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기사에는 영화 줄거리가 담겨 있습니다.

제작비만 100억 원이 들어간 재난 블록버스터 영화 <타워>(12월 25일 개봉), 솔직히 걱정이 앞섰습니다. 이 영화를 만든 이는 <7광구>의 실패로 주홍글씨가 새겨진 감독 김지훈이었기에 배급사 CJ의 선택이 의아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7광구>의 어두운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해운대>의 후광이 느껴졌습니다. 적당히 여기저기 샘플링 따와서 '짜깁기'한 덕에 조심스럽게 특별한 악재가 없다면 손익분기점은 넘길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고 보니 이 감독, 관객 700만을 기록한 영화 <화려한 휴가>를 만든 감독이었습니다.

화려한 볼거리와 '킬링타임' 때문에 이 영화를 고르셨던 분이라면 그 선택은 아주 현명했다고 볼만 합니다. 저 역시 동의합니다.

이분법적으로 나뉜 계급

 <타워>에 나오는 임산부와 노모

<타워>에 나오는 임산부와 노모 ⓒ CJ E&M


마치 과거 프리템포의 <스카이 하이>와 빅뱅의 <거짓말>처럼, 1974년 영화 <타워링>과 <타워>는 고층빌딩·파티·건축 결함·영웅 소방관 등 많은 유사성이 있습니다. 지난 2007년 가요 <거짓말>이 표절 논란에 휩싸이자 양현석이 했던 말처럼 '유사성은 장르 탓'일지도 모를 일입니다.

역시 '고층빌딩'의 상징성은 구약성서에 나오는 바빌론타워 이야기처럼, 물질 만능주의와 인간의 탐욕을 담아냅니다. 소방 장치에 문제점이 있음에도, 상승기류 때문에 헬기를 띄울 수 없음에도 타워의 사람들은 자기 과시를 위한 욕심만을 중시합니다.

여기에 영화는 당연한 장치 하나를 걸어둡니다. 바로 계층 갈등입니다. 화재 현장에서 탈출하는 사건이 영화 장르를 결정하는 중심 사건임에도 영화는 중간 중간마다 탐욕과 선민사상에 젖어 있는 상류층의 모습과 서민으로 대표되는 주방장(박철민 분)과 대학등록금에 고생하는 모자의 모습을 작위적으로 대비시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인재로 발생한 재난의 공분을 계층 갈등으로 증폭시키죠. 돈 많은 상류층은 재난의 원인을 제공하고도 안전하게 탈출하고, 돈 없는 서민들은 잘못하지도 않았는데 희생을 당합니다. 감독은 이렇게 영화 속 인물들을 이분법적으로 나눕니다. 그리고 실장(정인기 분)처럼 이기심과 탐욕은 죽음이라는 형벌로 귀결돼야 하는 것이 마땅함에도 사필귀정의 원칙이 돈 앞에서 전복되는 것을 바라보게하며 답답함과 분노를 자아내게 합니다.

재난영화의 지겨운 속성, 여성은 '약자'

 의존적 여주인공 서윤희

의존적 여주인공 서윤희 ⓒ CJ E&M 영화부문


영화 속 등장인물들 역시 다른 재난 영화 속 인물들 처럼 가부장적 성격을 보여줍니다. 이혼남은 이대호(김상경 분)의 설정은 <해운대>의 김휘 박사(박중훈 분)의 모습이고 <우주전쟁>의 레이(톰 크루즈 분), <2012>의 잭슨(존 쿠삭 분)이기도 합니다. 왜 하필이면 이혼남일까요? 국가적 재난이 발생하면 사회공동체가 무너집니다. 그리고 분명 그런 상황에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최소한의 공동체는 혈연으로 이어진 가족이 될 것입니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재난 영화는 가족주의를 이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가족을 이끄는 존재가 '가장(家長) = 아버지'로 정리된다는 것입니다. 위기로부터 자신들을 구해줄 강력한 존재를 향한 염원일까요. 남성이 독식한 힘과 권력 앞에 여성은 나약하고 의존적인 존재가 됩니다. 주로 여성의 역할은 임신부·노모·어린이·어머니고 늘 위기를 만들어냅니다. 위기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목소리는 거세당한 채 소리를 지르며 남성이 구해주길 기다리는 것으로 그려집니다. 그럼 남성은 어떤가요. 그들은 '그녀'들을 지켜야 한다는 소명 의식이 투철합니다. 때로는 그 소명을 거부한 자를 죽여버리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국민을 지켜야 하는 국가는 가족을 지켜야 하는 아버지와 같아집니다. 재난이 국가를 불완전하게 만드는 것처럼, 영화 <타워> 속 아버지는 가정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 '애 딸린 이혼남'으로 등장합니다.

대개 재난을 극복해가는 이야기가 담긴 이야기에는 '완벽한' 아버지가 되는 성장 스토리가 내재돼 있습니다. 결국 <타워>에서 조연인 이하나(조민아 분)는 그렇다 쳐도, 명색이 주인공인 서윤희(손예진 분)은 이대호의 부품중 하나일 뿐, 조연만도 못한 캐릭터가 됩니다. 여성 입장에선 굉장히 불쾌한 부분이죠.  

영웅으로 그려지는 한 남자... 결말은 '실망'

 설상가상으로 <분노의 역류>를 연상시키는 강영기(설경구 분)의 모습 역시 일반화된 '대한민국 남편'의 모습입니다.

설상가상으로 <분노의 역류>를 연상시키는 강영기(설경구 분)의 모습 역시 일반화된 '대한민국 남편'의 모습입니다. ⓒ CJ E&M


설상가상으로 <분노의 역류>를 연상시키는 강영기(설경구 분)의 모습 역시 일반화된 '대한민국 남편'의 모습입니다. 가정에 무심하고 부인과 아이에게 애정 표현이 인색합니다. 대화 역시 별로 없지만 속은 따뜻해서 말없이 뒤에서 가족을 챙기는 모습 말입니다. 물론 여기에는 마초성과 강한 카리스마를 빼놓을 수 없죠. 부인 역시 남편 기다리는 '망부석 여성상'입니다.

사실 강영기는 이대호에 비하면 정말 설명이 빈약한 캐릭터인데 설경구가 맡으면서 배우 설경구의 이미지가 강영기를 설명해주는 꼴이 돼버렸습니다. 그가 출연한 다른 영화의 캐릭터를 그대로 옮겨 심어도 강영기와 다를 게 없습니다.

그리고 영화는 다른 설경구 영화가 다 그랬듯 강영기를 영웅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오늘 좀 늦을 것 같아"라는 영화 초반부 대사에서 '설마'했습니다. 후반부 원격조종폭탄이 나오는 장면, 마지막으로 강영기가 취한 행동에는 '아…'라는 탄식이 절로 나옵니다. 영화 <아마겟돈> 이후 이런 무리수를 다시 볼 줄은 몰랐습니다.

시간 때우기는 좋지만, 작품성은 별로

 영화 <타워> 포스터

영화 <타워> 포스터 ⓒ CJ E&M

오락영화로서 <타워>는 'KS 표준규격'입니다. CG도 깔끔했고, 화재 진압 시퀀스도 박진감 넘치게 잘 만들었습니다. 연기 역시 말할 것도 없었습니다(호불호가 확연히 갈리지만). 결말 부분에서는 눈물을 훔치는 관객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미 유명한 소재와 100억 원이라는 제작비, 설경구·김상경·손예진·안성기·김인권·김성오·정인기·박철민 등 영화계의 내로라하는 스타들을 데리고 뽑아낸 작품이라고 하기엔 아쉬운 영화입니다.

마치 미국에서 최고로 잘나가는 프로듀서에게 곡을 받아왔다는데 그닥 귀에 들어오지 않는 아이돌의 후크송 같은 느낌 같다고 할까요.

영화 <타워>는 감독만의 독창성·재해석이 없는 '그냥 장르 오락영화'였고, 김지훈 감독이 절치부심해서 돌아왔다고 하기에는 많은 아쉬움이 남아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개인블로그(http://blog.naver.com/hoohoots)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타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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