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 <사이비>의 연상호 감독과 목소리 연기로 출연한 배우 권해효가 11일 오후 서울 중구 한 카페에서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애니메이션 <사이비>의 연상호 감독과 목소리 연기로 출연한 배우 권해효가 지난해 12월 11일 오후 서울 중구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유성호


|오마이스타 ■취재/이선필 기자·사진/유성호 기자| 배우 권해효에게 연상호 감독의 두 번째 장편 애니메이션 <사이비>는 두 가지에서 큰 도전이었다. 목소리 연기, 그리고 악역 캐릭터 경험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수몰 위기에 몰린 마을을 찾은 한 목사, 그 목사를 의심하며 폭력을 일삼는 한 남자가 이야기를 끌어가는 주축이었고, 권해효는 목사 뒤에 숨어 마을 사람을 현혹시키는 사기꾼 장로 최경석 역을 맡았다. 

극장 개봉이 거의 마무리 된 지난 3일까지 <사이비>는 2만 1899명의 누적 관객 수를 기록했다.(3일까지 <사이비>의 상영관은 1개로 집계) 사실상 최종 관객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상영관은 내렸지만 <사이비>는 또 다른 도전을 앞두고 있다. 가장 가까이에는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최종 후보 선정 이슈가 있다. 또한 올 한 해 각종 국제 영화제에 도전해볼 발판이 마련돼 있다.

연상호 감독에 따르면 권해효는 <사이비>가 관객들 앞에 공식 상영되는 전날까지 걱정이 많았다. 이미 더빙에 참여를 했고, 열정을 다했지만 영화 자체가 사람들을 분노시키고 사회를 고발하는 작품으로 끝나진 않을지에 대한 우려였다. 권해효에게 가장 먼저 던진 질문은 바로 그 당시에 대한 이야기였다.

"작업할 때는 <사이비>라는 텍스를 잘못 읽었던 거 같아요. 이미 뻔히 아는 사회악을 고발하는 직선적인 이야기라고 생각했죠. 상영 직전까지 걱정만 하고 있었어요. 어쨌든 날 캐스팅한 이유는 누군가를 설득하고 사기를 치는 인물을 표현하라는 것이잖아요. 좀 더 그럴듯한 목소리, 친절한 목소리를 내려고 했죠."

지난해 10월에 열렸던 제18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영화 상영을 접한 이후 권해효는 <사이비>가 자신의 생각보다 함의가 넓고, 폭이 큰 작품임을 알았단다. 진실과 거짓의 속성을 다시 묻고 고민하는 작품이라는 걸 느끼고 다시금 연상호 감독을 믿게 됐다고 했다.



"연상호는 보편적이면서도 호소력 있는 감독"

 애니메이션 <사이비>의 연상호 감독과 목소리 연기로 출연한 배우 권해효가 11일 오후 서울 중구 한 카페에서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상호 감독 이야기는 이미 2년 전 <돼지의 왕> 때부터 떠들썩했기에 알고 있었어요. <돼지의 왕>을 보고나서 만만한 친구가 아니라고 느꼈죠." ⓒ 유성호


솔직한 속내를 가감 없이 전하며 본인의 부족함을 먼저 언급했지만 사실 권해효의 이번 연기는 <사이비> 제작 스태프들 사이에서는 하나의 좋은 길잡이가 됐다. 선 녹음 후 작화로 진행된 작업 방식으로 작화 스태프가 최경석 장로의 캐릭터를 못 잡고 있을 때 권해효의 목소리 연기가 큰 도움이 됐던 것이다. 권해효는 "무엇보다도 스태프들 사이에서 그 얘기를 들었을 때 가장 보람이 컸다"며 당시 작업을 회상했다.

"연상호 감독 이야기는 이미 2년 전 <돼지의 왕> 때부터 떠들썩했기에 알고 있었어요. <돼지의 왕>을 보고나서 만만한 친구가 아니라고 느꼈죠. <사이비>가 <돼지의 왕>과 비슷할 거 같지만 결이 다릅니다. 보다 대중적이고 보편적이라고 할까요. 게다가 호소력도 있어요. 시나리오에선 미처 보지 못했던 힘이 작품 자체에 실려 있더라고요. 놀랐습니다.

이번에 작업할 때는 다른 연기자와 섞이지 못하고 따로 녹음만 하고 나왔는데 그 점은 아쉽긴 해요. 다음에 같이 작업할 기회가 생긴다면 배우들끼리 한번 모여서 리허설처럼 시나리오 독해를 하고, 토론도 하면서 앙상블을 만들고 싶어요, 그런 노력이 결과물에 나타날지는 모르겠지만요."

 연상호 감독의 장편 애니메이션 <사이비>의 한 장면

연상호 감독의 장편 애니메이션 <사이비>의 한 장면 ⓒ 스튜디오 다다쇼


<사이비>의 국제무대 도약을 기대해 볼 수 있는 시점에서 권해효는 "사실 이 영화를 애니메이션이 아닌 극영화로 만들었다면 어땠을지 생각하곤 했다"고 운을 뗐다. 그는 "<사이비>가 애니메이션의 장점을 잘 살렸다"며 "확실히 애니메이션은 감독에 의해 완벽하게 장악되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이 영화를 보면 기관차 같지 않나요? 무서운 돌직구처럼 앞으로 나가는 이야기죠. 이게 만약 극영화였다면 <추적자> 같은 작품과 비교해볼 수 있을 겁니다. 무력한 공권력과 말이 안 통하는 상황에서 사이코 패스를 찾는 작품으로 만들 수도 있었을 거예요. 물론 <사이비>는 집단 최면의 이야기를 담고 있어서 결이 좀 다르긴 하죠.

아무리 생각해도 <사이비>가 극영화였다면 관객들이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을까요? 그렇진 않았을 것 같아요. 지금 같은 엔딩을 영화 제작자가 용납했을지도 의문입니다. 애니메이션이기에 가능했던 결말인 거죠. 이런 게 재밌어요. 그냥 웃고 떠드는 게 재미도 있지만, 애니메이션으로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게요."

"영화를 돈으로 재단하는 천박한 짓 그만!"

 영화 '사이비'의 목소리 연기로 출연한 배우 권해효가 11일 오후 서울 중구 한 카페에서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를 하고 있다.

"어떤 사고와 토론을 요하는 작품이 아니라 그저 순간의 상황이나 유머를 이해할 정도의 작품들이 인기를 얻고 있죠. 영화가 결국 소비재로만 끝나는 것인지 우려가 있어요. 그 와중에 <사이비>같은 작품이 종종 나오곤 해요." ⓒ 유성호


권해효는 이야기를 좀 더 넓혔다. 여기엔 연상호 감독 주축인 스튜디오 다다쇼에 대한 그의 무언의 지지가 담겨 있음을 먼저 밝힌다. 20여년의 배우 생활을 통해 진중하게 이 세계를 바라보며 꾸준한 활동을 한 그다. 대기업의 시대-영화 제작사의 시대-제작 PD의 시대를 몸소 겪으며 권해효는 "또 다시 등장한 자본의 시대에 과연 어떤 새로운 작품이 나올 수 있을까"라며 의문을 제기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건 없다지만 적어도 몇 년 전까진 우리의 생각을 뛰어넘는 수작이 1년에 한 편씩은 나왔잖아요. <메멘토>라든지 <유주얼 서스펙트>라든지요. 갈수록 그런 작품을 만나기 어려워지는 거 같아요. 상업영화 시장에서 투자자의 관여가 분 단위, 초단위까지 들어오고 있잖아요.

한국 영화 역시 대기업이 이젠 배급망과 체인 극장을 소유한 채 다시 등장했어요. 이것도 하나의 고정된 환경이 됐습니다. 물론 작품 자체가 부족해서일수도 있지만, 할리우드 영화를 포함해서 히어로물이나 블록버스터 장르 말고 드라마 영화가 성공한 케이스가 최근에 별로 없어요.

어떤 사고와 토론을 요하는 작품이 아니라 그저 순간의 상황이나 유머를 이해할 정도의 작품들이 인기를 얻고 있죠. 영화가 결국 소비재로만 끝나는 것인지 우려가 있어요. 그 와중에 <사이비>같은 작품이 종종 나오곤 해요. 대중 시장에서 정확히 판단을 못 받아도 영화제에서는 지지 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영화 '사이비'의 목소리 연기로 출연한 배우 권해효가 11일 오후 서울 중구 한 카페에서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를 하고 있다.

"안쓰럽습니다. 사실 50만 관객, 30만 관객이 들어도 손해 보지 않는 영화가 꾸준히 나와야 해요. 독립영화·예술영화 진영에서 전용관 얘기를 계속 하고 있지만 냉정하게 보면 작가 입장, 영화인 입장에서는 (대기업 중심의 시스템을) 주어진 환경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에요." ⓒ 유성호


<사이비>가 흥행 면에서 아쉬움이 있을 수 있지만 권해효는 "그 작품성에서만큼은 더 인정을 받아야 한다"는 주의였다. 인터뷰 도중에 그가 강조했던 말을 말미에 덧붙인다. 머리로는 알지만 제작 환경 등을 따지며 애써 외면했던 한국영화판의 슬픈 단면이다.  

"언론 매체 역시 천박한 짓을 많이 했잖아요. 영화 하나가 성공하면 자동차 몇 대 수출하는 것과 같다며 돈으로 계산하기 일쑤였죠. 모든 걸 수치로 봐요. 4500만 명이라는 대한민국 인구 내에서 관객 수가 천만 명이 넘는 건 사실 기형적인 거예요. 다양성이 없어지는 걸 의미하기도 하죠.

안쓰럽습니다. 사실 50만 관객, 30만 관객이 들어도 손해 보지 않는 영화가 꾸준히 나와야 해요. 어렵고, 복잡한 이야기죠. 독립영화·예술영화 진영에서 전용관 얘기를 계속 하고 있지만 냉정하게 보면 작가 입장, 영화인 입장에서는 (대기업 중심의 시스템을) 주어진 환경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에요.

그 안에서 대중성을 확보하는 게 중요합니다. 소위 대박 영화를 만들자는 게 아닌, 5억 원, 10억 원의 저예산이라도 30만 명, 50만 명의 관객은 찾을 수 있는 작품을 만들려고 고민해야 해요."

사이비 권해효 연상호 한국영화 애니메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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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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