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드라마에나 배신의 아이콘은 있게 마련이다. 주로 시청자들의 욕받이로 사용되는 그들은 대개 소수의 인원으로 구성되곤 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인물들을 찾기 힘든 '희귀한' 드라마가 있다. 바로 SBS 월화드라마 <황금의 제국>이다.

이 드라마의 인물들의 배신과 담합의 행태는 차마 눈을 뜨고 보기 어려울 정도다. 배신이 배신을, 복수가 복수를 부르고, 오늘의 적이 내일의 동지로, 피를 나눈 부모형제도 자신의 이익 앞에서는 철저히 버려지기도 한다. 그것을 지켜보는 시청자들 또한 숨통이 조이는 느낌이 들 수밖에 없다.

사방이 온통 배신의 지뢰밭이어서 한시도 긴장을 풀 수 없는 가운데, 아주 대조적인 성향의 두 사람이 눈에 띈다. 최민재(손현주 분)의 아버지이자 성진그룹 최동성(박근형 분) 회장의 동생인 최동진(정한용 분)과 최회장의 부인이자 최서윤(이요원 분)의 엄마인 한정희(김미숙 분)가 그들이다.

'황금의 제국' 등장인물들 간의 날 선 공방은 드라마에 긴장감과 공포를 불어넣고 있다.

▲ '황금의 제국'등장인물들 간의 날 선 공방은 드라마에 긴장감과 공포를 불어넣고 있다.ⓒ SBS


눈에 띄는 최동성과 한정희, 그들은 어떤 인물들인가

최동진은 형 대신 세 번이나 옥살이를 겪은 데다, 그의 배신으로 자신의 아들마저 잃고도 원한을 드러내지 않는 인물이다. 그는 <황금의 제국> 속의 오아시스 같은 존재다. 드라마 속 팽팽한 분위기는 늘 산소부족의 상태지만, 그가 등장할 때마다 긴장감은 한결 완화되곤 한다.

그는 병에 걸려 죽어가는 와중에도 그룹의 사운만을 생각하는 형에게 모든 것을 내려놓고 고향으로 가자고 권한다. 어린 시절 귀하디귀했던 고구마의 소중함을 일깨워주기도 한다. 물론 그 소박함은 자신의 아들 최민재에게는 전혀 먹히지 않는 카드다. 곳곳에 부비트랩을 설치하고 복수의 칼날을 갈고 있는 사람에게 햇볕정책은 무용지물일 수밖에 없다.

반면 한정희는 최동진과 여러 면에서 아주 대조적이다. 그는 억울하게 죽은 남편에 대한 복수심에 가득 찬 인물로, 솔선해서 자신의 원수인 최동성의 아내가 되었다. 이제 그는 아들 최성재(이현진 분)를 자신의 복수를 위한 도구로 삼고 칼날을 갈고 있는 중이다.

그 속내가 서로에게 빤히 보이는 다른 인물들에 비해, 한정희는 엄청난 음모를 전혀 드러내지 않고 있다. 그는 등장인물들에게는 온화함의 상징이지만, 그 속내를 아는 시청자들에게는 두려움의 대상이다. 특히 상황에 따라 미세하게 변하는 그의 표정은 압권이다.

'황금의 제국' 최동성 회장의 아내인 한정희는 이 드라마에서 가장 눈에 띄는 '악역'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의 복수심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 '황금의 제국'최동성 회장의 아내인 한정희는 이 드라마에서 가장 눈에 띄는 '악역'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의 복수심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SBS


정답이 없는 드라마, 어리석은 싸움 지켜보는 구경꾼 역할도 괜찮아

그렇다면 두 사람 중 시청자들이 감정이입하기 쉬운 대상은 누구일까? 원한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선량함의 대명사 최동진일까? 아니면 선명한 복수의 대상을 가진 한정희일까. 그러나 <황금의 제국>에 그렇게 풀기 쉬운 답안 따위는 없다.

그 대답이 어려운 이유는 <황금의 제국>이 세상과 인물들을 그리는 방법에 있다. 이 드라마에 선과 악을 구분하는 선명한 선은 애초에 없으며, 이상향과 감정이입의 대상을 꿈꾸는 것은 순진한 생각에 불과하다.

선과 악이 혼재한 복잡미묘한 인물들의 향연, 그것이 바로 <황금의 제국>의 가장 큰 매력이다. 등장인물들의 면면은 우리의 내면에 똬리 친 속성과 많은 부분 닮아있고, 드라마 속 세상은 도리질 할 수 없을 정도로 현실과 판박이다. 인정하기 싫고, 외면하고 싶은 부분이지만 차마 그럴 수 없는 일들 말이다.

결국 모두가 똑같은 속물들일 뿐이라며 물귀신 작전을 펼치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겠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자. 엄청난 액수의 돈을 좌지우지하고 있는 드라마 속의 인물들을 우리는 부러워하고 있는가? 몇 십 개의 계열회사를 거닌 그룹 회장의 호화스러운 집무실을 가지고 싶은가?

혹시 항상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그들이 안쓰러운 것은 아닌가? 늘 날이 선 채 서로를 대하는 그들에게 연민이 느껴지지 않는가? 내가 그들 속의 한사람이 아님을 안도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들보다 형편없이 적게 가진 내가 오히려 안심이 되지 않는가?

장태주(고수 분)는 말한다. "나라가 흥한다고 우리 인생이 흥하는 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나라가 망한다고 우리가 망하는 건 아니죠"라고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가 말하는 반대의 것을 주입당하며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황금의 제국> 속 많이 가진 자들의 치열한 싸움, 거실이나 안방의 편한 의자에 앉아 그들의 어리석은 모습을 지켜보는 것처럼 재미있는 일도 별로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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