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9일 대통령선거에서 승리하려면 '스윙 보트'(Swing Vote)를 잡아야 한다고들 합니다. 스윙 보트란 딱히 누구를 찍을지 아직 결정하지 못했거나 바꿀 생각이 있는 이들을 가리킵니다. 지지하는 정당이나 후보가 없어 그때그때 정치상황과 이슈에 따라 지지 후보를 달리하는 사람들입니다.

한국사회에서 스윙 보트는 세대별로는 2030세대에, 이념적으로는 중도층이며, 정치적으로 무당파 부동층 유권자를 말합니다. 이들은 평소엔 정치와 담을 쌓은 듯 보이지만 어떤 계기만 주어지면 현실을 단호하게 뒤바꾸어 놓습니다. 그래서 총선이나 대선을 앞두고 여야가 힘의 균형 상태를 이루고 있거나 팽팽한 접전이 예상되는 경우 이들 스윙 보터의 주가는 주욱 올라갑니다.

그렇다면 이번 대선에서 이들의 '스윙' 한방으로 갑갑한 현실을 후련하게 날려버리고, 12월 19일 저녁에 소주 잔을 한껏 치켜들 수 있을까요? 실현 가능하다고 큰소리치는 영화가 있습니다. '한 표'의 중요성을 극명하게 보여주면서, 그 '한 표'가 미국의 차기 대통령을 결정하는 과정을 풍자와 해학으로 그려내는 정치영화 <스윙 보트>입니다.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면 속박은 반복됩니다"

 멀리가 학교에서 과제로 내준 투표의 중요성에 대해 교실에서 발표하고 있다. 매디슨 기자는 이 장면을 녹화해 총선거 당일 방송한다.

멀리가 학교에서 과제로 내준 투표의 중요성에 대해 교실에서 발표하고 있다. 매디슨 기자는 이 장면을 녹화해 총선거 당일 방송한다. ⓒ 터치스톤 픽처스


반(半) 백수건달 버드(케빈 코스트너)는 '또순이' 딸 멀리(매들린 캐롤)와 단둘이 삽니다. 눈치 빠른 아내는 싹수 노란 버드 곁을 진즉에 떠났습니다. 대통령 선거인단을 선출하는 총선거가 있는 날 아침. 멀리는 아빠에게 투표할 것을 신신당부하지만 버드는 "투표는 무슨? 개뼈다귀냐"며 콧방귀만 뀌어 댑니다. 급기야 멀리는 "아빠가 투표소에 오지 않으면 오늘 가출하고 말겠다"고 엄포를 놓고, 버드는 마지못해 약속합니다.

하지만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했던가. 버드는 그날부로 정리해고 당하고 술에 절어 장탄식을 늘어놓습니다. 그 시간 투표소에서 기다리던 멀리는 참관인이 졸고 있는 틈을 타 버드 대신 기표소에 들어가 투표합니다. 헌데 청소부가 전깃줄을 건드려 투표용지가 전자투표기에 물려 버리고, 멀리는 용지 윗부분만 찢은 채 급히 빠져나옵니다.

야심한 밤. 주 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들이 방문해 버드에게 투표가 무효가 됐다며 재투표를 통지합니다. 버드는 얼떨결에 성경에 손을 올려놓고 재투표와 함께 비밀엄수를 선서합니다. 버드의 투표 청원은 접수됐고, 10일 이내에 재투표를 하면서 버드와 멀리에게 세계의 이목이 쏠리는 희대의 사건이 터집니다.

사연인즉슨, 공화-민주 양당 대선후보의 개표가 끝난 49개 주에서 나란히 무승부를 기록한 것. 마지막 주 뉴멕시코에 배당된 선거인단 5석을 누가 가져가느냐에 따라 승패가 갈라지게 된 것입니다. 버드의 재투표가 5명 선거인단의 향방(승자독식)을 결정짓는 '최후의 한 표'로 등극(?)하면서 '한 표로 세상이 달라지는' 상상이 현실이 됩니다.

영화는 선거인단이 정부통령을 선출하는 미국의 대통령선거제를 모티브로 투표와 민주주의의 상관관계에 대해 적지 않은 성찰을 하게 합니다. 그리고 영화는 그 성찰의 메시지를 학교에서 내준 글짓기 과제 '투표는 왜 중요한가'를 발표하는 멀리를 통해 다음과 같이 함축합니다.

"세계의 모든 문명들은 같은 길을 따라왔습니다. 속박에서 자유로, 자유에서 번영으로, 번영에서 만족으로, 만족에서 무관심으로, 무관심에서 다시 속박으로. 우리가 이런 역사에서 벗어나려면 '순환고리'를 깨야 합니다.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면 반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누가 그랬어? 한 표로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고?

 미국 대통령을 결정짓는 ‘한 표’의 주인공으로 신원이 밝혀진 버드가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미국 대통령을 결정짓는 ‘한 표’의 주인공으로 신원이 밝혀진 버드가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 터치스톤 픽처스


영화는 초반부에 '투표에 임'하는 부녀의 태도를 대비시킵니다. 멀리에게 투표는 학교에서 배운 대로 '시민의 권리이고, 사회적 약속'입니다. 아빠를 대신해 우편으로 유권자등록을 하고, 아빠가 똑똑해 보이게 하려고 부모의 정치적 견해를 조사하는 설문지를 직접 작성하고, 자신의 소속정당은 양심적 병역기피라는 아빠를 무소속으로 규정합니다. 

반면 버드는 투표로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으며, 자기 뜻대로 될 것 같다는 기분만 들게 할 뿐이라는 평소의 소신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의 말처럼 "투표를 해도 보험료는 내지 못하고, 멀리가 아프면 또다시 피를 팔아야 하는 형편"은 개선되지 않았으니까요. 그에게 투표란 쓸 데라고는 쥐똥 대가리만큼도 없는 허튼 짓거리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헌데, 그런 버드에게 변화가 스며듭니다.

지역방송국 매디슨 기자에 의해 '한 표'의 주인공 버드의 존재가 알려지고,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뉴스의 초점이 됩니다. 안달이 난 곳은 공화-민주 양당 캠프. 그도 그럴 것이 '한 표'를 끌어오기만 하면 한쪽은 대통령을 연임할 수 있고, 다른 쪽은 백악관에 입성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때부터 양쪽 캠프는 버드가 사는 '깡촌' 커리 카운티에 진을 치고 사활이 걸린 '한 표'를 얻기 위해 희대의 구걸과 정치 쇼를 펼칩니다. 

정치 쇼의 대미는 역대 미국 대선에서 핫이슈가 되어 온 동성결혼과 낙태입니다. 매디슨 기자와 인터뷰에서 버드가 동성결혼에 찬성한다고 말하자 공화당은 동성결혼 찬성으로 공약을 수정하고, 생명존중론자(낙태반대)와 선택존중론자(낙태찬성) 중 어느 쪽이냐는 질문에 무슨 뜻인지도 모른 채 생명을 존중한다고 내뱉은 한 마디에 민주당은 낙태를 반대하는 공약을 발표하는 지경에 이릅니다.

영화는 별생각 없이 던지는 버드의 말 한마디에 대선 후보들이 '허수아비 춤'을 추는 장면을 통해 기성 정치에 대한 희화화와 함께 역설의 메시지를 적시합니다. 그것은 '한 표로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자포자기와의 절교선언입니다. 또한 유권자가 변하면 '그 놈'과 '그 놈'이 달리 보이고, '그 놈'을 달리 보면 후보도 덩달아 변하고, 후보가 변하면 정치판도 변할 수 있다는 '한 표'의 역할론이기도 합니다.

선거의 불변의 법칙은 더 많은 표를 얻은 후보가 승리한다는 것. 박빙의 승부를 펼치는 상황에서 '한 표'는 선거결과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말 그대로 '스윙 보트'입니다. 특히 버드의 한 표가 단순히 영화적 상상력에 머문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은 의미심장합니다. 실제로 1839년 미국 매사추세츠 주지사선거에서 에드워드 에버럿 주지사는 한 표 차이로 패배했고, 1923년 아돌프 히틀러는 한 표 차이로 나치당 당수로 당선됐습니다.

'한 표'가 역사를 바꾸었고, '한 표'가 곧 역사가 되었던 셈입니다.

대선 태풍의 핵으로 올라선 스윙 보트 '2030'

 멀리와 함께 전국 각지에서 온 갖가지 사연의 우편물을 보며 버드는 정치적 각성을 하기 시작하고 토론회 준비에 박차를 가한다.

멀리와 함께 전국 각지에서 온 갖가지 사연의 우편물을 보며 버드는 정치적 각성을 하기 시작하고 토론회 준비에 박차를 가한다. ⓒ 터치스톤 픽처스


영화는 '한 표'의 결정력과 함께 그 '한 표'를 어떻게 행사할 것인지로 클라이맥스에 도달합니다. 재투표일이 코앞으로 다가온 어느 날, 멀리는 아빠에게 양당 후보초청 토론회를 제안합니다. 그리고 토론회 아침 "버드가 자각한다는 건 어불성설로 광대 짓이나 하지 않으면 다행"이라는 TV 정치평론가의 비아냥거림을 뒤로 하고 버드는 전국에 생중계되는 토론회장으로 들어섭니다.

이윽고 꿈과 희망을 포기하고, 현실에 환멸을 느끼며, 무관심과 냉소로 일관해 왔던 버드의 진솔한 자기 고백이 시청자들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무릇 정치란,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켜 움직이는 것. 영화는 토론회를 전후로 '주인 된 권리'(주권)를 자각하며 변화하는 버드를 통해 유권자의 변화가 후보의 변화까지 촉발시키는 과정으로 치고 나가더니 마침내 화룡점정을 찍기에 이릅니다. 깡촌의 백수건달이 미국의 역사를 바꾸는 순간입니다.

영화는 버드가 어떤 선택을 하는지 보여주지 않습니다. 관객의 상상력으로 남겨 놓습니다. 대신 토론회가 끝나고 재투표를 하기 전 새로운 가치와 미래를 상징하는 딸 멀리와 환하게 웃음을 나누는 모습을 남길 뿐입니다. 과연 버드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요? 그리고 그의 선택은 우리의 상상과 일치할까요?

이 장면은 연말 대선을 앞둔 한국 정치에 많은 것을 시사합니다. 흔히 대선은 30:30:40 게임이라고 합니다. 여야가 30%의 고정지지표로 갈라지고 40%의 스윙 보트가 판을 결정해 왔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낡은 가치와 새로운 가치가 대립 충돌하고 있는 이번 대선의 생사여탈권은 이들 스윙 보트가 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들은 지난 선거에서 상반된 모습으로 그 위력을 십분 발휘했습니다.

먼저 지난 대통령 선거의 투표율을 봅시다. 대선 투표율은 1987년 89.2%로 최고점을 찍은 뒤 지속적으로 떨어지고 있습니다. 2002년 대선은 노무현-정몽준 후보 단일화 등으로 투표율이 70.8%였습니다. 2007년에는 이명박 후보의 일방적 승리가 예상되면서 63.0%까지 떨어졌습니다. 따라서 이번 대선 투표율은 70%를 넘어서기가 쉽지 않을 전망입니다. 더욱이 세대별 투표율 등을 고려해 판별분석을 하면 대선 결과는 예측불허입니다.

2030세대의 낮은 투표율에 비해 5060세대의 높은 투표율이라는 '투표율 거품'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세대별 투표율이 이번 대선의 결과를 좌우하는 최대 변수가 될 공산이 크다는 뜻입니다. 여기에 이번 대선에서 처음으로 5060세대(40.0%)의 연령대별 유권자 수가 2030세대(38.2%)를 상회했다는 것은 세대별 투표율의 위력을 짐작케 합니다.

이러한 세대별 투표율은 지난 두 차례의 대선에서 진검승부를 펼친 바 있습니다. 2002년 대선에서 2030세대와 40대가 대거 투표장에 나간 결과 노무현 후보가 당선됐습니다. 반면 2007년 대선에서는 2030세대가 등을 돌렸고, 투표율은 평균 50%를 넘어서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이명박 후보가 당선됐습니다.

그러나 지난해 서울시장 보선을 앞두고 2030세대는 귀환했습니다. 20대의 69%, 30대의 76% 그리고 40대의 67%가 작심하고 박원순을 선택했습니다. 그 결과 박원순 후보가 서울시장이 됐습니다. 그야말로 스윙 보트로서 2030세대의 '골' 결정력을 한껏 보여준 셈입니다. 2002년의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다시금 귀환한 이들은 세대구분의 틀을 걷어차고 한국 정치의 태풍의 핵으로 떠오를 채비를 끝냈음을 당당히 선포했던 것입니다. 

2030을 위한 찬가 '리멤버 2002, 어게인 2011'

투표하지 않으면 '대표'되지 않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투표하지 않는 한 자신의 삶을 개선할 수 없으며, 선거에 참여하지 않는 한 그 누구도 대변해 주지도, 대표하지도 않는다고 합니다. 민주주의 질을 규정하는 것은 투표 즉, '한 표'를 반드시 행사하는 것에 있다는 뜻입니다.

2012년 대한민국의 민낯은 극심한 빈부격차와 청년실업 등으로 인한 좌절과 분노가 폭발 일보직전입니다. 이제 그 민낯을 깨끗이 씻어내고 새로운 희망을 합창하기 위한 새로운 저항이 카운트다운에 들어갔습니다. 정직과 신뢰를 기반으로, 위로와 격려의 소통을 중심으로, 미래 비전을 지향하는 '한 표' '한 표'가 만나 새로운 물길을 만들고, 새로운 역사를 기록하려고 합니다. 하여 우리는 그것을 2030을 위한 찬가, '리멤버 2002, 어게인 2011'이라고 명명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다큐멘터리 'MB의 추억'에서 차용한 KBS TV 정치드라마 <프레지던트>에서 대통령 후보 장일준(최수종)이 2030세대들을 향해 절규하듯 내뱉는 다음의 말은 '12월 19일의 역사'를 가르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낡고 음습한 과거로 되돌아 갈 것인가, 아니면 미래를 향해 힘찬 발걸음을 내디딜 것인가를 결정하는 우리의 행동지침에 다름 아닙니다.

"정치인들은 표를 먹고 삽니다. 세상에 어느 정치인이 표도 주지 않는 사람을 위해 발로 뜁니까. 다들 말은 번지르르하게 해댑니다. 여러분들도 귀가 닳도록 들었죠? 청년실업 해소, 청년 일자리 몇 십 만개 창출. 그러나 실제로는 어떻습니까. 왜 그럴까요? 여러분들이 정치를 혐오하기 때문입니다. 투표 안 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못 배우고 나이든 어르신들이 지팡이 짚고 버스 타고 읍내에 나와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할 때, 지성인을 자처하는 여러분들은 애인 팔짱 끼고 산으로 강으로 놀러 가지 않았습니까. 영어사전은 종이책 찢어먹으면서 기껏해야 8쪽도 안 되는 손바닥만한 선거공보에 눈길조차 주지 않았습니다. 제 말 틀렸습니까, 여러분? 투표하십시오! 청년 실업자들의 분노와 서러움을 표, 오로지 표로서 나 같은 정치인에게 똑똑히 보여주십시오!"

스윙 보트 2030세대 세대별 투표율 대통령선거 투표 참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