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디 레인>의 문종원

<스테디 레인>의 문종원 ⓒ 노네임씨어터컴퍼니


보통 사람이었다면 군대를 마치고 무엇을 해야겠다는 계획이나 꿈을 갖고 있을 법했다. 하지만 배우 문종원은 군대를 마치고 무엇을 해야 할지 전혀 몰랐다. 그 때문이었을까. 스물다섯 살 때 꿨던 꿈은 서른다섯이 되는 것이었다. 10년 후,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지 궁금해서였다. 

이랬던 그가 서른다섯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바쁜 뮤지컬 배우 중 한 명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센 연기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관객에게 내면의 이야기를 보여줄 수 있을지를 고민한다. 이런 고민 덕분에 문종원은 <레미제라블>에서 한없이 미워 보이기 쉬운 자베르를 연민이 가는 악역으로 소화할 수 있었다.

연극 <스테디 레인>에 출연하는 문종원을 지난 27일 충무아트홀에서 만났다.

- 뮤지컬을 하다가 이번에는 연극으로 무대에 오른다.
"뮤지컬은 감정을 표현할 때 연기보다 음악으로 표현되는 부분이 많다. 연극영화를 전공한 지라 뮤지컬을 하면서 연기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 뮤지컬에 연달아 출연하다 보니 대사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

<레미제라블>을 장기 공연하다가 성대 결절이 왔다. '이번엔 쉬어야지'하고 마음먹고 있었는데 <스테디 레인>의 대본을 읽었다. 처음에는 무슨 이야기인지 몰랐다. 하지만 대본을 읽을수록 빨려 들어가는 자신을 보게 되었다. 작품의 힘이 대단하다는 걸 느끼고 연극에 참여하게 되었다. 연극을 안 한 지 오래되어서 대본이 탄탄하지 않으면 배우가 고생할 확률이 높다."

- 대니는 절대적으로 사랑하는 대상이 가족이다.
"가족이라서 사랑하기보다는 무조건 사랑을 주고 싶은 이들이 가족이다. 죽기 전까지 내가 해야 할 일은 가족을 보살피는 것밖에 없다. 내 삶에 있어 가족의 행복은 가장 큰 원동력이다. 이런 점에서 대니가 저랑 많이 닮았다."

- 공연계에는 남성보다 여성 관객이 많다. 대니의 폭력을 여성 관객이 납득할 수 있을까?
"주변에 한주먹 하는 분을 알고 있다. 무섭지만 웃을 때는 그렇게 해맑을 수가 없다. 겉으로는 폭력적으로 보이지만 아이처럼 천진난만한 면이 있어서다. 강해 보이는 사람들이 인간적인 면도 강하다. 대니를 표현할 때, 폭력적인 면만 보여주는 게 아니라 인간적인 면을 보여주고자 한다."

 "강한 역은 트라우마가 많다. 캐릭터가 강하다는 건 이런 모습에 감춰진 트라우마나 쌓인 사연이 많다는 거다. 이런 점이 내게 잘 맞는다."

"강한 역은 트라우마가 많다. 캐릭터가 강하다는 건 이런 모습에 감춰진 트라우마나 쌓인 사연이 많다는 거다. 이런 점이 내게 잘 맞는다." ⓒ 노네임씨어터컴퍼니


- 코믹한 연기를 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센 캐릭터 전문 배우가 되었다. 이번에 또 한 번 센 캐릭터를 맡았는데. 억울하지는 않은가.
"<레미제라블>의 자베르는 인간적인 깊이가 있었다. 그래서 사랑을 많이 받은 것 같다. 이런 점은 대니와 비슷하다. 캐릭터 변신이 중요하지만은 않다. 표현하는 데는 강한 것만 해도 모자란다. 좋은 쓰임새로 내 캐릭터에 맞는 공연을 하는 게 중요하다.

강한 역은 트라우마가 많다. 캐릭터가 강하다는 건 이런 모습에 감춰진 트라우마나 쌓인 사연이 많다는 거다. 이런 점이 내게 잘 맞는다. 강한 캐릭터에 감춰진 사연이 관객에게 공감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직은 센 역할을 맡는 게 괜찮다."

- 폭력적인 캐릭터를 표현하려면 내면의 트라우마도 함께 보여주어야 한다는 점에 공감한다.
"초등학생 때부터 수영을 잘해서 수영 선수를 했다. 중학생 때는 수영부 주장도 맡았다. 한데 문제가 생겼다. 중학생이 되면서 키가 자라지 않았다. 예전에는 반에서 키 순서대로 앉았다. 뒤에 앉았는데 중학생 때는 점점 앞으로 가더라. 키가 크지 않으면 학생들이 얕본다. 사춘기 때, 키가 자라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큰 트라우마가 생겼다. 이 때문에 고등학생 때 불같은 사춘기를 보냈다.

하지만 배우로서 트라우마가 나쁘지만은 않았다. 트라우마가 좋은 건 생각을 많이 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외부에서 압력이 느껴질 때면 중학생 시절의 내가 나와야 할지, 아니면 고등학생 시절의 내가 나와야 할지 고민될 때가 있다. 그럴 때는 두 자아 중 어떤 자아도 꺼내지 않고 그냥 지나가게 하는 게 상책이다."

 "강한 역할을 쭉 맡아왔다. 강한 역할을 위해서는 트라우마가 없어도 일부러 만들어야 한다. 배우가 설 수 있는 이유를 만들기 위해서다."

"강한 역할을 쭉 맡아왔다. 강한 역할을 위해서는 트라우마가 없어도 일부러 만들어야 한다. 배우가 설 수 있는 이유를 만들기 위해서다." ⓒ 노네임씨어터컴퍼니


- <레미제라블> 제작발표회 당시 "연기에 회의를 느끼던 차에 출연 제의를 받았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강한 역할을 쭉 맡아왔다. 강한 역할을 위해서는 트라우마가 없어도 일부러 만들어야 한다. 배우가 설 수 있는 이유를 만들기 위해서다. 공연이 끝나도 강한 역할이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자칫하면 배역이 끝나도 세상을 보는 눈이 비뚤어진다. 어느 순간부터 우울증 비슷한 게 찾아왔다.

급기야는 <됴화만발>을 공연하다가 중간에 빠졌다. 죽어도 죽지 않은 역할이라 센 역할의 정점을 찍었다. 극에 너무 몰두한 나머지 머리카락이 빠지고 정수리부터 여드름 같은 염증이 나기 시작했다. 전원으로 돌아가서 밭을 일구고 소를 키울까 고민을 많이 하던 때였다."

- 조승우씨가 친구다.
"터프한 지금의 이미지와는 달리 20대에는 꽃미남 스타일이었다. 나의 20대를 기억하는 친구가 오랜만에 나를 만나면 '너 왜 이렇게 됐어?'하고 놀란다. (조)승우는 나를 보고 장난으로 '너 50살 먹은 아저씨 같아, 20대처럼 수염을 깎고 머리도 길러봐'라고 한다. 승우는 내가 강한 연기를 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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