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수목드라마 <해를 품은 달>에서 이훤 어린시절 역의 배우 여진구가 2일 오후 서울 논현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 인터뷰를 하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MBC수목드라마 <해를 품은 달>에서 어린시절 이훤 역을 맡은 배우 여진구가 2일 오후 서울 논현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 인터뷰를 하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2005년. 영화 <새드무비>를 봤다. 일에 치여 바쁜 엄마가 병원에 입원하며 자신과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되자 "엄마가 매일 아팠으면 좋겠어"라고 천진하게 말하다가, 엄마의 병을 알고는 빗속에서 엉엉 울던 꼬마 아이의 모습, 그 장면이 꽤 오랫동안 마음에 남았던 기억이 난다.

2012년. MBC <해를 품은 달>을 봤다. 어린 훤을 연기한 '배우'는 열여섯이라는 나이가 무색할 만큼 여심을 갖고 놀았다. 그가 "잊으려 하였으나, 잊지 못하였다"며 싱긋 웃을 때, 그리고 "나의 빈이다!"를 외치며 오열할 때 마음이 철렁 내려앉는 듯한 느낌을 받은 이들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놀랍게도 이 두 역할은 모두 배우 여진구의 몫이었다. 그는 연기를 배우겠다고 마음먹은 지 두 달만에 <새드무비>에 캐스팅됐다. 당시 여진구의 나이 여덟 살. 그리고 <해를 품은 달>은 8년의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그에게 '소년'이 아닌 '청년'의 잔상을 남겼다.

"3회 예고편 나가고...사실 불안했다"

 MBC수목드라마 <해를 품은 달>에서 이훤 어린시절 역의 배우 여진구가 2일 오후 서울 논현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 인터뷰를 하기에 앞서 포즈를 취하며 웃고 있다.

▲ 배우 여진구 공교롭게도 왕세자(<해를 품은 달>)로 분하기 전, 그는 허름한 넝마를 대강 걸쳐입어야만 했던 두 작품에 출연했다.(<무사 백동수>, <뿌리깊은 나무>). 그리고 그 작품들에서는 <해를 품은 달>과는 달리 몸을 쓰는 액션신이 많았다. "액션신 대 감정신이요? 둘다 어려운데, 굳이 비교를 하자면 위험한 건 액션신이고 불안한 건 감정신이에요." ⓒ 이정민


유난히 추웠던 2월의 어느 날, 여진구를 만났다. 개학이 며칠 남지 않았다던 그는 "드라마가 잘 되어 기분이 좋겠다"는 말에 "얼떨떨했다"는 소감부터 전했다.

"저도 그렇게 잘 나올 줄 몰랐어요. 정은궐 작가님의 책을 좋아하는 분들이 많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일단 '마니아층을 확보했구나' 하는 생각은 했죠. 그리고 진수완 작가님도 워낙 대본을 잘 쓰시는 걸로 유명하니까, '어떻게 10%는 넘겠구나'라고 생각했어요.

첫 방송 전까진 스태프 형들이랑 일부러 희망 시청률을 부풀려서 이야기하곤 했어요. 불안하니까, 이야기했던 만큼 시청률이 안 나오면 '것 봐, 그건 무리였다니까'고 하려 했던 거죠. 그런데 첫 방송 시청률이 19%라는 이야길 듣고 '조작이 아닌가' 싶었어요."

매회 자체최고시청률을 경신하는 드라마뿐만이 아니라, 자신에게 쏟아지는 관심 역시 여진구에게는 낯선 것이었다. 여진구는 "1·2화에서는 다른 형들이 멋있어서 주목을 받았고, 사실 제가 거기 묻어갈 수 있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며 "그런데 3회 예고편이 나가고 저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는 걸 보면서 불안하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이 나라 조선의 왕세자, 이훤이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 예고편 한 신만으로 굉장히 기대를 하시더라고요. 그러니 불안해졌어요. '전체 촬영분 중에 그 장면만 괜찮았으면 어쩌지?' 그런 불안이었죠."

"다른 사람이 된다는 것, 항상 헛갈리고 어렵다"

 MBC수목드라마 <해를 품은 달>에서 이훤 어린시절 역의 배우 여진구가 2일 오후 서울 논현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 인터뷰를 하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배우 여진구 인터뷰 장소에 동행한 그의 어머니는 "어렸을 때 함께 다니면 사람들이 '탤런트냐', '모델이냐'고 물어오곤 했다"며 "그때까지도 별 생각이 없었다가, 남자아이면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자신감을 키워주고자 연기학원에 보내게 됐다"고 전했다. 그리고 다행히 여진구 스스로 연기에 흥미를 느끼면서 '연기자'가 되겠다는 꿈을 키우게 됐다고. 그러나 첫 영화에 캐스팅된 후 더이상 연기학원에는 다니지 않았다고 했다. "틀에 박힌 연기를 하게 될 까봐"가 그의 어머니가 전한 이유였다. ⓒ 이정민


다행히도 여진구의 불안은 기우에 그쳤다. 회를 거듭할수록 그는 한 번 빠져들면 헤어나올 수 없다는'마성의 남자'가 되어갔다. 꽃잎이 휘날리며 시작된 훤과 연우(김유정 분)의 사랑도 이와 함께 차곡차곡 쌓여갔다. 아직 첫사랑을 경험해보지 못했다던 그가 어떻게 이런 연기를 할 수 있었을까?

"다른 사람이 된다는 것, 어려워요. 항상 헷갈리고요. 또 두려울 때도 있어요. 답답한데 누구에게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잖아요. 그런데 막상 연기하다 보면 '드디어 알겠다!'라면서 속이 시원할 때도 있어요. 가려웠던 곳을 시원하게 긁은 것처럼요. (웃음)

<해를 품은 달>에선 가장 어려웠던 게 나례진연에서 연우를 끌고 가 고백하는 장면이었어요. 찍기 전 30분 동안 감독님, 유정이와 함께 의논했을 정도였어요. 그래도 쉽진 않았는데, 생각보다 오케이 사인이 빨리 났죠."

세자빈으로 간택된 연우와 나란히 앉아 인형극을 보던 행복한 순간도 잠시, 이들의 사랑은 비극적 파국을 맞았다. 첫사랑을 잃는 슬픔이 왈칵 터져 나오는 순간이었다. 여진구는 당시를 회상하며 "촬영 당일부터 그 다음날 아침까지 감정이 남아 있었다"고 말했다.

"오열하는 신에서요, 그때 감독님께서 오케이 사인을 주셨는데도, 그 자리에 있던 모든 배우들이 한동안 하늘이나 땅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어요. 저도 하루 종일 왠지 모를 먹먹함이 남더라고요."

8년차 배우의 '소신'..."좋은 배우란? 일단 연기를 좋아해야"

 MBC수목드라마 <해를 품은 달>에서 이훤 어린시절 역의 배우 여진구가 2일 오후 서울 논현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 인터뷰를 하며 뇌구조테스트를 작성한 뒤 들어보이고 있다.

▲ 배우 여진구 MBC <해를 품은 달>에서, 그가 연기한 '어린 이훤'은 좋아하는 연우(김유정 분)의 뇌구조를 분석하고는 자신의 '미미한 존재감'에 성을 낸다. 그럼, 그의 실제 '뇌구조'는 어떨까? 인터뷰는 여진구가 직접 채워넣은 뇌구조를 바탕으로 진행됐다. ⓒ 이정민


2005년 데뷔한 여진구는 어느덧 8년 차 배우가 됐다. "인생의 반을 연기로 보낸 셈"이라는 농을 던지자 여진구는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아, 정말 그렇네요"라며 환하게 웃는다.  그에게 '좋은 배우'란 무엇인지 물었다. 오랜 시간을 연기해 온 만큼, 자신만의 철학이 있을 것이란 생각에서였다.

"'좋은 배우'라…. 일단 연기를 좋아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만 연기가 재밌을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연기를 무서워하거나, 어려워하거나, 혹은 싫어하면 배우가 되긴 어렵지 않을까요. 촬영장에 있는 게 힘들 수도 있고요.

친구들이 가끔씩 '나 연기할까'라고 물어오는 때가 있어요. 그럼 전 연기를 좋아하는지 물어요. '좋아한다'고 하면 괜찮지만 '그냥 하고 싶어'라고 답하면 냉정하게 하지 말라고 자르는 스타일이에요. 연기자, 연예인이라고 하면 겉으로 드러나는 화려한 면만 보더라고요. 그런데 연예인이라는 점 때문에 불편할 때도 있거든요. 때론 외로울 수도 있고요."

이 말을 마치고 여진구는 "저는 그래도 연기가 좋아요"라며 씩 웃었다. 그제야 그가 다시 보였다. 최대한 새로운 연기에 도전할 수 있는 작품을 선택하는, 좋아하는 연기를 할 수 있는 현장이 늘 즐거운, 하지만 자신이 맡은 역할을 제대로 표현하고 있는지 항상 초조해하는 배우.

마지막으로 그는 "유명해지고 유명해지지 않고를 떠나서, '저 사람은 연기할 때 항상 그 역할이 되는 사람이야'라는 평을 듣는 배우이고 싶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큰 눈망울의 귀여웠던 아이는 이제 청년이 되어 우리 앞에 섰다. '누구 아역'은 더 이상 그에게 어울리는 수식어가 아니다. 이제 '진짜배기'로 성장한 그가 '오롯이' 여진구라는 그의 이름 석 자로 보여줄 그 다음을 기대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MBC수목드라마 <해를 품은 달>에서 이훤 어린시절 역의 배우 여진구가 2일 오후 서울 논현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 인터뷰를 하기에 앞서 포즈를 취하며 미소짓고 있다.

▲ 배우 여진구 그는 <해를 품은 달>을 촬영하는 현장 분위기가 참 좋았다며 다음과 같은 일화를 전하기도 했다. "수현 형(김수현, 성인 이훤 역)이 오면, 수현 형의 에너지와 제 에너지가 만나면서 그 여파가 커졌어요(웃음). 형이 연극을 해서 소리가 우렁차거든요. 게다가 목소리가 낮잖아요. 형이 양팔을 벌린 채 그 목소리로 '에이~!'하고 인사하면, 전 달려가서 안기고, 그랬어요(웃음)."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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