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관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이용관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 민원기

"해변에서 소주 마시면서 영화를 보는" 소박한 영화제를 꿈꿨던 계획은 어떤 면에서 무모했다. 하지만 의기투합한 젊음들은 10년의 기간을 고민했고, 1996년 결국 일을 벌여냈다. 부산국제영화제의 시작이었다. 

돌이켜보면 1984년 부산의 한 대학에 교수로 부임한 젊은 영화평론가가 그 시작이었다. 그가 부산의 강단에 서면서 서울의 영화광들과 부산의 영화세대들이 연결됐고, 당시에는 생소했을 국제영화제라는 행사를 태동시켰다.

그로부터 16년. 아무도 성공 가능성을 확신하지 못했던 영화제는 아시아를 넘어 세계에서 손꼽히는 영화제로 성장했다. '아시아 영화계의 빅브라더'로 불리며 세계 영화계의 중심으로 우뚝 선 것이다. 올해는 세 들어 살던 생활을 청산하고 번듯한 내 집도 마련했다.

영화제를 구상할 당시 대략적인 설계도를 그리며 고민하던 젊은 영화평론가는 올해부터는 영화제의 수장이라는 막중한 책임도 맡게 됐다. 영화제를 태동시켰던 그에게 어쩌면 당연할 일이었다.

1~2회 행사 때는 너무 힘들어 "하지 말아야 했는데"라는 후회감이 들기도 했지만 이제는 까마득한 옛 추억 속 이야기로 들릴 뿐이다.

"영화의 전당 시대에 맞게 질과 격을 높일 것"

16회 부산국제영화제를 열흘 정도 남겨둔 26일 저녁 서울에 위치한 부산국제영화제 사무국에서 이용관 집행위원장을 만났다. 초창기에는 남포동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며 세세한 것을 챙기기 바빴다면, 이제는 큰 그림을 그리며 미래의 발전을 구상하는 중이었다. '포스트 김동호 시대'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겠다는 것 또한 그의 다짐이었다.

이용관 위원장은 새로운 공간에서 여는 올해 영화제에 대해 "영화의 전당 시대에 맞는 질과 격을 높여 새로운 것을 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말하고, "새로 시작하는 부산영화포럼을 통해 영화제 성장을 위한 담론을 만들어 내겠다"고 밝혔다.

또한 "관객들에 대한 배려를 높이기 위해 개폐막식 좌석 배치에 신경을 많이 썼다"면서, "관객들을 왕으로 생각하는 열림과 소통의 행사가 되도록 하는 것이 주요 목표"라고 강조했다.

그는 도쿄, 홍콩, 상하이 등 아시아 영화제들 간의 경쟁과 관련해 "부산이 확고한 우위를 점하고 있다"면서 "마켓 기능이 뒤져 있지만 이것도 곧 따라잡아 세계 최대의 마켓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낙관했다.

이 위원장은 영화제 기간과 겹치는 5차 희망버스와 관련해서는 "영화제가 지금껏 정치적으로 예민할 수 있는 사안에 대해 어떤 입장을 공식적으로 표명한 적이 없기에 조심스럽다"면서 "참여하려는 영화인들에게 뭐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나, 다만 영화제 행사에 차질이나 어려움이 생기지 않았으면 한다"는 원칙론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다음은 이용관 위원장과의 일문일답이다.

"부산영화포럼 세계에서 처음...담론 생산이 목표"

-영화의 전당이 올해 첫 행사를 연다. 공사도 많이 늦어졌고, 여러 문제가 예상되고 있는데, 문제는 없나?
"며칠 전에도 밤늦게 혼자 둘러봤다. 안전사고가 나느냐 안 나느냐와 실내 극장의 냄새가 문제인 것 같다. 소방차를 활용하기도 하고. 보일러와 에어컨을 틀어놓고 있는데 냄새가 많이 빠져 좋아진 것은 확실하다. 요즘도 밤새 테스트 하고 있다."

-지난 15년 간 지속적인 성장을 해 왔다. 올해 특히 중점을 두려는 부분이 있나?
"영화의 전당시대가 열렸으니까 거기에 집중할 생각이다. 격에 맞는 맞는 질을 갖춰야 하고 연착륙할 수 있는 시간도 필요하다. 김동호 위원장님의 부재를 불식시키고 새로운 체제로 거듭나야 하는 것 등도 개인적인 다짐이다."

-특별한 행사들이 눈에 띈다. 부산영화포럼이 의미있게 보이는데, 벤치마킹하거나 활성화 된 영화제들이 있나? 
10회 때부터 계획했던 것인데 영화의 전당 시대에 열게 됐다. 담론을 생산하는 게 목적이다. '우리가 갈 길이 무엇인가', '한국영화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 '아시아 영화와 어떻게 연대할 것인가' 등에 대해 세계적 석학들과 아시아 소장학자들과 소통하기 위한 자리다. 그래야 영화제가 성장하고 아시아를 대표할 수 있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세계에서 처음 하는 것이고 벤치마킹한 것은 없는 데, 부산이 특이한 걸 많이 만들기는 한다."

-위원장님 개인의 학자적 성향 때문인가?
"내가 27년 째 교수를 하고 있지만 영화제 있는 사람들이 다 평론가고 교수고 강단파들이다. 원래 해변가에서 소주 마시면서 영화를 보는 것을 생각했는데, 뚜껑을 열어 보니까 전혀 그렇지 않고 쫓아가기 급급한 영화제 됐다. 우리의 정체성이 뭐냐는 고민을 하다가 더 늦으면 안 될 것 같아 하게 됐다. 경제, 정책, 문화적인 담론을 생산하는 것이 목표다."

"계단 술집 길거리 등에서 유명 감독들 초청...이상한 위원장이라 여겼을 것"

-아시안필름마켓은 영화제에 비해 성장이 늦은 것 같다. 올해는 예년보다 관심 표명이 많았다고 하는데.
"외형은 30~40퍼센트, 커지고 알차졌다. 실무자들이 결과물은 더 좋을 거라고 하는데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지금까지 봐서는 예년 어떤 때보다 급신장 한 게 사실이다. 마켓은 영화진흥위원회가 부산으로 이전하면 영진위에 넘길 생각이다. 영진위원장에게 맡아 달라고 했다. 한국영화가 주목받고 유통시키기 위해서는 국가적 지원체제로 가야 한다."

-홍콩영화제나 도쿄영화제에 비교하면 어떤가?
"홍콩, 도쿄에는 못 미친다. 홍콩은 중국을 대상으로 하니 물량 면에서 못 따르지만 질적인 면과 격은 부산이 앞선다. 동경은 토털마켓에서 앞서지만 우리도 원스톱서비스를 계획하고 있어 장점은 더 많다. 사실 우리는 한국영화가 침체기에 들어갔을 때 영화제에서 한번 해보자 해서 시작된 것인데 팔 게 없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APM(아시아프로젝트마켓)  ACF(아시아영화편드)의 장점이 있다. 인력을 배양했기 때문에 알짜로 갈 수 있다. 몇 년 뒤 영화의 전당 주위에 10만평 영화 클러스트가 생겨나는데 그러면 더 잘 될 것이다. 영진위와 합치면 세계 어느 나라에도 뒤지지 않는 아시아 최대의 마켓이 될 수 있다."

-올해 김동호 위원장과 함께 해외 영화제에 인사하러 다녔는데, 네트워크 구축은 잘 돼 가고 있나?
"김동호 위원장의 인맥 90%를 물려받았고,. 김지석 전양준 프로그래머가 15년 간 해오면서 구축한 업적과 인프라가 있다. 남미 아프리카 인맥 개발을 시작 중이고, 저 나름의 네트워킹도 만들어야 하는 데 그런 게 좀 어렵다. 새롭게 만들어야 하는 것에 약하다."

-뤽 베송, 진가신 감독 등 유명 감독들이 부산을 방문한다. 어떤 과정을 통해 초청하게 된 것인지 궁금하다.
"칸 영화제 갔다가 계단에서 만나 부산영화제에 한 번 오라고 했다. 술집, 길거리 등에서 만나 섭외했다. 다른 사람들이 볼 때는 이상한 집행위원장이다 했을 거다. 그래도 부산영화제에 대해 알고들 있었고, '아 당신이 거기 집행위원장이야?' 하면서 방문하겠다는 의사를 나타냈다. 국제적으로 부산영화제의 인지도와 가치를 활용했다."


 이용관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16회 부산국제영화제를 열흘 정도 남겨둔 26일 저녁 서울사무국에서 이용관 집행위원장을 만났다. 초창기에는 남포동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며 세세한 것을 챙기기 바빴다면, 이제는 큰 그림을 그리며 미래의 발전을 구상하는 중이었다. 포스트 김동호 시대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겠다는 것 또한 그의 다짐이었다. ⓒ 민원기


"<삼총사>, 도쿄 영화제에 물 먹인 것 아니고 순리"

-영화 제작 및 수입 배급 등 영역 확장을 생각하고 있는 중으로 알고 있는데 잘 진행되고 있나? 작년에는 <카멜리아>를 직접 제작했는데, 앞으로 계속 이어나갈 것인지?
"제작은 아니고 수입 배급만 하려고 한다. 제작을 해보니 더 이상 하면 안 되겠더라. 정신이 거기에 다 팔려있고 시간을 보내 안 되겠다 싶었다. 수입 배급을 통한 역량이 있어야 제작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제작 먼저 하면 안 된다는 좋은 교훈을 얻었다."

-15년을 치러왔지만 안정적 예산 문제가 늘 어려운 문제 같다. 올해는 예산이 작년과 같은 수준인데. 특별한 문제는 없나?
"협찬이 잘 돼 묵은 빚을 갚을 수 있을 것 같다. 부산영화제를 통한 협찬사들의 인지도가 높아지다보니 목표보다 많이 달성이 됐다. 국고지원도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없어 부산시 지원으로 충당하다보니 시장님께는 고맙지만 시민들에게는 미안하다."

-아시아 영화제들의 경쟁이 치열하다. 도쿄와 홍콩, 상하이 등을 비교해서 평가한다면?
"부산영화제는 국내에서 내분이 없다. 영화인들이 한결같이 지원해 주는 영화제가 어디 있나? 우리를 믿어준다는 게 가장 큰 힘이다. 아시아 영화인들도 우리를 지지한다. 말만 내세우지 않고 영화펀드(ACF)나 프로젝트 마켓(APM)을 통해 지원해 주니까 좋아한다.

도쿄영화제는 수입배급업자들이 한다. 수입배급업자들이 조직위원으로 있으니 헐리우드 영화를 미리 상영한다. 홍콩은 중국에 반환되니까 어쩔 수 없더라. 검열이 있다. 굉장히 부드럽게 해 주기는 하지만 감독들이 기분 나빠서 하겠냐. 영화제는 영화인들 해방구인데 검열이 있으면 될 수가 없다. 체제라는 것을 무시하지 못 한다."

-도쿄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된 <삼총사>가 부산에서 먼저 상영돼 '도쿄가 물먹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물 먹인 게 아니고 순리다. 우리는 커뮤니케이션에 노력했고, 도쿄는 그냥 가져가려고 한 거다. 배급사 쪽에서 결정한 것이지만 우리는 그 안에 인적 네트워크가 있었다. 도쿄는 쇼케이스 효과가 없다. 업자들이 이해타산이 있어 자기 영화만 올리려고 하는데, 언제 외국을 바라보겠나. 클 수가 없는 거다. 일본 문화는 아시아를 넘어 서구와 대화하려 하지 않는다."

"북한 영화는 더 이상 가져올 게 없다. 격차가 크다"

-아시아 영화의 중심이지만 북한영화는 2003년에 한번 소개된 이후 진전이 없는 것 같다.  예전에 평양영화축전과 교류 이야기도 나왔던 것 같은데, 남북관계가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인가?
"북한영화는 가져올 게 없다. 하게 되면 도리어 북한을 모독하는 게 된다. 같은 민족이다 싶어서 교류하고 도와주겠다고 하는데 저쪽은 손만 벌린다. 그리고 워낙 차이가 많이 난다. 민족적 차원에서 통일이 되는 것 밖에는 없을 것 같다."

-김동호 위원장 시절에는 프로그램 선정에 관여하지 않고 개폐막작에 이견이 있을시 캐스팅보트를 행사했는데, 이번 개폐막작 선정에는 역할이 있었나?
"김동호 위원장 님은 단 한 편도 관여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나는 두 편만 관여한다. 개폐막작은 내가 선정한다."

-개막식 사회자가 여배우 두 명(예지원, 엄지원)으로 선정된 게 특별하게 보인다.
"프로그래머들 사이에서 농담 삼아 남녀로 하지 말고 남남 여여로 하자는 의견이 있었는데, 이번에 그렇게 됐다. 폐막식도 여자 두 명이 맡는다."

-DMZ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와 상호협력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부산이 많은 도움을 주는 것 같다.
"신생영화제라 돕는 것이지만 DMZ와의 협력을 통해 영화제를 더욱 풍성하게 할 수 있다. 원래는 제천영화제와 먼저 협력하려고 했는데, 그쪽 사정 때문에 미뤄졌다, 부천과 전주는 자생적으로 독립하는 영화제기 때문에 굳이 돕지 않아도 되는데, 여성 청소년 등과는 협력할 예정이다. 영화의 전당이 생기면서 우리의 터가 넓어졌다. 우리가 먼저 손을 내민 것이다."

"희망버스... 영화제에 차질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이용관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이용관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은 부산국제영화제와 한진중공업 제 5차 희망버스 일정이 겹치는 것에 대해 "영화제 행사에 차질이 없기를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 민원기

-영화제와 5차 희망버스 일정이 겹친다. 부산시 쪽에서는 영화제에 지장이 있다고 반대 성명도 나오고 있는데, 어떤 입장인가?
"영화제가 지금껏 정치 사회적으로 예민할 수 있는 사안에 대해 공식적인 입장을 밝혔던 적이 있던가? 그런 적이 한 번도 없다. 우리가 어떤 입장을 밝힌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부산시는 많이 염려가 되니까 그러는 것이다."

-영도에 행사를 하는데, 굳이 해운대에 지장이 생길 일은 없지 않나? 남포동에서 행사가 있는 것도 아닐 테고.
"그렇지 않다. 남포동에서도 몇 가지 행사가 준비돼 있다. 5일 전야제를 시작으로 6일에는 개막식 행사가 영상으로 중계되고, 주말 저녁에 이벤트 행사들이 예정돼 있는데, 영도 쪽에 있는 분들이 남포동쪽으로 갈 수 있기에 유인물을 돌리고 하는 과정에서 자칫 충돌이 생기지는 않을까 염려가 된다. 중구청 쪽에서는 비상이 걸려 영화제에 도움을 요청하던데, 그렇다고 행사를 취소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우리도 쉽지 않은 처지임을 양쪽 다 알아 줬으면 좋겠다."

-영화인들은 적극 참여하겠다고 한다.
"그것을 우리가 해라 마라 할 수 있는 사안은 아니지 않나. 다만 영화제 행사에 차질이 없도록 신경 써달라고 영화단체들을 통해 의견을 전달했다. 다들 도와줄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의 입장을 양쪽 다 이해해주길 바랄뿐이다."

-예전에 비해 많이 신중해 지셨고 몸을 사리신다는 평가도 있다.
"인정한다. 당연히 몸 사린다. 옛날하고 똑같다면, 스태프들과 함께 쌓아온 것을 사유화하겠다는 거 밖에 안 된다. 저는 이제 시스템을 통해 설득해야지 명령하는 체계가 아니다. 시스템이 저를 설득하는 영화제가 되어야 한다. 김동호 위원장 안계시니 열심히 해서 합격점 받아야 하지 않겠나."

BIFF 부산국제영화제 이용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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