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크라 영화에 대해서 진지하게 자기 생각을 건네는 씨네크라

▲ 씨네크라 영화에 대해서 진지하게 자기 생각을 건네는 씨네크라 ⓒ 장석진


영화를 나름 많이 보고 안다고 생각했다. 건방떨고 있는 내게 동생이 한마디 한다. "이 리뷰 봐봐." 그것은 씨네크라(본명 하건일)가 네이버에 올린 <살인의 추억>(2003년, 감독 봉준호) 리뷰였다. 딛고 있던 땅이 꺼진 기분이었다. 이럴 수가, 영화를 이렇게 깊게 볼 수 있구나 감탄을 하며 몇 시간 동안 그가 쓴 리뷰를 보고 또 봤다.

그의 <살인의 추억> 리뷰 같은 경우는 7월 5일 현재, 조회수 5만1393건, 추천수 242건을 기록했으며 '꿈보다 해몽'이란 댓글도 있지만 아이디 goldboy07님의 댓글 "정말 내가 영화 볼 땐 그냥 영화 줄거리의 잔재미만 보면서 내용은 간단하게만 생각했는데 이 글 꼼꼼히 읽어보니까 그냥 반성하고 싶고 철학공부의 필요성을 알 것 같아요’ 같이 대부분 감탄하는 댓글이 달렸다. 심지어 아이디 tlagustnfl님은 "감독님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되지 말입니다" 라며 봉준호 감독이 직접 올린 분석이라는 댓글도 달았다.

그의 수많은 분석 중에 하나만 소개하면, 송강호가 용의자를 찾는 장면에서 육사를 언급하고 이어서 범인은 ‘빽대가리’일 거라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면서 ‘대머리’ 전두환 전 대통령의 사진을 보여준다. 물론 전두환 전 대통령 사진은 영화를 통틀어 이때 딱 한 번 이 장면에만 등장한다. 이 얼마나 기가 막힌 비유인가?
(참고 - http://blog.naver.com/melt21/140038982804 )

전두환 사진이 나오는 장면 송강호는 범인을 추측하면서 '빽대가리' 일거라고 말을 한다. 이 때 카메라에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사진이 보인다. 씨네크라 리뷰의 스틸샷

▲ 전두환 사진이 나오는 장면 송강호는 범인을 추측하면서 '빽대가리' 일거라고 말을 한다. 이 때 카메라에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사진이 보인다. 씨네크라 리뷰의 스틸샷 ⓒ 씨네크라


그의 블로그를 드나들면서 키운 호감은 궁금증을 키웠고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서 만남을 요청하였다. 처음에는 쑥스러워했지만 질긴 요청에 승낙을 받았다. 7월 3일 목요일 저녁 인사동에서 만나 그의 생각과 영화 분석하는 방법을 들어보았다. 숨겨진 영화 분석의 보석, 씨네크라와 함께한 유쾌하고 진지한 시간으로 초대한다.

- 영화 관련 일을 하시는 거 같지는 않은데 어떻게 이렇게 꼼꼼한 영화 분석을 할 수 있죠?
"저는 서비스업을 하는 일반인이에요. 영화는 특별한 관심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보통 사람들이 그렇듯이 할리우드 영화 좋아했고 심심할 때 시간 때우기 용으로 봤었죠."

봉준호, 건강한 문제제기하는 감독

- 그럼 어떻게 정치철학 맥락에서 분석한 리뷰를 쓰게 되셨는지요?
"봉준호 감독의 <플란더스의 개>(2000년)를 보는데 첫 장면부터 깜짝 놀랐어요. 영화 첫 장면이 배두나가 신문 간판대의 황색언론들을 지켜보는 건데 롱테이크로 잡더라고요. ‘아,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다르구나, 내가 <살인의 추억>을 잘 못 봤구나’라고 느꼈죠. 그리고 <괴물>(2006년)을 봤는데 ‘봉준호가 우리나라 현존 감독 가운데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건강한 문제제기를 하는구나’ 라고 느껴지더라고요.

<괴물> 감상을 주변에 해줬더니 독특하다고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는 걸 보는 거 같다고 얘기하더라고요. 다른 영화도 좀 평을 해달라고 해서 <살인의 추억>을 다시 보고 싶은 참에 다시 보고 글을 쓴 거예요. 제가 해석한 게 재미있으니까 후배가 봉준호 감독에게 이메일로 보내야 되지 않느냐고 후배가 그러더라고요. 그냥 웃고 넘어갔는데 인터넷에 올리니까 댓글도 올라오고 동감도 해주시더라고요.

리뷰를 조금 더 써볼까 생각이 들어 영화를 더 알려고 영화발전사나 장르에 대해 공부를 하고 있어요. 영화평론을 잘 보는 편은 아닌데 영화만큼이나 마음에 안 드는 평론이 있더라고요. 그거에 반박도 하고 싶은 욕심도 생기고 그 이후로 1년간 주의 깊게 영화를 보고 글을 써보려고 했어요. 서울아트시네마 꾸준히 가게 되었고 거장 영화들 보는데 처음에 졸려서 혼났어요.(웃음)"

씨네크라 영화에 대해 열중해서 얘기를 해주는 씨네크라

▲ 씨네크라 영화에 대해 열중해서 얘기를 해주는 씨네크라 ⓒ 이인


'줄거리를 되새기고 컷과 컷의 연결을 봐라'

- 세세한 부분을 어떻게 다 보는지 궁금해 하는 댓글이 많은데. 영화를 어떻게 보고 분석하는지요?
"제가 영화 보는 방법은 두 가지예요. 먼저,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줄거리를 되새기는 거예요. 감독이 무슨 얘기를 하고 싶어서 이 영화를 만들었는지 그걸 파악하는 것이에요. 그러면 영화를 보면서 발견하지 못한 세세한 부분이 드러나게 되죠. 영화를 몇 번씩 보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한 번을 보더라도 영화 주제와 흐름을 생각하면서 이 감독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고 영화로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고민하면 상징들을 찾을 수 있죠.

두 번째로는 컷과 컷을 연관지어 보는 것이에요. 이 컷에서 다음 컷으로 넘어갈 때 ‘왜 이 컷 다음에 저 컷일까?’ 질문을 던지며 영화를 보면 감독의 생각과 의도를 알 수 있어요. 신(scene)과 신의 연결에는 감독의 주제의식이 들어가 있거든요. 신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파악하면 영화주제가 쉽게 파악이 될 수 있고, 가장 쉬운 방법이에요."

- 리뷰들을 보면 철학과 사회정치학을 상당히 깊게 아시는데요. 어떻게 공부하시는지요?
"저는 학교 제도교육이나 규율을 싫어해요(웃음). 자유롭게 하고 싶은 게 많아서요. 일반 사회단체에서 나오는 정책 자료들과 사회과학 서적들을 즐겨 봐요. 늘 정치경제와 사회 이슈에 관심을 갖죠. 저는 항상 어떤 철학이든 사회과학이든 현실에서 검증받을 수 있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살아가는 사회가 중요하잖아요. 운동세력들이 현실을 변화시키려고 할 때 어디서 부딪치고 어떻게 넘어서려고 해야 하는지 고민을 해요."

<밀양> 속 정치담론, 타협정치의 설파

저는 서민노동자의 입장을 얘기하고 싶어요. 특히 노동계급 성격이 제 글에 강하게 반영되죠. 보기로 <밀양>(2007년, 감독 이창동)은 <괴물>, <살인의 추억>과 달리 겉으로는 상징이 드러나지 않죠. 영화를 다 보고나서 플롯을 유추해봤어요. 이창동 감독은 무엇을 얘기하고 싶을 걸까? 줄거리를 따져보고 상징을 찾다 보니까 <밀양>은 현실에서 타협정치를 얘기하더라고요. 이창동 감독은 노무현 정권을 옹호하고 경제주의의 한 부류를 대중들에게 강요하는 영화일 수 있더라고요."
(참고 - http://blog.naver.com/melt21/140039772788)

밀양에서 정치적 타협을 보여주는 씬 송강호(극중 이름 김종찬)의 얼굴 화면 밖으로 빼내고 그의 손가락으로 연결된 전도연(극중 이름 이신애)의 남편 얼굴 사진을 통해 그는 남편의 지위를 차지한다. 종찬의 속물성은 정치적으로 개량주의를 말한다고 씨네크라는 분석한다. 씨네크라 리뷰 스틸샷

▲ 밀양에서 정치적 타협을 보여주는 씬 송강호(극중 이름 김종찬)의 얼굴 화면 밖으로 빼내고 그의 손가락으로 연결된 전도연(극중 이름 이신애)의 남편 얼굴 사진을 통해 그는 남편의 지위를 차지한다. 종찬의 속물성은 정치적으로 개량주의를 말한다고 씨네크라는 분석한다. 씨네크라 리뷰 스틸샷 ⓒ 씨네크라


- 앞으로 어떤 글을 쓰고 싶으신가요?
"노동자와 대중들에게 필요한 영화들을 이해하기 쉽게 글을 쓰고 싶어요. 기층 사회의 노동자와 서민들이 자기 입장에서 보고 분석해야 하는데 사회에 존재하는 이데올로기와 언론들이 그들을 대변하지 않잖아요. 거기에 반대해서 노동자와 서민들의 눈으로 이렇게 볼 수도 있다고 말하고 싶어요. 평론가들이 쓴 영화평들을 보면 지식인들을 위한 평론이고 지식유희잖아요. 어려운 용어 쓰고 이런 저런 철학자 끌어들여서 그럴싸한 영화평을 하더라고요.

저는 논점을 잘못 잡고 있고 영화의 핵심을 안보고 있다고 느껴져요. 노동자계급에게는 해로운 결론을 내리고 있어요. ‘개인은 파편화 될 수밖에 없다. 현실은 바꿀 수 없다. 세상은 알 수 없다.’ 이거에 반박해서 글을 쓴 거예요.

기존의 평론가들은 영화분석에 기초를 소홀히 하고 있어요. 저는 영화 분석이나 공부만 한 것도 아니고 전문지식을 갖고 한 게 아니에요. 기본 이야기 줄거리와 컷과 컷 관계, 신이 어떻게 넘어가느냐를 분석한 거로 영화 지식을 모르는 사람도 분석할 수 있어요."

촛불집회, 대중의 힘을 느끼는 기회

계급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세상을 적극적으로 해석하는 그에게 지금 촛불집회는 큰 의미가 있을 거라고 생각이 들었다. 촛불집회에 대해 물었다.

"살아있는 세상이 중요하죠. 살아있는 세상에서 억압은 없어져야 하죠. 촛불집회로 대중의 힘을 사람들이 느끼는 기회가 되었어요. 집단의 이익과 요구가 존재하고 싸워야 하는 상황이 존재하며 집단과 집단의 대결이 존재하고 어떻게 싸워나가야 하는지 깨닫는 값진 현장이죠. 이러한 현실의 흐름을 보고 영화에 반영하는 영화인들이 많이 나올 거라고 예상이 되네요. 지금까지는 관조하고 현재의 고통을 나열하는 영화들이 많았어요. 지극히 지식인 관점이죠. 저 같은 사람이나 노동자들이 보면 괴로워요. 지식인들이 참여하고 개입해서 해결방법은 제시하잖아요. 고통을 왜 받는지 현실을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하는지 영화에 담아야 해요."

- 최근에 흥미롭게 본 영화가 있다면?
"요즘 영화 관심 덕분에 중요한 감독들을 보게 됩니다. 장 르누아르(1894~1979)의 <토니>(1935년)를 봤는데 70년 전 영화인데 한국 상황과 아주 비슷해요. 프랑스 임금이 더 높아 스페인 남자가 프랑스의 이주노동자가 되는 이야기인데 따뜻한 시선과 영화 미장센 등 아주 대단하더라고요. 그리고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과 김기영 감독 영화도 흥미롭게 봤어요."

씨네크라 씨네크라의 영화분석 얘기가 재미있어서 밥 생각보다 이야기 듣는 거에 집중하였다.

▲ 씨네크라 씨네크라의 영화분석 얘기가 재미있어서 밥 생각보다 이야기 듣는 거에 집중하였다. ⓒ 이인


그와 음식점을 나와 조계사 뒤편 공원에서 맥주 한 캔씩을 마시며 이야기를 더 나눴다.
봉준호, 김기덕, 홍상수, 박찬욱 등 한국영화 르네상스를 일으킨 감독들에 대해 유쾌하게 대화를 나누었다. 영화감독을 작가로 인정하고, 존중하면서 봐야 할 감독이 많다며 영화도 책처럼 봐줘야 한다고 그는 말했다. 그리고 현재 한국영화의 위기와 함께 줄어든 스크린쿼터에 대해 깊은 유감을 말했다.

소탈하면서 시원한 웃음을 터뜨리는 씨네크라였지만 진지한 이야기를 할 때는 뜨겁게, 그러면서도 부드럽게 생각을 건넸다. 그 바탕에는 자기 겸손과 세상과 사람에 대한 사랑이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가 운영하는 블로그( http://blog.naver.com/melt21 ) 자기소개에는 이런 문구가 있다. ‘영화를, 인간을, 사회를, 철학을… 사랑하는 사람.’ 꼭 들려서 그의 영화분석을 찬찬히 읽어보기 바란다.

반가운 사람을 만나면 밤이 짧다는 걸 새삼 느꼈다. 아쉽게 헤어지며 그의 앞날이 궁금했다. 훗날 단편을 찍고 싶고 정치철학 책을 내고 싶다는 씨네크라. 주소이름 melt21처럼 21세기를 녹여내어 더 나은 한국 사회가 되는 데 그의 글이 한몫을 할 거란 강한 예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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