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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 위에서 한번 쓰러지면 일어나기가 보통 어려운 게 아니다. 링에 올랐던 사람들은 모두 한결같이 그에 대해 공감한다.

하지만 격동의 1970년대, 쓰러지고 다시 일어나기를 무려 4번이나 하면서도 승리를 거머쥔 한 권투선수가 있었다. 지금은 어느덧 권투계 원로가 된 홍수환(58)씨가 그 짜릿한 '4전5기' 신화의 주인공이다.

최근 후배들을 지도하고 때로는 강당에 서면서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 홍씨를 12일 오후 서울 강남구 대치동 '홍수환 복싱클럽'에서 만나봤다.

이 자리에는 <오마이뉴스>에 '한국복싱을 살리자'는 이름으로 권투인 릴레이 인터뷰를 연재하고 있는 시민기자 이충섭(39·회사원)씨도 같이했다.

"권투계, 개혁해야 산다"

홍수환씨는 지난달 25일 한국권투인협회(KBI·이하 권투인협회)를 발족하고 회장을 맡았다. 이미 권투계는 한국권투위원회(KBC·이하 권투위)라는 단체가 있기에 권투인협회의 등장은 갈등으로까지 비화되기도 했다.

이에 대해 홍씨는 "권투가 그래도 우리가 어려웠을 때 국위선양하던 스포츠인데 지금은 권투인에 대한 보장조치가 전혀 없다, 후배들이 불안해 하는 것은 물론이고 은퇴한 선수들은 더욱 심각하다"며 권투인협회를 만든 의의에 대해 설명했다. 자신들을 스스로 지켜야하는 절박한 상황에 처했다는 것이다.

이어 그는 "우리는 권투위와의 대립을 원치 않는다"면서 "하지만 권투위가 20여명의 대의원을 무시하고 일방적인 행정을 펼쳐온 이상, 오는 21일 총회에서 획기적인 개혁의 목소리가 없을 경우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한 "내가 권투위 대의원은 아니지만 지금 대의원 가운데 불만이 많은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권투인협회가 개혁을 주도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냐'는 기자의 물음에 그는 "권투위와 화합하는 것이 중요하고 같이 나가는 것을 원칙으로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변화가 더욱 필요한 시점"이라고 단호히 답했다.

"요삼이의 죽음? 인재(人災)야 인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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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25일 서울 광진구 자양동 광진구민체육회관 특설 링에서는 세계복싱기구(WBO) 인터콘티넨탈 플라이급 타이틀 1차 방어전이 열렸다. 링에 오른 선수는 전 세계복싱평의회(WBC) 라이트플라이급 챔피언 최요삼과 도전자 헤리 아몰(24)이었다.

이 경기는 최요삼의 전원일치 판정승으로 막을 내렸지만 씻을 수 없는 비극을 남겼다. 경기 종료 직전 아몰의 펀치를 맞은 최요삼은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그는 이후 권투위 지정병원인 한남동 순천향병원으로 후송되어 뇌수술까지 받았지만 결국 1월 3일 법적 뇌사판정을 받아 싸늘한 주검으로 우리 앞에 돌아왔다.

공교롭게도 그의 마지막은 자신의 인생에 환희와 좌절을 동시에 안겼던 링 위였다. 그의 나이 만 34세. 세상과 하직하기에는 너무 젊은 나이였다.

홍수환씨는 고(故) 최요삼의 죽음이 명백한 인재(人災)라고 강력히 주장했다.

"(최)요삼이의 죽음은 주최 측의 늑장 대처 때문이다. 링 위에서 5분, 밖에서 20분 지체했고 병원까지는 무려 40분이나 걸렸다. 당장 산소마스크 씌우고 붕대·슈즈 벗겨주고 알몸에는 담요를 덮어 후송조치 했다면 살 수 있었다. 선수가 링 위에 쓰러져 있는데 한가하게 점수나 발표하고 있었으니…. 길이 막혀서 구급차가 빠져나가기 어려웠다면 주차된 차를 빼달라고 방송부터 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

옆에 있던 이충섭씨도 "동공 풀린 거 확인하고, 배 만지고, 따귀 때리고 할 게 아니라 일단 의식잃은 것을 확인한 순간 산소마스크부터 씌워야 했다"고 거들었다. 또 "12월 엄동설한에 상체 벗겨진 채 담요 한 장 없이 밖에서 20분간 방치하면 멀쩡한 사람도 탈이 날 것"이라고 꼬집었다.

홍씨는 권투선수로는 '환갑'이라 할 수 있는 30대 중반을 향해가고 있던 최요삼이 경기에 출전한 것 자체가 무리였다며 이미 3년 전 최요삼의 기량은 점점 눈에 띄게 하락세를 보이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요삼이를 돌봐주던 박태훈씨나 전 권투위 사무총장 이세춘씨가 3년 전 여수에서 지는 경기를 보고는 '얘 이제 링에 올리면 안되겠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3년이 지나고 다시 나오더라. 요삼이는 3년 전 이미 선수 생명이 끝났다고 봐야한다. 더욱이 그동안 낮에는 일하고 밤에 체육관 가서 연습하면서 정상적으로 훈련한 것도 아니었는데 과연 제 기량을 발휘할 수 있었겠냐. 처음부터 경기에 나서는 것 자체가 무리였다. 경기 뛰고 싶다고 해도 막아야 했다."

또 최요삼의 죽음 이후 공개된 일기장에 '맞는 것이 두렵다'고 쓴 글이 화제가 된 사실에 대해서도 홍씨는 "정말 '맞는 것이 두렵다'기보다 권투(선수로서) 나이가 든 것에 대한 아쉬움일 것"이라고 답했다.

이어 그는 "나도 링에서 내려올 때 그랬다, 선수로서 늙은 거? 그거 정말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아마도 너무나 인정하기 싫었을 것"이라며 권투 선배 입장에서 자신의 경험담을 풀어놨다.

이어 그는 프로권투마저 경기를 치르기 위한 안전장치가 절대 부족하다는 점도 거론했다. 홍씨는 "적어도 2주일 전에는 자신의 건강상태를 검증받아야 한다, 의사의 종합검진쯤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충섭씨도 "K-1만 하더라도 한달 전부터 CT촬영해서 제출하는데 그런 것도 없이 혈압이나 재고 주먹쥐었다 폈다 하는 정도로 경기를 준비한다는 것은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대전료 300만 원? 나같아도 안한다!"

과거 권투는 인기 종목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권투 세계챔피언이 누구인지, 한국챔피언이 누구인지 꿰고 있는 사람이 극히 드물어졌다. 홍수환씨는 이렇게 권투의 인기가 떨어지게 된 원인을 권투위의 주먹구구식 운영이라 보고 있었다.

"요삼이 대전료가 얼마였는지 아나? 고작 300만 원이었다. 그 돈 받자고 무리인 줄 알면서 링에 오른 것이다. 요삼이 때문에 밀려서 권투를 못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전료 보고 권투를 포기하는 사람이 더 많을 수도 있다. 오죽하면 최용수·지인진 같은 세계챔피언들이 K-1 진출하겠나. 권투 떠나는 후배들의 마음, 충분히 이해가 된다."

최요삼의 죽음이 남긴 여운이 채 가시기 전, 권투위는 다시 경기를 준비하고 있다. 6일 권투위는 오는 23일 충남 천안시 천안공고 체육관 특설링에서 이재명(25)의 범아시아복싱협회(PABA) 미들급 1차 방어전을 펼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홍씨는 "응급조치라는 게 큰 것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의사와 산소마스크만 제대로 비치되어 있다면 되는 것 아니냐"며 "아무 것도 없이 경기를 또 하겠다고 하니 어처구니 없는 노릇"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요삼이의 일을 벌써 잊은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그날 사고 현장에 있었던 집행위원들이 모두 사과하고 잘못을 다시 되풀이 하지 않아야 한다"며 "뭔가 새 출발할 줄 알았더니 결국 그대로 가겠다는 것 아닌가, 이럴 때는 정말 권투계 떠나고 싶다"고 한탄했다.

"국민들에게 고루 사랑받는 스포츠 되도록 노력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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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환씨는 현재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에 권투 전용체육관을 준비하고 있다. 권투 열기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기 위해서다.

"좋은 경기 보여드릴 테니 많이 찾아 달라. 과거 권투가 인기 있었을 때는 암표까지 성행했다. 미국·일본 등 다른 스포츠가 인기 있는 곳도 권투는 꾸준히 열리고 사랑받고 있다. 상황에 따라서는 유연하게 규칙도 바꾸겠다. 선수들이 제각각인데 라운드나 규칙을 꼭 한 가지로 정해놓고 진행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

끝으로 그는 최요삼의 죽음을 결코 헛되이 하지 않을 것이라고 굳게 다짐했다.

"참 애교도 많고 열심히 하는 친구였는데…. 평상시 가까이에 있지 못했고 귀여워해주지 못한 것이 너무나 아쉽다. 요삼이가 죽음으로써 우리에게 교훈을 줬다. 그 죽음이 결코 헛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나부터 권투가 다시 사랑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만약 권투위가 개혁의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면 '홍수환' 이름을 걸고 독자적인 길을 걸어서라도 권투를 살리는 데 앞장서겠다. 국민 여러분들께서도 권투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한다."

"우리의 잘못은 반성하고 있다"
[반론 인터뷰] 황현철 한국권투위원회 총무부장

홍수환씨의 신랄한 권투계 비판에 권투위원회가 일부 반론을 제기했다. 황현철 한국권투위원회 총무부장은 13일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우리의 책임은 충분히 통감하지만 몇 가지 오해가 있는 것 같다"고 해명했다.

일단 권투위에서 대의원 무시와 인사권 남용이 빈번하다는 홍씨의 주장에 대해 황 부장은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 권투위 대의원 제도는 2006년 3월 폐지되고 대신 회원제로 전환되어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모든 회원들이 모이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러다 보니 회원을 선별하게 됐고 자연스레 축소가 된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인사권에 대해서는 권투위원장의 고유 권한이라 쉽게 말하기 어려운 부분이다"면서 "권투위원장께서 현장의 의견을 수렴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지만 모두를 만족시키기는 사실상 어려운 것이 아니냐"고 반문했다.

한편 문제가 된 고 최요삼의 사고에 대해 황 부장은 "일단 예전에도 여러 언론을 통해 밝혔지만 권투위는 이 문제에 대해 책임을 통감한다. 특히 권투위에 근무하는 임직원들이 의학지식 부재로 효과적인 대처를 하지 못한 점에 대해서는 깊이 반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이 문제를 지적하기에 앞서 보다 자세한 정황설명이 있어야 한다고 항변했다.

"현장에 이미 링 닥터·커미션 닥터가 있었고 이 분들께 의학적으로 발생하는 모든 문제를 일임했다. 나도 현장에 있었는데 응급처치는 의료진의 고유권한이었다. 경기가 끝난 직후 최요삼은 물을 찾으면서 잠시 정신을 되찾기도 했다. 그래서 의식이 돌아오는 줄 알고 있었는데 다시 의식을 잃었다. 산소마스크를 사용하지 않았던 것은 현장에 있던 의사가 '본인 스스로 호흡을 하고 있어 괜찮다'는 소견을 냈었기 때문이다.

혼잡한 주차로 구급차 탑승이 지연되었던 것도 경기장 주차 문제에 대해 신경쓰지 못한 우리의 불찰이다. 주최 측 프로모터를 통해 충분히 이야기했어야 하는데 관성에 젖어 소홀히 했다."

마지막으로 황 부장은 오는 23일 열릴 예정인 이재명의 범아시아복싱협회 미들급 1차 방어전도 큰 변화없이 치러진다는 지적에 대해 "일단 신경외과 전문의를 현장에 모실 수 있도록 프로모터에 요청한 상태다"고 말했다.

이어 "구급차 이동경로도 확보해 5분 안에 병원에 후송될 수 있도록 처리했다"며 "앞으로 선수들의 건강관리를 위해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전적표 같은 의무카드를 만들어 지속적인 메디컬 체크를 실시할 계획이다. 필요하다면 CT·MRI 촬영 등도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덧붙이는 글 스포츠 관련 제보나 인터뷰 신청 받습니다.
http://aprealist.tistory.com
toberealist@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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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당 동작구위원장. 전 스포츠2.0 프로야구 담당기자. 잡다한 것들에 관심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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