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서울중앙지법은 원로영화인 169명이 제기한 한국영화인총연합회 총회결의부존재 확인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영화인총연합회(이사장 정인엽·아래 영협)가 지난  2011년 총회 결의를 통해 대종상영화제를 사단법인으로 독립시키기로 한 결정이 무효라는 것.

법원은 '의사정족수를 충족하지 못한 절차상 하자와 총회 소집 과정에서 주요 안건을 누락한 하자가 중대하고 명백하다'며 '총회 결의가 무효하다'고 판결했다. 이에 소송을 제기한 원로영화인들은 "대종상영화제의 사단법인 등록을 취소시키고 운영진들에 대해 직무정지 가처분 신청을 활용하겠다"며 후속 조치에 들어갔다.

이에 대종상영화제 관계자는 "영협 총회를 다시 열어 결의하면 될 뿐"이라며 "항소를 해도 계속 재판이 이어지게 돼 행사 개최에 별 문제가 없다"고 말했으나, 혼란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수년간 운영의 투명성 및 공정성에 불신을 받았던 대종상영화제는 지난해 새롭게 사단법인으로 독립했으나 이번 법원 판결로 올해 50회 영화제 개최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대종상영화제 운영 과정에서 일부 원로영화인들의 비리 의혹이 잇달아 제기되고 있고, 이에 대해 일부 영화인들이 고소·고발할 뜻을 밝혀 검찰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는 등 파문이 커지는 모습이다.

원로영화인들 싸움에 대종상 등 터진다

 지난해 10월 개최된 49회 대종상영화제

지난해 10월 개최된 49회 대종상영화제 ⓒ 대종상영화제

사단법인 대종상영화제와 원로영화인들의 이 같은 격돌은, 겉으로는 '절차'를 둘러싼 다툼으로 보인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영화계의 갈등과 비리 문제가 얽혀있다. '이권 다툼'의 성격을 띠고 있다는 데는 양쪽의 시각이 일치한다.

소송을 제기한 원로영화인들은 "일부 인사들이 대종상영화제를 개인적인 이권을 챙기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려고 해 이를 바로 잡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대종상영화제가 형식적으로는 사단법인으로 독립했지만 인적 구성에 있어 이전과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소송에 참여한 한 원로영화인 역시 "정인엽 감독은 2월 말 영화인총연합회 이사장 임기가 끝나 물러난다, 그간 영협이 주관해 오던 대종상영화제를 독립시켜 이를 주도하고 있는 정인엽 감독 등 주변 인물들이 대종상영화제를 사익을 위한 도구로 삼으려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다른 영화인도 "이사장과 조직위원장·집행위원장 등이 따로 있지만 다들 허수아비에 불과하고 실질적으로는 정인엽 감독과 그 주변 사람들"이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대종상영화제의 조직위원장을 맡았던 권동선 위원장 역시 "나도 이름만 조직위원장이었을 뿐 대종상영화제 운영과 관련해 어떤 권한도 보장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조직위원장으로 추대되면서 협약한 게 있었는데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 정인엽 감독 등에게 속아서 이용만 당한 꼴이 됐다"고 주장하고 "대종상에 대여해 준 2억 원에 대한 회수 등 필요한 조치들을 취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정인엽 감독이 영협 이사장과 감독협회 이사장 등을 역임하는 과정에서 횡령 의혹에 연루된 것도 불신과 갈등의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정 감독은 지난 2006~2010년까지 이천 춘사영화제를 개최하면서 이천시의 보조금을 횡령한 혐의로
지난해 12월 검찰에 불구속 기소된 상태다. 또 지난해 10월에는 이천시가 행사 보조금을 목적대로 사용하지 않았다며 제기한 보조금 반환 소송에서 패소해 행정법원으로부터 6000만 원을 변상하라는 판결을 받기도 했다.

"대종상영화제 소송은 이권 차지가 목적... 그간 문제가 많아 독립한 것"

 영화인총연합회 이사장과 대종상영화제 부이사장을 맡고 있는 정인엽 감독

영화인총연합회 이사장과 대종상영화제 부이사장을 맡고 있는 정인엽 감독 ⓒ 김자윤




이에 대해 대종상영화제 측은 "소송을 제기한 원로영화인들이 대종상영화제를 계속 영화인총연합회 산하에 두고 이권 사업으로 활용하기 위한 것"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정영배 사무국장은 "영협에서 대종상영화제에 집착하는 이유가 이권 외에 특별히 뭐가 있겠냐"며 "예전에 대종상영화제의 문제가 심각해 독립시키라고 한 것인데, 일부 원로영화인들이 자신들의 이권을 빼앗긴다고 생각해 불만을 갖고 이를 되돌리려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대종상영화제의 실세가 정인엽 감독이라는 지적에 대해 "정인엽 감독은 부이사장으로 대종상영화제에 대한 주요 사안은 이사들에 의해 결정이 주관되고 있으며, 결재 과정에서도 부이사장은 제외돼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정 감독이 춘사영화제 횡령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것과 관련해 "춘사영화제 일은 지금 대종상영화제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일"이라는 입장을 나타냈다.

하지만 대종상영화제와 관련한 법원의 1심 판결이 난 직후인 2월 7일 열린 총회에서 정인엽 감독이 이사장으로 추대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정영배 사무국장은 "추대됐을 뿐 이사회 등을 통한 최종 결정이 난 것은 아니고 아직 절차가 남아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한 원로영화인은 "지난해 3월 신영균 이사장이 추대됐으나 두 달도 안 된 5월 이사회에서 신영균 이사장의 권한을 정인엽 부이사장에게로 위임해 권한대행 체제로 지속해 왔었다"고 말했다. 영협에서 나와 사단법인으로 독립했으나 실제적으로는 영협 이사장인 정인엽 감독이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대종상영화제를 주관했다는 것이다.

정인엽 감독은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나를 음해하는 이야기들은 100% 다 거짓"이라며 "전혀 사실이 아닌 쓰레기 같은 말들이라 대응할 가치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나는 그렇게 산 사람이 아니다"라며 "사실 관계 확인 없이 기사화할 경우 응당한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꼼꼼히 감사했더니 문제 삼아"... "물의 일으켜 자진사퇴"

대종상영화제에 대한 논란은 지난해 행사 과정에서 비리가 있었다는 의혹 제기로도 이어지고 있다. 일부 행사 진행 과정에서 억대의 후원금 사용 내역이 불분명하고, 행사 비용을 개인이 수수료로 받아 착복했다는 것.

대종상영화제 측은 사단법인으로 독립한 이후 대종상 심사의 공정성·단체 내부의 이권 다툼 등으로 갈등이 끊이지 않았던 예전과는 다르게 영화제가 깔끔하게 치러졌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감사보고서에서 문제점을 지적한 감사가 물러나는 등 내부적인 갈등이 빚어지기도 했다.

김갑의 감사는 "감사를 철저히 했더니 도리어 이를 문제 삼더라"며 "일부의 이권욕심으로 대종상영화제가 망가지고 몰락하는 꼴을 보기 싫어 그만뒀다"고 말했다. 그는 "감사를 해보니 상금 등이 제대로 지급되지 않은 경우도 있었고, 자료들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데다 보고가 누락되는 등 부실한 부분이 많았다"고 밝혔다.

지난해 12월 18일 김갑의 감사가 낸, '제49회 대종상영화제, 사단법인 대종상영화제 주최 제 1회'라는 이름의 감사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행사기획사와의 계약 금액이 불분명하고, 행사 과정에서 거액의 적자가 발생하는 등 총체적 부실 경영 가깝다"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대종상영화제 측은 "감사보고서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감사가 차기 영협 이사장 선거와 관련해 정치적인 발언을 했고, 이적행위와 같은 행동으로 회원들의 반발을 사 자진사퇴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김 감사가 물의를 일으킨 게 원인이 돼 스스로 물러났다는 것이다.

단편영화제 예산 중 1억4천만 원 확인 안 돼... 횡령 의혹

 지난해 8월 대종상단편영화제 전권을 위임받았던 김호선 감독

지난해 8월 대종상단편영화제 전권을 위임받았던 김호선 감독 ⓒ 김자윤


무엇보다 지난해 행사에서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부분은 8월 전남 고흥에서 처음 시작한 대종상단편영화제(이하 단편영화제)다. 독립법인이 된 이후 새로 신설된 행사인데, 일부 예산이 사용처가 확인되지 않아 의혹이 일고 있다. 단편영화제는 사무국을 따로 설치해 운영했고, 정인엽 부이사장이 김호선 감독에게 전권을 위임한 가운데 지난해 8월 치러졌다.

이와 관련 <고흥뉴스>는 지난해 9월, 예산과 관련해 지자체로부터 2억 9000만 원을 지원받은 것 외에, 지역 유지 7명이 후원금 명목으로 1인당 2000만 원 씩 모두 1억4000만 원을 냈다고 보도한 바 있다. 그런데, 1억4000만 원의 사용처가 확인되지 않으면서 횡령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대종상영화제 사무국 측은 "1억4000만 원에 대해서는 누가 냈는지도 모르겠고 알지 못하는 내용"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감사를 담당했던 김갑의씨는 "단편영화제 또한 대종상영화제의 일부인데 제출된 자료에 그 같은 내용은 없었다"며 "부정 의혹이 많은 사안 같다"고 말했다. 그는 "행사대행사 선정은 김호선 감독이 직접 주관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전권을 위임받았던 김호선 감독은 "위임을 받은 것은 맞지만 심사 외에 관여를 안했고 내가 개입하면 규모가 드러날 거라 철저히 배제됐다"면서 "조직위원장을 맡은 조근우씨가 다 알아서 했다"고 떠넘겼다.

 지난해 8월 고흥에서 열린 대종상단편영화제

지난해 8월 고흥에서 열린 대종상단편영화제 ⓒ 김자윤


지난해 대종상영화제 조직위원장을 맡았던 권동선 위원장은 "단편영화제도 대종상 이름이 들어가는 행사였음에도 행사 일부 비용이 법인통장이 아닌 개인통장으로 입금되는 등 의혹과 문제가 많은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한 조근우 조직위원장의 입장을 듣기 위해 연락을 취했으나 전화가 계속 꺼져있어 해명을 들을 수 없었다. 대종상영화제 측 관계자는 "우리도 요즘 연락이 안 되고 있다"고 말했고, 단편영화제 사무국 관계자는 "외국 출장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며 관련된 사항은 대종상영화제 사무국으로 문의하라고 떠넘겼다.

"대종상영화제 살리려면 물의 일으킨 인물들 모두 물러나야"

 대종상영화제에서 수여하는 대종상 트로피

대종상영화제에서 수여하는 대종상 트로피 ⓒ 대종상영화제

대종상 관련한 잇따른 논란에 대해 영화계는 이 기회에 각종 비리가 정리되고 재정비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한 제작배급사 관계자는 "대종상영화제와 영화인단체 등에 계신 분들은 워낙 비리가 많은 걸로 소문나 있지 않냐"며 원로영화계 인사들에 대한 불신감을 나타냈다.

정지욱 영화평론가는 "대종상이 신뢰를 얻으려면 그간 물의를 일으킨 사람들이 모두 다 물러나고 싹 물갈이가 이뤄져야 한다"며 "그렇지 않고서는 영화계는 물론 관객들의 신뢰를 얻기도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영상진흥위원회 한 관계자 역시 "영화계 비리 문제는 꽤 오래된 문제 아니냐"며 "일부 영화 단체의 경우 실무책임자가 10년 가까이 일하고 있는 곳도 있어, 비리 의혹이 끊이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철저한 검찰 수사를 통해 비리를 척결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지금까지의 대종상과 관련된 비리 및 의혹에 대해 검찰이 수사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주목되고 있다. 한 원로영화인은 "지난 2월 초 검찰에 출두해 참고인 조사를 받았다"며 "검찰이 대종상영화제뿐만 아닌 영협 운영과 관련된 비리자료를 상당히 입수한 것으로 보였다"고 전했다.

한편, 영화감독협회는 18일 이사회를 열고 춘사영화제 진행과정에서 비리와 횡령 등으로 물의를 일으킨 정인엽 감독과 김호선 감독을 제명시켰다고 밝혔다.

대종상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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