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쓴 서석원 시민기자는 가수 이름을 외우며 한글을 깨쳤고 소년기 한 때 피아노를 쳤으나 장래 아들이 배를 곯을까 염려한 어머니의 결단으로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으며 지금은 평범한 전방위 리스너로서 만족하며 살고 있는 음악 애호가입니다. 현재 영화 관련 일을 하고 있으며 필생의 저작을 꿈꾸고 있습니다. [편집자말]
비스트 다섯 번째 미니앨범 'Midnight Sun' 재킷

▲ 비스트 다섯 번째 미니앨범 'Midnight Sun' 재킷 ⓒ 큐브엔터테인먼트


1980년대 청춘 스타 로브 로우와 데미 무어가 주연했던 <어젯밤에 생긴 일>이라는 영화가 있다. 제목 그대로 청춘 남녀의 뜨거운 풋사랑을 그린 영화다. 보통 청춘 남녀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들을 보면, 로맨스영화부터 공포영화에 이르기까지, 대부분 여름 밤을 배경으로 굵직한 사건들이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어쩌면 유휴 활동이 많아지는 여름이라는 계절과, 이성보다는 본능에 충실해지는 밤이라는 시간대가 만나 일으키는 '화학 반응'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유야 어찌 됐든 요즘 이름난 해변의 밤은, 무수한 청춘 영화 속 주인공들이 그랬떤 것처럼 이른바 '대한민국' 청춘 남녀들이 벌이는 '짝짓기'와 그와 관련한 사건사고들로 넘쳐난다.

요즘처럼 무덥고 긴 여름 밤에 부담 없이 듣고 즐길 수 있을 만한 음반이 출시됐다. 최근 남성 6인조 아이돌 그룹 비스트가 발표한 미니앨범 <미드나이트 선> (Midnight Sun) 얘기다.

이번 미니앨범은 비스트의 5번째 미니앨범으로 총 여섯 곡이 실렸다. 시원한 비트의 댄스곡과 감상적인 발라드, 감각적인 리듬 앤 블루스(R&B) 곡 등 다양한 분위기의 곡들을 들을 수 있는데, 이들의 골수 팬이든 그렇지 않든 상관없이 남녀노소 모두 들으면 좋아할 만한 대중적인 곡들로 구성돼 있다.

노래의 시원함과 감정의 애잔함이 만났다

'미드나이트(Midnight)'는 한때 짧고 굵게 사랑을 했지만 지금은 떠나고 없는 연인을 그리는 남자의 노래다. "눈감았다 뜨는 사이보다 더 빠르게 날 찾아왔다 떠나가 버린", "내가 그댈 많이 좋아하긴 했나 봐요" 등의 노랫말에는 짙은 아쉬움이 배어 있고, "그때 보낸 그 날이 더 계속 무뎌지겠죠 점점 잊혀지겠죠"라는 노랫말에서는 어찌할 수 없는 체념이 묻어난다.

사운드는 시원스러운 일렉트로닉 비트와 애잔한 멜로디의 조화가 좋다. 특히 "난난난 난난나"라는 노랫말로 이 곡의 시작과 끝을 책임지는 부분은 감성적인 보컬과 달콤한 멜로디, 기타 연주 등이 어우러져 낭만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귀에 쏙 들어오는 멜로디와 감탄사 '아'(a)의 사용이 인상적인 후렴부 역시 강한 매력을 발산한다.

곡 말미 "별 헤는 밤 계절이 지나 조금씩 달라져 가는 이 밤 하지만 난 여전히 난 잠 못 이룬 밤"을 노래한 윤두준의 감성적인 보컬도 좋다. 여름밤 한적한 해변에 앉아 들으면 좋을만한 곡이다.

'아름다운 밤이야'는 첫눈에 반한 여자를 꼬시기 위해 안달이 난 남자의 마음을 표현한 곡이다. 화자는 이제 막 사랑에 눈을 뜬 남자다. 그래서 아직 사랑을 잘 모른다. 노랫말에서는 터질 것 같은 사랑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마치 구름 위를 걷고 있는 듯 흥분한 화자의 마음 상태가 느껴진다.

중저음의 일렉트로닉 사운드 역시 잔뜩 달아오른 화자의 마음 상태를 닮았는데, 청량감이 느껴지는 보컬 톤이 전반적으로 후끈한 곡의 온도를 적정선에 묶어 두는 역할을 한다. 20대 남성 특유의 다듬어지지 않은 혈기가 잘 녹아 있으며 비스트의 야성미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곡이다.

'내가 아니야'는 바람을 피우다 걸려 놓고 이를 추궁하는 여자친구에게 거짓말을 늘어놓는 남자의 노래다. 화자는 "내가 아니야 정말 아니야" "원래 거짓말 잘 못해"라며 강한 부정을 하면서, "너 말고 딴 여잔 없"다는 '닳고 닳은' 레퍼토리로 이런 상황을 모면하려 든다. 하지만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이라고 했던가? 그의 말이 거짓말이라는 건 곡 말미 용준형의 랩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씨스타가 부른 '나혼자'의 묘한 사운드를 연상시키는 전주는 서글픈 감정을 불러일으키는데, 이런 느낌은 곡 전반에 걸쳐 계속 유지된다. 여기서 서글픔은 기회만 있으면 한눈을 판다는 남자라는 '동물'의 '본능' 그 자체에 대한 것일 수도 있고, "뒤로 넘어져도 코가 다치겠어"라는 노랫말처럼 여자친구에게 딱 걸려버린 그 '불운'한 상황에 대한 것일 수도 있다. 화자의 거짓말이 귀엽게 느껴지기도 하는데, 그건 속이 빤히 들여다보이는데도 대책 없이 밀어붙이는 뻔뻔함 때문이다.

'니가 보고 싶어지면'은 지금은 헤어진 옛 여자친구를 그리워하는 한 남자의 사연을 담은 발라드다. 노랫말은 옛 여자친구의 근황을 우연히 전해들은 화자가 그 날 밤 잠을 이루지 못하고 그녀와 함께 했던 기억을 떠올린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꿈결같은 아름다운 멜로디와 감성적인 보컬이 돋보이는 후렴부와 곡 전반에 흐르는 낭만적이고 따뜻한 기타 연주가 돋보이는 곡이다.

사랑은 영원하지 않아?...사랑에 대한 추억이 담겼다

이 노래를 들으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처럼 사랑 또한 영원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새삼 하게 된다. 화자의 행복했던 기억을 봐도 그렇고, 그녀의 행복을 기원하는 그의 마음을 봐도 그렇고, 도무지 두 사람이 헤어진 이유를 찾을 수 없으니 말이다. 이런 경우를 두고 사랑이 변하는 게 아니라 사람이 변하는 거라는 말들을 하기도 하지만, 필자의 소견은 이렇다. 영원한 사랑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모든 사랑이 영원한 것은 아니라는 것. 어쨌든 이 곡을 듣다 보면 마음이 따뜻해지는데, 괜시리 마음이 스산한 밤에 들으면 좋을 듯하다.

'니가 쉬는 날'은 여자친구에 대한 한 남자의 소유욕을 풍자한 곡이다. 화자는 여자친구가 쉬는 날이 없기를 바랄 만큼 그녀를 믿지 못한다. 외출을 한 그녀가 행여 다른 남자와 눈이라도 맞을까 두려운 것이다. 말로는 "누가 봐도 아름다운 너라서" "니가 자꾸 걱정돼서 아무것도 못"한다고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가 걱정하고 있는 대상은 누가 보더라도 그녀가 아닌 바로 자기 자신이다.

"왠지 모르게 불안해 짜증나게", "차라리 니가 바빴음 좋겠어", "널 주머니에 Cellphone처럼 가져 다니고 싶어" 등 자신감 없는 '못난' 남자의 속마음이 드러난 노랫말이 재미있다. 리드미컬한 사운드와 보컬 스타일 두루 '펑키'한 느낌이 강하다. 특히 일렉트로닉 사운드로 만들어낸 브라스 사운드와 추임새로 들어간 코러스가 눈길을 끈다. 전반적으로 희극적인 기운이 강한 곡으로 비스트의 색다른 매력이 돋보이는 곡이다.

'Dream Girl'은 치명적인 매력이 있는 여성에게 빠져들고 있는 한 남자에 관한 곡이다. 화자의 이야기를 정리해보면 그가 사랑하는 그녀는 이른바 '팜므파탈'이다. 그녀는 "꿀 같이 달콤하게" 화자를 홀렸고, 그를 "이리저리 잡고 흔"드는데, 화자는 "상처 날 걸 알면서도" 그녀와의 사랑을 "멈출 수가 없"다.

화자는 그녀를 가리켜 "my dream girl"이라고 칭하고 있는데, 그녀의 말초적인 매력에 미혹된 나머지 그녀가 화자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찬찬히 돌아볼 여유조차 없어 보인다. 이른바 위험한 사랑을 하고 있는 셈이다. R&B의 기운이 강한 사운드와 보컬 역시 달콤하기보다는 처연한 느낌이 강한데, 곡 중후반 이후 화자의 심리를 대변하는 기타 연주와 이에 대비되는 차가운 키보드 소리가 강한 여운을 남긴다.

한낮의 백일몽 같은 곡 'Dream girl'를 제외하면, 1번 트랙부터 5번 트랙까지 실린 곡들은 위에서 언급한 영화 제목처럼 '어젯밤에 생긴 일'이라는 카테고리로 묶을 수 있는 소재와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사실 밤은, 특히 여름 밤은 주로 뜨거운 청춘들이 활발하게 움직이는 시간대다. 게다가 이 시간대는 이성보다는 감성이 승한 시간이라, 흔히 청춘이라는 키워드로 떠올릴 수 있는 사건들이 무궁무진하게 일어난다.

'어젯밤', 어떤 이들은 사랑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옛 여자친구와의 추억을 떠올리며 감상에 젖었을 것이고('Midnight', '니가 보고 싶어지면'), 또 어떤 이들은 첫눈에 반한 여자를 꼬시려고 혈안이 됐을 것이다('아름다운 밤이야').

그런가 하면 어떤 남자는 여자친구의 눈을 피해 클럽에 가서 한눈을 팔다가 그녀에게 딱 들켰을 수도 있고('내가 아니야'), 또 어떤 남자는 일 때문에 발이 묶인 채 어디 내놔도 빠지지 않는 여자친구의 화려한 외출을 보며 행여 다른 남자와 눈이 맞을까 노심초사했을 수도 있다('니가 쉬는 날').

비스트의 이번 미니앨범은 이런 풍경들 혹은 자신이 경험했던 지난 추억들을 떠올리며 들으면 좋을 만한 곡들로 채워져 있다.

비스트는 이 노래들을 통해 때론 순정적이고, 때론 마초적이고, 또 때론 쪼잔하고, 때론 서툴고, 때론 곤란한 상황에서 면피하기 위해 빤한 거짓말까지 늘어놓는 평범한 20대 남자의 다양한 면면들을 보여준다. 완벽한 남자인 양 폼을 잡지 않는다는 얘기다.

청자는 그냥 부담 없이 이들이 이끄는 대로 즐기기만 하면 된다. 바야흐로 혈기왕성한 남자의 계절, 여름과 잘 어울리는 음반이다.

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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