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용의자X> 공식 포스터

영화 <용의자X> 공식 포스터 ⓒ K& 엔터테인먼트


영화 <용의자X>는 일본 추리 소설 대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용의자X의 헌신>이 원작이다. 히가시노 게이고 소설 중에서도 최고로 인정받는 작품에, 이미 일본에서 영화화하여 한국에서도 호평을 얻었던 작품을 굳이 영화로 또 제작하는 것이다보니 차별화가 관건이다.

하지만 히가시노 게이고의 원작은 그 자체만으로도 완전무결하다. 손보려고 해도 손볼 수 없는 원작인터라, <용의자X>에서는 아예 원작에서 가장 중요한 수학자와 물리학자의 대결을 과감히 제거한다. 그리고 그 빈자리에는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완전한 범죄를 은폐하고 싶었던 수학자의 '헌신'으로 가득 채워진다.

원작에서처럼 <용의자X>의 주인공은 수학 선생이다. 한 때 천재 소리 들을 정도로 명석한 두뇌를 자랑함에도 불구, 지금은 한 고등학교의 인기 없는 수학 선생일 뿐인 석고(류승범 분)의 유일한 삶의 연결 고리는 옆집에 사는 백화선(이요원 분)이다.

도시락 가게에서 점원으로 일하며 조카 윤아(김보라 분)와 오붓하게 살고 있던 화선. 그러나 그녀들 앞에 무자비한 전 남편이 나타나고, 전 남편이 휘두르는 폭력에 참지 못한 화선과 윤아는 우발적으로 전 남편을 살해한다. 전 남편의 시체 앞에서 망연자실하던 화선. 그 때 석고는 위기에 처한 화선을 도와주기로 결정. 화선의 범행을 무마할 완벽한 알리바이를 설계한다.

 영화 <용의자X> 스틸 사진

영화 <용의자X> 스틸 사진 ⓒ K& 엔터테인먼트


천재 수학자가 세워놓은 어려운 문제를 해결할 물리학자 역할은 대신 형사 민범(조진웅 분)에게 몰아간다. 게다가 그는 고등학교 시절 유일하게 석고와 마음이 통했던 동창생이기도 하다. 원작의 형사가 그랬듯이 동물적 감각을 앞세워 단박에 화선을 살해 용의자로 지목한 민범. 그러나 석고가 만들어놓은 정교한 알리바이로 인해 민범의 수사는 물거품이 될 위기에 놓인다.

하지만 원작과는 달리 <용의자 X>의 최대 장점이자, 옥에 티가 있다면 완벽한 논리보다 인간 간의 감정에 집중한다는 것이다. 친구 석고가 용의자 화선에게 마음이 있다는 것을 눈치 챈 민범은 석고의 행적을 쫓고, 민범 본인도 인정하기 싫은 엄청난 진실과 마주한다.

너무나도 유명한 원작이 스포일러인 만큼, <용의자X>는 예상했던 바대로 흘려간다. 이미 소설과 영화 <용의자X의 헌신>을 통해 어떻게 전개되고 어떤 결과가 나올지 알고 있는 지라 석고가 화선을 위해 벌인 행각은 더 이상 놀랍지도 않다. 대신 <용의자X>는 스스로를 망가 뜨려서라도 끝까지 화선을 지키려고 했던 석고의 '헌신'에 초점을 맞춘다.

평생 연구하던 수학 문제가 풀어지지 않아 낙담한 채로 매일 죽음만을 생각했던 석고에게 어느날 따사로운 햇살처럼 그의 눈에 아른거리는 화선은 삶의 의지를 재확인시켜준 은인이다. 자살을 기도하던 날 형식적인 말 한마디였지만, "제가 뭐 좀 도와드릴까요?"라는 화선의 친절에 보답하기 위해 그녀의 범행까지 은폐한 석고의 헌신은 바보스럽다 못해 눈시울을 붉히게 한다.

석고는 화선이 자신을 사랑해주는 것까지 원치 않았다. 진심으로 그녀가 행복하길 바랐을 뿐. 그녀 옆에 자신이 아니라, 다른 남자라도 상관없었다. 자기보다 더 근사하고 멋진 남자라면 진심으로 화선과 잘 되길 축복해주는 남자가 석고였다.

그럼에도 석고는 화선을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던졌고, 그의 헌신은 석고는 물론 화선, 민범 까지 불행하게 만들었다. "진실이 알려지면 모두가 불행해질 수도 있어." 끝내 석고를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하던 민범 에게 했던 말 그대로를 스스로 증명하듯이.

원작에 충실하면서도, 물리학자가 아닌 민범을 배려하여 우연으로 맞닥뜨리는 석고가 남긴 단서는 한 치의 오차도 없는 두뇌 싸움이 돋보이던 원작에 열광했던 이들에게는 아쉬움이 가득하다.  대신 미스터리나 수사 극보다 순애보 멜로를 좋아하는 한국 여성 관객들에게는 원작보다 <용의자X>가 가슴 절절하게 다가올 지도. 한 여인을 위해 지고지순한 희생까지 감당하는 순정남 류승범의 연기 변신이 인상적이다.

용의자X 용의자X의 헌신 히가시노 게이고 류승범 이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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