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델 윤기창이 20일 오후 서울 상암동 오마이스타 사무실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모델 출신 배우 윤기창이 <오마이스타>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정민


|오마이스타 ■취재/조경이 기자·사진/이정민 기자| 영화 <7번방의 선물>하면 떠오르는 배우는 누구일까. 많은 이들이 류승룡과 갈소원을 시작으로 오달수·정만식·김정태·박신혜와 특별출연한 정진영까지 하나하나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7번방의 선물>의 감동적인 법정 엔딩 신에서, 대사 한 마디 없이 맨 뒷줄에 앉아 자리를 채우고 있는 단역을 기억하고 있는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모델 출신 배우 윤기창(33)은 커피숍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 <7번방의 선물>의 프로듀서를 우연히 만났고, 용기 있게 "촬영장에 놀러 가도 되나요"라는 한 마디를 건넸다. 그 결과가 법원 맨 뒷줄, 5초 간의 짧은 출연이었다. 잘 나가는 모델이었지만, '연기를 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작은 역할을 가리지 않고 도전하고 있는 그를 만났다.

"방황했던 학창시절, 생각해 보면 부모님께 죄송하죠"

"아버지는 천안에서 화물차 운전을 하셨어요. 천안에서의 기억은 하나밖에 안 나요. 등에 30cm 정도의 긴 흉터가 있거든요. 천안에서 주택에 살았는데, 담 사이 철조망으로 (몸이)  빠졌고 등 뒤에 긴 흉터가 생겼어요. 엄마가 그때 그냥 빨간 약을 발라주고 말아서 그 흉터가 지금까지 있어요."

서울에서 태어난 윤기창은 바로 할머니가 계신 충남 보령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이후 천안과 청주 등지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 청주에서 부모님이 우유대리점을 했던 초등학교·중학교 시절엔, 1년에 키가 10cm씩 자랄 정도로 무럭무럭 성장했다. 윤기창은 "태권도 까지해서 키가 엄청 자랐는데,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성격이 내성적이어서 조용히 지냈다"라고 회상했다.

내성적이었던 중학생은 대전에 있는 고등학교에 진학하며 180도 바뀌었다. 패싸움도 많이 하고, 가출도 하는 그런 전형적인 '문제아'로 방황의 시기를 거치기도 했다.

 모델 윤기창이 20일 오후 서울 상암동 오마이스타 사무실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고2때는 가출도 한 번 했어요. 다시 고향인 청주로 가서 집에 연락도 안 하고 숙식 제공되는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있었죠. 그런데 엄마가 5,6일 지나서 삐삐로 '여행은 잘 하고 있냐. 재미있냐. 여행 잘 하고 와라'라는 메시지를 보내신 거에요. 아무것도 모르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고, 제 심성 자체가 더 나빠질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그 다음날 집으로 돌아갔어요. 가출과 같은 일탈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깨달았죠."ⓒ 이정민


"운동을 잘 하면 자신감이 붙는다고 하잖아요. 그 말은 정말 맞는 것 같아요. 태권도를 오래 해서 자신감이 붙고 나서 고등학교에 가니까 노는 쪽 친구들이랑 어울려 다니게 되더라고요. 지금은 그 친구들 다 가정 있고 잘 사는데 그때는 왜 그랬나 모르겠어요. (웃음)

저희 학교 주위에 유성예고, 유성농고가 있었어요. 같이 사용하는 놀이터가 있었는데, 그 놀이터에 대한 점유권을 주먹 말고는 가릴 방법이 없었죠. 그래서 많이 싸우기도 했고, 또 한 100명이 점심시간에 그곳에서 담배를 피워서 화재 신고가 들어올 정도였어요. 그때는 무조건 도망이죠.

고2때는 가출도 한 번 했어요. 다시 고향인 청주로 가서 집에 연락도 안 하고 숙식 제공되는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있었죠. 그런데 엄마가 5,6일 지나서 삐삐로 '여행은 잘 하고 있냐. 재미있냐. 여행 잘 하고 와라'라는 메시지를 보내신 거에요. 아무것도 모르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고, 제 심성 자체가 더 나빠질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그 다음날 집으로 돌아갔어요. 가출과 같은 일탈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깨달았죠."

윤기창은 부모님에게 가장 죄송했던 때로, 고2때 마당에서 아버지가 나오는 데도 담배를 끄지 않고 계속 피운 것을 꼽았다. 그는 "정말 나무 같은 아버지인데 '싸가지 없다'라는 말을 태어나서 처음 들어봤다"며 "'아차' 싶었고 내가 도를 넘어섰구나 싶었다. 지금도 죄송하다"고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훤칠한 키 덕분에 모델 입문..."윤기창 하면 '성실'이었어요"
 
 모델 윤기창이 20일 오후 서울 상암동 오마이스타 사무실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윤기창은 2006년 서울 컬렉션 무대에 섰던 것을 두고 "처음으로 세웠던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지만 부모님을 초대하지는 않았다"며 "이 꿈이 끝이 아니라 더 좋은 무대가 있을 것 같았다"고 설명했다.ⓒ 이정민


'문제아의 길은 참으로 의미 없다'는 것을 깨달을 무렵, 180cm을 넘는 훤칠한 키 덕분에 주위에서 모델을 해보라는 제의를 받기도 했다는 사실을 기억한 윤기창은 대전의 한 모델학원에서 준비를 시작했다. 6시간동안 보디페인팅을 받고 무대에 올라가 '울트라맨' 같은 포즈를 취했던 생애 첫 '쇼'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윤기창은 "내가 뭔가를 해냈다는 게 정말로 뿌듯해서 보디페인팅을 지우지도 않고 집에 돌아와 엄마에게 보여드렸을 정도"라고 말했다.

'무대의 맛'을 보았던 그는 본격적으로 모델이 되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부모님께 '나를 찾지 말라, 서울에서 전셋집이 준비되면 연락드리겠다'고는 무작정 상경했다. 아는 선배를 통해 서울의 모델 한명의 연락처를 받은 그는 실낱 같은 희망을 안고 그 모델을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강남역의 한 닭갈비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그를 따라나선 것을 시작으로, 나이트클럽 DJ 아르바이트 등으로 세월을 보내던 중 2001년 입대, 헌병으로 복무했다.

제대를 하고 나니 모델의 꿈도 흐려지고, 무얼 하러 서울에 왔는지 정체성도 잊은 상황. 윤기창은 다시 한 번 도전에 나섰다. 2005년 늦깎이 대학생이 된 그는 광고 에이전시에서 일했던 조교를 만나 '모델일을 계속 해 보라'는 권유를 받았다. 그 말에 다시 프로필을 찍고 주위에 직접 돌리면서 일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던 것.

그러던 중 기회가 왔다. "2005년 일본 액세서리 브랜드 화보 촬영을 처음 하게 됐다"는 윤기창은 "그러다가 박종철 디자이너와 인연이 닿았고, 2006년 도쿄콜렉션에서 박종철 디자이너의 무대에 서게 됐다"고 말했다. 당시 윤기창은 그 무대에 서기 위해 하루에 천개씩 복근 운동을 했고, 한 달 반 만에 14kg을 감량하며 의지를 다졌다.

"너무 신기했어요. 해외에 나가 본 것도 처음이고, 일 때문에 나간 것도 처음이었거든요.  당시 몸을 엄청 많이 준비해 갔는데 어떤 기분인지 느낄 새도 없이 훅 지나갔던 것 같아요. 그리고 그곳에서 8시간의 일본 자유여행도 정말 좋았습니다."

일본에서의 무대 이후, 윤기창의 목표는 서울 컬렉션 무대에 서는 것으로 바뀌었다. 다시 무작정 프로필을 돌렸다. 같은 해, 우연히 발을 들인 곳에서 오디션 없이 계약을 맺었고 서울 컬렉션에서 김서룡·이주영·한상혁 디자이너의 무대에 설 수 있게 됐다. 윤기창은 "처음으로 세웠던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지만 부모님을 초대하지는 않았다"며 "이 꿈이 끝이 아니라 더 좋은 무대가 있을 것 같았다"고 설명했다.

 모델 윤기창이 20일 오후 서울 상암동 오마이스타 사무실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묵묵히 꾸준히 하는 것이 제 장점인데, 거짓말하지 않는다는 게 연기라고 하니 제 장점을 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2009년에 29살이었으니 늦은 나이이기도 했지만 그건 제 마음가짐에 달린 문제 같았습니다."ⓒ 이정민


그 한 번을 시작으로 윤기창은 다수의 쇼와 광고에 출연했다. 모델로 안정된 생활을 누리고 있을 무렵, 소속되어 있던 회사에서 CF 촬영을 위해 초빙한 연기 선생님을 만나며 또 다른 꿈이 생겼다. 마침 모델 일에 한계를 느끼고 있을 때였다. "연기자라는 직업은 시간을 투자할수록 분명 달라진다. 거짓말을 하지 않는 직업이 연기자다"라는 관계자의 말이 그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사실 모델계에서 윤기창이라고 하면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성실하다, 열심히 한다'는 말이었어요. 저보다 잘나가는 사람은 많았고, 타고난 조건에서 앞서는 사람들도 많았죠. 하지만 저보다 열심히 한 사람은 없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모델로서 상위 클래스 무리 안에는 들었지만 1등이 될 수는 없는 한계에 '여기까지'라고 느꼈을 때 연기를 만났고, 2009년 모델 활동을 그만두게 됐어요."

통편집된 첫 영화의 추억..."꾸준히 성장하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묵묵히 꾸준히 하는 것이 제 장점인데, 거짓말하지 않는다는 게 연기라고 하니 제 장점을 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2009년에 29살이었으니 늦은 나이이기도 했지만 그건 제 마음가짐에 달린 문제 같았습니다. 또 '연기자가 되겠다'는 어린 학생들의 열기도 정말 좋았어요."

그렇게 발을 들인 연기. 윤기창은 2009년 이남철 감독의 <돌아오지 않는 다리>라는 독립영화에서 북한 인민군을 연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한 줄의 대사를 일주일 동안 연습하고, 하루 종일 찍었지만 모두 편집된 것에 충격을 받은 윤기창은 기본부터 제대로 배워야 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됐다.

"그때 충격으로 '연기를 정말 열심히 배워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모델 에이전시에서 만났던 김수연 선생님에게 연기를 배우다가 고등학교 선배이자 한국예술종합학교에 다닌 형에게 1년 반 정도 연기를 더 배웠어요. 김수연 선생님으로부터 몸을 어떻게 쓰고 이완시키는지를 배웠다면, 그 형한테는 (캐릭터) 분석과 (연기) 철학 등을 배웠어요. 지금도 그 형에게는 정말 감사해요."

 모델 윤기창이 20일 오후 서울 상암동 오마이스타 사무실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목표를 크게 세우지는 않는 편입니다. 지난해의 목표는 상업영화 1편에 출연하자는 것이었거든요. 역할이 크지는 않지만 그 목표는 달성했어요. 앞으로도 꾸준히 연기자의 길을 걷기 위해, 거창한 목표가 아닌 작은 목표들을 세우고 달성하고 싶어요."ⓒ 이정민


모델 생활 당시 무작정 프로필을 돌리며 존재감을 알렸듯, 1년 반 정도 연기를 배운 윤기창은 또다시 영화 제작사 등을 전전하며 1년 동안 혼자 프로필을 돌렸다. 꾸준히 <엘리제를 위하여><렌탈타임><기면><그레이><딸기맛이 나는 순간><그녀의 밤> 등 단편영화에 출연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덕분에 단편 뿐만 아니라 장편영화로의 러브콜도 이어지고 있다. <돌아오지 않는 다리> 이후 최근 독립 장편 <보청기를 끼워요>에 출연하게 됐으며, 또한 2014년 하반기 개봉을 앞두고 있는 영화 <레드블라인드>에도 출연했다. 이완 주연의 이 영화에서 그는 인민군 대장 역할을 맡아 촬영을 마쳤다고. 숀펜과 이정재를 가장 좋아한다는 그는 마지막으로 꾸준히 좋은 작품에서 마음껏 연기를 하고 싶다는 포부를 드러냈다.

"목표를 크게 세우지는 않는 편입니다. 지난해의 목표는 상업영화 1편에 출연하자는 것이었거든요. 역할이 크지는 않지만 그 목표는 달성했어요. 앞으로도 꾸준히 연기자의 길을 걷기 위해, 거창한 목표가 아닌 작은 목표들을 세우고 달성하고 싶어요.

사실 인맥도 없고, 돈도 없고 아무것도 모른 채 서울에 온 게 14년째에요. 방법은 다 다르지만 누구에게나 가능성은 있는 것 같아요. 내가 남들한테 부끄럽지 않은 모습이라면 한번쯤 기회는 오지 않을까 싶어요. 김수연 선생님도 '남자 배우는 기다리면 승리한다'고 하셨거든요. 집값 내고 기름값 낼 정도의 아르바이트를 제외하고 모든 시간은 연기에 투자하면서 좋은 남자배우로 성장하고 싶습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