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자키 하야오 신작 <바람이 분다> 포스터

미야자키 하야오 신작 <바람이 분다> 포스터 ⓒ 대원미디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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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존 인물인 전투기 설계사 호리코시 지로의 삶을 그린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신작 애니메이션 <바람이 분다>는 주인공에 대해 모를지라도, 이미 극 초반에 이야기의 향방과 결말에 대해서 가늠할 수 있다. 아름다운 꿈을 위해서 비행기를 만들었지만, 결국 제로센이 된 전투기는 지로 본인은 물론 일본을 파멸시키는 저주받은 꿈으로 추락한다.

실제 호리코시 지로는 그리 낭만적이고 순수한 인물이 아니었다는 주장과 근거가 제기되고 있으나, <바람이 분다>의 주인공 지로는 오직 비행기밖에 모르는 소년이다. 비행기를 만들고 싶다는 일념 하에 전투기 회사에 입사한 지로는 자신이 만든 비행기가 전 세계 곳곳에서 얼마나 끔찍한 일을 벌이는 것에 아랑곳 하지 않고 비행기 만드는 데만 전념한다. 그런데 비행기에만 관심 있을 줄 알았던 소년도 한 소녀 나호코를 사랑했는데, 불행히도 그녀는 결핵으로 투병 중이다.

애니메이션 전반부는 온갖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비행기 설계사라는 꿈을 향해 달려가는 지로의 이야기를 담아냈다면, 후반부는 지로와 나호코의 가슴 아픈 사랑에 집중한다. 평생 비행기와 나호코를 위해 달리던 남자의 순애보를 보여주기 때문에, <바람이 분다>는 가슴 시릴 정도로 슬프고 아름답다.

미야자키 하야오 대표작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하울의 움직이는 성>과 달리 어른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지만, 미야자키 하야오와 스튜디오 지브리 특유의 서정적이고 낭만적인 그림체는 아름답고도 아픈 이야기를 은은하게 빛낸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아름답지 않은 시대의 아름다운 이야기

 미야자키 하야오 신작 <바람이 분다> 한 장면

미야자키 하야오 신작 <바람이 분다> 한 장면 ⓒ 대원미디어(주)


전쟁 미화 등 <바람이 분다>를 둘러싼 논란을 두고, 미야자키 감독은 "호리코시 지로는 (사람을 죽이는 무기로 쓰인다는) 의식은 안 했겠지만 그가 만든 비행기는 태평양 전쟁에 쓰였다. 그렇다면 '그가 단지 열심히 살았다고 죄가 줄어드는 것인가?'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영화 개봉 전, 최근 우경화 되고 있는 일본 정부에 우려를 표하는 입장을 표명한 미야자키 감독의 소신대로 <바람이 분다>는 그 나름대로 전쟁의 폐해와 반전 의식을 전달하는 애니메이션으로 볼 수 있다.

눈여겨 보아야할 것은 극 중 등장하는 관동 대지진과 그 이후에 일본 내 일어나는 움직임이 2011년 동일본 대지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장기간 불황과 맞물려 급격히 우경화되는 일본 사회와 비슷하게 다가온다는 점이다.

지진이 일어나고 항공 연구소가 불에 탄 이후, 지로의 친구는 일본은 끝났다고 절망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과 함께 전쟁을 일으킨 독일에 회의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 독일인 의사는 일본과 독일은 파멸할 것이라고 한다. 더욱 놀라운 것은 지로의 롤 모델인 카프로니 백작도 제2차 세계대전 주범 중 하나인 이탈리아 사람이라는 것이다.

카프로니 백작, 지로 모두 본인들은 사람의 꿈을 싣는 비행기를 만들고 싶었지만 사람을 죽이는 전투기를 만들어야하는 운명을 가진 사람들이고, 오직 비행기 만드는 삶에 충실했을 뿐이라고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말한다.

 미야자키 하야오 신작 <바람이 분다> 한 장면

미야자키 하야오 신작 <바람이 분다> 한 장면 ⓒ 대원미디어(주)


물론 미야자키 감독은 지로와 제로센, 태평양 전쟁을 감싸기보다, 오히려 처참하게 추락한 지로의 비행기와 꿈을 보여주며, 한 개인의 삶을 철저히 망가뜨리는 전쟁의 위험을 보여주고자 했다. 결핵으로 인간이 견딜 수 있는 한계선을 완전히 넘었음에도 남편 지로에게 아름다운 모습만 보여주기 위해 죽을 힘을 다해 남편 곁을 지킨 나호코와 지로는 개인의 비극을 넘어, 전 세계를 정복하겠다는 무모한 제국주의 야욕에 가려진 일본의 슬픈 역사로도 볼 수 있겠다.

자연의 재해로 쑥대밭이 된 상황에서도 그토록 바라던 아름다운 꿈을 이루었지만, 그에 응당 따르는 대가인 저주받은 꿈도 감내해야하는 지로의 삶. 이를 통해 <바람이 분다>는 바람이 불면 계속 살아야한다면서 동일본 대지진 이후 실의에 빠져있는 일본 국민들을 위로하고, 잔잔한 희망을 안겨준다.

태평양 전쟁과 제국주의를 미화하지도 정당화할 의도는 없었다고 하나, 한국에는 아픈 역사인 관동 대지진은 극 중에서 위기 속에서도 피어오르는 삶의 의지와 사랑을 표현하는 결정체로 작용한다. 결과적으로는 실제로 아름답지 않은 시대를 그리면서 전쟁의 참혹성보다, 지로와 나호코의 슬픈 사랑과 그 절망을 딛고 다시 묵묵히 살고자하는 희망이 부각된 <바람이 분다>가 상당히 불편하게 다가온다.

아름답고, 슬픈 만큼 더욱 위험하게 다가오는 애니메이션. 어쩌면 <바람이 분다>는 순수한 열정과 의도만으로 결과마저 아름답게 포장되지 않는 현실, 그리고 이 애니메이션 개봉 이후 논란의 한복판에 선 미야자키 하야오 그 자체가 아닐까.

한 줄 평: 평생 비행기와 한 여자만 사랑했다는 남자의 순수한 꿈에 대한 그리 아름답지만은 않은 이야기.

바람이 분다 미야자키 하야오 호리코시 지로 제로센 지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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