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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권력 '사찰령', '불재법' 등 각종 악법으로 불교계 억압

 

봉은사 명진 스님이 봉은사 직영과 관련해 자승 조계종 총무원장과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총무에 대한 비판은 물론 청와대 개입설까지 제기함으로써 파문이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명진 스님은 11일 봉은사에서 열린 일요법회에서 지난 김영국 전 조계종 총무원 종책특보가 3월 23일 안상수 총무의 '좌파주지'발언이 사실이라고 발표하기 전에 이동관 청와대 홍보수석이 김 전 특보에게 기자회견을 하지 말라고 압력을 넣었으며 총무원 기획실장 원담 스님은 봉은사 직영사찰 지정 직전에 청와대를 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명진 스님은 또 2007년 대선기간동안 자승 총무원장이 중앙종회의장 자격으로 이명박 후보의 당선을 기원했으며 총무원장 당선 후에는 이대통령과 단독으로 만나 봉은사 문제에 대한 의견을 나누었을 것이라며 자승 원장에 대해서도 비판수위를 높였다. 이 같은 발언의 배경에는 23일 불교단체들이 주축이 되어 열리는 총무원과 봉은사 측의 토론회가 '직영지정 철회'나 책임 있는 인사의 참여가 아닌 자칫 형식적인 토론회가 될 수 있다는 판단 하에 발언 강도를 높인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봉은사 직영사찰을 둘러싼 이 같은 갈등의 근본 원인은 불교계에 오랫동안 내재되어 있는 정치권력과의 부적절한 관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개신교나 천주교도 권력과 여러 방식으로 관계를 맺고 있지만 불교계만큼 총무원장을 비롯한 종단 수뇌부가 자주 구설수에 오르는 경우는 드물다. 그것은 일제 강점이후 지금까지 불교가 완전한 자주성을 획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근본 원인은 국가권력에 있다. 국가지정문화재의 60%를 차지하고 있는 전국 사찰들을 각종 악법으로 묶어 놓고 당연한 재정지원도 시혜적으로 베풀면서 불교계를 옥죄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일제와 역대 정권은 사찰령·불교재산관리법(불재법)을 통해 불교를 통제하고 종교 자치권을 박탈했다. 1911년 일제가 제정한 사찰령에는 사찰의 이전, 합병, 폐지와 같은 중요한 일이 있을 때나 사찰의 주요 재산을 처분한 경우, 사찰의 중요 법규를 정할 때 조선총독의 허가를 얻어야 하고, 사찰을 통상의 목적 이외에 사용할 때 지방장관의 허가를 받도록 되어 있었다. 또한 총무원장과 교구본사주지의 임면권을 총독부와 지방장관이 쥐도록 했다.

 

쿠테타로 집권한 박정희 정권도 불교계를 장악하기 위해 1962년 불교단체의 종류 및 문화부 등록, 주지 또는 대표자 등록, 단체의 대표권 및 재산관리권 등을 규제하는 불재법을 제정, 공포했다. 불재법에는 사찰 경내 공사들의 경우 정부관청의 허가를 받도록 했으며 매년 재산목록을 작성해 관할구청에 제출하도록 의무화했다.

 

또한 불교단체가 불재법을 위반하거나 분규로 인해 법의 목적달성이 어려울 경우 당시 문화공보부(문공부)장관이 재산관리인을 임명 또는 해임하도록 했다. 개신교나 천주교의 경우 내부적으로 어떤 문제가 있어도 인사문제 등을 자체적으로 해결하고 있는 것과 비교해볼 때 지나친 간섭이었던 것이다.

 

불재법은 종교계의 국가보안법과 같은 것으로 국가권력이 임의 또는 자의적으로 사법권을 휘두르면서 불교계를 예속화시키는 도구였다. 또한 사소한 분쟁에도 무리하게 공권력을 동원해 정권에 줄을 선 정치승이나 기득권 세력을 비호했다. 이러한 정치권력의 자의적인 법집행과 공권력 투입은 한국불교로 하여금 정치권력에 순응하게 만들었다.

 

사찰령과 불교계의 요청으로 1987년 민주화 투쟁과정에서 제정된 전통사찰보존법(전사법) 역시 많이 개선되었다고 하지만 전사법 역시 정권의 자의적 판단에 의해 법과 예산집행이 가능하도록 되어있다. 특히 불교문화재 보수 및 정비, 템플스테이 등 문화사업에 대한 국고 지원은 전통문화보전과 관광객 유치를 위해 필요한 것인데도 정부는 여전히 불교계에 대한 선물이나 시혜로 여기고 있다.

 

불교계 역시 고질적인 문중 또는 파벌 간의 다툼과 일부 승려의 정치권과의 야합, 사찰 봉헌금 및 정부 보조금 횡령 같은 비리 등으로 현안에 대해 힘 있게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그마나 전임 지관 총무원장의 경우는 매우 보수적인 인물이었음에도 정부의 개신교 일변도 정책을 강력하게 비판하고 대규모 반정부 집회 개최,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에 대한 정권 책임론 제기와 추모 정국을 주도하면서 현 정부와 불편한 관계를 맺기도 했다.

 

총무원, 봉은사 직영철회 등 자주성 회복위한 조치 취해야

 

현 자승 원장 체제가 들어선 후 불교계가 또다시 권력과의 문제로 구설수에 오르는 것은  자승 원장이 자초한 면이 없지 않다. 그는 근래에 당선된 총무원장으로서는 매우 젊은 편이지만 조계종 내 주요 종책모임(일종의 파벌)이 거의 만장일치로 지지할 만큼 정치력과 친화력이 탁월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총무원장 당선 후 안상수 대표 등과 만나 템플스테이 예산확대 등 불교계 현안을 풀어내면서 대내외적으로 입지를 구축하고자 했지만 안 대표의 발언내용이 공개되면서 모양새가 구겨질 대로 구겨지고 있다. 

 

이번 봉은사 사태가 불거지면서 총무원을 비롯한 불교계 주류에서는 명진 스님의 발언이 법정 스님 입적을 전후해 불교계에 우호적인 여론이 차갑게 식고 신정아씨 사태 때와 비슷하게 불교계가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며 사태의 모든 원인을 명진 스님의 개인적인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몰아세우고 있다. 특히 불교계 일부 개혁적인 인사들조차 명진 스님의 행동이 지나치며 너무 앞서가고 있다는 비판을 하고 있다.

 

하지만 명진 스님의 발언에 일부 과장된 면이 있다고는 하지만 불교계가 풀어야할 숙제를  근본적으로 문제제기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핵심 당사자인 자승 원장은 여전히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는 등 불교계 최고수장으로서는 납득하기 어려운 행동을 하고 있다. 총무원 측은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는데 일일이 발언하는 것은 종교계 지도자로서의 모습이 아니라며 자승 원장을 보호하고 있지만 사실 여부조차 확인해주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의혹을 키우고 있다.    

  

이러한 자승 원장의 무책임한 행동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난 8일 서울 장충동 만해NGO센터에서 불교의 자주성을 회복하기 위해 '(가칭)불교자주실천운동본부'를 추진하고 있는 인사들은 자승 스님 원장의 참회를 촉구하고 나섰다. 이들은 봉은사 사태로 종단뿐 아니라 많은 불자들이 상처를 입었음에도 종단을 대표하는 총무원장이 책임 있는 발언을 하지 않고 있다면서 자승 원장의 참회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조계종내 개혁승려들의 모임인 청정승가를 위한 대중결사(의장 진오스님) 역시 9일 오전 안상수 대표의 공직 사퇴를 촉구하는 의견서를 전달하기 위해 서울 여의도 한나라 당사를 방문한 자리에서 조계종단 자주성과 청정성 회복을 촉구했다. 이들은 기자회견에서 '한나라당과 안상수 원내대표께 보내는 글'을 통해 ▲ 안상수 대표의 공식사과 및 공직 사퇴 ▲ 한나라당과 이명박 정부의 종교편향 재발방지책 마련을 요구하기도 했다. 

 

대중결사 소속 스님들은 안상수 대표가 "정교분리의 원칙을 훼손한 발언을 했음에도 이를 부정하고 무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며 "더구나 이 사안의 본질을 조계종단 내부의 문제로 변질시키는 행위는 전체 불교계에 대한 도발과 다를 바 없다"고 안 대표를 강력하게 성토했다. 대중결사측은 향후 대응방안으로 신문 광고와 사찰 플래카드 게시, 6.2 지방선거에서의 한나라당 낙선운동 등을 고려하는 등 불교의 자주성 회복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불교의 자주성 문제는 불교계의 사활이 걸린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이번 사태는 불교계의 오랜 구습이 드러난 것이나 다름없다. 자승 원장은 사태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 봉은사에 대한 직영사찰을 철회해야 한다. 적법한 절차를 거쳤다고 주장하지만 여러 정황과 실제 처리과정을 보면 정치권의 외압의혹이 사실일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명진 스님이 직영사찰과 관련해 안상수 대표는 물론 청와대 개입설까지 제기하는 상황이라면 사실관계를 떠나 불교계 전체를 위해서라도 명진 스님과 직접 만나 사태해결에 적극 나서야 한다. 

 

자승 원장이 현 사태를 방기하고 뒤로 물러나면 날수록 불교계가 입는 상처는 더욱 커질 수 밖에 없다. 자타가 공인하는 정치력과 친화력을 갖추고 화합과 소통을 강조한 자승 원장이 불교종단을 대표할 수 있는 인물인지는 이번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지에 달렸다. 그것은 결과적으로 불교계의 오랜 과제인 자주성 회복과도 관련이 있다. 자승 원장의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태그:#명진, #봉은사, #조계종, #청와대, #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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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모.함석헌 선생을 기리는 씨알재단에서 홍보위원장을 맡고 있습니다. 씨알정신을 선양하고 시민사회발전에 기여하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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