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은교>에서 이적요 역의 배우 박해일이 20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 인터뷰를 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영화 <은교>에서 이적요 역의 배우 박해일이 20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 인터뷰를 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영화 <은교>가 '야하다, 그렇지 않다'의 논쟁은 어쩌면 스쳐 갈 가벼운 의문에 지나지 않아 보였다. 영화를 통해 온몸으로 노인이 되어야 했던, 그리고 17세 소녀여야 했던, 그 사이에서 열패감을 느끼는 청년이어야 했던 배우들의 면면을 접한다면 말이다.

"촬영하면서 배우들이 감정을 잡아가고, 서로의 관계가 한 꺼풀씩 쌓여갔을 때 다들 각자의 역할로 훅 들어가 있더라고요. 보이지 않는 감정의 흐름? 뭐랄까, 일상적으로 같은 자리에 있는데 서로 각자가 꿈틀거리는 느낌이었죠."

400페이지 분량의 소설에서 느껴지는 감흥을 고스란히 영화로 담아내는 건 오롯이 배우들의 몫이었을 터다. 그래서 박해일 역시 '이적요'라는 노시인에 더욱 깊숙히 들어가 있었다. 은교가 오랜만에 다시 찾아왔을 때, 그에게 '보고 싶었다'라는 말을 건넸을 때 박해일은 착잡한 감정과 찡함을 느끼고 있었다고 당시 심경을 말했다.

 영화 <은교>에서 이적요 역의 배우 박해일이 20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 인터뷰를 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영화 <은교>에서 이적요 역의 배우 박해일이 20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 인터뷰를 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은교>의 노 시인, 좀 답답한 구석 있다고 했더니...

영화의 언론 시사회가 마친 이후, 그리고 VIP 시사가 있었던 이후 주변의 반응을 물으니 지인들은 하나같이 그에게 고생했다는 말을 건넸단다. 영화 <인어공주>에서 함께 했던 배우 전도연은 "고생했는데 구멍도 보인다"며 솔직한 조언을 건네기도 했다고. 또 동창 중 박해일이 나오는 작품을 꿰고 있다는 한 친구는 "네가 노인네 감정을 어떻게 알아?"라며 툭 던지기도 했단다.

"가차 없어요(웃음). 그때 흥분하면 지는 거야! 그걸 받아들이는 자세가 되면 커가는 거죠(웃음). 그런 게 또 근데 제게 있어선 좋은 에너지를 줘요. 또 영화를 보고 관계자분들이 하는 조언도 제겐 도움이 되죠."

주변의 반응이 활발했던 만큼 이번 캐릭터는 박해일엔 큰 도전일 법했다. 30대와 70대. 순전히 물리적 나이 차이 때문만은 아니었다. 노 시인이 가진 문학적 감수성, 자신의 제자에 대해 느끼던 복잡한 심리를 표현해야 했고 결정적으로 17세 소녀에게 연정을 느끼는 감정을 적확하게 표출해야 했기 때문이다.

"감독님이 제안했을 때 이 분이 날 믿어주고 있다는 생각이 직감적으로 들었어요. 그런 신뢰가 있었고 저 또한 시나리오를 접했을 때 당황스러움을 빼면 해볼 만한 도전이란 생각이 들었죠. 그 이후엔 다른 생각이 안 들더라고요."

고민의 기간은 비슷했지만, 그 성격 자체는 달랐다고 한다. 여러 면으로 연기를 해본다지만 표현 못 하는 부분이 있을 수 있다면서 말이다. 그만큼 어려운 도전인 셈. 여기서 잠깐. 영화 <은교>에서 이적요는 도통 감정을 표출하지 않는 인물이었다. 제자에게 분노를 느끼거나 은교에게 애틋함을 품는 걸 보면 세상을 달관한 인물도 아닌데 결정적인 순간에 행동으로 옮기질 않는다.

"의도한 부분이 있어요. 매번 작품 할 때마다 톤을 잡는 게 참 예민한 부분 같아요. 절제라는 건 촬영 초반에 이렇게 저렇게 해보는 과정에서 나왔어요. 저로서 조금만 감정을 나가면 노인으로서 확 티가 나더라고요. 감독님과 얘기를 하면서 '최대한 절제하되 감정은 보이게 하자' 그걸 큰 뼈대로 삼았죠. 머리론 알았지만 표현하기 쉽진 않았어요.

영화를 통한 결실이라고 한다면 절제라는 부분에 대한 새로운 경험이 있던 거죠. 앞으로 작품을 해나갈 때도 괜찮은 지점에서 활용할 수 있는 부분이고요."

 영화 <은교>에서 이적요 역의 배우 박해일이 20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 인터뷰를 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영화 <은교>에서 이적요 역의 배우 박해일이 20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 인터뷰를 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박해일에 대한 타인의 시선, 그리고 박해일의 시선

영화 <은교>는 박해일에게 도전이자 절제에 대한 새로운 지점을 알게 한 작품이었다. 인터뷰 중에도 아직 이적요와 박해일의 중간 지점에 있는 상태라고 할 만큼 캐릭터에 대한 몰입도가 컸다. 그때 분출하지 못했던 감정이 자연인 박해일 마음에 잔재처럼 남아있었던 게다.

연기에 대한 그런 자세와 태도 때문일까. 배우 박해일과 자연인 박해일을 두고 주변 동료는 칭찬을 마다치 않았다. 그간의 인터뷰 자리에서 종종 그의 얘기가 나왔다는 사실을 박해일에게 털어놨다. 사실 박해일을 좀 안다는 지인들은 한결같이 그에 대해 긍정의 말을 내놓았던 터였다.

몇 가지 사례를 들면 모 배우는 "같이 연기하면서 그 충만한 에너지에 더 힘이 난다"고 말하기도 했고, 또 다른 배우는 "촬영도 그렇지만 또 사석에서 쓸데없는 얘기를 털어놓으며 고민을 나눌 수 있던 사람"이라 하기도 했다.   

"감사한 표현이죠. 배우마다 속성이 있잖아요. 전 어울려서 하는 걸 좋아합니다. 연기는 결국 호흡이고 주고받는 거잖아요. 기자 분도 그렇지만 소통이 되는, 기운이 맞는 친구가 있잖아요. 코드가 맞는다는 거. 그렇게 만나면 현장에서 설레고 현장을 즐길 수 있는 에너지 생기는 거 같아요. 나도 상대 배우에게 받기도 하고요.

그런 부분이 영화에서 도움이 됩니다. 물론 종종 연출자가 분위기를 살려야 하지만 또 워낙 그분들은 현장을 다 관리하니 바쁘잖아요. 배우가 알아서 그렇게 조절하면 감독도, 스태프도 에너지를 받고 더 좋아져요. 저도 선배로부터 배운 겁니다."

소통을 중요하게 여기는 만큼 박해일 스스로 타인의 시선과 생각에 대해 초연하면서도 주변에 대해 신경을 쓰고 영향을 받는 모습도 분명 있어 보였다.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모습은 어떨까. 그와 함께했던 배우들의 생각도 보태진 궁금증이었다.

"특수 분장팀이 아무리 멋지게 해줘도 주어진 여건에서 제가 느끼지 못한다면 굉장히 힘들 상황이었어요. 결과물에 대해 실망하지 않을 제 기준은 솔직함이었습니다. 최대한 그러려고 노력했어요. 감독님도 그랬고요. 촬영을 마치고 개봉을 기다리는 지금도 제가 누구에게든 솔직해지는 게 중요한 거 같아요.

시대적으로도 요즘 또 거짓말을 할 수 없는 세상이잖아요. 더 빨리 거짓말이 들통 나는 시대에요. 살다 보면 크고 작은 오해들도 많이 생기는데 전부를 다 말하지 못하는 상황이 생기더라도 솔직한 심정을 전하고 싶은 생각이 있습니다."

결국, 타인의 시선이라는 건 배우라는 운명을 지닌 자의 몫은 아닐까.

"지금은 영화를 개봉하고 칭찬이든 질타든 관객들의 생각을 알고 싶은 마음 뿐"이라며 박해일은 이적요 이후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영화 <은교>에서 이적요 역의 배우 박해일이 20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 인터뷰를 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영화 <은교>에서 이적요 역의 배우 박해일이 20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 인터뷰를 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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