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가 기획 아이템을 내라고 성화다. 하지만 전 언론사에 있을 때 이미 기획기사 수백 개를 썼었다. 더 이상 이리저리 묶을 것도 없다. 더 이상 식상한 아이템으로 기획기사 쓰고 싶지 않다. 그런데 국장님이 내놓으란다. 와, '죽것다'. 다시 머리를 쥐어 짜낸 결과,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예 내가 영화를 만들어보자. 내가 영화를 만들며 느낀 것을 써 보자. 독자님들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편집자말] |
▲ N사의 B기자 지난해부터 나의 단편영화만들기를 옆에서 늘 지켜봤던 N사의 B기자. ⓒ 조경이
[첫 번째 이야기] 남의 영화 잘 '깠던' 기자...감독하려고요!주변에 대 놓고 모니터링을 돌린 결과 지하철의 삭막한 풍경을 담은 <참, 따뜻한 세상>은 모두가 반대를 했다. 그렇게 모두 한 마음으로 반대를 할 수가 없다.
지하철 안에서 아이폰만 들여다보는 현대인들의 삭막한 풍경을 담은 단편영화 시나리오였는데, 뉴스프로그램 어디서인가 많이 본 보도 영상물 같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얼굴이 화끈거린다. <참, 따뜻한 세상>은 자체적으로 킬.
두 편의 작품이 남았다. <고소영의 부츠>와 <그녀를 만나기 10분전>. 영상적인 부분에서는 대부분 <고소영의 부츠>에 손을 들어줬지만, 현실적으로 내가 잘 만들 수 있는 부분에 있어서는 <그녀를 만나기 10분전>이 더 낫다는 의견이 지배적.
같은 회사에 다니는 후배 기자는 <그녀를 만나기 10분전>이 <고소영의 부츠>보다 더 낫다고 한 표를 던졌다. 하지만 문제는 담아내는 톤의 시각 차. 그녀는 여배우와 여기자의 추악한 면을 더 적나라하게, 그녀식 표현대로 "아예 병맛 같이" 만드는 게 더 재미있고 임팩트가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재미없다고?...너희들이 뭘 알아?"...방문 쾅!
▲ 떡볶이와 납작만두 후배 이현진 기자와 <그녀를 만나기 10분전>의 이야기를 하면서 나눠 먹은 떡볶이와 납작만두. ⓒ 조경이
그녀와 상암에서 떡볶이와 납작 만두를 나눠 씹어 먹으며(하물며 이날 내가 자문을 구하는데 후배 기자가 샀다. 미안하다. 담에 내가 비싼 거 살게), <그녀를 만나기 10분전>을 두고 여러 가지 논의가 이어졌다.
제목의 임팩트가 없다는 말도 들었다. 그래서 나온 후보군들이 <매니저의 선물> <인터뷰> 등등. 그래서 후배 기자에게 각색과 카피, 제목 정하기 등의 임무를 맡겼다. 탁월한 신공을 자랑하는 그녀의 글발이 아마도 시나리오를 더 생생하게 살려줄 거라고 믿는다.
이후에 같은 핏줄을 지닌 두 백수 남동생에게 <고소영의 부츠>와 <그녀를 만나기 10분전>을 보여줬다. 두 사람은 의외의 대답을 내놓았다. 여배우와 여기자의 이야기를 담은 <그녀를 만나기 10분전>은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한 스토리라인으로 재미가 없다는 것. (이말 가장 가슴 아프다)
그런데 <고소영의 부츠>는 불륜의 코드로 장면이 자연스럽게 연상이 되고 이게 더 재미있다는 것이다. "너희들이 뭘 알아"하고 동생들 방문을 닫고 나왔는데,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은 더해갔다.
왔다리 갔다리, 갈팡질팡, 그런데 J선배 말씀!
▲ 12년 기자 경력의 소유자. J뉴스 J기자. "역시...대박, 선배" ⓒ 조경이
결국 선택은 나의 몫이다.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은 "넌 어떤 걸 하고 싶은데?"였다. "잘 모르겠어" 그랬더니..그렇다. 난 우유부단한 사람이다. 태어나서 뭔가 화끈하게 결정을 했던 적이 없었다. 고등학교 때, 처음에는 문과를 선택했다가 후에 이과로 바꿨고, 대학은 이공대를 갔다가 대학원은 인문사회학 계열을 선택했다. '왔다리 갔다리'가 내 천성인 것 같다.
각설하고...다시 선택은 나의 몫..고민은 거듭됐다. 그러다가 결정적으로 '스폰지' 같은 나의 귀를 사로잡았던 조언을 한 이가 있으니, 그녀는 바로 기자 경력 12년 내공의 소유자, J뉴스에 J선배다. 그는 이런 조언을 했다.
"둘 다 괜찮은데, 아무래도 네가 '디테일'하게 잘 표현할 수 있는 것은 네가 몸담고 있는 현장에서의 일을 담은 <그녀를 만나기 10분전>인 것 같아. 그리고 보통의 '입봉'감독들의 첫 작품은 보통 자신이 직접 체험했던 일을 소재로 해서 영화로 만들지 않니."캬∼ 그렇다. 왜 난 이렇게 일목요연하게 나 스스로를 설득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했을까. "역시...대박..선배.." 하면서 박수를 보냈다.
그래서 모두의 조언을 다 제치고 이 선배의 코멘트를 '스폰지'처럼 흡수해서 <그녀를 만나기 10분전>을 하기로 선택했다. 이제 시나리오를 고치고, 고치고 또 고치면서 장면의 임팩트를 부여해야한다.
현진아. 기다려라. 곧 완성되면 네가 각색해야해. 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