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날 때면 '진짜' 삽질을 하는 양미숙은 이렇게 외친다. "사람이 그렇게 이상한 짓을 할 때는 다 이유가 있는 거 아니겠어요?"

화가 날 때면 '진짜' 삽질을 하는 양미숙은 이렇게 외친다. "사람이 그렇게 이상한 짓을 할 때는 다 이유가 있는 거 아니겠어요?" ⓒ 빅하우스



난 도대체 왜 이렇게 생겨먹은 걸까?

내 삶은 하루하루가 '삽질'의 연속이다. 몇 번 가본 길도 발이 부르트도록 헤매고 돌아다니는 건 기본이고, 만날 부딪히고 넘어져서 집에 돌아와 보면 허벅지에는 알 수 없는 멍이 시퍼렇게 나 있기가 일쑤다.

접질린 지 3주나 되어가는 나의 왼쪽 발목은 그 부분에 연속타로 다시 삔 덕에 나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19일만 해도 그렇다. 몇주 전부터 예정되어 있던 산행에 가고 싶어서 몇 명을 수소문한 끝에 아르바이트 대타를 구하고, 정말 땡겼던 술자리도 거부한 채 아르바이트 마치자마자 집으로 달려와(그래봤자 새벽 2시지만) 잠을 청했건만, 늦잠을 자는 바람에 서울에서 떠나는 버스를 타지도 못했다.

산행 한번 못 간 게 뭐 그렇게 대수일까마는, 나는 내 인생이 한심하고 서러워서 아침부터 청승맞게 펑펑 울어댔다. 왜 내 인생만 이렇게 꼬이고 꼬여서 맘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는 걸까?

외모도 행동도 '진짜 삽질' 인생, 미쓰 홍당무

 주인공 양미숙의 모습이다. 예쁜 배우 공효진을 저렇게 변신시킬 수 있다니 놀라울 뿐이다.

주인공 양미숙의 모습이다. 예쁜 배우 공효진을 저렇게 변신시킬 수 있다니 놀라울 뿐이다. ⓒ 빅하우스

영화 <미쓰 홍당무>에도 나 못지않은 '삽질의 대마왕'이 나온다. 미안하지만 외모도 진짜 삽질이다. 패셔너블한 배우 공효진(극중 양미숙)은 이 영화를 위해 조금도 아끼지 않고 철저하게 망가졌다.

긴장하면 새빨개지는 얼굴, 지하철 바닥에 며칠 누워있어도 별로 어색하지 않을 부스스한 머리, 종아리까지 내려오는 촌스러운 코트. 거기에 말투는 어찌나 속사포 같은지 듣는 사람의 신경까지 곤두설 정도다.

거기에 착각은 또 얼마나 심한지, 지지난해 회식 때 택시 안에서 짝사랑하는 서종철 선생님이 단지 귓불 한 번 만졌다고 "그땐 우리 둘 다 진심이었다"며 김치국을 그냥 양동이채 벌컥벌컥 마시고 있는 중이다.

그래도 "남자들의 행동에는 아무 이유가 없다" "남자는 자신만의 동굴을 가지고 싶어 한다" 등의 이론은 정말 달달 외웠다.

하지만 실상이 그런가? '여자는 자고로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는 그녀는 밤마다 전화를 걸어서 서종철 선생님을 귀찮게 만들고, '니가 싫다'고 노골적으로 표현하는 남자의 표정도 읽지 못한다.

이것만으로도 이놈의 인생이 역경 투성이가 될 것이 뻔한데, 강력한 라이벌까지 등장한다. 같은 학교의 러시아어 선생님인 이유리(황우슬혜 분). "전 잘 모르겠는데요. 자꾸만 선생님들에게 전화가 와요"라며, 순진한 척 하는 건지 멍청한 건지 백치미를 폴폴 풍기는 아리따운 이 여성은 뭇 남성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다.

모든 남자의 사랑을 독차지하면 거기서 만족해야지, 하필이면 양미숙이 짝사랑하는 서종철 선생님의 사랑까지 받고 있는 거다. 이미 이유리 선생님에게 밀려 자신의 전공도 아닌 영어를 가르치게 된 양미숙의 분노 수치는 폭발 일보직전이다.

그래서 미쓰 홍당무 여사는 또 하나의 거대한 삽질을 준비하게 된다. 그것도 전따(전교 왕따)인 서종철의 딸 서종희(서우 분)와 함께 말이다.

전따(서종희)와 전따 애인(양미숙)이 쌍으로 펼치는 이 소동극은 무척이나 재미있다. 특히 둘이서 이유리 선생님과 '음란 채팅'을 하는 장면은 압권이다. 요 부분 때문에 아마도 청소년 관람 불가 등급을 받은 것 같은데 야하다기보다는 발칙하다.

박찬욱 감독이 제작하고 <잘돼가? 무엇이든>이라는 단편으로 주목받은 이경미 감독의 첫번째 장편영화다.

<추격자>이후로 올해 최고의 데뷔작이라고 치켜세우는 게 이해가 되는 독특한 영화. 이동진 기자가 <씨네21>에서 평한 "우주에서 날아온 놀라운 코미디"인 <미쓰 홍당무>는 그 속의 등장인물들이 나 좀 봐달라고 외치며, 팔딱팔딱 살아 숨쉬고 있다.

보는 내내 나는 웃으면서 울었고, 울면서 웃었다. 하는 일마다 삽질이지만 "원래 세상은 공평하지 않아, 그래서 우리 같은 사람들은 더 열심히 살아야 해"라며 잠도 안 자고 먹는 것도 잊은 채 고군분투하는 그녀의 모습이 짠하게 다가왔다.

"우리 같은 사람은 더 열심히 살아야 해"

나의 어리버리함이 싫어서 진지하게 "나는 왜?"에 대해서 고민한 적이 있었다. 나는 왜 어리버리할까. 난 왜 똑 부러지지 못할까.

주위 사람들에게도 물어봤다. 그랬더니 모두 이구동성으로 한다는 말이 "넌 원래부터 그렇다"는 거였다. 그게 네 성격이니 결코 바꾸기가 쉽지 않겠다는 거였다.

 <미쓰 홍당무> 포스터. 주인공 양미숙은 실제로 땅을 파고, 땅 속에 굴러 떨어지기도 한다.

<미쓰 홍당무> 포스터. 주인공 양미숙은 실제로 땅을 파고, 땅 속에 굴러 떨어지기도 한다. ⓒ 빅하우스


그렇다는데 어쩌겠는가. 난 의도를 하고 이렇게 살고 있는 게 아니라 자연스러운 나의 행동의 결과가 이렇게 나오는 것이다.

홍당무 여사도 나도 세상에서 3.9%정도는 모자란 삶이지만 그래서 더 재미있고, 그래서 더 열심히 살아가야 하는 것 같다. 

인간은 자기가 실수하는 줄 알면서도, 잘못 살고 있는 줄 알면서도 아등바등 열심히 살아보려고 노력한다. 누군가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없어서 세상은 재미있다"라고 말했던가?

결코 뻔하지 않게 웃기는 코미디 영화. 그러면서도 코 끝이 시큰해지며 웃으면서도 울게 되는 영화 <미쓰 홍당무>. 그래, 난 니가 참 맘에 든다.

미쓰 홍당무 공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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