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꼼수다> '깔때기' 정봉주 17대 의원이 26일 1시 구속 수감을 앞두고 검찰에 출두했다. 지난 22일 대법원이 'BBK 주가 조작' 사건과 관련, 허위사실유포 등의 혐의로 징역 1년형을 확정했고, 이에 반발하는 3000여 명의 인파가 서초동 서울검찰청사에 모여들었다. 그들 중 누구는 이렇게 얘기하지 않았을까?

"이게 재판입니까? 개판이지요"
(영화 <부러진 화살> 속 대사 중)

대법원의 상고 기각에 일각에서는 사법부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드높다. 'BBK 의혹'의 구체적인 정황에 대한 명예훼손 여부를 두고 법리적 해석이야 갈라질 수 있겠지만, <나는 꼼수다>의 영향력과 비례한 판결 시기와 형평성을 놓고 '정치 판결'이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는 것. 하필 이런 시기에, "사법부가 법을 안 지켜서 문제"라며 사법부에 정면으로 비수를 들이댄 영화 한 편이 2012년 1월 19일 개봉을 준비하고 있다.

한 전직 교수(안성기)가 판결에 불만을 품고 현직부장판사에게 석궁을 들이댔다. 이 사건은 '법치주의에 대한 테러'로 규정, 재판부로부터 신속하고 엄중한 처벌을 받게 된다. 하지만 소속된 대학의 본고사 출시 문제의 오류를 지적했던 정당함과 실제 화살이 쏜 사실이 없다는 억울함을 품은 이 교수는 항소에 항소를 거듭하면서 사법부에 정면으로 대항하기에 이른다.

 지난 10월 부산국제영화제 당시, 영화 상영 후 관객들과 대화 시간을 갖고 있는 <부러진 화살> 감독과 배우들. 왼쪽부터 배우 안성기, 정지영 감독, 배우 김지호, 박원상, 문성근

지난 10월 부산국제영화제 당시, 영화 상영 후 관객들과 대화 시간을 갖고 있는 <부러진 화살> 감독과 배우들. 왼쪽부터 배우 안성기, 정지영 감독, 배우 김지호, 박원상, 문성근 ⓒ 부산국제영화제


'석궁테러'라는 실화, 사법부를 겨냥하는 영화로 태어나다

'석궁테러'란 네글자를 기억하는 이, 적지 않을 것이다. 2007년 1월 15일 김명호 전 성균관대 교수가 일으킨 이 '석궁테러'는 전례가 없는 희귀한 사건이었음은 물론, 일부 언론에서 김명호 교수의 억울한 사연을 기사화하면서 화제가 됐다. 그리고 이후 '대한민국 사법부를 향해 석궁을 쏘다'란 부제가 붙은 르포집 <부러진 화살>이 출판되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세상만사가 비슷하듯 '석궁테러' 사건은 세인들의 기억에서 잊혀졌다.

이 실화를 되살린 건 <남부군> <하얀 전쟁>을 통해 80년대 이후 리얼리즘 영화의 명맥을 이어갔던 정지영 감독이다. "주변에서 영화의 개봉 여부를 묻는 것 자체가 우리 사회의 표현의 자유를 억압당하고 있음을 반증 한다"고 말하는 정지영 감독. 그러나 그가 사법부에 전하는 메시지는 "이 정도의 이야기가 지금 대한민국에서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는 게 아프고 슬펐다"고 한다. 도대체 영화가 어떻길래?

"(사법부까지) 법을 안 지켜서 문제가 되는 거지, 법은 아름다운 겁니다"라고 말하는 김경호 교수의 외로운 싸움에 함께 하는 건, 술도, 투쟁도, 사람도 좋아하는 열혈 노동변호사 박준(박원상)이다. <부러진 화살>은 이 합리적 보수주의자와 '꼴통 좌빨' 변호사가 거대한 카르텔을 형성한 사법부와 맞서 나가는 싸움을 정면으로 응시한다.

실화와 르포집, 그리고 절반의 영화적 상상력을 보탠 <부러진 화살>은 김 교수가 석궁을 들이댔던 판사가 문제가 된 학교 출신이었으며, 그 사건이후 사법부가 똘똘 뭉쳐 괘씸죄를 적용한 부당한 재판 과정을 느슨한 법정극 형식으로 풀어 나간다. 이미 세상에 알려진 실화인 만큼 스릴러로서의 긴장감을 조일 필요는 없는 것이다.

대신 꽤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법정신을 배치함으로서 '석궁테러' 사건을 둘러싼 검찰의 은폐와 무리한 구형, 그리고 판사들의 자기 식구 감싸기를 고발하는데 주력한다. 그리고 재판 과정에서 당당하게 판사를 꾸짖고 정의와 진실에 대해 항변하는 김 교수의 활약은 묘한 공분과 카타르시스를 동시에 선사한다. 그런 김 교수에 대한 의심에서 공감을 보이며 함께 싸우는 박 변호사와의 웃음 섞인 호흡은 사건을 따라가는 관객의 눈높이에 맞췄다.

 영화 <부러진 화살>의 한 장면

영화 <부러진 화살>의 한 장면 ⓒ 아우라픽쳐스


안성기와 박원상의 넉넉한 연기, 영화의 여유를 닮았네 

지난 10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은 <부러진 화살>은 사회적 문제제기를 한다는 점에서 '제2의 <도가니>'란 평가가 종종 들려오기도 한다. 하지만 사건에 대한 공분과 사회적 환기 기능이 컸던 <도가니> 보다는 좀 더 넉넉한 호흡과 지적인 비판으로 기울어져 있는 게 사실이다. 굳이 적확한 표현을 찾자면, 지적인 법정극과 유머러스한 사회파 드라마의 적절한 조화라고 할까.

결국 <부러진 화살>은 시대와 조응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난 작품이다. 스스로의 권력을 맹신하는 사법부에 대한 비판은 물론이다. 더불어 박 변호사의 친구 사회부 장기자(김지호)를 통해서는 '윗선'에 대해 좌절할 수밖에 없는 언론의 한계나 노동자 집회에서 홀로 살아남아야했던 박 변호사의 아픔까지도 아우르는 넓은 시선을 견지하고 있다.

여기에 박 변호사가 보는 신문에 박아 넣은 '이명박, BBK 문제되면, 대통령직 걸겠다'는 헤드라인이나, 박근혜 의원 커터 상해 사건이 언급되는 것은 정지영 감독이 관객과 호흡하고픈 동시대성의 발로랄까. 물론 영화의 마지막, 이송된 김교수가 만나는 교도관 '임영락' '안청수'라는 이름은 감독의 애교라고 봐주자.

한편 사법부의 '불편한 진실'에 맞서는 김 교수 역의 안성기는 <부러진 화살>의 일등 공신이다. 이미 <남부군> <하얀전쟁>에서 정 감독의 페르소나였던 안성기는 다소 부담스러운 시나리오에 그 이름값만으로 여타 배우, 스탭들을 불러 모았다는 후문과 함께 예의 그 사람 좋은 미소를 잠시 걷은 채 원칙을 중시하는 합리적 보수주의자를 설득력 있게 연기한다. 극의 여유와 웃음, 인간미를 담당하는 박원상 또한 안성기와 <라디오스타>를 연상시키는 호흡을 보여준다.

일각에서 제기하고 있는 사법부에 대한 비판이 <부러진 화살>에 대한 열기로 이어질지는 물론 미지수다. 그러나 단언할 수 있는 건 이 영화가 사법부의 권력화에 제동을 거는 첫 번째 영화가 될 거란 사실이다. 1년 뒤, 감옥을 나올 정봉주 전 의원이 <부러진 화살>을 본다면 과연 어떤 상념에 젖게 될까.

부러진화살 안성기 박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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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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