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회사원>의 소지섭(지형도 역).

<회사원>의 소지섭(지형도 역). ⓒ 심미안(주)


영화 <회사원>을 보면서 내내 들었던 생각은 '이 영화 참, 웃긴다'였다. 포스터만 봐도 알겠지만 <회사원>의 장르는 코미디가 아니다. 따라서 '웃긴다'는 표현은 결코 칭찬일 수 없다. '웃긴다'는 말의 의미, 좀 더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이런 거다.

"무슨 영화를 이 따위로 만들었어?"

지형도(소지섭 분)는 한 금속제조업체의 영업부 과장으로 일하는 '회사원'이다. 그러나 이 회사는, 아니 정확히 말해 이 회사의 영업2부는 제작부에서 만든 금속을 내다 파는 일을 하지 않는다. 이들의 본업은 청부살인.

강남 한복판에 위치한 으리으리한 빌딩 내부, 순백색의 깔끔한 느낌을 주는 사무실 안쪽으로 들어가면 오래된 첩보영화에서 갓 튀어나온 듯한 어둡고 음습한 느낌의 또 다른 사무실이 존재한다. 바로 이곳이 영업2부가 본업을 처리하는 공간으로 그곳에는 기시감이 느껴질 정도로 으레 이런 장르의 영화라면 존재할 법한 인물들이 하나씩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다.

현장 경험이라곤 눈곱만큼도 없지만 입은 살아서 쉴 새 없이 주둥이를 나불대는 책상물림 이사, 그런 이사의 잔소리에 "네가 걸음마 뗄 때부터 내가 이 일을 해왔다"며 코웃음 치지만 결국 그의 말에 따르고 마는 힘없는 올드맨, 사무실 한 귀퉁이에서 날렵하게 칼을 휘두르며 훈련을 거듭하는 아래연차 사원들, 근엄한 표정으로 냉철하게 업무를 관장하는 사장, 그리고 사장의 신임을 한 몸에 받는 에이스 과장.

이것저것 그럴 듯하게 구색을 갖춰놓은 밥상이었지만 영화는 시작부터 젓가락을 어디로 가져가야 할지 허공 위에서 손을 멈칫하게 만들어버린다.

서울 한복판에서 총기 사건... 너무 조용하다

 <회사원>의 총격전.

<회사원>의 총격전. ⓒ 심미안(주)


가장 먼저 지적해야 할 부분은 개연성이다. 영화는 형도와 훈(김동준 분)이 의뢰받은 살인청부를 실행하는 장면으로 시작하는데, 이 장면 자체는 이상할 게 없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다. 회사의 아르바이트생인 훈은 형도의 지시를 받아 택배기사로 위장해 건물에 침입하여 경찰이 보호하고 있던(것으로 추정되는) 증인과 경찰을 모조리 죽인다. 그것도 소음기를 착용한 총으로.

다수의 경찰과 증인이 총에 맞아 죽었다. 대한민국이 들썩일 정도로 큰 사건이다. 근데 이 사건을 수사하려고 열심히 뛰어 다니는 건 '꼴통' 형사 한 명뿐, 그 외에는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잠잠하다. 대규모 수사본부가 꾸려지고 현장의 물증과 CCTV에 찍힌 훈의 모습 등을 근거로 다수의 인력이 포위망을 좁혀 와야 정상인데 영화는 형사 한 명이 천방지축 날뛰다 그것도 상부의 질책으로 찌그러지는 분위기.

이쯤 되면 영화에서 무시로 등장하는 총기에 대해서도 생각해 봐야 할 필요성이 있다. <회사원>에서는 온갖 종류의 총이 등장한다. 권총, 소총, 기관총…. 그리고 그것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쓴다. 나름 조용히 일처리를 하려고 총구에 소음기는 다는데 그렇다고 총으로 죽인 게 칼이나 망치로 죽인 게 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영화 속 사장(전국환 분)과 권 이사(곽도원 분)의 대화에서 이들의 주된 살인방법이 사고사로 위장하는 것임을 알 수 있지만, "넌 현장 모르잖아. 현장에선 매뉴얼대로 되지 않는 법이야"라고 말하는 사장의 말로 미루어 짐작하건대 총기를 사용했던 적도 적지는 않았을 터.

그렇다면 어떻게 그들이 지금까지 존재를 들키지 않고 일을 해왔을 거냐는 데까지 의문이 미친다. 미국도 아닌, 엄연히 총기 사용이 금지되어 있고 총기 사고가 손에 꼽을 정도로 적게 일어나는 이 대한민국에서. 적지 않은 직원들을 먹여 살리려면 살인 건수 또한 적지는 않을 게 분명한데, 그렇게 빈번하게 총기 살인 사건이 벌어진다면 대한민국 공권력이 아무리 무능력하다고 해도 그들이 지금까지 아무 탈 없이 일할 수 있어 왔다는 게 선뜻 납득이 가지 않는다.

관객의 입장에선 충분히 들 수 있을 법한 의문임에도 영화는 그 어떤 대답도 내놓지 않은 채 빠르게 다음 장면을 위해 발걸음을 옮긴다. 영화는 오로지 소지섭이 연기하는 형도 한 사람에게만 초점을 맞추고 기타 등장인물과 장치들은 단지 그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휘발시킨다. 그렇다. <회사원>은 사실 소지섭 한 사람을 위한 원맨쇼일 뿐, 개연성이나 줄거리는 아무 상관도 없는 영화인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소지섭이 연기하는 그 형도마저 설득력이 떨어지는 인물이라는 것이다.

잘못은 자기가 해놓고 왜 피해자인 척?

 <회사원>의 소지섭(지형도 역).

<회사원>의 소지섭(지형도 역). ⓒ 심미안(주)


입사한 뒤로 지금까지 회사에서 시킨 일을 충실하게 실행해 온 형도는 그 덕에 젊은 나이에 부장 자리에까지 오른다. 그를 못마땅해 하는 권 이사가 있지만 그것만 제외하면 그는 사장의 신임과 동료의 신망, 부하직원의 동경을 받는 영업2부의 명실상부한 에이스다. 사람 죽이는 일에 조금이라도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면 결코 오를 수 없는 위치, 받을 수 없는 신뢰였건만, 어느 날 갑자기 그는 다른 사람이 된 양 변한다.

일을 끝마친 아르바이트생 훈을 죽이지 않고 살려두고, 마찬가지로 죽였어야 할 과거 상사 또한 죽이지 않는다. 지금까지 그가 해왔던 행동과는 정반대지만 영화는 이 부분에 대해서도 관객이 납득할 만한 설명을 충분히 하지 않는다.

만약 그가 사랑하는 여인 유미연(이미연 분)을 만났고 그녀와 함께 회사를 떠날 생각에 심경의 변화가 생긴 것이라고 한다면 그녀를 만나기 전 훈을 살려둔 건 무엇으로 설명할 것인가? 단지 그가 똘똘하고 싹수가 보이는 아르바이트생이어서? 그러나 그런 식으로 설명하기엔 지금까지의 형도의 회사생활과는 너무 배치된다. 그런 일이 과거에도 있었다면 그는 결코 영업2부의 에이스로 통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가 회사를 떠나는 과정 또한 억지스럽다. 살인청부집단을 떠나는 주인공과 그의 행보를 가로막는 회사. 옛 동료들을 쓰러뜨려야만 하는 고통에 몸부림치는 주인공. 잘만 만든다면 멋진 그림이 나올 수도 있었겠지만 안타깝게도 <회사원>에게는 '해당사항 없음'이다. 형도가 회사를 떠나면서 벌이는 사고는 그야말로 유치했다.

그가 회사의 명령을 어기고 훈과 옛 상사를 살려두었음에도 회사는 그에게 어떤 처벌도 내리지 않았다. 그를 신임하는 사장은 그의 잘못을 한때의 실수로 치부하고 덮고 넘어가려고 했다. 이 대목에서 형도의 회사가 하는 일에 비해 그렇게까지 잔인하지 않음을 엿볼 수 있다. 다시 말하자면, 형도가 조용히 회사에서 빠져나올 생각이었다면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는 뜻이다.

이는 그의 과거 직장 선배(이경영 분)와의 대화에서도 잘 드러난다. 그 또한 과거 회사에서 일했던 살인청부업자였지만 지금은 한적한 바닷가에서 횟집을 운영하며 잘 살고 있다. "선배님도 회사 나오셨잖아요"라는 형도의 말에 "이놈아! 내가 너처럼 시끄럽게 나왔냐?"하며 호통 치는 그의 모습에서 조용하고 원만한 퇴사도 얼마든지 가능함이 드러난다.

그가 다니던 회사가 어떤 곳인지 누구보다 잘 아는 그였다면, 퇴직하고 모아둔 돈으로 미연과 카페를 운영하고자 마음먹던 순간 사장에게 보고하고 일을 끝맺었어야 했다. 그러나 형도는 그렇게 하지 않았고, 결국 옛 동료들을 모조리 죽여 없앴다. "이 회사에서 유일하게 신임한 게 너였다"는 사장의 면전에 "그만둘 거라고!" 소리치는 형도의 모습이란…. 이 얼마나 웃기는 짬뽕인가. 자신의 잘못과 실수, 미숙함은 조금도 생각하지 않고 오직 나만이 피해자라고 말하는 주인공을, 관객들은 공감할 수 있을까?

마지막으로 한마디 더. 형도와의 최후의 일전을 앞두고 왜 회사 측에서는 회사원들에게 방탄조끼를 지급하지 않았을까. 총을 나눠줄 때 방탄조끼도 같이 나눠줬더라면 형도 한 사람에게 그리 허무하게 당하진 않았을 텐데. 형도는 생각했던 걸 왜 회사는 생각하지 못했을까. <회사원>은 첫 장면부터 마지막 장면까지, 참 많이도 허술한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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