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수목드라마 <너의 목소리가 들려>의 장혜성(이보영 분).

SBS 수목드라마 <너의 목소리가 들려>의 장혜성(이보영 분). ⓒ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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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너의 목소리가 들려> 제작진은 상당히 당혹스러운 일과 마주하게 된다. 드라마의 스포일러(줄거리를 미리 밝히는 행위)가 인터넷 상에 버젓이 떠돌아다니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스포일러는 끔찍할 정도로 상세했다. 10회부터 마지막회인 16회까지 대충 몇 줄로 끼적거린 것이 아닌, 구체적이고도 자세한 내용 설명으로 짜인 스포일러였다.

이에 제작진은 곧바로 공식입장을 밝혔다. 공식입장이라기 보다는 호소문에 가까웠다. 스포일러 유출자에게 강경한 조치를 취하겠다거나, 법적 처벌을 운운하지는 않았다. 대신 제작진과 배우들, 작가의 땀과 수고를 허투루 만들지 말아달라는 부탁과 함께, 앞으로의 이야기가 궁금하겠지만 더 재미있게 시청하기 위해서라도 조금만 참아달라는 양해만 되뇔 뿐이었다.

몇 줄의 짧은 글로 심정을 대변하긴 했지만, 사실 제작진의 속은 까맣게 타 들어갔을 테다. 본디 스포일러란 단 몇 줄이라고 하더라도 탄력을 받은 분위기에 찬 물을 끼얹고, 손에 쥔 모래가 손가락 사이로 쉬 빠져나가듯 기대작에 기대란 놈을 쏙 빼내가기 마련이다. 더군다나 7회에 걸친 상세한 스포일러라면 앞이 캄캄한 망연자실 수준이다. 제작진과 시청자, 양쪽 모두의 마음을 바람 빠진 고무풍선처럼 쭈글쭈글하게 만들어버리기 십상이다.

특히 <너의 목소리가 들려> 에게 스포일러는 위험한 폭탄 같은 존재였다. 작가의 필력과 상상력이 뛰어난지라 그 다음을 예상하기가 굉장히 어려워 스포일러에 대한 갈증이 그 어떤 작품보다 심화됐었고, 모 아니면 도로 나오는 법정 사건의 판결이 중심스토리라 그 결과를 미리 알게 된다는 것은 흥미를 급격히 떨어뜨리는 치명적인 사안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유출된 내용이 범할 수 없었던 부분들

그런데 어제 방송된 11회를 보고서는 스포일러 유출 사건에 콧방귀가 껴졌다. 아무리 자세하고 상세하게 줄거리를 떠벌린다 할지라도, 스포일러쯤에 결코 찌그러지는 드라마가 아님을 제작진은 재차 확인시켜 주었다. 배우들의 명연기가 드러내는 순간적 카타르시스, 몇 줄의 줄거리 요약으로는 도무지 체험할 수 없는 작가의 세공력. <너의 목소리가 들려>가 지니고 있는 디테일의 미학을 스포일러가 흔들 수 없어 보였다.

예컨대 이런 것들이다. 박수하(이종석 분)의 변호를 맡은 장혜성(이보영 분)과 차관우(윤상현 분) 변호사 측과 검사 측으로 나선 서도연(이다희 분)의 법정 장면에서 펼쳐진 팽팽한 신경전과 극적 긴장감. 스포일러의 내용을 읽다 보면 대충은 느껴질 수 있는 분위기이기도 하고, 끝이 어떻게 되는지까지 알게 된다면 시시한 게임으로도 여겨질 수 있기도 하다.

하지만 '코끼리 퍼즐'을 예로 들어 서로가 공방전을 펼칠 때, 짜릿한 전율과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꼈던 것은 배우들이 언급했던 내용 때문이 아니라, 그 내용에 온 힘을 실은 그들의 연기력 때문이었다. 박수하를 살려야 한다는 장혜성의 열망적인 눈빛, 미안함을 덜기 위해 필사적인 전사가 된 차관우의 열변, 이에 맞서는 서도연의 예리한 눈빛과 날카로운 반론. 이보영과 윤상현, 그리고 이다희는 스포일러로는 도저히 체감할 수 없는 자극적이고도 맹렬한 연기로 법정 장면 속 긴장감을 극대화시켰다.

여기에 더욱 세밀한 디테일이 극에 완성도를 보탠다. 박수하에 대한 장혜성의 애틋한 마음을 손바닥에 깨알 글씨로 재판에 열을 올리는 모습으로 대신한다든지, 손발이 척척 맞는 장혜성과 차관우의 눈 맞춤에서 흐뭇한 쾌감을 전달케 한다든지 하는 것들 말이다. 박수하가 점차적으로 기억을 떠올리는 것 또한 그의 묘한 표정 변화로 읽어낼 수 있는 부분이다. 이는 스포일러가 감히 건드릴 수 없는 고유영역들이다.

스포일러가 놓치고 있는 게 하나가 더 있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 은근히 흐르고 있는 코믹적 요소다. 어제 방송된 11회에서도 장혜성은 돌아간 스커트를 판사가 보는 앞에서 거침없이 '팩' 돌려 버리는 코미디를 선사했다. 자칫 진지하고 무거워질 수 있는 법정 드라마에 웃음 코드를 집어넣어 감칠맛을 내게 한 것이다. 과연 이런 톡 쏘는 재미까지 스포일러가 언급을 하면서 잡아낼 수 있었을까.

스포일러가 굳이 기운 빠지게 한 것이 있다면 민준국(정웅인 분)이 아직 살아있다는 것을 일러준 것쯤이었을 테다. 하지만 드라마를 보면서 다시금 절감하게 됐다. 정작 시청자들이 알아야 할 것은 민준국이 살았는지 죽었는지가 아니라, 민준국의 존재 유무를 알아가는 과정과 정웅인이 어떠한 연기로 주인공들과의 피 말리는 전쟁을 선보이게 될는지 하는 것이란 걸 말이다. 그리고 이미 어제 방송에서 민준국이 살아있음은 밝혀졌다. 허무해지는 건 스포일러 쪽이 된 셈이다.

스포일러는 분명 드라마 제작진을 성가시게 하고 더 나아가서는 괴롭게 만드는 장난꾸러기다. 흥해서도 안 되고, 범람해서도 안 되는 못된 스크립트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이를 원망하며 시무룩한 채로 주저앉을 만은 없는 노릇이다. 달리 되돌아갈 길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방 사수를 안 하면 못 견디게끔 잘 만든 작품으로 승부를 걸면 된다.

스포일러가 닿을 수 없는 것들을 영상에 모조리 쏟아 붓는 것이다. 여기엔 이야기를 정교하게 들여다 볼 수 있는 눈이 필요하며, 배우, 연출, 작가가 하나가 되어 양산해내는 디테일한 손길이 필요하다. 어제 <너의 목소리가 들려> 11회에서 보여준 것처럼 말이다.

모두가 알고 있는 내용을 리메이크해서 성공한 작품들도 찾아보면 무수히 많다. 어쩌면 <너의 목소리가 들려> 제작진은 이미 이런 마음으로 스포일러 유출쯤은 가볍게 넘기며 오늘 방송될 12회를 잘 다듬어나가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회를 거듭할수록 대견스러움을 느끼게 하는 드라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DUAI의 연예토픽, 미디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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