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저녁 부산 영화의전당에서 열린 쿠엔틴 타란티노-봉준호 감독의 오픈토크

11일 저녁 부산 영화의전당에서 열린 쿠엔틴 타란티노-봉준호 감독의 오픈토크 ⓒ 성하훈


세계적인 거장 쿠엔틴 타란티노와 봉준호가 만났다.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을 하루 앞둔 11일 오후 5시 부산 해운대구 우동 영화의 전당 야외광장에서 타란티노 감독과 봉준호 감독의 오픈 토크가 진행됐다. 이날 행사는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 갑작스럽게 부산 방문을 희망하면서 성사됐다.

타란티노 감독은 "충동적으로 부산영화제에 오게 됐다"면서 "마카오를 방문하고 있었는데, 거기서 친구가 '봉준호 감독을 만나게 해 줄 테니 부산에 가지 않겠느냐'고 해 오게 됐다"면서 "이틀간 굉장히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고 말했다.

공식 초청 게스트가 아닌 개인 자격으로 방문한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은 영화제 막판의 최대 화제로 부상했는데, 오픈 토크가 진행된 영화의 전당 야외광장은 1시간 전부터 관객들로 가득했다.

타란티노 감독은 "<괴물>을 통해 봉준호 감독을 처음 알게 됐다"면서 "괴물이 소개됐을 때 보자마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고 지난 20년간 만난 감독 중 스티븐 스필버그의 재능을 가진 감독이 만들어 낸 최고 멋진 영화"라고 극찬했다. 이어 "봉 감독의 영화에는 코믹함과 즐거운 요소가 들어있다"면서 "비디오로 본 <살인의 추억>도 걸작이고 훌륭하다"고 치켜세웠다. 타란티노 감독은 "LA에 35mm 필름으로 상영하는 극장에서 <살인의 추억>과 <마더>를 큰 스크린으로 보는 기쁨도 누렸다"고 덧붙였다.

봉준호 감독 역시 "타란티노 감독의 <펄프 픽션>은 영화 자체가 충격적이었다"며 "여러 사람들과 같이 봤는데 모두 마찬가지였다"고 말했다. 봉 감독은 "특히 <저수지의 개들>에서 귀를 자르는 장면이 아름다웠다"면서 "마지막 피범벅 장면은 마치 그리스 비극을 보는 장중함을 느꼈다"고 평가했다. 이어 "다음부터는 신작이 개봉할 때마다 기대가 컸다"고 덧붙였다.

타란티노 "봉준호는 장르영화를 재창조"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은 미국의 거장 쿠엔틴 타라티노 감독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은 미국의 거장 쿠엔틴 타라티노 감독 ⓒ 성하훈


타란티노 감독은 장르영화를 좋아하는 것에 대해 "장르영화란 성격이 끌리고 여러 영화를 수집하게 한다"면서 "평생 학생이라는 자세로 다양한 장르영화를 교수님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겸손한 모습을 나타냈다.

봉 감독은 "장르영화로서 미국의 방식이 한국에 왔을 때 어떻게 망가지는지에 쾌감을 느낀다"면서 "미국의 괴물 영화는 군인이나 과학자, 히어로가 나타난다면 내 영화는 바보 같은 가족이 싸운다. 거기에 새로움이 있는 것으로 봤다"고 말했다. 하지만 "설국열차는 그런 장르가 없어 그냥 밀어붙였다"면서 "장르영화는 타란티노 감독이 훨씬 잘 찍는다"고 화답했다.

이에 대해 타란티노 감독은 "봉 감독의 <괴물>은 미국이나 다른 나라 영화에서 볼 수 없는 이상하고 망가진 가족이 등장하기 때문에 장르영화를 재창조했다고 볼 수 있다"고 칭찬했는데, 봉 감독은 "(타란티노) 형님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이 더 이상하고 제정신이 아니다"라고 응수해 웃음을 자아냈다.  

두 감독은 영화의 준비 과정과 배우의 캐스팅에 대한 이야기도 공개했다. 봉 감독은 "<살인의 추억>을 찍을 때는 국내외 연쇄 살인에 대해 공부했고, 외국 감독의 영화도 많이 참고했으나 실제를 다루기에는 상당히 버거웠다"면서 "앞으로 2차 대전 당시 포로수용소를 탈출하는 영화나 무인도 영화를 찍어 보고 싶다"고 희망했다. 타란티노 감독은 "봉 감독의 영화를 꼭 보고 싶다" 응원해 박수를 받았다.

타란티노 감독은 "한 가지 색깔의 영화에 출연한 연기 잘하는 배우들이 있다 보니 좋은 시나리오를 주면 어떨까 싶은 생각을 하게 됐다"며 "특정 배우와 주로 함께하는 것은 이들이 능력이 있는 배우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봉 감독 역시 송강호씨를 언급하며 "한 번 일했던 배우는 척하면 알아듣기에 좋은 의미에서 대화의 양이 줄어들어 편하다"고 설명했다.

관객의 입장으로 방문해 영화제 즐기는 거장 감독

 부산국제영화제 오픈토크 쿠엔틴 타란티노-봉준호 감독의 오픈토크를 찾은 관객들

부산국제영화제 오픈토크 쿠엔틴 타란티노-봉준호 감독의 오픈토크를 찾은 관객들 ⓒ 성하훈


이들은 저예산 독립영화로 시작해 흥행 감독이 됐지만 초심을 잃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도 각자의 생각의 밝혔다. 먼저 봉 감독은 <설국열차>를 예로 들며 "외국영화처럼 보이지만 엄밀히 따지면 한국 제작사와 투자사가 국제적인 배우를 캐스팅해 만든 영화라 감독의 권한과 역할을 보호받을 수 있었다"면서 "할리우드는 스튜디오의 간섭이 심한 것으로 알고 있어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타란티노 감독은 "감독이기에 앞서 시나리오 작가이기 때문에 자기 목소리를 지킬 수가 있었다"며 "다른 사람의 시나리오나 책을 각색해 영화를 만들었다면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시나리오를 여러 개 놓고 고민하면 계속 선택의 과정을 거쳐야 하지만 내가 스스로 하나씩 채워가는 과정은 선택이 아닌 만들겠다는 의지가 견고해진다"고 덧붙였다.

이날 오픈토크는 1시간 넘게 진행됐는데, 영화제 관계자에 따르면 9일 입국한 타란티노 감독은 봉 감독과 영화를 보는 등 철저히 개인 시간을 즐기고 있고, 호텔 숙박과 항공료 등도 자비로 부담하고 있다. 또한 영화제 의전 차량도 이용하지 않고 배지(아이디 카드) 수령도 직접 하는 등 철저히 개인 관객으로서 영화제를 즐기고 있다.

쿠엔틴 타란티노는 미국의 대표적인 감독으로 1992년 <저수지의 개들>(1992)로 17회 토론토국제영화제에서 FIPRESCI상을 수상한 이후 1994년 <펄프 픽션>(1994)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이후 <킬 빌1> <킬 빌2> <장고: 분노의 추적자> 등을 내놓으며 거장으로 자리매김했다.

쿠엔틴 타란티노 봉준호 부산국제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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