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들>의 지창욱과 유준상 뮤지컬 <그날들>은 고 김광석의 히트곡을 주크박스 뮤지컬로 이식할 때 후자의 사례처럼 독이 든 성배를 들이키는 잘못을 범하지 않기 위해 탄탄한 이야기를 덧붙인다.

▲ <그날들>의 지창욱과 유준상뮤지컬 <그날들>은 고 김광석의 히트곡을 주크박스 뮤지컬로 이식할 때 후자의 사례처럼 독이 든 성배를 들이키는 잘못을 범하지 않기 위해 탄탄한 이야기를 덧붙인다.ⓒ 박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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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의 정석이 아닌 주크박스 뮤지컬의 정석을 손꼽으라 하면, 십중팔구 아바의 히트곡을 토대로 만든 <맘마미아!>를 머릿속에서 떠올릴 것이다. 아바의 명곡에 민폐를 끼치기는커녕, 뮤지컬의 이야기와 아바의 히트곡이 서로 상승효과를 불러일으켜 주크박스 뮤지컬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손꼽을 수 있다.

주크박스 뮤지컬은 '양날의 칼'이다. 좋아하는 가수의 히트곡을 뮤지컬에서 하염없이 만끽할 수 있다는 장점은 있지만, 자칫 잘못하면 뮤지컬 배우의 콘서트 장으로 전락할 우려도 있다는 단점이 도사린다. 가수의 히트곡을 뒷받침할 수 있는 서사의 구조가 치밀하지 못할 때 주크박스 뮤지컬은 후자의 사례처럼 독이 든 성배로 전락하고 만다.

음악도 살리고, 무대도 살린 주크박스 뮤지컬

 뮤지컬 <그날들>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동기는 '실종'이다. 지금의 시제와 20년 전의 시제가 교차하되 두 시점 모두 실종으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뮤지컬 <그날들>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동기는 '실종'이다. 지금의 시제와 20년 전의 시제가 교차하되 두 시점 모두 실종으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박정환


수험생이 예비고사 하나 보지 못하고 본고사를 치른다면? <그날들>이 이런 사례에 속하는 경우다. <그날들>은 공연이 열리기도 전에 산고를 단단히 겪은 작품이다. 공연장의 건설사가 건물주에게 공사 대금을 받지 못했다며 유치권을 행사하고는 제작진의 출입을 전면 통제해 버렸다.

이로 인해 리허설에 큰 차질이 생겼다. 뮤지컬에 있어 리허설은 예비고사와 같은 개념이 아니던가. 연출을 비롯한 주요 스태프는 외부로 나가지 못하는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이들이 공연장 밖으로 나가면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전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본고사로 돌입한 주크박스 뮤지컬 <그날들>의 결과물은 어떨까? 뮤지컬 <그날들>은 고 김광석의 히트곡을 주크박스 뮤지컬로 이식할 때 후자의 사례처럼 독이 든 성배를 들이키는 잘못을 범하지 않기 위해 탄탄한 이야기를 덧붙였다. 개인적으로는 여태 관람한 창작 주크박스 뮤지컬 가운데서 가장 완성도 높은 작품이다. 원작 음악을 살리기 위해 이야기를 희생시켜야만 했던 여태까지의 창작 주크박스 뮤지컬의 한계를 과감히 깨뜨렸다.

무대 디자인 역시 창작뮤지컬이라고는 보기 힘들 만큼 진일보한 시각효과를 선보인다. 요즘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시각적 효과는 '투사'에 큰 부분을 빚진다. 예전 같으면 다양한 무대를 하나하나 모두 만들어야 하지만, 요즘은 배경 무대를 모두 만들지 않더라도 투사 효과를 통해 하나의 배경 가운데서 다양한 배경을 선보이지 않던가.

<그날들>은 기존의 뮤지컬 무대에서는 찾아볼 수 없던, 실 커튼에 투사하는 방식의 시각적 효과를 선보인다. 하늘하늘 아른거리는 실 커튼에 투사 효과를 덧입힘으로써, 관객은 기존에 접하던 투사 이상으로 새로운 시각 효과를 체험할 수 있다.  

김광석 곡의 정서와 맞물리는 '상실'에 대한 이야기

 김광석의 음악과 뮤지컬의 이야기의 궁합이 가장 잘 들어맞는 대표적인 장면을 손꼽으라면 그녀와 함께 도주한 무영이 그녀의 행복을 위하여 벌이는 장면과 김광석의 노래 '사랑했지만'이 오버랩 되는 장면이다.

김광석의 음악과 뮤지컬의 이야기의 궁합이 가장 잘 들어맞는 대표적인 장면을 손꼽으라면 그녀와 함께 도주한 무영이 그녀의 행복을 위하여 벌이는 장면과 김광석의 노래 '사랑했지만'이 오버랩 되는 장면이다.ⓒ 박정환


뮤지컬 <그날들>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동기는 '실종'이다. 지금의 시제와 20년 전의 시제가 교차하되 두 시점 모두 실종으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현재의 시점에서는 대통령의 딸이 실종되고, 20년 전 과거에는 통역관인 '그녀'와 그녀를 경호하던 경호원이 홀연히 사라진다.

지금은 청와대 경호실장이 된 주인공 정학은 대통령 딸의 실종 사건 가운데서 그 옛날 경호원과 통역관 그녀가 사라진 20년 전의 사건을 오버랩할 수밖에 없다. 그날, 그녀를 경호하던 동료 경호원 무학은 왜 홀연히 그녀와 도피를 할 수밖에 없었을까? 이 질문으로부터 뮤지컬은 미스터리의 성격을 띠게 된다.

뮤지컬의 모티브가 되는 상실의 정서는 김광석 노래의 정서와 일정 부분 맞물린다. 모두가 알다시피 김광석의 노래 장르는 발라드로, 상실이라는 심상을 표현하는 애절한 곡이 많다. 김광석과 발라드라는 상실의 이중주는 경호원과 그녀, 대통령 딸의 실종이라는 모티브 속 상실의 정서와 궁합을 같이 한다.

김광석의 음악과 뮤지컬의 이야기의 궁합이 가장 잘 들어맞는 대표적인 장면을 손꼽으라면 그녀와 함께 도주한 무영이 그녀의 행복을 위하여 벌이는 장면과 김광석의 노래 '사랑했지만'이 오버랩 되는 장면이다. 장면 속 상실의 정서와 사랑하는 여인에게 다가서지 못하고 멀리서 바라보아야만 하는 심정을 대변하는 김광석의 노래 '사랑했지만'의 정서가 극대화하는 순간이다.

현재의 사건과 20년 전의 사건 가운데서 정학과 딸의 인생이 어떻게 유전되는가를 관찰할 필요가 있다. 정학의 딸은 발군의 음악적 실력을 갖추고 있음에도 친구이자 라이벌인 대통령 딸에게 번번이 밀린다. 정학 역시 뛰어난 실력을 갖추고 있음에도 동료 무학의 실력에 밀려 2인자로 남는다. 아버지가 무학에게 가지는 '2인자'라는 그림자를 딸에게도 고스란히 물려주고 있다.

하지만 정학과 딸에게는 2인자 콤플렉스인 살리에리 증후군 가운데서 흔히 나타나는 질투심을 찾아볼 수 없다. 도리어 1인자에 대한 연민을 놓치지 않는 2인자로 묘사한다. 정학의 딸은 대통령의 딸에 밀리면서도 대통령 아빠를 둔 친구의 아픔을 이해하고자 노력한다. 정학 역시 마음에 두고 있던 통역관 그녀와 동료인 무학이 교감을 나누는 것에 대하여 질투를 느끼지 않는다.

 남성 앙상블이 펼치는 역동적인 군무

남성 앙상블이 펼치는 역동적인 군무ⓒ 박정환


<그날들>의 쇼잉(showing)은 남성적이고도 역동적이다. 남성 앙상블이 펼치는 역동적인 군무는, 김광석 노래의 서정적인 정서와는 상반되는 이질감을 논외로 한다면, 경호원의 이야기라는 내러티브를 시각화한 연출로 이해하면 좋을 듯하다.

김광석의 노래 정서와 내러티브의 합이 100% 맞아떨어지지 않는다는 지적이 없는 건 아니다. 이런 정서적인 이질감이 아닌 내러티브 및 서사의 긴밀함에 주목하고 관람한 결과, <그날들>을 우리나라 주크박스 뮤지컬에 있어 진일보한 결과물이라고 평가할 수 있었다. 툭하면 '개연성 결핍 증후군'에 시달리는 창작뮤지컬 특유의 고질병이 발병하지 않는 <그날들>은 이야기의 완성도 측면으로 본다면 합격점을 받기에 충분한 창작뮤지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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