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역에서의 안나 카레니나. 기차는 욕망을 상징한다.

기차역에서의 안나 카레니나. 기차는 욕망을 상징한다. ⓒ 워킹타이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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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타 가르보, 비비안 리, 소피 마르소. 이 세 여배우의 공통점은? 바로 정념의 화신인 안나 카레니나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톨스토이가 창조한 이 '사랑밖에 난 몰라' 캐릭터에 이번에는 키이라 나이틀리가 도전했다. 영화 <안나 카레니나>(2012)의 감독은 <어톤먼트> <오만과 편견> <한나>를 통해 세련된 연출력을 선보였던 조 라이트다.

1877년 소설로 출간된 이후 <안나 카레니나>는 수없이 많은 연극과 영화, 오페라와 뮤지컬로 각색된 바 있다. 따라서 톨스토이의 원작 소설을 읽지 않았더라도 <안나 카레니나>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매우 익숙하다.

 블론스키와 카레니나, 둘의 사랑은 오래가지 못한다

블론스키와 카레니나, 둘의 사랑은 오래가지 못한다 ⓒ 워킹타이틀


익숙한 이야기, 새로운 전달 방식

모든 것을 다 갖춘 여자가 있다. 남편은 가정에 충실하고 존경받는 정치인이다. 경제적으로도 부유하다. 귀여운 아들도 있다. 그런데 이 여자에게 매혹적인 젊은 청년이 사랑을 고백한다. 여자는 흔들리다가 결국 불륜에 빠져버린다. 그리고 끝내 가정으로 돌아가지 않고 사랑에 자신의 운명을 건다. 그러나 그의 욕망을 질타하는 타인의 시선과 청년의 식어버린 사랑은 결국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한다. 그의 이름은 안나 카레니나다.

이렇게 널리 알려지고 익숙한 이야기를 새롭게 전달하기란 대단히 어렵다. 그런데 이 어려운 일을 조 라이트는 능숙하게 소화해냈다. 조 라이트는 대부분의 실내 장면을 극장 안으로 갖고 들어왔다. 그렇다고 이 영화를 라스 폰 트리에의 <도그빌>과 견주어서는 곤란하다. <도그빌>이 모든 장식을 버리고 배우의 연기를 통해 공간을 창조했다면 조 라이트의 <안나 카레니나>는 제정러시아 말기 귀족의 삶이 '보여주기'로서의 삶, 극장의 삶이었음을 일깨운다.

 연극적으로 잘 짜여진 무도회 장면

연극적으로 잘 짜여진 무도회 장면 ⓒ 워킹타이틀


극장의 삶, 제정 러시아 말기 귀족의 일상

<안나 카레니나>에서 극장은 안나의 집이 되기도 하고, 어느 귀족의 연회장이 되기도 한다. 때로는 안나의 오빠 집이 되기도 하고, 썰매를 타는 야외 공간이 되기도 한다. 이렇게 극장의 무대와 객석을 활용한 공간을 통해 모든 개인이 연기자이자 동시에 관객이기도 한 귀족의 일상을 절묘하게 묘사한다.

특히 이 영화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으로 꼽을 만한 무도회의 장소가 바로 극장의 객석이라는 점은 대단히 인상적이다. 조 라이트는 대극장 안에서 대부분의 사건이 벌어지고 있음을 관객에게 노출시킨 뒤에, 세부적인 요소는 매우 아름답게 채색한다. 따라서 매 장면은 브레히트(독일의 극작가로서 서사극의 창시자)가 말한 서사극적인 긴장으로 충만해 있다. 이는 널리 알려진 이야기를 새롭게 보여주려는 감독의 의도에 정확히 부합한다.  

조 라이트는 안나 카레니나와 청년 장교 브론스키의 정념을 활활 타오르는 불처럼 묘사한다. 하지만 불꽃처럼 타오르는 사랑은 결국 시간을 이기지 못하고 재로 남는 법. 한낮을 견디지 못하는 사랑은 한밤의 황홀함도 끝내 잃어버리고 만다.

 블론스키와 카레니나의 격정적인 춤

블론스키와 카레니나의 격정적인 춤 ⓒ 워킹타이틀


불타는 관능적 사랑 vs 희생과 헌신의 사랑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가 명작인 이유는 단지 불륜에 허우적대는 유부녀의 비참한 최후만을 보여주는 데서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키티와 레빈 커플을 등장시켜서 안나와 브론스키 커플과 비교하게 만든다. 키티는 브론스키에게 버림받았던 여인이고, 레빈은 브론스키 때문에 키티에게 버림받았던 남자다. 그런데 둘은 안나와 브론스키가 열정적 사랑을 나누게 됨으로써 일종의 패자부활전 같은 사랑을 받아들이게 된다.

안나와 브론스키의 사랑이 관능과 화려함을 좇는 사랑이라면 키티와 레빈의 사랑은 희생과 헌신의 사랑이다. 조 라이트는 안나와 브론스키의 장면을 실내 즉 극장 안에서 보여주고, 키티와 레빈의 사랑은 실외 즉 진짜 세상에서 담는다. 이로써 조 라이트는 톨스토이가 말하고자 한 바를 영화적으로 충실하게 번역한다.   

키이라 타이틀리는 안나 카레니나가 갖고 있는 순수성과 관능, 망설임과 절망을 자로 잰 듯이 정확하고 아름답게 연기했다. 그의 선배들보다 훨씬 뛰어난 연기였다.

안나의 남편 카레닌을 연기한 주드 로는 아름답게 나이 드는 배우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 우리에게 알려준다. 그는 치욕을 감내하는 품위 있고 사려 깊은 남편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했다. 끝으로 매혹적인 청년 장교 브론스키를 연기한 애런 존슨은 이 영화 이후 훨씬 더 높은 인기와 명성을 누리게 될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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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하대 문화콘텐츠문화경영학과, 강원대 영상문화학과 강사입니다. 공저로 <문학으로서의 텔레비전 드라마>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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