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은 드라마 업계에 매우 다사다난한 해였다. 김수현, 김은숙 등 유명 작가들이 대거 출사표를 던졌고 김수현, 전지현, 송혜교, 조인성 등 그동안 TV에서 보기 힘들었던 톱스타들이 컴백을 결정하는 등 반가운 소식도 들렸지만 <야왕><오로라 공주> 등으로 촉발된 막장 논란이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한 한 해였다. 이쯤에서 궁금해진다. 과연 2013년 방송된 드라마는 무엇이 있었고, 또 어떤 결과를 받아들었을까. 여기, 바로 그 정답이 있다.

MBC 월화드라마, 사극만이 살길이다?

 이승기-수지 주연의 <구가의 서>

이승기-수지 주연의 <구가의 서>ⓒ MBC


2013년 MBC 월화드라마는 사극으로 점철됐다. 가장 먼저 스타트를 끊은 것은 이병훈 PD의 '의학 3부작' 시리즈인 <마의>다. 지난해 10월부터 방송된 <마의>는 해를 넘겨 2013년 3월까지 방송되며 20%를 넘나드는 준수한 시청률을 기록했다. 그러나 이병훈 PD의 의학 시리즈 전작인 <허준><대장금>에 비하면 비교적 낮은 수치여서 아쉬움을 남겼고, 결국 마지막회에는 경쟁작 <야왕>에 밀려 같은 시간대 2위로 퇴장했다.

<마의>의 바통을 이어받은 사극은 바로 청춘스타 이승기와 수지가 주연을 맡았던 판타지 사극 <구가의 서>였다. <파리의 연인><프라하의 연인><온에어><시크릿 가든> 등으로 유명한 신우철 PD가 연출을 맡고 <오! 필승 봉순영><제빵왕 김탁구><영광의 재인>의 강은경 작가가 대본을 쓴 이 작품은 방송 내내 같은 시간대 1위를 수성하며 판타지 사극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평을 받았다.

<구가의 서>의 성공으로 인해 이승기는 <찬란한 유산><내 여자친구는 구미호>에 이어 다시 한 번 흥행력 있는 배우임을 입증했고, 수지 또한 <빅>의 실패를 만회하며 국민 여동생으로서의 위상을 공고히 했다. 매번 연기력 논란으로 마음고생을 했던 이연희가 재평가를 받은 것과 최진혁이 무명 생활을 털고 스타로 자리매김한 것 또한 특기할만한 사실이다.

<구가의 서> 퇴장 후, MBC는 문근영을 원톱으로 내세운 <불의 여신 정이>를 출범했다. <바람의 화원>으로 연기력을 검증받은 문근영의 사극 컴백작으로 기대를 모은 <불의 여신 정이>는 "제2의 대장금을 만들겠다"는 MBC의 야망을 대변한 드라마였다. <햇빛 속으로><맛있는 청혼><네 멋대로 해라> 등에서 세심한 연출력을 선보인 박성수 PD가 연출을 맡았고, 문근영을 비롯해 이상윤, 김범, 박건형, 서현진 등이 출연했다.

그러나 결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초반까지 아슬아슬하게 두 자릿수를 지켜냈던 시청률은 중반 이후, 한 자릿수 시청률로 떨어져 버렸고 끝날 때까지 10%대 시청률을 회복하지 못했다. 경쟁작 <굿닥터>와 <황금의 제국> 사이에서 '새우등 터진 꼴'이 되어버린 셈이다. 시청률, 작품성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놓쳐버린 이 드라마가 결국 남긴 것은 문근영과 김범의 열애설일 뿐인 걸까.

 하지원 주연의 <기황후>

하지원 주연의 <기황후>ⓒ MBC


<불의 여신 정이>의 뼈아픈 실패는 후속작 <기황후>가 만회하고 있다. 방송 초반 역사 왜곡 논란으로 큰 홍역을 치른 <기황후>는 오히려 이것이 전화위복이 됐는지 20%에 육박하는 높은 시청률로 승승장구 중이다. <자이언트><샐러리맨 초한지><돈의 화신>으로 유명한 장영철 작가의 탄탄한 대본과 명불허전 하지원-주진모의 선 굵은 연기력, 여기에 히든카드 지창욱의 매력발산이 더해진 덕분이다.

<기황후>의 선전에 MBC는 한껏 고무된 분위기다. 특히 마땅한 '연말 대상감'이 없어 고민하던 차에 하지원이 구원등판 해준 셈이다. 이대로라면 타이틀롤 하지원의 연기대상 수상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과연 하지원이 <황진이>에 이어 생애 두 번째 연기대상을 수상하게 될는지 자못 궁금해진다.

MBC 수목드라마, 드라마 왕국이 무너졌다

비교적 잘 나갔던 월화드라마보다 MBC 수목드라마의 올해 농사는 형편없었다. 용두사미로 끝난 주원-최강희 주연의 <7급 공무원>부터가 비극의 시작이었다. 동명의 영화를 리메이크해 만든 이 드라마는 국정원 요원들의 삶과 사랑을 유쾌하고 흥미롭게 그려내 많은 주목을 받았으나 갈수록 지루해지는 스토리 라인과 설득력을 잃어버린 전개로 시청자들의 외면을 받았다.

<7급 공무원>의 후속작 <남자가 사랑할 때> 또한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지 못했다. 톱스타 송승헌을 비롯해 신세경, 채정안, 연우진이 출연하고 <태양의 여자><적도의 남자>로 유명한 스타작가 김인영이 집필을 맡은 이 작품은 시종일관 우울하고 무거운 분위기로 시청자들의 폭넓은 사랑을 받는데 실패했다.

그나마 위안 삼을 거라곤 송승헌이 연기자로서 재평가받았다는 것과 중반 이후, 같은 시간대 1위를 아슬아슬하게 지켜냈다는 점 정도다. 그러나 같은 시간대 1위 자리는 마지막 회에 맞붙었던 SBS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 빼앗기면서 빛이 바래고 말았다. 이는 분명 스타작가와 톱배우의 이름값에 걸맞지 않은 성적표였다.

 고현정 주연의 <여왕의 교실>

고현정 주연의 <여왕의 교실>ⓒ MBC


2013년 MBC 최고 기대작 <여왕의 교실>의 실패는 더욱 뼈아팠다. 2010년 <대물> 이후, 3년 만에 고현정이 선택한 TV 컴백작으로 방송 전부터 엄청난 화제를 모은 이 작품은 MBC 수목드라마의 '구세주'라는 이야기가 떠돌 정도로 안팎의 상당한 기대를 받았다. 동명의 일본 원작 드라마가 워낙 큰 성공을 거둔데다가 여배우 고현정의 이름값만으로도 충분히 '대박'이 가능한 분위기였던 셈이다.

하지만 상황은 뜻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경쟁작 SBS <너의 목소리가 들려>의 초반 기세가 거세도 너무 거셌기 때문이다. 벅찬 상대를 만난 <여왕의 교실>은 처음부터 흔들리기 시작했고, 종영할 때까지 단 한 차례도 10%대 고지를 밟아보지 못한 채 조용히 퇴장했다. 초반 불거진 가학성 논란과 교사가 왕따를 조장하고 성적으로 줄을 세우는 등의 자극적 장면들이 시청자들의 불편함을 자아냈기 때문이다.

그러나 흥행 실패와 관계없이 우리 사회의 교육 현실을 가감 없이 까발리고,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교사-학부모-학생 간의 화해와 용서를 추구했다는 점에서 드라마 자체에 대한 평가는 매우 후한 편이었으며 고현정을 비롯한 아역 탤런트의 명연기는 찬사의 박수가 아깝지 않을 정도였다. 비록 시청률이 아쉽기는 했지만 연기만 놓고 보자면 고현정 또한 MBC 연기대상의 유력 후보임은 분명해 보인다.

<여왕의 교실> 이후에도 MBC 수목드라마는 좀처럼 반전의 기회를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찬란한 유산><내 딸 서영이>를 쓴 소현경의 주중 복귀작 <투윅스>는 경쟁작 <주군의 태양>에 밀려 동시간대 2위를 겨우 지키다 물러났고, 권상우의 첫 의학 드라마였던 <메디컬 탑팀>은 5%대 시청률로 망신을 당했으며, 최근작 <미스코리아> 또한 한 자릿수 시청률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2013년 MBC 수목드라마는 자신 있게 내세울 만한 작품이 하나도 없다 할 정도로 실패한 라인업의 연속이었다. <7급 공무원>부터 <미스코리아>까지, 무려 6편의 드라마가 줄줄이 시청자들의 차가운 반응을 얻었다면 이는 분명 심각한 상황이다. MBC의 각성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때다.

MBC 일일-주말드라마, 드라마 왕국? 막장 왕국!

 MBC 일일드라마 <오로라 공주>

MBC 일일드라마 <오로라 공주>ⓒ MBC


올해 MBC는 그 어느 해보다도 일일과 주말드라마에서 만족스러운 시청률을 받아들었다. 오랜 시간 KBS에 일일과 주말드라마의 왕좌 자리를 내줘 자존심을 구기기도 했지만, 절치부심한 끝에 일일과 주말드라마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며 드라마 왕국 재건에 나선 태세다. 문제는 일일과 주말로 재건되는 드라마 왕국이 '막장 왕국'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것이다.

주말드라마 라인업은 대놓고 '막장 드라마'의 향연이었다. <금 나와라 뚝딱><백년의 유산><황금 무지개> 등 밤 9~10시대 드라마 대부분이 가학적이고 자극적인 설정으로 일관했다. 특히 <백년의 유산>에서 못된 시어머니로 분한 박원숙의 히스테리 연기는 지금까지도 인구에 회자될 만큼 충격적이었다. 덕분에 시청률은 20~30%대를 넘나들며 선전했지만 막장 논란은 피해가지 못했다.

일일드라마는 더 심각했다. MBC 내부적으로 일일 드라마의 부흥기를 마련했다는 평을 받은 <오자룡이 간다>는 불륜과 각종 음모가 횡행하는 스토리로 자극을 극단까지 몰고 가는 무리수를 뒀다. 후반부로 갈수록 주연인 오자룡(이장우 분)의 존재감이 약화되고 악역 진용석(진태현 분)의 원맨쇼가 되는 등 아쉬운 부분 또한 적지 않았다. 시청률만 높고 작품성은 엉망인 전형적 막장 드라마의 형태를 띠고 만 것이다.

후속작 <오로라 공주>는 2013년 '최악의 드라마'로 꼽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보고 또 보고><인어아가씨>로 유명한 임성한 작가의 신작인 <오로라 공주>는 갑작스런 스토리 변경으로 인해 기존 출연자들이 이유도 없이 극 중에서 사라진데 이어 각종 귀신과 영혼이 출몰하고 등장인물들이 죽어나가는 등 도무지 상식선에서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가 가득한 살벌한 드라마였다.

게다가 새로 들어온 시누이를 왕따시키는 시누이들의 모진 시집살이와 전남편을 집으로 들여 현재 남편과 셋이 산다는 설정, 교통사고로 죽은 전 남편이 혼령으로 등장하는 마무리 장면, "암 세포도 생명이다""셋이서 같이 살자" 등의 대사까지 등장하면서 <오로라 공주>는 방송 내내 하루도 바람 잘 날 없는 시끄러운 나날을 보냈다. 오죽하면 출연진들조차 "이제 무슨 이야기가 나와도 놀라지 않을 지경"이라고 체념했을 정도다.

한바탕 폭풍우처럼 몰아치고 간 <오로라 공주> 덕분에 후속작 <빛나는 로맨스>는 오히려 명품 드라마로 보일 정도다. 이 드라마 또한 고부 갈등, 살인, 복수 등 각종 막장 소재가 가득함에도 불구하고 <오로라 공주>처럼 눈 깜짝할 새 사람이 죽어 나가는 이야기는 아니다 보니 "오로라 공주를 안 보는 것만으로도 힐링 되는 느낌"이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이런 촌극을 방조한 MBC로선 무한한 책임을 져야 할 처지다.

'반쪽 드라마 왕국' MBC, 자존심을 지켜라

전체적으로 보자면, 나름대로 성과를 얻어냈다. 월화드라마에서 만족할만한 성적을 거뒀고 일일과 주말드라마에서 견고한 위상을 쌓았으며, 시청률은 저조했지만 호평을 받은 <여왕의 교실><투윅스> 등의 작품 또한 건져내기에 이르렀다. 80~90년대 '드라마 왕국'이라는 칭호를 자랑했던 MBC다운 실적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만족하기엔 아직 이르다. 어찌 됐든 수목드라마는 침체를 벗어나지 못했고, 일일과 주말드라마는 막장 논란에서 헤어나오기 힘든 상황이며, 월화드라마 라인업을 책임졌던 사극 또한 역사 왜곡 논란과 정통 사극 시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와 같은 결점을 만회하지 못한다면 MBC는 여전히 반쪽 드라마 왕국일 뿐이다.

MBC는 올 한 해 드라마에서 얻은 성과를 바탕으로 2014년 더욱 공격적인 드라마 제작에 나설 것이라 천명하고 있다. MBC가 제발 과거 드라마 왕국다운 품격과 자존심을 지켜가며 시청률과 작품성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주기를, 시청자의 한 사람으로서 바라고 또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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