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드리면 당장이라도 욕이 날아올 기세였다. 현장은 긴장과 예민함이 흘렀고 배우들은 집중하고 있었다. 비장한 그들의 표정과 바삐 움직이는 스태프들의 발걸음 그 자체가 이미 영화의 한 장면이었다.

"비장하지. 난, 부침전 하나라도 비장하게 씹어 먹어" 스치듯 들리던 한 출연자의 목소리가 새삼 이들이 찍는 영화의 의미를 되새기게 했다.

영화 <26년> 촬영현장을 23일 '우연히' 찾았다. 23일 오전 서울 상암동, 잔뜩 습기를 머금은 하늘에 당장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았지만 그 전에 배우들 얼굴에서부터 온갖 감정이 쏟아져 내릴 것만 같았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26년>이 이렇게 현장에서 제작되고 있다는 사실에 새삼 공교로웠다.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제작비가 부족해서, 캐스팅이 난항이라서, 투자자가 없어서 촬영이 불투명하다는 말만 가득했기 때문이다.

'의지의 문제'도 아닌 이상, 벌써 영화가 40프로 이상 촬영하고 있다는 사실은 가히 기적일 수도 있겠다. 혹여나 안도는 금물이다. 이 영화의 원작자인 만화가 강풀은 "<26년>이 극장에 걸려 관객들과 만나기 전까진 안심할 수 없다"고 말할 정도였으니까. 

 "조명! 마이크! 이상 없어?" 13일 오전 영화 <26년>의 촬영팀이 촬영 준비에 한창이다.

"조명! 마이크! 이상 없어?" 13일 오전 영화 <26년>의 촬영팀이 촬영 준비에 한창이다. ⓒ 이선필


 버스 안에 타고 있던 출연 배우들이 휴식시간을 이용해 밖으로 나왔다. 이날 촬영엔 스태프, 보조 출연자들까지 포함해 120명 규모의 인원이 동원됐다.

버스 안에 타고 있던 출연 배우들이 휴식시간을 이용해 밖으로 나왔다. 이날 촬영엔 스태프, 보조 출연자들까지 포함해 120명 규모의 인원이 동원됐다. ⓒ 이선필


중요한 장면 촬영 현장엔 배우 진구가 있었다

이날 촬영 현장엔 배우 진구가 있었다. 1980년 5월 광주 민주화 항쟁 이후 세대의 이야기를 담은 <26년>에서 진구는 조직폭력배 곽진배 역을 맡았다.

물어보니 마침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 중 하나였다. 바로 곽진배의 조직 '수호파' 일원이 '그 사람'을 처단하기 위해 버스를 대절해 서울로 상경하는 순간이었던 것. 사격선수 심미진(한혜진 분), 경찰 권정혁(임슬옹 분), 사설 경호업체 실장(배수빈 분)과 함께 영화의 주요 축을 담당하는 인물이 바로 곽진배다.

휴식 시간을 이용해 바람을 쐬는 진구를 만났다. "역할이 크든, 작든 영화할 때 각오는 항상 똑같습니다"라며 시원하게 말하는 진구는 사실 이번 영화에서 가장 강하게 출연의지를 보인 배우 중 한 사람.

"이전엔 날씨가 너무 더웠고 작은 사고들도 있었어요. 저 역시 좀 다치기도 했는데 지금으로선 영화가 어떤 사고도 없이 무사히 끝나는 것밖에 바랄 게 없네요."

잠깐의 휴식시간 23일 촬영 분은 영화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였다. 조직폭력배 곽진배(진구 분)를 필두로 한 수호파 일원이 광주에서 버스를 대절해 '그 사람'을 처단하러 가는 장면. 대사도 배우들의 표정도 비장했다. 빨간 티셔츠를 입은 진구의 모습이 살짝 보인다.

▲ 잠깐의 휴식시간 23일 촬영 분은 영화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였다. 조직폭력배 곽진배(진구 분)를 필두로 한 수호파 일원이 광주에서 버스를 대절해 '그 사람'을 처단하러 가는 장면. 대사도 배우들의 표정도 비장했다. 빨간 티셔츠를 입은 진구의 모습이 살짝 보인다. ⓒ 이선필


 버스에 적힌 '광주여상'이란 글귀가 영화 속 등장인물들의 상황과 묘하게 어우러진다.

버스에 적힌 '광주여상'이란 글귀가 영화 속 등장인물들의 상황과 묘하게 어우러진다. ⓒ 이선필


뭐든 허투루 하겠는가. "이번 촬영이 바로 결전의 그날의 장면이에요"라는 그에게 혹시 소재의 민감성으로 겪은 일들은 없는지 물었다. 할 말은 많지만 아직은 촬영 중이라 조심스럽단다. 어느새 다가온 매니저가 어디서 왔는지 물었다. '도둑취재'가 들통 난 순간이었다.

오늘 촬영을 끝으로 이들은 지방 촬영에 들어간다. 극적인 장면이 앞으로 더 많이 남았단다. 볼거리도 이야기 거리도 많지만 지금은 잠시 집중할 때. 폭염과 장마를 이겨내고 한창 촬영에 임하는 <26년> 스태프, 배우들의 열정에 편안하게 집 안에서 29만원을 세고 있을 법한 '그 사람'이 순간 놀라지나 않을까. 한창 치던 천둥소리 때문이라고? 기억하자. 26년 아닌 32년 후 지금 이 영화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다음은 <오마이스타>의 창간 1주년 특별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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