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는 시장에 내맡겨진 우리 의료제도의 한계 때문에 갈등하는 환자들과 의사들의 이야기다. 나는 의사로서 이 영화에 우리나라 의료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 줄 것이다."

'한국판 식코'로 불리는 다큐멘터리 <하얀정글>의 오프닝 화면을 꽉 채운 자막입니다. 현직 의사인 송윤희 감독은 영화를 기획하게 된 배경에 대해 "남편(이선웅 안산의료생협 의사)에게서 돈 몇만 원이 없어서 죽어가는 환자가 진짜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만들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청진기 대신 카메라를 든 송 감독이 보여주려는 우리나라 의료현실은 대체 어떤 모습일까요?

마이클 무어 감독은 <식코>에서 미국 어린이 900만 명 이상이 의료보험이 없으며, 매해 2만여 명이 의료보험이 없어서 죽고, 파산 사유의 50%가 비싼 의료비로 인해 발생하는 원인을 짚습니다. 그와 함께 의료비에 연간 2조 달러를 쓰면서도 쿠바보다 영아사망율은 높고 평균 수명이 짧은 이유에 대해 의문점을 제기합니다. 그리고 한 가지 결론을 도출합니다. 이 모든 것이 전 국민 의료보험이 없어 죽음마저도 선택 사양해야 하는 미국의 의료민영화에 기인한다고.

 이불 덮어주고 대소변 받아주는 등 뇌성마비 지체장애 아들의 수족 노릇을 해야 하는 이옥 할머니. 한국사회는 가난도 세습되고 아픈 몸도 세습되고 있었다.

이불 덮어주고 대소변 받아주는 등 뇌성마비 지체장애 아들의 수족 노릇을 해야 하는 이옥 할머니. 한국사회는 가난도 세습되고 아픈 몸도 세습되고 있었다. ⓒ 송윤희 · 이선웅


그런데 이런 미국식 의료민영화를 도입하지 못해 안달인 곳이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입니다. 지난 4월 보건복지부가 의료산업을 안건으로 명시한 '보건의료미래위원회'를 발족해 의료민영화를 위한 사전정지 작업을 벌이더니, 최근에는 수면 아래 잠복해 있던 제주 영리병원이 다시 꿈틀대고 있습니다. 때를 맞춰 삼성이 인천경제자유구역 내에 송도국제병원과 바이오제약 클러스터 사업에 속도를 더하고 있습니다.

현재 송도국제 영리병원 설립을 놓고 인천경제자유구역청과 건강보험 대개혁을 위한 인천지역 연석회의 간에 대립각을 세우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하얀정글>은 우리가 왜 의료민영화를 반대해야 하는지에 대해 빈틈없이 설명합니다. 그리고 그 시작을 전 국민 의료보험이 시행되고 있음에도 돈이 없어 병원에 가질 못하고, 돈이 없어 중도에 치료를 포기하고, 병원비를 마련하느라 중산층 가정이 파탄 나고, 몇 만 원이 없어 생때같은 목숨이 죽어 나가는 대한민국의 현실에서 출발합니다. 

의사들이 불쌍한 환자들의 호주머니를 터는 이유

영화는 지난 2009년 이명박 정부가 '일자리 창출과 내수 활성화, 서비스산업 선진화로 이루겠다'는 영리병원 허용과 관련한 국회 대정부 질의 장면을 소개합니다. 이윽고 카메라는 도심 구석구석과 지하철에까지 내걸린 병원광고로 시선을 옮깁니다. 이렇게 병원에 오라는 광고는 범람하는데도 왜 서민들에게 병원은 꿈일 뿐일까요?

영화 속 건설노동자는 당뇨로 인한 합병증이 심각한데도 한 달에 2만 원 내외하는 병원비가 없어 당뇨 약을 복용하지 못합니다. 무릎 관절염을 앓고 있는 한 할머니는 의료급여 1종 수급권자임에도 건강보험이 적용 안 되는 본인부담금으로 인해 대학병원에 가질 못합니다. 대신 할머니는 폐지를 주워 모은 돈으로 파스를 붙여 고통을 감내합니다. 선천성 심장기형으로 태어난 아기는 진료비가 없어 치료를 포기하려다 '사랑의 리퀘스트'에 출연해 모은 국민성금으로 수술을 받지만 결국 2년도 못 살고 아빠 품을 떠납니다.

건강보험료는 꼬박꼬박 빠져나가는데도 가난한 이들이 대형병원으로부터 외면당한 채 제한적인 치료와 차별을 받는 이유는 뭘까요? 영화 속 대형병원들의 의료실태는 이를 증명해 보입니다.

인건비를 줄이려고 비정규직을 쓰고, 돈 안 되는 병실 대신 고급병실을 늘리고, 필요치도 않은 검사를 받게 하고, MRI 같은 첨단 장비를 많이 사용한 의료진에게 혜택을 주고, 교수회의 때 의사들의 순위를 실적에 따라 1등부터 꼴찌까지 공개하는 등 과잉진료를 남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영화는 환자들은 돈 때문에 치료를 받지 못하는 반면 의사들은 수익만을 추구하는 병원에서 일개 기술자로 전락한 모습을 비교하며 한국 의료계의 현실을 조명합니다.

 대형병원들이 인센티브제를 고리로 의사들을 독려하는 문자 메시지에는 외래 진료환자 수와 병상 가동률 등 하루 동안의 실적이 실시간으로 전송되고 있다.

대형병원들이 인센티브제를 고리로 의사들을 독려하는 문자 메시지에는 외래 진료환자 수와 병상 가동률 등 하루 동안의 실적이 실시간으로 전송되고 있다. ⓒ 송윤희 · 이선웅


이런 대형병원들의 수익성 위주의 진료행태를 보여 주는 압권은 일일 외래 진료환자수와 병상 가동률 등을 의사들에게 매일 문자메시지로 통보하는 장면입니다. 그와 함께 한 명의 환자라도 더 봐 실적을 쌓으려는 '30초 진료' 역시 환자가 돈이 되어버린 대형병원의 실태를 고스란히 들춰냅니다. 그리고 영화는 의사들을 장사꾼으로 만든 장본인을 국가로 규정합니다. 전 국민 의료보험으로 의료비재정은 공공에서 마련되었지만 의료시장은 애초부터 민간병원에 맡긴 정부의 보건의료 정책이 의료상업화를 초래한 근본 원인이라는 것입니다.

이 같은 기형적 형태가 고착되는데도 정부가 통제를 하지 않고 방치하면서 위기는 증폭됩니다. OECD 국가 중 의료비 공공부담이 50%에 불과하고 국민건강보험 보장 비율 역시 60%에 불과한 상황에서 영화는 대형병원들이 건강보험공단의 통제를 받지 않는 비 급여 진료항목을 늘려왔다고 지적합니다.

그 결과 국민들의 의료비 지출은 갈수록 늘어나고 보험재정은 위기에 직면합니다. 대형 민간병원 역시 과도한 시설투자와 무한경쟁 등으로 수익창출이 한계에 이르면서 이른바 의료를 이윤추구의 도구로 삼는 의료선진화 즉, 의료민영화가 주창되기 시작합니다.

영화는 그 예로 로봇수술을 듭니다. 기업들이 막대한 투자를 쏟아 부어 로봇수술을 개발하면 대형병원들은 앞다퉈가며 암 환자와 가족에게 2200만 원이나 하는 로봇수술을 권장합니다. 건강보험 적용 대상이 안 되는 로봇수술은 과잉 진료와 의료비 폭등을 초래하지만 어느 교수의 비판처럼 기업과 병원은 "불쌍한 암환자들의 주머니를 털어" 수익을 챙기는 것입니다.

이렇게 대형병원들이 민간자본과 찰떡궁합이 된 상황에서 정부가 제대로 규제를 할 수 있을까요? 송 감독은 다음과 같이 강조합니다.  

"명심해야 한다. 첨예한 이 시장에 맡겨두면 더 이상 병원이 아니게 된다. 정글이다. 하얀정글. 이 정글에서 기업들은 자본의 논리대로 의료를 상품화하려고 아우성이다."

왜 이명박 정부는 의료민영화에 집착할까

영화는 당연지정제 폐지, 영리법인병원 허용, 민영의료법인 활성화, 건강보험재정 축소를 골자로 하는 의료민영화 정책이 현실화될 경우 어떤 결과를 낳을지 준엄한 경고를 합니다. 그것은 곧 '죽어도 아프지 마라, 아프면 죽는다'라는 살벌한 경구의 현실화입니다. 신자유주의의 선봉에 섰던 마가렛 대처조차도 "모든 것에 시장경제체제를 도입해도 국방과 의료만큼은 정부의 책임"이라고 했음에도 왜 이명박 정부는 의료민영화에 그토록 집착하는 걸까요?

먼저 경제대통령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4대강 삽질 외에는 국내에서 번듯한 투자처 하나 찾지 못한 무능함에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영리병원 설립을 허용하고 민간의료보험을 확대하면 의료서비스 산업을 통한 내수 활성화와 함께 일자리가 창출되고 새롭게 재편되는 의료시장에 재벌대기업들이 대규모 투자를 하게 된다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의료산업이 신성장동력이 되어 국내 경제를 진작시켜 나갈 수 있다는 것이 이명박 정부의 의료민영화 도입 논리입니다.

 삼성의 후견아래 이명박 정부가 의료산업의 발전과 질 향상 그리고 한국 경제구조의 변화를 위해 의료산업의 선진화는 필수적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삼성의 후견아래 이명박 정부가 의료산업의 발전과 질 향상 그리고 한국 경제구조의 변화를 위해 의료산업의 선진화는 필수적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 송윤희 ·이선웅


영화는 삼성경제연구소가 발표한 '의료서비스산업 고도화와 과제'가 보건의료체계를 산업체제로 바꾸려는 이명박 정부의 의료민영화 계획의 산실이라고 지적합니다. 여기에 송도국제병원은 이러한 흐름을 주도해가는 기폭제 역할을 합니다.

특히 삼성이 메디컬 산업과 바이오산업을 미래의 주력산업으로 선정하면서 송도국제병원의 설립 여부는 정권의 명운과 직결될 개연성이 커졌습니다. 부산저축은행 사태를 시발로 정권의 도덕성에 균열이 간 이명박 정부가 영리병원 설립조차 제대로 처리하지 못할 경우, 임기 말 레임덕과 맞물리며 감당하지 못할 상황을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조중동 종편' 출범도 의료민영화 추진에 한몫 거들고 있습니다. 포화상태에 이른 국내 광고시장에 새로운 수혈을 하지 못해 '조중동 종편'이 광고수익을 제대로 거두지 못하고 굶주릴 경우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에 십자포화가 쏟아질 것은 당연합니다.

최근 최시중 방통위원장이 '조중동 종편'에 자유로운 광고영업을 보장해 줘야 한다고 거든 것도 여기에 연유합니다. 그런 점에서 영리병원 광고수익 등과 연간 진료비가 40조 원을 상회하는 의료시장은 매력적인 광고시장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반면 한국사회는 영화의 지적처럼 사회적 양극화로 인해 의료사각지대가 급증하고, 노령화에 따라 의료서비스는 변화하고, 비싼 의료비로 인해 40%가 넘는 국민들이 가계 부담을 호소하고, 25%의 국민들이 의료서비스 이용을 망설이고 있습니다. 이런 마당에 의료를 이익창출의 수단으로 보는 이명박 정부 하에서 의료 본연의 공공성은 설자리가 더욱 좁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방법은 단 하나, 건강보험 보장 확대 후 전국민 무상의료 실현

관건은 국민건강보험 보장성을 확대하는 것입니다. 방법은 명약관화합니다. 민간의료보험에 의존하지 않고서도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도록 개편하면 됩니다. 국민건강보험 보장성을 90%까지 확대한 후 궁극적으로 전 국민 무상의료를 실현해 나가는 것입니다.

주지하다시피 한 나라의 의료체계는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는 핵심적인 사회 안전망입니다. 이와 관련해 <식코>에서는 인상적인 대사가 있었습니다. "(의료체계에서) 영국이나 프랑스 정부는 국민을 두려워하는데, 미국은 국민이 정부를 두려워한다"며 의료민영화로 황폐화된 미국의 자화상을 상징적으로 표현했습니다.

문제는 이것이 한국의 자화상이 될 수도 있다는 데 있습니다. <하얀정글>에서 지적한 것처럼 의료를 복지가 아니라 시장으로 보고 국민들의 호주머니를 털어서 의료시장을 확대하고 민영화를 도입해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담보로 돈놀이를 하겠다면, 이 말은 부메랑이 되어 다음과 같이 지구촌을 회자할 테니까요.

"미국은 국민이 정부를 두려워한다. 그런데 한국 국민도 정부를 두려워한다.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삽질에서 시작된 한국 국민의 두려움은 의료민영화로 정점을 찍었다."

※ <하얀정글>은 대한민국 의료체계의 실상과 의료민영화가 불러 올 재앙을 분석한 텍스트로도 손색이 없습니다. 아직 극장 개봉 일정을 잡지 못해 공동체상영으로 함께 볼 수 있습니다. 개인이나 단체가 공동체 상영을 원할 경우 '블로그 하얀정글'에 있는 상영신청서를 작성해 공동체상영 팀에 보내면 관람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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