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축구협회(KFA)에 조중연 신임 회장이 취임하면서 어느 정도 예상했던 일이지만, 이렇게 빨리 뜬금없는 소식을 들을 줄은 몰랐다. 그것도 나라 밖 축구팬들에게까지 영향을 끼칠 정도로 말이다.

조중연 신임 회장은 3일, 기자들 앞에서 "(2018년 또는 2022년) 월드컵 유치 신청은 그 자체만으로도 미래의 희망을 살려가는 일이고 이 일이 곧 국민에게 기쁨을 줄 수 있을 것"이라는 말로 유치 신청의 의의를 설명했다고 한다. 정말로 월드컵 유치 그 자체만으로도 미래의 희망을 살리는 일인가? 정말로 국민들이 기뻐할 일일까?

한국에는 'FC 코리아'만 있나?

지난 2002한일월드컵 한국-독일 준결승 당시 붉은악마의 카드섹션 "꿈★은 이루어진다" 지난 2002한일월드컵 한국-독일 준결승 당시 붉은악마의 카드섹션 "꿈★은 이루어진다"

지난 2002한일월드컵 한국-독일 준결승 당시 붉은악마의 카드섹션 "꿈★은 이루어진다" ⓒ 오마이뉴스 김시연


일본 축구팬들은 두 가지 충격적인 소식을 접했다. 하나는 지난 달 28일 열린 바레인과의 2011아시안컵 예선 A그룹 두 번째 경기에서 충격적인 0-1 패배를 당했다는 소식이었고, 다른 하나는 옆 나라 한국이 갑작스럽게 월드컵 단독 개최를 신청했다는 소식일 것이다.

특히, 3일 알려진 한국의 월드컵 개최 신청 사실에 2002월드컵 공동 개최국인 일본의 축구팬들은 적잖이 실망하는 눈치다. 한국이 또다시 일본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사실보다 더 주목할 일은 일본 대표팀이 0-1로 진 그 경기가 일본 현지에 생중계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일본 시각으로 이른 새벽에 벌어지는 경기여서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축구를 바라보는 시선이 이렇게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냥 넘길 일만은 아니다.

아마 이 일이 우리나라에서 일어났다고 가정해보자. 국가대표팀 성적에 집착하는 일부 축구팬들은 방송국에 집중포화를 퍼부었을 것이다. 그만큼 우리나라의 축구 토양 상당 부분은 'FC 코리아', 즉 한국 대표팀이 차지하고 있다.

2002년 6월 29일 대구월드컵경기장, 우리 대표팀의 2002월드컵 마지막 경기인 터키와의 3·4위전이 벌어졌다. 승패와 상관없이 경기 직전 붉은 악마가 감동적인 카드 섹션을 보여주었다. 바로 'CU앳K리그('K리그에서 보자'란 뜻)'라는 문구였다. 월드컵 이후 K리그가 반짝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그 효과는 미미했고 인기를 이어나가지 못했다. 한 마디로 그 나라의 축구를 대변하는 특산품 '리그'의 가치를 높이지 못했다는 것이다.

월드컵이 끝난 뒤 2년 주기로 K리그 팬 입장에서 결코 잊을 수 없는 충격적인 사건이 터진다. 2004년에는 안양 LG 치타스가 서울로 연고지를 옮기는 '야반도주'를 감행했고, 2006년에는 부천 SK가 멀리 제주도로 떠나버렸다. 그나마 부천에는 '부천 FC 1995'가 만들어져서 3부 리그 격인 K3리그에서 알차게 성장하고 있지만 사랑하는 팀을 빼앗긴 팬들의 가슴에 생긴 상처와 바꿀 수는 없는 일이다.

진정한 의미에서 'CU앳K리그'의 가치가 실현된 상황이라면 약 20년만의 재도전에 약간의 지지를 보낼 수 있겠다. 그러나 그 부분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또 다시 FC 코리아만을 위해 힘을 모으자고 하는 제안에는 동의할 수 없다.

월드컵 유치 신청, '유치(幼稚)'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부천 FC 1995(왼쪽 흰 유니폼)와 옛 부천 FC(오른쪽 붉은 유니폼) 선수들의 경기 직전 기념 촬영

부천 FC 1995(왼쪽 흰 유니폼)와 옛 부천 FC(오른쪽 붉은 유니폼) 선수들이 2008년 12월 26일 부천에서 자선 경기를 펼쳤다. 부천 FC는 2006년 갑자기 연고지를 제주도로 옮겨 팬들에게 큰 상처를 줬다. ⓒ 심재철


우선, 리그의 틀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나라에서 월드컵이 또 개최되어서는 안 된다. 강원 FC가 K리그의 새내기로 들어와 이제 15개의 프로축구 구단이 꾸려졌지만 아직 팀 숫자는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옆 나라 일본은 벌써부터 실시하고 있는 승강제(1부↔2부)도 언제부터 가시화될지 알 수도 없는 일이다. 내셔널리그 우승팀에게 주어진 K 리그 승격권을 고양 국민은행이 포기한 사례가 있을 정도다. 부끄러운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2018년이나 2022년 월드컵 유치 신청이라는 말을 들으니 자꾸 '유치(幼稚)'라는 단어가 떠오를 뿐이다. 협회장을 포함하여 저 높은 곳에 있는 분들은 으리으리한 경기장만 여럿 갖춰놓으면 다 될 것처럼 생각하고 있는 것 아닐까? 언론에서는 대한축구협회가 2018·2022년 월드컵 축구대회 단독 유치 의사를 전격 발표한 것과 관련해 FIFA 부회장인 정몽준 대한축구협회 명예회장(한나라당 의원)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라는 관측까지 나오고 있다.

인천시의 경우만 봐도 우리 사회의 과시욕을 잘 알 수 있다. 멀쩡한 메인 스타디움인 '문학경기장'을 두고도 아시안게임 주경기장 신축 결정이 났다고 좋아하는 펼침막들이 거리를 뒤덮고 있다. 2014 아시안게임 유치 결정이 났을 때보다 지금이 더 난리다. 대회를 치르고 나면 애물단지로 전락해버릴 일은 안중에도 없는 듯하다. 더 멀리 내다보고 내실을 꾀할 생각들을 했으면 좋겠다.

인천의 시민구단인 인천 유나이티드 FC를 진정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처럼 큰 경기장을 바라지 않는다. 조금 더뎌서 답답하지만 그래도 숭의종합경기장 터에서 공사를 시작한 아담한 축구전용구장이 하루 빨리 완공되기를 바랄 뿐이다. 'FC 코리아'보다 그 리그를 빛내는 나의 팀과 더 가깝게 호흡할 수 있는 것을 바란다. 여기서 축구팬들이 정말로 원하는 가치를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월드컵 말고도 축구협회가 할 일은 많다

 가락고등학교 축구부 선수들이 훈련중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다. 가락고등학교는 선수들이 운동과 공부를 병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평상시에는 정규수업이 끝난 후 훈련을 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가락고등학교는 올해 전국대회에서 8강에 오르는 성적을 거뒀다.

현재 대한축구협회가 해야할 일은 '지속 가능한 축구 문화 정착'이다. 월드컵보다 유소년 축구에 더 신경을 써야할 때다. 사진은 가락고등학교 축구부 선수들. 훈련 중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다. ⓒ 이승훈


K리그가 더 이상 '그들만의 리그' 라는 비아냥을 듣지 않게 하는 것, 새로운 축구협회장이 해결해야 할 매우 중요한 사안이다. 현 상황으로 보아 이 과제만으로도 신임 회장의 임기(4년)는 모자랄 판이다. 이런 형편에서 과시하듯 발표한 월드컵 단독 개최 신청 소식은 가뜩이나 모자란, 그리고 수준 낮은 협회(프로연맹 포함) 행정력의 소모전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높다.

축구인들과 축구팬 모두가 공감하는 '미래의 희망'이 정말 월드컵 유치일까? 그것이 아니라 보다 많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지속 가능한 축구 문화 정착이 아닐까?

대한축구협회가 주관하는 가장 중요한 대회인 FA(축구협회)컵 전국축구선수권대회의 지난 해 마무리 일정은 협회의 무능함을 여실히 보여준다. 팬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평일 낮 경기를 강행하는 등 일방 행정을 고수하며 그 가치를 떨어뜨리는 일을 벌여왔던 것을 생각하면 도무지 믿을 수 없는 곳이 축구협회다. 거기서 월드컵을 또 유치하겠단다. 풀뿌리 축구 문화에 대한 고민은 안중에도 없고 겉으로 화려한 것만 추구하면 다 된다는 말로만 들린다.

그러면서 올해부터 시행하기로 한 '초-중-고교 주말리그제'는 어떻게 정착시킬지 의문이다. 그 바람직한 취지를 생각한다면 조금 더디더라도 그 가치를 소중하게, 그리고 더 많이 나누겠다는 뜻을 펼쳐야 한다. 지금 우리 축구협회가 온 힘을 기울여야 할 일은 축구의 꿈을 키우고 있는 어린이들을 위해서라도 주말리그제의 온전하면서도 공평무사한 시행이다.

조 회장은 임기 안에 이 부분만 잘 실현해도 많은 축구인들과 팬들로부터 진심어린 박수를 받고 물러날 수 있을 것이다.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월드컵 유치에 성공했다 치자. 당장은 월드컵 유치 성공이라는 말이 조 회장의 명함에 굵게 새겨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축구의 역사가 더 오래 지난 뒤 사람들로부터 진정한 축구인으로 기억되기 위해서는 지금의 안목과 열정을 더 낮은 곳으로 돌려야 한다. 그리고 축구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또 다른 가치를 찾아야 한다. 그 좋은 기회가 바로 2009년 올해부터이지 않은가?

차라리 '2082년 월드컵'은 어떨까?

축구팬의 한 사람으로서 한 생애를 살며 두 번의 월드컵을 눈앞에서 즐길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이다. 하지만 그것이 허황된 꿈처럼 포장되어 펼쳐지는 것은 결코 원하지 않는다. 다른 종목의 선수를 위해 축구장에 물을 채우거나 빙판을 만들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을 필요가 없을 정도로 축구 그 자체만으로도 소중한 가치를 창출했으면 좋겠다.

올림픽 개최를 염원하는 평창군민들이나 부산시민들의 뜻 때문에도 2018년이나 2022년을 겨냥한 개최 의지는 조중연 회장과 축구협회의 욕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정말로 월드컵과 축구의 가치를 생각한다면 2082년쯤이 어떨까? 1983년 출범한 한국프로축구 100년 역사를 기념하기 위한 이벤트로 적절하지 않을까? 월드컵과 축구의 가치가 그 때까지 살아있을지 의문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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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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