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을 잊은 대한민국 피겨 미래의 열정이 뜨겁다. 피겨 대모 신혜숙 코치의 지도 아래 모인, 은반 위 7명의 종달새들은 7년 뒤, 펼쳐질 꿈의 무대를 착실히 준비해 나가고 있다. 그 빛나는 무대는 바로 2018 평창 동계 올림픽. 열악한 연습 환경을 견디며, 은반 위에서 꿈을 향해 날갯짓하는 유망주들은 열정 가득했다. 꿈꾸는 7인의 피겨 스케이터를 7월5일부터 열흘간 밀착 취재, 시리즈로 다뤘다.... 기자 주

그들은 대한민국 피겨의 미래, 내일은 밝다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의 주역이 될 7인의 피겨 스케이터, 왼쪽부터 김태경, 신은정, 김해진, 최다빈, 이동원, 이호정, 차준환, 그리고 신혜숙 코치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의 주역이 될 7인의 피겨 스케이터, 왼쪽부터 김태경, 신은정, 김해진, 최다빈, 이동원, 이호정, 차준환, 그리고 신혜숙 코치 ⓒ 곽진성


2018년 올림픽 개최지 결정을 하루 앞뒀던 5일 자정, 한국체육대학 빙상장의 불은 자정 12시를 넘겨서까지 꺼지지 않고 있었다. 조용했던 빙상장 안에서, 밤의 적막을 깨우는 신혜숙 코치(55)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은정아! 발목 제대로 해! 태경아! 몸을 더 감아야지!"

밤늦은 빙상장 안에서는 7명의 스케이터들이 훈련에 한창이었다. 추위 속에서 은반 위를 누비고 있는 이들은 이동원(15), 김해진(14), 이호정(14), 그리고 김태경(13). 신은정(13), 최다빈(12), 차준환(10)이었다(이하 이름 호명).

 한자리에 모여있는 7인의 피겨스케이터 유망주

한자리에 모여있는 7인의 피겨스케이터 유망주 ⓒ 곽진성


팀의 맏이인 동원이가 중3, 막내 준환이는 겨우 초등학교 4학년인 어린 팀. 하지만 국가대표 3명(동원, 해진, 호정)과 청소년 대표(태경), 미래 유망한 선수(은정, 다빈, 준환)들로 이뤄진 '꿈의 팀' 이기도 했다. 7인은 대한민국 피겨의 빛나는 내일을 위한 훌륭한 원석이었다.

이들의 성장에 2018 평창 동계올림픽. 대한민국 피겨의 미래가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하지만 피겨 유망주들이 짊어진 짐은 무거워 보였다. 피겨 올림픽 챔피언의 나라였음에도 연습 환경은 여전히 열악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한 줄기 희망. 선수들의 열정이 뜨거웠다. 늦은 밤의 빙상장. 어린 선수들은 쏟아지는 졸음을 견디며 훈련에 열중했다.

 대한민국 피겨 여자싱글 챔피언 김해진이 자유롭게 스케이팅하고 있다.

대한민국 피겨 여자싱글 챔피언 김해진이 자유롭게 스케이팅하고 있다. ⓒ 곽진성


하얀 은반 위, 자유롭게 스케이팅을 하며 아름다운 트리플 점프를 성공 시키는 선수에게 눈길이 갔다. 2010 대한민국 피겨 여자 싱글 챔피언 해진이었다. 14살의 나이에, 피겨여왕 김연아의 뒤를 잇는 기대주로 평가받고 있는 해진이. 그래서일까? 최근 많은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하지만 정작 해진이는 "아직 많이 부족하다"며 진중하고 겸손해한다. 그저 묵묵히 연습에 매진하며 꿈을 키워가고 있었다.

한 살 아래인 은정이의 열정도 뜨거웠다. 은정이는 수십 차례 점프 시도를 하며, 극복해야할 점프를 향한 도전을 계속 하고 있었다. 넘어짐을 반복하기를 수 차례, 혹여 다칠까 염려됐지만, 애써 담담하게 점프 동작을 지켜보던 신혜숙 코치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점프 연습에 매진하는 신은정 선수

점프 연습에 매진하는 신은정 선수 ⓒ 곽진성


"수천, 수만 번의 넘어짐 끝에 하나의 점프가 완성됩니다. 이 말은 과장이 아니에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 그런 열정을 머금은 대한민국 피겨의 미래는 밝았다. 밤 늦은 훈련은 고됐지만 팀의 막내이자 마스코트로 불리는 준환이의 장난에 한바탕 웃음이 일었다. 장난꾸러기 준환이가 신 코치에게 점프가 잘 안 된다며 투정을 부린 것이다. 장난 후, 멀리 달아나 버리는 모습에 호정이와 태경이가 배꼽을 쥐고 웃었다.

"준환이, 너 이리 안 와! (신혜숙 코치)"
"선생님, 잘못했어요! (차준환)"

 신혜숙 코치와 차준환 선수가 밤 늦은 훈련 중, 장난을 치고 있다

신혜숙 코치와 차준환 선수가 밤 늦은 훈련 중, 장난을 치고 있다 ⓒ 곽진성


장난끼 많은 준환이지만, 그는 벌써 더블 악셀을 뛰어넘고 트리플 점프 연습을 시도하고 있는 대한민국 남자 피겨의 미래로 주목받고 있다. 5일 훈련이 끝난 후, 준환이가 한 마디를 건넸다. 6일 자정에 발표되는 2018 동계 올림픽 개최지에 관한 기대였다.

"동계 올림픽이 우리나라에서 열린다면 어쩌면, 지금보다는 조금 더 나은 환경에서 연습할 수 있을지도 몰라서 기대가 돼요! 빙상장이 너무 추운데, 올림픽이 우리나라에서 된다면 조금 따뜻해질 수 있겠죠?"

평창 동계 올림픽이 유치된다면, 어린 피겨 스케이터들의 꿈이 이뤄줄 수 있을까? 그간 피겨 전용 연습장 건립은 뜬 구름처럼 계획과 번복의 과정이 계속됐다. 그렇기에 기자는 어린 피겨 미래의 소망에 어떤 기대도 심어줄 수 없었다. 

2018 평창 동계 올림픽, 또 한번의 기적을 위하여

 태릉에서 만난 이호정, 김태경, 김해진 선수

태릉에서 만난 이호정, 김태경, 김해진 선수 ⓒ 곽진성



평창 동계 올림픽 유치가 확정된 다음날인 8일. 7명의 유망주들은 태릉에서 훈련을 하고 있었다. 밤늦은 훈련으로 인하여 선수들은 평창 동계올림픽 소식을 녹화해 보거나, 다음날 뉴스를 보고서 알았다고 했다. 2018 꿈의 무대가 평창으로 결정 났다는 희소식은 유망주들에게도 힘이 되는 소식이었다.

대한민국 사상 첫 동계 올림픽 유치에는 피겨 여왕 김연아의 활약이 적잖았다. 피겨 스케이팅이 배출한 챔피언 효과가 실로 어마 어마하다는 것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 미래의 챔피언을 꿈꾸는 유망주들은 여전히 제대로 된 연습환경을 갖지 못했다.

신혜숙 코치의 팀은 현재 태릉에서 5시부터 6시 30분까지 대관을 한 후, 한체대로 이동해 밤 늦은 10시-12시 대관을 해 연습을 하고 있다. 지금 연습 상황도 좋은 편이 아니지만, 더욱 열악한 때는 방학이다. 그때가 되면 빙상장 대관 잡기가 더욱 어려워져 연습이 새벽 시간으로 밀린다. 새벽2, 3시에 운동을 하는 것은 어린 피겨 스케이터들에게 고통스러운 짐. 이것은 비단 한 팀의 고민이 아닌, 피겨 선수 생활을 하는 모든 이들의 고민이기도 했다.

"(늦은 새벽 연습에) 아이들이 많이 힘들어합니다. 자라나는 아이들인데, 그런 시간에 훈련을 시키는 것 자체가 바람직하지 못하죠. 늦게 훈련을 하면 집중력 저하로 부상 위험도 있고 해서, 점프 같은 것을 제대로 시키지 못합니다. 하지만 선수들이기에 하루에 1, 2시간 훈련만을 할 순 없어서, 일단 새벽에라도 스케이팅만이라도 타게 하는 실정입니다. (신혜숙)"

 연습 후, 포즈를 취한 신은정, 최다빈, 이호정, 김태경, 차준환 선수

연습 후, 포즈를 취한 신은정, 최다빈, 이호정, 김태경, 차준환 선수 ⓒ 곽진성



그런 열악한 환경 속에서 꿈나무들은 '열정' 하나로 자라나고 있다. 초등학교 6학년인 다빈이는 태릉 훈련에서 트리플 점프들을 차례차례 성공시켰다. 다빈이는 13살의 나이에 '트리플 5종 점프'(토룹, 살코, 룹, 플립, 러츠)를 랜딩한 유망주다. 13살에 트리플 5종 점프를 성공한 선수는 역대 김연아, 김해진 선수 밖에 없어 더욱 기대가 되고 있다.

청소년 대표 태경이도 관심이 가는 스케이터. 더블 악셀 점프에서 국내 선수 중 드물게 GOE(가산점)을 챙기는 선수로 성장 가능성이 높다. 대한민국 남자 피겨의 자존심인 동원이는 트리플 악셀 점프를 극복하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고비를 넘긴다면, 세계 상위권 선수로의 도약이 가능하다. 이들의 어린 나이를 감안할 때, 가능성과 잠재력은 충분하다.

'우정의 승부', 아름다운 7인의 스케이터

 8년째, 단짝친구인 대한민국 피겨 여자싱글의 두 유망주, 국가대표 김해진과 이호정.

8년째, 단짝친구인 대한민국 피겨 여자싱글의 두 유망주, 국가대표 김해진과 이호정. ⓒ 곽진성



8일, 태릉 빙상장 안에는 비(?)가 내렸다. 실제 '비'가 내리는 것이 아니었지만, 수증기가 빙상장 상단부에 응결되어 빙판 위로 떨어지는 것이었다. 필자도 여러 차례 이 물방울 맞았는데, 그때마다 깜짝깜짝 놀라기 일쑤였다. 어린 스케이터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점프를 하려다가, 떨어지는 물방울을 맞고 놀라 점프를 포기하는 경우가 잦았다. 게다가 빙판 중심부에는 이 비가 실제, 비처럼 쏟아진 후 얼어 빙판 곳곳은 커다란 얼음 혹이 솟아나 있었다. 정상적인 스케이팅까지 지장을 받는 상황이었다. 태릉에서 어린 선수들은 겨울에는 매서운 추위와, 여름에는 이 떨어지는 물방울과 싸우고 있었다.

하지만 호정이는 이런 상황이 이제 익숙한 듯 밝은 표정으로 훈련에 임했다. 활발한 성격의 호정이는 2010 세계 피겨 주니어 선수권 대회에 대표로 출전한 대한민국 피겨 여자 싱글의 대들보다. 그간 고관절과 발목 부상으로 마음 고생을 했지만, 어려움을 극복하고 표현력을 기르는 연습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야간 훈련 후에 호정이가 다가왔다.

"우리 사진 좀 하나 찍어주세요!(이호정)"
"재밌게 찍자!(김해진)"

 왼쪽 이호정, 오른쪽 김해진 선수가 서로 장난을 치고 있다

왼쪽 이호정, 오른쪽 김해진 선수가 서로 장난을 치고 있다 ⓒ 곽진성


 피겨 국가대표 단짝 이호정과 김해진, 재밌는 표정을 연출하고 있다. 뒤에는 최다빈, 그 뒤에 부상을 회복하고 복귀한 최다혜.

피겨 국가대표 단짝 이호정과 김해진, 재밌는 표정을 연출하고 있다. 뒤에는 최다빈, 그 뒤에 부상을 회복하고 복귀한 최다혜. ⓒ 곽진성


힘든 연습이 끝난 후, 8년째 단짝 친구라는 호정이와 해진이는 활짝 웃어보였다. 두 사람은 피겨 스케이팅 세계에서 흔치 않은 '우정의 승부'를 펼치고 있다. 라이벌이기 이전, 친구라는 두 사람. 둘이 함께 신혜숙 코치 밑에서 훈련을 하게 된 사연이 있다. 신 코치가 말한다.

"해진이가 먼저 배우고 있을 때, 호정이 측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가르치는 입장에서 (둘이 경쟁을 펼치기에) 저는 좀 어려워했는데, 호정, 해진이 부모님이 이미 애기를 마쳤더군요. 둘이 너무 같이 훈련하고 싶어 했다고..... 제가 당시 해진이한테 물었죠. '너, 호정이가 너보다 잘 타면 어떻게 할래?', 그러자 해진이가 이렇게 말하더군요. '괜찮아요. 그럼 저도 더 열심히 해서 같이 잘 타면 돼요'라고요. 둘이 같이 훈련을 해 긍정적입니다."

아름다운 경쟁을 해나가고 있는 해진이와 호정이는 대한민국 피겨의 미래를 밝게 하고 있다. 8일 자정, 힘든 훈련을 마친 후 두 사람은 서로 장난을 쳤다. 막내 준환이도 빠지지 않고 이 유쾌한 장난에 합류했다. 그 주위로 다빈이와 태경이가 다가왔고 은정이도 한 바퀴 스케이팅을 한 후, 모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신혜숙 코치는 멀찌감치 떨어져있는 동원이까지 불렀다. '꿈의 팀' 7인은 그렇게 한자리에 모였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을 꿈꾸는 7인의 피겨 스케이터들이 활짝 웃고 있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을 꿈꾸는 7인의 피겨 스케이터들이 활짝 웃고 있다 ⓒ 곽진성


대한민국 피겨의 미래들은 은반 위에서 가장 자신 있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 모습은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을 향한 희망의 포즈처럼 보였다. 밝은 웃음 속에 아름다운 사연을 지닌, 대한민국 피겨 유망주 7인의 특별한 인터뷰가 시작되고 있었다.

7인의 스케이터 신혜숙 김해진 이동원 이호정 김태경 신은정 최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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