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리케이의 정규 2집 앨범 트루 셀프 (True Self).

제리케이의 정규 2집 앨범 트루 셀프 (True Self). ⓒ 제리케이


"믿는 구석 같은 건 전혀 없어요. 진짜 믿는 게 있다면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웃음) 그 정도도 얘기 못하는 사회는 죽은 사회 아닌가요. 그 정도 얘기는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보는데..."

제리케이(Jerry.K)는 담대한 남자다. 그를 지켜보는 지인들이 조마조마함을 느낄 정도다. 단순히 서울대를 졸업해 어렵게 들어간 대기업 신입사원 자리를 3년 만에 박차고 나온 이력 때문만은 아니다. 예술가들의 자기검열이 일상화된 시대, 후환이 두려워 차마 말할 수 없는 것들을 그는 과감히 말한다. 그것도 아주 냉철하게.

물론 그게 끝이 아니다. 단순히 정치적 비판으로 점철된 트랙을 내는데 그치는 수준이었다면 그는 아마 힙합신에서 주목받지 못했을 것이다. 정치적 이슈로 덕을 보려는 노이즈 마케터라는 낙인이 찍힌 채 사장되어 갔을지 모른다.

언더그라운드 힙합신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 제리케이는 사실 매우 친숙한 인물이다. 그는 한국 힙합 역사를 통틀어 대중들과 마니아들에게 가장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았던 크루 '소울컴퍼니'의 일원이었다.

2006년 10월 소울컴퍼니 소속으로 '일갈'이라는 데뷔앨범을 내며 마니아들의 주목을 끄는 데 성공한 제리케이는 수작으로 평가받는 '크루셜 모멘트'(로퀜스), '마왕', '연애담' 등 앨범을 연이어 발매하며 소울컴퍼니의 중심축으로 발돋움했다. 2011년 11월 소울컴퍼니의 해체 순간을 가장 마지막까지 지킨 사람이기도 했다.

 제리케이(Jerry.K)는 담대한 남자다. 예술가들의 자기검열이 일상화된 시대, 후환이 두려워 차마 말할 수 없는 것들을 그는 과감히 말한다. 그것도 아주 냉철하게.

제리케이(Jerry.K)는 담대한 남자다. 예술가들의 자기검열이 일상화된 시대, 후환이 두려워 차마 말할 수 없는 것들을 그는 과감히 말한다. 그것도 아주 냉철하게. ⓒ 제리케이


낙동강 32공구와 삼성의 반도체 노동자, 저널리즘을 넘나드는 가사

메시지를 담은 그의 가사는 논리적이고 단단하다. 시와 저널리즘의 경계를 교묘히 넘나든다. 실제로 작사에 필요한 모티브를 대부분 신문 기사에서 얻는다. 가사 곳곳에서 드러나는 치밀한 묘사와 사실을 소재로 한 디테일은 특정 사건의 가해자와 피해자, 그리고 정치적으로 저항하고자 하는 이의 면면을 정확히 겨냥한다.

정규 2집 앨범 수록곡 '마왕2'는 2012년 4월 4대강 공사 중 낙동강 낙단보에서 발생한 건설 노동자 사망사고와 유성기업에서 벌어진 용역 직원들의 노조원 폭행 사건의 전말을 담고 있다. 가사에는 사고 당시 낙동강 32공구의 콘크리트 준설작업 상황과 가장을 잃은 유가족의 슬픔, 그리고 폭행당하는 노동자들의 절규가 적나라하게 담겨있다.

믹스테이프 앨범 '우성인자'의 수록곡 '블루 네이션'은 반도체 공장 노동자 백혈병 사망사건 산재 은폐의혹과, 정-관계에 각종 부당 압력을 행사하는 족벌기업 삼성의 횡포를 소재로 했다.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와 영화<MB의 추억>의 주제가 역시 그의 손에서 태어났다.

"('마왕 2'의 경우)시처럼 돌려쓸까 생각도 해 봤는데, 돌려쓰면 그런 이야기들이 픽션처럼 들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현장이 있는 것도 피해자의 가족이 있는 것도 모두 픽션처럼 보일까봐 일부러 자세하게 썼죠."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적시하는 제리케이의 비판은 모든 것이 명료하다. 뮤지션들이 흔히 범하곤 하는 허무주의적 결론과 피해의식의 배설이 그의 가사에는 없다. 자신의 시각을 실제 사건에 대한 정밀한 묘사를 통해 관철시킨다. 흔히 말하는 내러티브 리포트(Narrative Report)의 표현 방식과 동일하다.

어디서 이런 '기자스러움'이 나오는 걸까. 제리케이는 "대학시절 잠시 PD를 꿈꿨던 적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일까. 그는 자기검열을 혐오한다. 무엇에 빗댈 수 없을 만큼.

"특별히 비유하기 좀 어려운 것 같기는 하지만, 아무튼(자기검열은) 진짜 싫어요. 솔직히 세상을 살면서 내 맘대로 할 수 없는 일들이 정말 많은데, 적어도 내 안에서 일어나는 것만큼은 무조건 자유로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걸 막는 게 자기검열이니까. 그런 건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죠. 절대 그럴 순 없지.(웃음)"

 아마 그도 느꼈을 것이다. 앞으로 5년 동안 자신이 써내려갈 가사의 양이 엄청나게 많아질 것 같은 그 무거운 기분을. 마왕의 시대는 끝나지 않았다.

아마 그도 느꼈을 것이다. 앞으로 5년 동안 자신이 써내려갈 가사의 양이 엄청나게 많아질 것 같은 그 무거운 기분을. 마왕의 시대는 끝나지 않았다. ⓒ 제리케이


투사 혹은 빨갱이? 해석은 어디까지나 리스너의 몫

그는 자신을 둘러싼 주변의 반응에 둔감한 편이었다. 쿨하다는 말로는 뭔가 설명이 안 되는 부분이 존재했다. 보수적 네티즌들이 자신을 '빨갱이'라 손가락질하든, 진보매체들이 자신을 반정부 투사로 규정하고 싶어 하든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정치적 성향을 밝히는 것이 역으로 자신의 음악을 묻히게 만드는 원인이 될 수도 있었지만 그는 담담했다. "그건 어디까지나 리스너의 몫"이라고 했다. 어쩌면 그 특유의 둔감함이 그의 담대함을 구성하는 주성분일지도 몰랐다.

"저를 투사로 보든 아니든 상관없어요. 그렇게 보이면 그렇게 보는 거지(웃음). 제가 제 음악을 표현하는 건 순전히 제 마음이고, 그 이후의 해석은 어디까지나 리스너의 몫이죠."

해석은 자유지만 오해는 금물이다. 제리케이는 민중가수가도, 운동권 투사도 아니다. 언더그라운드 힙합퍼의 길을 택한 이상 정치적 메시지만으로 모든 걸 해결할 순 없다. 마니아들의 높은 안목을 충족하려면 자신이 가진 음악적 한계를 극복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봤을 때 르포 기사가 떠오르는 그만의 래핑 스타일은 강력한 무기인 동시에 "보완하고 싶은 부분"이기도 했다.

"랩에서 웅변이나 논설문에 가까운 느낌이 난다는 이야기를 들어요. 그게 저한테는 장점이기도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음악적이지 않다는 의미일 수도 있죠. 실제로 그런 피드백도 받고. 분명 저만의 특징이에요. 또한 보완하고 싶은 부분이기도 하고. 웅변조로 하려다 보면 아무래도 말이 많아지니까, 듣는 사람이 피곤해진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런 면에서 보완해야 할 점이 있죠. 좀 더 매끄럽게, 예술적(Artistic)으로 해내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트루 셀프(True Self), 제리케이가 느낀 음악적 고민의 총합

지난 11월 발매한 정규 2집 앨범 트루 셀프(True Self)는 '마왕'으로 주목을 끈 1집 앨범의 성공 이후 제리케이가 느낀 음악적 한계와 보완점, 그 고민의 총합이다. 다양한 변화가 시도됐다. 목소리 톤에 변화를 줬고, 샘플링 위주의 정규 1집과 다르게 다양한 방식의 편곡이 시도됐다. 

VSTI(가상악기) 소스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악기에 섬세한 시퀀싱을 가한 '드리머', 드레이크(Drake) 특유의 우울한 감성이 느껴지는 '마티니 토크', 스웨거(Swager) 스타일을 표방한 '다 내꺼'는 그 변화를 피부로 느낄 수 있는 트랙들이다.

사랑 이야기를 다룬 '유 아 낫 어 레이디'(You're Not A Lady)와 '처음엔 다 그래'는 '마왕'과 '연애담' 앨범의 대비가 말해주듯 극명하게 갈린 자신의 감성을 하나의 맥락 안에 담고자 했던 제리케이의 노력이 엿보인다. 전작에서 거친 느낌을 줬던 레코딩 질감도 세련된 마스터링을 통해 예전보다 훨씬 깔끔한 맛을 냈다.

"카니예 웨스트(Kanye West)가 2010년 말에 낸 '마이 뷰티풀 다크 트위스티드 판타지'(My Beautiful Dark Twisted Fantasy), 이 앨범에서 영감을 많이 얻었어요. 이 앨범의 편곡은 변화무쌍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굉장히 다양한데, 저도 전작들보다 극적이고 다양한 방식의 편곡을 해보고 싶었어요. 그게 실현된 곡도 있고 아닌 곡들도 있고. 전체적으로 잘된 것 같아요. 잘 안됐으면 앨범 안냈지(웃음)."

아직 마왕의 시대는 끝나지 않았다

제리케이가 2집에서 선보인 음악적 변화는 현재진행 중이다. 수록곡인 '드리머'를 밴드스코어로 편곡하는 보컬 녹음 스케줄이 인터뷰 직후에 잡혀 있었다. 2집 발매 쇼 케이스의 세션을 맡았던 밴드 에보니 힐과(Ebony Hill) 다시 손발을 맞췄다. 새로 편곡한 음원은 "날짜를 특정할 순 없지만 새로 나올 싱글에 담길 예정"이라 했다. 자신의 음악을 밴드로 구현이 가능한 사운드로 구축하는 게 2집 앨범을 통해 이루고픈 그의 궁극적인 목표였다.

"더 루츠(The Roots)라는 팀을 좋아하는데, 힙합음악을 하는 밴드에요. 그런 음악을 전부터 좋아하고 하고 싶었었는데, 그래서 라이브를 할 때 밴드로 구현이 가능한 사운드를 만들고 싶었어요. 거칠게 말하면, 그런 전자적인 소스들이 중심이 되지 않는, 밴드적인 사운드를 하고 싶었던 것 게 이번 앨범이죠."

좀 이르지만 다음 앨범에서 선보이고 싶은 사운드에 대해 물었다. 그는 네오 소울(Neo Soul)을 언급했다. 1960년대 소울의 고전적 전개 방식에 힙합과 알앤비(R&B)의 리듬감을 부분적으로 버무린 음악 스타일이다.

"요즘은 당장 만들고 있는 앨범이 한 개가 아니라서.(웃음) 네오 소울적인 것들, 드웰레(Dwele)나 뮤지크 소울 차일드(Musiq Soul Child), 그런 스타일의 음악들을 전부터 좋아했어요. 평소 하고 싶었던 음악이에요. 주변에 있는 프로듀서들에게 그런 곡들을 주문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음악 스타일을 시도하고 싶다는 그는 그러면서도 인터뷰 내내 자신의 중심을 잃지 않았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없도록 옥죄는 '마왕'의 시대. 시국이 시국인 만큼 제리케이는 자신의 무기를 결코 놓지 않을 것이었다.

넌지시 다음 앨범 가사에 쓸 정치적 타깃에 대해 물었다. 그는 대선이후 연달아 세상을 떠난 노동자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음악에 대한 이야기는 언제나 즐겁지만 이번만큼은 웃을 수 없었다. 그도 아마 가늠하고 있을 것이었다. 앞으로 5년 동안 자신이 써내려갈 가사의 양에 대해서. 가늠할 수 없는 5년의 첫 해가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대선 끝나고 나서 노동자분들이 많이 돌아가시고 있는데, 그런 기사들 볼 때마다 너무 가슴이 아파요. 아마 그런 이야기를 쓰게 될 것 같은데 어떤 식으로, 어떤 방식이 될 지는 잘 모르겠네요. 아무튼 그런 이야기를 쓰게 되지 않을까요. 거대 자본에 대한 이야기."

제리케이 마왕 힙합 MB의 추억 나는 꼼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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