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엠의 불꽃'은 정말 판타지에만 속하는 소설 속 이야기일 뿐일까. 지난 5일 국내 개봉한 이후 나름 순항을 하고 있는 영화 <헝거게임: 판엠의 불꽃>(이하 '헝거게임')을 두고 들었던 생각이다.

이미 원작인 세 권의 소설이 전 세계 곳곳에 2600만부가 넘게 팔리며 영화의 흥행도 어느 정도 보장됐던 상황. 그래서 동시에 <헝거게임>은 <해리포터> 시리즈나 <반지의 제왕> 시리즈를 능가하는 판타지 작품으로 꼽히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영화와 소설을 두고 단순히 판타지로만은 치부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 어떤 영화보다 현실적인 판타지라는 일각의 평이 나오는 이유도 같을 게다. 영화에서 묘사하고 있는 내용, 이른바 생존게임을 벌이는 10대 소년·소녀들의 처절함에서 단순히 영화로만 바라볼 수 없는 씁쓸함이 느껴지는 건 왜일까.

 영화 <헝거게임: 판엠의 불꽃>의 한 장면. 주인공 캣니스 에버딘(제니퍼 로렌스 분)과 피터 멜락(조쉬 허처슨 분)의 훈련 모습.

영화 <헝거게임: 판엠의 불꽃>의 한 장면. 주인공 캣니스 에버딘(제니퍼 로렌스 분)과 피터 멜락(조쉬 허처슨 분)의 훈련 모습. ⓒ 라이온스게이트


화려함으로 치장한 디스토피아, 독재라는 이름의 폐허

영화 속 '헝거게임'은 축제를 가장한 잔혹한 처벌 수단이다. 독재 국가 판엠에 대해 반기를 든 대가로 12개 구역의 소년, 소녀들이 매년 단 한사람의 생존자가 나올 때까지 서로를 죽여야 하는 게임을 말한다. 영화 역시 이 게임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엄밀히 말하면 판엠의 지배를 받는 12개 구역은 혁명이 실패한 소국가들이다. 각 구역들은 저마다의 공동체 사회를 구성하며 주어진 자연조건 안에서 최대한 자급자족한다. 주인공인 캣니스와 피터가 살던 12구역 역시 석탄이 풍부한 산악지역이다.

영화에서 드러나진 않지만 애초 각 구역들은 판엠이란 국가가 필요 없었다. 판엠은 헝거게임이 벌어지는 곳이자 각 구역을 착취하는 주체로서 존재할 뿐이다. 자본이 몰리고 사람들은 화려한 패션과 생활을 자랑한다. 반면 게임에 참가하는 이들은 자신의 출신 지역의 전통이라는 고유성을 지니고 있다.

살기 위해 미친 듯이 뛰어야 하고 서로를 죽여야 하는 운명을 지닌 이 청년들은 실은 판엠이 독재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고안한 시스템의 피해자들이다. 이 부분을 진지하게 바라보자. 스폰서들의 눈에 띄기 위해 화려하게 치장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인상 깊게 전해야 하는 모습에서 자본주의에 던져진 개인을 읽어낼 수 있을 법 하다.

앞서 운명이라 표현했지만 이 어린 청년들에게 사회에 대한 냉혹함을 알리고 동시에 거대 시스템에 대해 저항하지 못하게 하는 건 판엠이 지닌 시스템이다. 그렇기에 헝거게임을 위해 잔혹해져버린 이들을 탓할 수만은 없다. 단지 그들은 언제 누군가에 의해 죽을지 모른다는 두려움만 가득 안은 채 게임을 이어갈 뿐이다.

영화에서 아무도 판엠을 두고 독재국가라 부르지 않는다. 그럴 수가 없기 때문이다. 12개의 지역을 꼼짝 못하게 할 만큼의 공고한 착취 시스템을 판엠은 가지고 있다. 판엠 사람들은 그런 착취를 통해 얻어진 부를 마음껏 누리며 아무도 자신이 누리는 기득권에 대한 의문을 품고 있지 않아 보인다. 각 구역의 주민들 또한 '확률의 신'이 자신의 편이길 바라며 매년 헝거게임을 피하게 되기를 바라고 또 바랄 뿐이다.

 영화 <트루먼 쇼>의 한 장면.

영화 <트루먼 쇼>의 한 장면. ⓒ www.google.com


<트루먼 쇼>에는 없다...<헝거게임>엔 있다

국가 시스템, 혹은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헝거게임>과 영화 <트루먼 쇼>를 비교해 볼 수 있다. 짐 캐리 주연의 영화 <트루먼 쇼> 역시 거대 시스템 속에서 밖을 의식하지 못하고 사는 개인을 상징적으로 그렸기 때문이다.

두 작품의 주인공들은 자신의 정체성과 자신이 속한 시스템에 대한 의문을 품는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또한 두 영화 다 리얼 버라이어티 방송을 표방한 채 제3의 인물들에게 모든 게 노출돼 있다는 점도 그렇다.

하지만 다르다. <트루먼 쇼>는 보다 희망적이라고 할 법하다. 평범하고 유쾌한 샐러리맨이었던 트루먼이 종국에 가선 거대한 세트장을 발견하고 결국 그곳을 박차고 나간다는 설정은 개인의 각성과 함께 시스템의 통제를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을 주기 충분하다.

<헝거게임>은 그런 면에서 우울하다. <트루먼 쇼>와 가장 큰 차이라면 시스템을 움직이는 거대 권력자들의 실체가 분명히 드러나 있다는 점이다. 물론 <트루먼 쇼>에도 잠시 방송을 통제하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그 부분은 단순히 영화적인 설명 차원으로 들어간 것이었지 본격적으로 다뤄진 인물은 아니었다.

 영화 <헝거게임: 판엠의 불꽃>의 한 장면. 주인공 캣니스 에버딘(제니퍼 로렌스 분)이 동생 대신 헝거게임 자원자로 나서게 된 모습이다.

영화 <헝거게임: 판엠의 불꽃>의 한 장면. 주인공 캣니스 에버딘(제니퍼 로렌스 분)이 동생 대신 헝거게임 자원자로 나서게 된 모습이다. ⓒ 라이온스게이트


미안한 판타지...리얼하다

미안한 이야기지만 <헝거게임> 속 권력자는 두 주인공이 역경을 지혜롭게 헤쳐 나가는 것과 같이 함께 진화한다. 판엠의 수장 스노우 대통령은 두 주인공이 국가 시스템에 균열을 낼만한 인물임을 깨닫자 헝거게임을 고안한 장본인이자 자신의 심복을 죽이는 일(혹은 죽은 걸로 추정)도 서슴지 않는다. 

"난 약한 것들이 싫어"라며 자신이 다스리는 구역을 혐오하는 스노우 대통령은 겉보기엔 매우 인자한 인물이다. 대중들 앞에선 말을 아끼지만 그는 독재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모든 방법과 술수를 다른 사람을 통해 시키는 인물이다. 또한 대중들의 심리를 잘 알기에 당근과 채찍을 적절하게 사용할 수 있는 지혜까지 겸비한 인물이기도 하다.

대중들의 각성은 그래서 쉽게 진압당하고 만다. <헝거게임>의 두 주인공인 캣니스와 피터가 속편에선 또 어떤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 영화를 통해 기득권을 쥐고 있는 권력자의 속성도 함께 관찰한다면 또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현재 북미박스오피스 4주 연속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이 영화의 인기 비결이 단순히 미국 10대들에게 절대적 지지를 얻고 있는 조쉬 허처슨이나 제니퍼 로렌스 덕분만은 아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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