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별에서 온 그대> 20회의 한 장면. 기자들에게 둘러싸인 도민준(김수현 분).

SBS <별에서 온 그대> 20회의 한 장면. 기자들에게 둘러싸인 도민준(김수현 분). ⓒ SBS


몰려든 기자들 앞에서 도민준(김수현 분)과 천송이(전지현 분)가 순식간에 사라진 장면은 TV를 통해 전국에 퍼져나갔다. 그야말로 난리통이 아닐 수 없다. 순간이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단순한 소문이 아니라 실제로 눈앞에 펼쳐지고 말았으니,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어안이 벙벙하기만 하다. 언론은 마술이나 눈속임일 수도 있다고 보도하기도 하고, 정체불명의 이 사나이가 정말 외계에서 온 존재가 아닌가 하며 법석을 떨기도 했다.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은 그들은 얼마 후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그것도 문제의 순간이동을 통해서 말이다. 이를 직접 눈으로 확인한 천송이의 엄마 양미연(나영희 분) 역시 뒤로 넘어갈 판이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킨 그녀는 천송이에게 이상한 사람이면 어쩌려고 하냐며 도민준을 경계하기 시작한다. "세상에 단 한 사람,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내가 사랑하는 단 한 사람"이라는 천송이의 대답으로 금세 수그러들기는 했지만.

SBS <별에서 온 그대> 속 사람들은 이제 도민준에 대한 정체를 알게 됐다. 기자들은 천송이보다 도민준에게 카메라와 마이크를 들이대기 시작했으며, 그는 졸지에 지나가는 사람마다 사인을 해달라는 요청을 받는 유명인사가 됐다. 천송이를 내친 소속사가 천송이를 다시 불러들이려는 이유는 도민준을 함께 영입하려는 속셈이 있어서다. 만인의 연인은 아니더라도 만인의 화제의 대상이 된 것만은 분명하다.

<별에서 온 그대>는 정체불명의 외계인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유쾌하고 유머러스하게 그려내고 있다. 하지만 한 번 생각해보자. 이것이 실제 현실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가정했을 때 사람들이 그를 어떻게 대할지 말이다. 모르긴 해도 <별에서 온 그대> 속 사람들처럼 그렇게 호의적이지도 신기한 영웅으로 떠받들지도 않을 듯하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가치관에 반하는 일을 겪거나 사람을 접하게 됐을 때 거부감을 일으킨다. 초자연적인 현상을 목격했을 때 처음 드는 감정은 놀라움과 경이로움보다는 공포와 두려움이다. 나와는 다른, 게다가 초능력이라는 어마어마한 능력을 지닌 사람과 마주하게 되었다면, 답은 뻔하다. 소리를 지르거나 뒷걸음질을 치거나 혹시 그 힘으로 날 어쩌지 않을까 하는 경계심을 갖고 위험인물로 간주하고 말 것이다.

이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사고를 지닌 사람들이 단지 과학적으로 증명되는 현상에 대해서만 신뢰를 갖고 안심을 하는 성향에 기인한 것이기도 하다. 내 눈으로 보지 않고서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도민준을 봤다고 치자. 그렇다고 쉽게 그 광경을 받아들이고 그를 친절한 외계인으로 인정할 수 있을까? 과학적으로 증명이 되지 않는 한 그에 대한 두려움의 끈은 절대로 놓아지지 않을 것이다.

"살아가는 순간이 중요한 거야"...도민준이 전한 '행복론'

 <별에서 온 그대>에서 천송이(전지현 분)를 품에 안은 도민준(김수현 분).

<별에서 온 그대>에서 천송이(전지현 분)를 품에 안은 도민준(김수현 분). ⓒ SBS


<별에서 온 그대> 20회는 제법 묵직하고 진지한 주제를 향하고 있다. 도민준이 바라본 지구인들의 삶, 그리고 그가 온 별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믿음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삶을 살아가면서 행복이란, 또 희망이라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 조심스러운 질문을 던지고 있다. 비록 천송이와의 '깨알' 연애와 일주일 밖에 남지 않은 그들의 사랑에 대한 안타까움이 극 전체의 분위기를 아우르고는 있지만 말이다.

"한 사람이 태어나서 자라고 늙어가고 죽어가는 모습을 아주 많이 봐 왔어. 그래서 생각했지. 결국엔 저렇게 죽을 걸 왜 애를 쓸까. 순서만 다를 뿐 결국은 늙고 죽어갈 사람들인데. 왜 저렇게 아등바등 전쟁을 하듯 악착같이 살까. 그들의 삶은 한심하고 허무했어. 그런데 죽음을 생각하고 나서 깨달았어. 죽기 위해 살아가는 사람은 없어. 살아가는 그 순간이 중요한 거였어. 그래서 끝이 정해져 있다고 해도 행복할 수 있는 거고 살아갈 수 있는 거였어. 간단한 건데, 깨닫는 데 오래 걸렸다."

도민준이 천송이를 품에 안으며 한 대사는 이 드라마가 가장 전하고픈 메시지가 아닐까 싶다. 행복이란 앞으로 펼쳐질 미래의 그 어디쯤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가 살아있는 이 순간 느껴야 하는 것임을, 죽음이라는 끝이 놓여 있는 모든 인간에게 넌지시 일깨워준 장면인 듯해서 말이다. 도민준이 깨달았다는 그것을 알지 못한 채 그저 힘겹게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여전히 다수를 차지하고 있긴 하지만.

 <별에서 온 그대>의 도민준(김수현 분).

<별에서 온 그대>의 도민준(김수현 분). ⓒ SBS


도민준은 양미연과의 대화를 통해서도 깊이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지극히 현실주의자인 양미연은 도무지 도민준의 정체가 믿어지지 않는다. 도민준의 얼굴을 잡아당겨 보기도 하고, 그에게 이것저것 꼬치꼬치 캐묻기도 하면서 스스로 자신을 설득시키기 위해 애를 쓴다. 그러면서도 "혹시 가족들이 이쪽 별로 다 오신다거나 그럴 계획이 있으신 건 아니구?"하면서 벌써부터 딸의 '시월드'를 걱정하기에 이른다.

"그곳은 여기와는 달라서 가족이라던가, 친구라던가, 부부라던가 이런 개념이 없다"는 도민준의 대답은 양미연을 안심시키기에 충분했다. 적어도 천송이가 시댁 식구들에게 들들 볶일 일은 없게 되었으므로. 그런데 도민준이 자신이 살던 별에 대한 언급은 어딘가 모르게 친숙하게 다가온다. 종교에서 말하는 영원한 삶이 보장된, 성의 구분도 질병도 고통도 없고, 행복과 희락만이 존재하는 천국과도 흡사한 듯해서 말이다.

이 세상이 전부라고 믿는 이들에게는 허무맹랑한 소리일 뿐일 테지만, 이 세상이 끝이 아니라고 믿는 이들에게는 희망을 전하는 메시지가 되기도 한 도민준의 별 이야기였다.

인간의 본능은 늘 채워졌다. 식욕을 느끼기에 음식이 존재했고, 성욕을 느끼기에 성관계로 존재했으며, 고독을 느끼기에 가족이 존재했다. 그렇다면 죽지 않고 영원히 살고 싶은 이 본능은? 이 역시 채워지는 무엇가가 존재하는 것을 아닐까? 그렇다면 그것은 죽음 후에 알게 될 것은 아닐는지. 도민준은 그것을 말하고 싶어 자신의 별에 대한 정체를 밝혔던 것은 아닐까.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기자의 개인블로그(DUAI의 연예토픽), 미디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별에서 온 그대 전지현 김수현 별그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