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월화드라마 '마의' 중에서 MBC 월화드라마 '마의' 중에서 신하들의 수의퇴진 요구에 부딪친 현종(한상진분)

▲ MBC 월화드라마 '마의' 중에서 MBC 월화드라마 '마의' 중에서 신하들의 수의퇴진 요구에 부딪친 현종(한상진분) ⓒ MBC


<마의> 19회에서 결국 백광현(조승우분)은 3의사(전의감,혜민서,내의원) 의원들의 집단 반발로 의생직을 그만두게 된다.

이 모든 책임이 수의(3의사의 수장) 고주만에 있다는 권신들은 현종(한상진분)에게 수의의 퇴진까지 요구한다. 이에 현종은 수의의 퇴진은 있을 수 없다며 뜻을 굽히지 않고 결국에는 담석증이 심해져 쓰러진다.

그렇다면 실제 역사에서 현종과 신하들과의 관계는 어땠을까? 현종은 재위기간 내내 왕권강화를 위해 권신들과 맞서 싸운 왕이었다. 현종의 치세 기간에 있었던 두 번의 예송논쟁은 현종과 권신들의 권력 쟁탈전의 정점이었다.

예송논쟁은 왕권을 중시한 남인과 신권을 중시한 서인 그리고 현종 사이에 일어났던 권력다툼이었다. 예송논쟁의 시작은 현종 즉위 직후 일어났다. 현종은 1659년 즉위 뒤 아버지인 효종의 상례로 인조의 계비인 자의대비의 복상문제(복상을 얼마나 입느냐의 문제)가 일어나자, 남인이 주장하는 3년설을 물리치고 서인의 1년설을 채택함으로써 서인을 집권하게 하였다. 그것은 아직은 왕권이 미약하던 현종이 조정을 장악하고 있던 서인의 손을 들어 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현종은 남인의 영수인 허적을 영의정에 유임시킴으로써 남인이 재기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하게 하였고, 1674년(현종15) 어머니 인선왕후가 죽고 다시 자의대비의 복상문제가 일어나자 이번에는 남인의 1년설를 채택하여 9개월설을 주장한 서인을 실각시키고 남인 정권을 수립하게 하였다.

이렇게 왕권을 중시하던 남인이 조정의 실권을 잡게 되었으나 애석하게도 현종은 재위 15년인 1674년에 붕어하게 된다. 그리고 그의 왕권 강화 노력은 오히려 당쟁의 불씨를 야기하게 하였고 다음 대인 숙종 때는 본격적인 당쟁의 피바람이 몰아치게 된다.

역사적 사실과 다른 부분이 많은 <마의>지만 현종의 왕권 강화 노력과 그에 따른 권신들과의 마찰 부분은 상당 부분 역사와 일치하는 면이 있다. 앞으로 <마의>에서 현종이 어떠한 왕권 강화 노력을 보여주게 될지를 지켜보는 것도 <마의>를 재미있게 볼 수 있는 또 다른 이유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최주호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blog.daum.net/spdhrkeldjs)와 블로그와이드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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