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간 뉴스앵커로 지내면서 눈은 자꾸 공중파 TV로 가 있는 거예요. 내가 왜 이렇게 진지한 얘기를 하고 있지? 제 자신의 모습에 너무 닭살이 돋고 가증스러운 거예요. 난 정말 진지한 사람이 아니거든요. 시사는 관심도 없어요. 저는 그냥 놀고 루시퍼 추는 게 좋거든요. 할 수 있는 일은 하고 있지만 정작 하고 싶은 일은 안 하고 있구나."

전현무 아나운서가 조선일보와 YTN을 거친 뒤 KBS에 입사해 지금에 이르렀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요. 심지어 지난 4일 KBS <남자의 자격> '남자 그리고 워너비' 편에서 그는 예능프로그램에서 활약할 수 있는 아나운서가 되기까지의 꿈을 솔직하게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화재 현장에 나가 기자 리포팅 대신 "야, 불 니가 그랬냐"라고 장난을 치고 싶었다던 전현무 아나운서에게 <남자의 자격>의 고정 멤버를 꿰차는 등 현재의 예능 출연은 천직일지도 모르겠네요.  이러한 감성을 '뼛속까지 예능 유전자!'로 포장해주는 예능 프로그램과 <전현무의 가요광장>이라는 자신의 이름을 내건 라디오 방송, 그리고 그를 '워너비'로 선망하는 언론사 지망 학생들이 존재하니 말이에요.

헌데 예능프로그램 안에서 각광받던 그의 '예능감'이 결국 현실에선 살짝 엇나가 버렸네요. 유례없는 MBC·KBS·YTN과 연합뉴스 노조의 파업 앞에서 '식스팩' 운운한 그의 예능 유전자가 발단이었지요. 공교롭게도 문제제기를 한 이는 방송에서 전 아나운서가 자주 "자신을 MBC 아나운서 최종 면접에서 떨어지게 만든 장본인"이라 너스레를 떨었던 MBC 오상진 아나운서였습니다.

 작년 12월 24일 저녁 서울 여의도 KBS홀에서 열린 2011 KBS연예대상에서 엄태웅과 함께 최고엔터테이너상을 공동수상한 <남자의 자격>의 전현무가 7단고음을 선보이며 수상을 자축하고 있다.

작년 12월 24일 저녁 서울 여의도 KBS홀에서 열린 2011 KBS연예대상에서 엄태웅과 함께 최고엔터테이너상을 공동수상한 <남자의 자격>의 전현무가 7단고음을 선보이며 수상을 자축하고 있다. ⓒ 이정민


식스팩 자랑한 전현무, 언론인 의무 강조한 오상진

"'남격' 멤버전원 식스팩 대공개, 78일간 싸움끝에 몸짱스타 변신. 과연 남격 복근왕은 누구?ㅋ 결과야 어떻든 제 상의탈의 장면 이번 주 방송되면 샤이니팬 여러분! 셜록 전현무 버전 화보 만들어 주실 거죠?♥ 느낌은 심하게."

발단은 전 아나운서가 16일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글입니다. 그리고 3사 파업 콘서트 '방송낙하산 퇴임 축하쇼'가 열린 이날, 오상진 아나운서는 전 아나운서를 겨냥한 듯 "KBS 박대기 기자는 공정방송을 위해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노래하다 성대 결절. 전현무 아나운서는 트윗에 본인 식스팩 자랑하고 낄낄 거리며 오락방송 예고. 노조원들은 오늘 우중에 파업콘서트 한다는데 미안하지도 않은가!"란 한 트위터 사용자의 글을 리트윗했지요.

다분히 전 아나운서를 의식한 것으로 비칠 수밖에 없는 시점이었습니다. 이날 파업콘서트에서는 전 아나운서의 선후배인 아나운서들을 비롯해 KBS 새노조가 동참, KBS 김인규 사장의 퇴진을 외치고 나섰기 때문이지요.

이후 오상진 아나운서는 17일 재차 "난 언론인이다. 방송인 이전에 언론인이다. 나 같은 별 볼일 없는 사람이 <일밤>과 <위탄>과 대형콘서트를 진행할 수 있었던 건, 선배들이 헌신해온 아나운서라는 네 글자 덕분이다. 그리고 난 내가 받았던 분에 넘치는 대접에 상응하는 언론인의 의무를 다 할 것이다"라고 썼습니다. 파업콘서트 이후 트위터 등 인터넷 상에서 인 전 아나운서에게 향한 질타에 더불어 자신의 의사표현을 확실히 한 셈이지요.

 <위대한 탄생2>의 진행을 맡다 MBC 노동조합의 파업과 함께 마이크를 내려 놓은 오상진 아나운서.

<위대한 탄생2>의 진행을 맡다 MBC 노동조합의 파업과 함께 마이크를 내려 놓은 오상진 아나운서. ⓒ 이정민


전현무 아나운서 "웃음도 좋지만 상황 포괄적으로 보겠다"

"생각이 짧았습니다. 제 방송에 늘 충실해야 한다는 소신에 프로그램 홍보 글을 남긴 건데 여러분들이 지적해 주신대로 시기적으로 매우 부적절했습니다. 지금도 많은 고통을 겪고 계신 여러 동료선후배여러분께 송구스럽습니다. 웃음도 좋지만 상황을 포괄적으로 보고 그에 맞게 행동하는 깊이도 함께 키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18일 오전, 논란이 일자 전 아나운서가 진화에 나섰습니다. 본인 입장에서는 '오비이락'(烏飛梨落)일 수도 있는 상황에 대해 발 빠르게 사과와 해명에 나선 셈이지요. 앞으로 전 아나운서는 '오얏나무 아래서 갓끈 고쳐 매지 말라'는 속담을 새길지도 모르겠네요.

오 아나운서는 자신이 방송인이기 이전에 언론인임을 강조했습니다. 때로 예능프로그램에 나가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주기도 하지만 뉴스를 진행하고 또 새로운 소식을 시청자들에게 전달하는 본연의 임무를 강조한 것이죠. 방송 3사의 아나운서들이 파업을 하는 이유도 그 '언로'가 막혀있기 때문이겠지요. 오상진 아나운서의 발언을 두고 한 트위터리안은 친절히도 이렇게 해석해주기도 했다지요.

"오상진 아나의 뜻은 이런 게 아닐까 합니다. '그래, 생각이 달라 파업에 동참 안 할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추위에 떨며 투쟁하고 있는 동료들도 있는데 식스팩 운운하며 희희낙락하는 정말 아니지 않은가? 동료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는 갖추기 바란다'"

 15일 오후 서울시청 광장에서 열린 'MBC, KBS, YTN, 연합뉴스 언론4사 파업 사랑의 스튜디오' 행사에서 문지애,김나진 아나운서와 조합원들이 동료들의 커플 선택을 지켜보며 환하게 웃고 있다.

15일 오후 서울시청 광장에서 열린 'MBC, KBS, YTN, 연합뉴스 언론4사 파업 사랑의 스튜디오' 행사에서 문지애,김나진 아나운서와 조합원들이 동료들의 커플 선택을 지켜보며 환하게 웃고 있다. ⓒ 유성호


손석희 교수의 "지나친 망가짐은 좋지 않다"는 충고 되새기길

새노조의 파업에 동참하느냐 안 하느냐의 문제는 지극히 개인적인 영역에 해당할 것 입니다. 또 예능·방송인과 언론인 중 어떤 정체성을 선택하느냐 또한 전 아나운서의 몫이겠지요. 하지만 언로가 막혀 <무한도전>과 <해를 품은 달>이란 예능과 드라마의 영역에까지 차질을 빚은 이웃 MBC의 상황에 눈감은 듯한 처사를 보이는 것은 방송인으로서도 그리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더욱이 매일의 뉴스와 청취자들과의 교감을 중시하는 라디오 DJ라면 더더욱 말이지요.

전 아나운서에게 언론계 선배인 손석희 교수의 인터뷰를 돌려드리는 건 그래서일지 모르겠습니다.

"꼭 요즘만 그런 건 아니에요. 과거에도 (아나운서들이) 상업화되기는 마찬가지였어요. 제가 국장시절에 막은 것은, 아나운서들이 일회용으로 팔리는 걸 막았어요. 어차피 방송에 나오는 사람들은 이미지화 되고 그것까지 반대할 수는 없고요. 어느 쪽의 이미지인가가 중요한데, 굳이 나누자면, 오락이든 교양이든 지켜야할 이미지가 있는 거죠. 근데 일회용으로 나가서 망가지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왜냐하면 그 이미지가 흐트러지니까요(중략). 

보직 아나운서를 전문가라고 이야기는 못해도 전문가 이미지는 가져야 밑천이 될 수 있고, 또 조직 집단으로 봤을 때도 그게 좋고. 그래서 전문화적 이미지를 갖기 위해서는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될 것이 있는데, 지나친 망가짐은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딱 한번이면 모르겠는데, 명절 때마다 나오는 건, 개인의 이미지 구축에도 도움이 안 되고. 집단의 도움이 안 되니까… 그 대신 어떤 한 분야 오락 프로에 나가서 자기 몫을 잘 하고, 이 사람은 정말 굳이 문제없다 그러면 좋고, 저를 포함해서 말리지 않아요." (2007년 발간된 민음사 문화교양지 <소문> 1호 인터뷰 중에서)

전현무 오상진 방송3사파업 MBC파업 손석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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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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