.(관련기사: "2011 대종상 행사비로 3억 요구"... "사실무근")

이 때문에 다시금 영화상을 재개하는 감독협회 정진우 이사장은 깨끗함과 투명성, 공정성을 기조로 삼고 있다. 정 이사장은 "그간 관례화 되다시피 한 모든 부정적인 요소들을 제거하겠다"며 비리의 온상으로 인식되고 있는 춘사영화제를 정상화 시키겠다고 거듭 다짐했다.

'감독협회' 주관 영화상 수상 후보는 '감독조합' 감독들

 춘사영화상 감독상 후보에 오른 네 명의 감독들. 이준익 감독, 봉준호 감독, 한재림 감독, 오멸감독
춘사영화상 감독상 후보에 오른 네 명의 감독들. 이준익 감독, 봉준호 감독, 한재림 감독, 오멸감독이정민

춘사영화상은 올해는 감독상·각본상·남녀주연상 등 6개 부문에 한해 시상한다. 20여개 부분을 시상했던 2010년과 비교해 규모가 상당히 줄어들었다. 감독협회 관계자는 "규모가 커지면서 비리가 생겨났기에 초심으로 돌아가 수상 규모를 최소화했다"고 말했다. 이어 상패 외에 상금은 지급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영화상으로서 실추된 명예를 살리는데 중점을 뒀다는 것이다.

후보작은 지난해 1월부터 올해 설날 직전 개봉한 영화들을 대상으로 했다. 김종원, 전찬일 평론가 등이 참여한 예심을 통해 본선 진출작들이 걸러졌다.

감독상 후보에는 <관상>의 한재림 감독, <설국열차> 봉준호 감독, <소원> 이준익 감독, <지슬-끝나지 않은 세월2> 오멸 감독이 올랐다. 각본상 후보에는 <수상한 그녀>, <소원>, <관상> <지슬-끝나지 않은 세월2>가 선정됐다. 신인 감독상에는 <마이 라띠마>를 연출한 유지태 감독과 <변호인> 양우석 감독, <숨바꼭질> 허정 감독, <창수> 이덕희 감독이 경쟁을 펼친다.

남우주연상 후보에는 <관상> 이정재, <변호인> 송강호, <신세계> 황정민, <용의자> 공유가, 여우주연상 후보에는 <몽타주> 엄정화, <수상한 그녀> 심은경, <변호인> 김영애, <집으로 가는 길> 전도연이 각각 경합을 펼친다. 여우주연상의 경우 60대의 김영애와 20대의 심은경이 세대차이를 넘어 함께 후보에 올라 화제가 되고 있다.

본선 진출작들은 흥행한 영화들과 작품성을 인정받은 영화들이 골고루 포진해 있는데, 특히 <지슬-끝나지 않은 세월2>이 감독상과 각본상 후보에 오른 것은 주목할 부분이다. 감독협회가 주로 보수영화인들의 단체라는 점에서 제주 4.3 항쟁을 소재로 한 영화가 본선에 오른 것은 특별하게 보이는 부분이다.

또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감독상 후보작들의 경우 대부분이 한국영화감독조합(이하 감독조합) 소속 감독들의 작품이라는 점이다. 감독조합은 기존 감독협회가 내분과 일부 인사들의 전횡으로 제 역할을 못한다는 판단 아래, 지난해 4월 사단법인으로 출범한 영화감독 조직으로 현장에서 활동하는 감독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감독상 후보에 오른 <소원>의 이준익 감독이 감독조합 대표를 맡고 있다. <설국열차> 봉준호 감독 역시 감독조합에 소속돼 있다.

지난해 7월, 3년 간 법정소송 등으로 이어진 내분을 수습하면서 감독협회 이사장에 추대된 정진우 감독은 취임사에서 "우리 영화계의 고질적인 병폐인 신구세대의 갈등을 조화롭게 해소해 나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정 이사장은 또한 영화계의 고질적 현안인 대기업 독과점 문제에 대해서도 이를 해결해야 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는 등 선배감독으로서 역할을 마다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따라서 시상식과는 별개로 올해 춘사영화상을 통해 영화계 현안에 대해 진보-보수세력 간의 소통이 이뤄질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춘사영화제 정진우 감독협회 감독조합 대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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