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드리면 당장이라도 욕이 날아올 기세였다. 현장은 긴장과 예민함이 흘렀고 배우들은 집중하고 있었다. 비장한 그들의 표정과 바삐 움직이는 스태프들의 발걸음 그 자체가 이미 영화의 한 장면이었다.
"비장하지. 난, 부침전 하나라도 비장하게 씹어 먹어" 스치듯 들리던 한 출연자의 목소리가 새삼 이들이 찍는 영화의 의미를 되새기게 했다.
영화 <26년> 촬영현장을 23일 '우연히' 찾았다. 23일 오전 서울 상암동, 잔뜩 습기를 머금은 하늘에 당장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았지만 그 전에 배우들 얼굴에서부터 온갖 감정이 쏟아져 내릴 것만 같았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26년>이 이렇게 현장에서 제작되고 있다는 사실에 새삼 공교로웠다.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제작비가 부족해서, 캐스팅이 난항이라서, 투자자가 없어서 촬영이 불투명하다는 말만 가득했기 때문이다.
'의지의 문제'도 아닌 이상, 벌써 영화가 40프로 이상 촬영하고 있다는 사실은 가히 기적일 수도 있겠다. 혹여나 안도는 금물이다. 이 영화의 원작자인 만화가 강풀은 "<26년>이 극장에 걸려 관객들과 만나기 전까진 안심할 수 없다"고 말할 정도였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