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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여섯 개의 시선>으로 시작된 국가인권위원회의 인권영화 기획·제작이 열 돌을 넘겼다. 인권영화는 장애인, 이주노동자, 비정규직 등 사회적인 문제부터 직장내 성희롱, 외모 콤플렉스 등 누구나 한번쯤 겪어보았을 일상적 소재에 이르기까지 우리 주변 크고 작은 인권 문제를 조명하며 무딘 인권 감수성을 일깨워왔다.

24일 개봉을 앞둔 <어떤 시선>은 '시선' 시리즈의 열 번째 영화라 더욱 뜻깊다. 시선 시리즈는 그동안 박찬욱, 류승완, 임순례, 장진 등 내로라하는 감독들의 참여로 웰메이드 옴니버스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

제18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첫선을 보인 <어떤 시선>은 참신한 작품으로 국내외 영화제에서 주목받는 세 신인감독들의 손길로 탄생했다. <무산일기>의 박정범 감독, <밍크코트>의 신아가&이상철 감독, <혜화, 동>의 민용근 감독이 주인공이다. 각각 새터민, 안락사, 비혼모와 같은 소재를 다루며 인권영화 아닌 인권영화의 필모그래피를 구축해온 감독들이라 작품이 더 궁금하다.

 국가인권위원회 기획 인권영화 <어떤 시선> 포스터

국가인권위원회 기획 인권영화 <어떤 시선> 포스터 ⓒ 인권위


영화는 장애와 가난을 소재로 한 <두한에게>, 노인 문제를 코믹하게 다룬 <봉구는 배달 중>, 양심적 병역거부를 전면에 내세운 <얼음강> 세 단편의 옴니버스로 이루어진다. 무게감 있는 주제지만 메시지를 흐리지 않으면서도 작품성과 대중성을 확보해 부담 없이 관람할 수 있다.

장애, 노인 문제서 양심적 병역거부까지... 용감한 영화

박정범 감독의 <두한에게>는 '중학교 시절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같은 영화'다. 실제 감독의 학창시절 이야기를 바탕으로 구성됐다. 뇌병변 장애가 있는 두한과 몸은 멀쩡하나 집안이 어려운 철웅의 우정을 그렸다.

 옴니버스 영화 <어떤 시선> 중 첫번째 이야기 <두한에게>

옴니버스 영화 <어떤 시선> 중 첫번째 이야기 <두한에게> ⓒ 인권위


장애란 불편한 것이다. 신체적 어려움인 장애가 삶을 불편하게 만드는 것처럼 경제적인 어려움도 삶을 불편하게 만드는 장애로 작용한다. 그리고 그 둘 중 어느 쪽이 더 불편한 건지는 쉽게 가늠하기 어렵다.

영화에서 습관처럼 '미안하다'고 하는 두한에게 철웅이 '니가 뭐가 미안해'라고 말하는 장면들이 암시하듯 장애란 단지 불편한 것일 뿐 잘못된 것도, 미안해할 것도 아니다. 가난 또한 그렇다. 장애도 가난도, 단지 조금 불편한 특성일 뿐이다.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지 않는다는 시에 동의하는 사람이라면, 몸이 불편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지 않으며 우정을 모르지 않는다는 영화의 메시지에 공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옴니버스 영화 <어떤 시선> 중 <봉구는 배달 중>

옴니버스 영화 <어떤 시선> 중 <봉구는 배달 중> ⓒ 인권위


<봉구는 배달 중>은 세 편 중 가장 코믹한 영화로, 친손자를 그리워하는 할아버지와 유치원에 가기 싫은 행운의 우연한 만남에서 시작되는 짧은 로드무비다. 시종일관 유쾌한 톤을 유지해 관객을 깔깔 웃게 만들지만, 빈곤의 사각지대에 몰린 노인들이 종사하는 실버택배와 같은 사회 이면의 모습은 해피엔딩 이후에도 긴 잔상으로 남는다. '웃픈' 영화랄까.

꽁꽁 언 얼음강처럼 완고한 세상에 던지는 조약돌

가장 쉽게 보아넘기기 어려운 영화는 민용근 감독의 <얼음강>이다. 양심적 병역거부를 전면적으로 다뤘다. 극영화로서는 유일하다. 양심적 병역거부와 그에 따른 대체복무는 국방과 종교 문제가 민감하게 얽혀 쉽게 동의받지 못하는 소재지만, 영화는 적당히 얼버무리지 않는 태도를 보여준다.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대표 격인 여호와의 증인 성전이 직접 화면에 담기기도 한다.

 옴니버스 영화 <어떤 시선> 중 <얼음강>

옴니버스 영화 <어떤 시선> 중 <얼음강> ⓒ 인권위


전세계 양심적 병역거부자 중 90% 이상이 한국인이며, 매년 700명 이상의 청년이 군대 대신 감옥으로 향하고 있다. "이 나라에서는 군대 아니면 감옥 밖에 없다"는 영화 속 대사처럼, 선택권을 박탈당한 젊은이들에게 사회는 꽁꽁 언 얼음강처럼 완고하다. '얼음강'이라는 제목은 아무리 두터운 얼음도 봄이 오면 녹듯, 사회적 편견도 해빙되는 날이 오리라는 역설적 희망으로 읽히기도 한다.

세 편의 영화가 각각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 같지만 인권을 바라보는 하나의 '시선'으로서 따로 또 같이 어우러진다. 인권영화라고 해서 딱딱하고 교육적일 거라는 선입견을 갖기 쉽지만, 상업영화에 견주어도 뒤떨어지지 않게 재미있다. 10월 24일 개봉. 12세 관람가. 러닝타임 1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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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없는 곳이라도 누군가 가면 길이 된다고 믿는 사람. 2011년 <청춘, 내일로>로 데뷔해 <교환학생 완전정복>, <다낭 홀리데이> 등을 몇 권의 여행서를 썼다. 2016년 탈-서울. 2021년 10월 아기 호두를 낳고 기르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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