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랄이라, 참으로 적절한 말이 아니더냐. 그래, 그만하자 지랄."
"하례는 지랄, 세자에게 위임했거늘 뭘 자꾸 하라는 건지, 젠장."
"우라질. 우라질이 맞느냐?"

 SBS<뿌리 깊은 나무> 화면 갈무리

SBS<뿌리 깊은 나무> 화면 갈무리 ⓒ SBS


"가카(각하)는 절대 그러실 분이 아니"라는 <나꼼수(나는 꼼수다)>' 김어준에게 "씨바"가 있다면, <뿌리깊은 나무> 세종에겐 "지랄" "젠장" "우라질" 3종 세트가 있다. 정치권을 씹으며 거침없는 입담을 자랑하는 김어준이 <닥치고 정치>를 펴냈다면, 권력에 눈먼 안하무인 조정 관료들과 경연하며 '닥치고 정치'를 요구하던 세종은 훈민정음을 창제했다.

다듬지 않은 수염, 지위와 상황을 가리지 않는 직설, 목청 울릴 듯 호방한 웃음까지. 요즘 뜨고 있는 이 두 남자, 닮아도 너무 닮았다. 다만 전지적 가카를 향한 주체할 길 없는 애정을 닮은꼴 비속어로 무한 쏟아내는 그 한 사람이 인터넷 신문매체 '총수'에 불과(?)하다면, 다른 하나는 한국 역사상 가장 위대하다고 손꼽히는 '임금' 그것도 '대왕'이라는 다소 격한 지위 차이만 있을 뿐이다.

<뿌리 깊은 나무>는 되고 <나꼼수>는 안 되는...

 김어준의 책<닥치고 정치>와 SBS<뿌리 깊은 나무> 화면 갈무리

김어준의 책<닥치고 정치>와 SBS<뿌리 깊은 나무> 화면 갈무리 ⓒ SBS


밀폐된 녹음실에서 달랑 네 명이 만들고, 청취자도 굳이 찾아들어야 하는 <나꼼수>를 유해정보 필터링이라는 꼼수로 제한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방송통신위원회의 앱, SNS 검열 심의를 통해서다. '지독한' 가카 헌정이 거슬려서이겠지만, '씨바'를 비롯한 불손한 언사의 유해함을 들어 규제하려들 것이다. 그렇다면 지상파TV 드라마에 '지랄'의 등장은 왜 허용될까. 하나는 딴지일보 '총수'고 다른 하나는 '왕'이라서? 들어서 유해하긴 마찬가진데, <뿌리깊은 나무>는 되고 <나꼼수>는 안 된다.

결국 '표현이 유해한가'가 아니라 그 안에 담고 있는 '메시지가 유해한가'가 기준인 셈이다. 방통심의위 논리로 보면 <나꼼수>의 거친 표현들은 유해한 메시지를 퍼트리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반면, <뿌리 깊은 나무>의 그것들은 아버지 이방원의 폭정에서 비롯된 세종의 트라우마 반작용이자 허례허식을 지양하는 소탈한 성정을 보여주는 표현들이기에 문제가 아닌 것이다. 방통심의위의 이중 잣대는 차치하고서라도, 지상파 드라마에 '지랄, 젠장, 우라질'의 등장은 세종의 한글 창제만큼이나 획기적인 변화임에는 틀림없다.  

 SBS<뿌리 깊은 나무> 화면 갈무리

SBS<뿌리 깊은 나무> 화면 갈무리 ⓒ SBS


백성의 언어를 사용하던 품위 없는 왕

<뿌리깊은 나무>의 어린 이도(송중기 분)가 중년의 세종(한석규 분)으로 바뀌던 4회 첫 대사는 '지랄'. 거추장스러운 하례를 두고 한글을 창제한 세종이 입에 담은 욕설이다. 하지만 그 뜻이 '마구 법석을 떨며 분별없이 하는 행동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니, 관료들과 경연을 할 시간도 모자라 하던 세종 입장에선 안성맞춤인 말이기도 하다. 어쨌든 세종의 욕지거리와 함께, 왕들이 근엄했을 거라는 고정관념이 완전히 깨진 건 사실이다.

"인분이 밭작물을 얼마나 더 자라게 하는지 알아오라고 한지가 언젠데, 만날 조금만 기다리면 됩니다, 연구 중이다, 말뿐이니 원. 에라이~ 빌어먹을"

구태의연한 관료들을 비난하며 직접 인분을 뿌리던 세종이 분을 참지 못해 내뱉은 말 '빌어먹을'. 이 역시 '일이 뜻대로 되지 아니하여 속이 상하거나 분개할 때 욕으로 하는 말'이라니 똥지게를 지고 있던 세종으로선 최적의 표현을 찾은 셈이다.

 SBS<뿌리 깊은 나무> 화면 갈무리

SBS<뿌리 깊은 나무> 화면 갈무리 ⓒ SBS


지엄한 군주에겐 어울리지 않는 천한 백성의 말이라며 대신들은 말리지만, <뿌리깊은 나무>의 세종은 가벼이 여기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정서를 잘 표현하는 이런 말들이 궁궐에 없음을 한탄했다. 왕의 체통과 위신에 상관없이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순우리말을 사용하면서, 세종의 남다른 우리말 사랑을 엿볼 수 있다.

'위민'의 한글과 백성 권력, 그 뿌리 깊은 나무

 SBS<뿌리 깊은 나무> 화면 갈무리

SBS<뿌리 깊은 나무> 화면 갈무리 ⓒ SBS


<뿌리 깊은 나무>는 어린 시절 일련의 사건과 오해들로 왕에 대한 복수심이 있는 강채윤(장혁 분)이 궁에 들어와 집현전을 중심으로 일어나는 살인사건들의 전모를 밝히는 일을 맞게 되면서, 세종의 운명과 본격적으로 맞부딪히는 이야기다. 즉 한글창제를 담당하는 집현전 학자들의 연쇄 살인 사건을 왕을 암살하려던 채윤이 수사하게 되는 아이러니한 스토리를 통해, <뿌리깊은 나무>는 궁극적으로 '올바른 지도자상은 무엇인가'라는 이야기로 외연을 넓혀간다. 

 SBS<뿌리 깊은 나무> 화면 갈무리

SBS<뿌리 깊은 나무> 화면 갈무리 ⓒ SBS


아버지 태종의 폭정 때문에 나약했던 세종이 왜 하필 문자를 통해 나라의 기틀을 잡으려 했을까. 한자로 쓰여 자신의 운명을 바꾸는 내용으로 밀지가 뒤바뀐지도 모르고 죽은 백성(채윤의 아버지)에게 닥친 화가 곧 자신의 탓이라 여기던 세종은 백성에게 문자로 권력을 주려한다. 세종이 꿈꾸는 조선엔 백성의 언어 '한글'이 필요했던 것이다.

 SBS<뿌리 깊은 나무> 화면 갈무리

SBS<뿌리 깊은 나무> 화면 갈무리 ⓒ SBS


<나꼼수>에 '씨바'가 핵심이 아니듯, <뿌리 깊은 나무> 역시 세종의 '지랄, 젠장, 우라질'이 핵심이 아니다. 무지몽매한 백성 모두가 서로 소통할 수 있는 순우리말이라면, 세종이 그 어떤 욕지거리라도 마다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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